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 만화에서 가족을 되짚어 보기 [파워텍 사람들 / 1705-06]

!@#… 현대파워텍 사보, ‘파워텍 사람들’ 기고. 게재본은 여기로. 글에 참조하기 위해(즉, 겹치는 내용을 피하기 위해) 가족 테마 만화 소개하는 다른 유사글들을 찾다가, 막 만화조선왕조실록을 추석용 콩가루 가족만화라고 소개한 비범한 글을 발견했는데… 음 여러 해 전에, 내가 쓴 거였다.

 

추억의 만화에서 가족을 되짚어 보기

김낙호(만화연구가)

무언가를 추억할 수 있다는 것은, 단지 지나