!@#… 베스트오브2015 시리즈, 미디어편(미디어 관련 국내 및 해외 이슈, 불명예스러운 일들 등)과 시사편(시사사건, 올해의 키워드 등).
** 미디어 이슈 한국편
– 공영방송 이사진/경영진 선임의 친정권 비전문 난맥상: KBS에는 프로그램과 뉴스에 개입 발언을 해온 현 이사장 유임, 세월호 유가족 비하 글을 퍼나르는 이사의 3연임. MBC 방문진에는 부림 사건의 공안검사, 정수장학회 장학생 출신 교비 횡령 혐의 인사 등이 포진. KBS 새 사장선임 청와대 개입설. EBS 장악설. 거버넌스가 이 따위니 공공성, 전문성은 설 자리가 없다.
– 네이버 뉴스제휴평가위원회 발족: 크고작은 주류 언론사들의 넘치는 포털 어뷰징에 대한 대처로, 그 고양이들을 모아서 생선가게를 맡기는 해결책을 내놓은 네이버. 이들의 활동이 본격화될 내년, 과연 영향력 큰 거대 어뷰저들이 책임을 지게 될 것인가(그럴리가).
– 산케이신문 국장 기소 무죄 판결: 언론 자유 인정과 반론 담론화를 함께 추구할 줄 모르는 전근대적 대처 수준을 만천하에 드러낸, 대통령 심기경호대(이 경우에는, 검찰)의 국제적 망신 행위. 그 결과, 일본 극우신문의 악의적 보도를 정의의 승리자로 만들어버렸다.
– 구글 뉴스랩 사업: 새로운 언론 기술, 보도 실험에 대한 투자는 원래 언론사와 언론학과와 관련 단체들이 밀접하게 협업하여 선도해야 할 영역. 그게 제대로 안 되는 판에서, 구글이 그 역할을 대신 맡은 어쨌든 긍정적인 사례.
– 5인 이하 언론은 언론이 아니다: 정권의 신문법 시행령 개편으로, 상시고용 5인 이하 매체사는 인터넷신문으로 등록할 수 없게 됨. 사이비/어뷰징 언론의 난립을 막겠다는 명분인데,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더라도 규모로 품질을 논하는 부실한 정책력의 극단.
** 미디어 이슈 세계편…이라고 해놓고 대체로 영미권
– 롤링스톤즈, 버지니아대 집단강간 오보 파문: 성폭력과 대학사회 폐쇄성 등을 건드리는 충격적 특종이, 피해자측 인터뷰를 교차확인 없이 기정사실화했다가 발생한 큰 오보로 판명. 피해폭로자에 대한 배려 너머 사실 검증 자체의 중요성이 미국 언론계에 큰 이슈화.
– 아일란 소년 사진, 시리아 난민 정책 변화: 터키 기자가 절묘하게 포착한 시리아 난민 어린이의 시체 사진이 유럽 전역에서 시리아 난민 정책에 대한 전향적 재검토의 도화선이 되었음. 반면 얼마나 존엄을 생각하며 사진들을 신중하게 다뤘는가에 따라서 각 언론의 품격 차이도 리트머스.
– 페이스북 인스턴트 아티클: 페이스북과 여러 언론사들이, 페이스북 플랫폼에서 직접 서비스하는 방식의 콘텐츠 파트너십 시작. 한국식 포털뉴스 모델을 상기시키지만, 광고수익 쉐어링, 원활한 인터페이스 제공 등 여러모로 향후 판을 뒤흔들 사업으로 평가.
– 미국내 인종차별 사안 보도에 대한 불만의 확장: 각종 총격사건으로 더욱 부각된 인종차별 이슈의 주류 언론의 보도자세에 대한 불만이 누적되던 중, 미주리대에서 인종차별철폐 점거시위를 취재하러간 학교신문 기자를 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를 포함한(!) 시위자들이 몰아낸 사건 발생.
– 풍자신문 샬리엡도 테러: 신랄한(혹은 무례한) 풍자만화를 전문으로 하는 프랑스 주간지 샬리엡도의 이슬람 비하에 불만을 품었다는 테러리스트들이 편집실 습격, 제작진들을 총격살해하는 범죄 발생. 표현의 자유, 표현의 규범, 프랑스 사회의 계급격차, 사회통합 정책의 한계 등에 대한 다층적 논의 유발. 물론 무슬림들에 대한 단순화한 편견과 증오도 유발.
– 뉴욕타임즈 VR분야 박차: 첫 걸음으로 360도 영상 분야에 진출하여 “터전을 잃은 이들“이라는 제목의 난민 취재를 선보였는데, 모든 구독자들에게 구글 카드보드 뷰어를 무료 지급하여 일거에 플랫폼의 규모성을 얻는 선도적 광폭 행보.
**올해의 저널리즘 홀오브쉐임
– c일보의 ‘달관세대’론 시도: 오늘날 한국사회가 청년들에게 던지는 압박이 ‘헬조선’론으로 번지자, 일본의 사토리 세대론을 온순하게 복제해서 걍 니들이 노오오력하라고 맞섬. 차라리 왕년의 실크세대론이 더 그럴듯했겠다(아냐).
– 세월호 청문회를 소멸시킨 공영방송: 사회적 함의도 여전히 높고, 나름 충격적 발언이 많았던 세월호 청문회를 생중계 누락은 물론이고 뉴스에서도 매우 미미한 비중으로 밀어낸 지금의 KBS, MBC.
– 포털어뷰징의 드높은 패륜레벨을 보여준 뉴데일리: 한 젊은 배우의 불운한 부음을 접하며, 그의 비키니 사진과 선정적 문구로 도배하는 어뷰징 위용을 보여주었다.
– 한겨레의 윤구병 ‘특별기고’ 연타: 난감한 반미 세계관을 난감한 문장으로 던져놓아 폭넓게 욕 먹고도, 비슷한 기조의 글을 계속 내준 한겨레의 불가해한 데스킹.
**올해의 우수 저널리즘 기획
– 청년을 위한 나라는 없다 / 한겨레21 1075호 (및 후속보도): 당사자들의 현장으로 파고드는 탄탄한 기본기의 취재력으로 만들어낸, 지금 이곳 청년세대들의 사회적 현실 연작.
– 그들을 세금 도둑으로 만드는 완벽한 방법 / 시사인: 세월호 침몰이라는 큰 비극이자 사회적 대처능력 구멍이 어떻게 담론적으로 왜곡되어 묻혀버리고 있는지, 통찰이 아니라 데이터와 전문가 진단과 논리적 스토리텔링으로 풀어낸 기사.
– 메르스 현황 인터액티브 특설페이지 / KBS : 가장 필요했던 사안에 가장 필요한 역할을 해준, 일목요연하고 좋은 인터페이스를 갖춘 실시간 자료 모음의 힘.
– 듣도 보도 못한 정치 / 와글, 다음 스토리펀딩: 내용이 매우 시의적절하고 탄탄한 것은 물론이고, 기사에 대한 일반모금이라는 후원방식과 시민 참여를 논하는 기획 내용이 훌륭한 조화.
– 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 / 슬로우뉴스 외 다수 매체 동시 게재: 왜곡될대로 왜곡된 고학력 지식노동 분야의 노동현실에 대한 뼈저린 1인칭 목격이자, 변화의 촉구. 여러 온라인매체/커뮤니티를 함께 보낸 유통 형식도 주목.
보너스: [써보니] ‘애플펜슬’로 기사를 써봤는데요 / 블로터: 다루는 내용과 형식은, 의외의 시도에서 거의 완벽한 조화를 이룰 수도 있다. 손글씨라든지.
** 주목할 국내외 시사 사건
– 세월호 청문회 파국: 당시 해경 등 담당자들, 독박을 피하기 위한 안면몰수 모드 돌입. 정권 아 아니 공영방송국들과 대형보수신문들과 여권 정계, 생까기 모드 돌입. 사건 당시의 부실이 더욱 드러나면서, 관심 시민들은 울화통 모드 돌입.
– 청와대여권의 노동 5개 악법 강행 시도: 노동 ‘개혁’이라는 이름표를 떼고 그 내용을 보면, 아무래도 노골적인 노동권 후퇴. 그럼에도 3권분립이뭐에염 모드로 나선 청와대에, 요새 보기 드물게도 진영론보다 입법부의 역할을 우선시하는 프로페셔널리즘을 보여준 국회의장.
– 안철수 탈당, 야당 정국 대격랑: 지역성에 대한 왜곡된 인식, 이념이 아닌 사람 중심(…)의 계파화 등 여러가지가 맞물리며 당이 실제 역량보다 훨씬 지지부진하던 차에, 모호한 개념어 떼고나면 뭔지 모를 새정치의 기치를 건 안철수 의원 탈당, 야당 정국은 또 격랑으로.
– 메르스 대처 엉망진창: 따로 설명조차 필요 없다. 그저 “메르스 사태 종결”을 자축하는 마지막 순간조차도 이면에는 부실한 방치의 죽음이 있었음을 기억해야한다.
– 여성 인권의 온라인 담론화 활발: 폭로 국면을 타고 성장한 ‘페페페’ 단체든, 맨스플레인 개념 유행이든, 일베의 여혐 언어를 그대로 돌려주겠다는 메갈리아든, 소라넷의 성범죄 이슈화든, 웹툰 [뷰티풀 군바리] 논란이든, 온라인 상에서 여성 인권 사안이 열심히 표면화되었다. 여느 성장중인 운동들이 그렇듯 개선해야할 문제점도 발생했지만, 더욱 많은 구체적 실행력의 조직 운동과 제도화가 이어지는 내년이 되기를.
– 국사교과서 국정화 강행: 관련 한국일보 칼럼으로 충분.
– 성완종 게이트, 파문과 흐지부지: 정말 정치/경제를 아우르는 그런 큰 공공사안 스캔들이, 그렇게 깨끗하게 흐지부지될 수 있을까 지금도 너무 의아하다.
– 주민등록번호 변경이 가능해지다: 진보넷을 위시한 정보인권 활동가들의 오랜 노력이 마침내 중요한 결실을 맺은, 헌법재판소 판결이 나왔다. 개인정보 침해의 일등공신, 변경불가능한 주민등록번호에 헌법불합치의 철퇴.
해외.
– 트럼프 승승장구에 미국민들 경악: 신선한 ‘새정치’에 대한 열망이, 꼭 바람직한 방향으로 가리라는 보장은 없다.
– 시리아 난민 정책의 여러 방향: 시간이 지날수록 사실상 전국민 난민화를 향해가는 비극적 사태 속에, 접경 국가들의 난민 유입 저항, 보수 정권 유럽국가들의 반대 기조가 있다가, 아일란 소년 사진을 변곡점으로 영국이 한 발 물러서고 독일이 전향적으로 나서며 스폿라이트를 받고, 캐나다가 급 난민환영국 스타로 떠오르는 등 여러모로 흥미로운 국제 상황이 펼쳐지는 중. 그 속에서 결국 득을 보는 것은 어떤 국가가 아니라, 안전하게 살 곳을 찾는 바로 그 난민들이기를 희망한다.
– 세계 각지에서 ISIS 동조 (의심) 테러 기승: 파리에서도, 베이루트에서도, 많은 무고한 생명들이 무의미한 극단주의 테러리즘에 스러졌다. 그리고 공포와 경각심이 각 사회의 우경화를 일으키며, 테러의 목표를 성공시켜주고 있다.
– 미국 동성혼 연방차원 인정: 당사자들에게 축하를, 그리고 비교적 단시간내에 큰 성과를 이뤄낸 사회 진보운동으로서 전략 참조 연구를.
– 그리스 경제위기 사태: 모두가 서로 엮인 초국적 자본주의 체제(딱히 부정적 의미가 아니다)에서, 유럽의 정치통합 없는 화폐통합이라는 애매한 체제실험의 맹점이 터지고 또 터지고 좀 나아질까 했다가 다시 터진 그리스의 격랑.
올해의 개드립
– 아이 서울 유: 다들 기억하실테니, 멘트는 관련글로 서울하겠다… 아 아니 대신하겠다.
** 올해의 키워드: 킹찍탈
올해 최고의 버즈워드들이 헬조선, 죽창, 금수저 등이다. “헬조선”은 우리 사회의 부실에 대한 분개고, “죽창”은 그런 상황을 뒤집을 혁명의 이미지를 내세운 그저 막연한 투정의 정서다. 그리고 부실과 모순의 구체적 내역에는 금수저/흙수저의 숙명론이 있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의 끝에 있는 것이 바로 킹찍탈이다. 이것은 디씨 등지에서 발흥한 은어로, 풀어 쓰면 “킹무성 찍고 탈조선“. 시대착오적 권위주의 회귀를 걸어도 콘크리트 지지를 얻는 후진 정권이든, 갑질과 꼰대질과 수탈로 상대를 대하는 일상적 사회적 관계든, 헬조선은 변화시킬 각이 나오지 않아 보인다. 그렇다면 답은 나만이라도 이 땅을 떠나는 ‘탈조선’이 남는다. 그런데 떠나버릴 헬조선에 통쾌한 복수를 선사하는 좋은 방법은, 더욱 희망 없는 시궁창으로 만들어버리는 것이다. 그 방법이란, 킹무성을 대통령으로 찍어주는 것이다. 여기서 ‘킹무성’은, S당 대표이자 그렇기에 자동으로 유력 대권 후보인 김무성의 권위주의적이고 후진적인(즉 제왕적인) 속성을 빗댄 속어다. 대충 그림이 나오지 않는가.
킹찍탈은 사회적 부실함이 주는 고통에 대한 절망적 인식이 만들어낸 합리적(?) 파국의 완성형이다. 이 섬뜩한 해학의 유행이야말로, 왜 우리 시민들이 모두 함께 더 적극적으로 이 사회를 진보적 방향으로 틀어야 하는지에 대한 배수의 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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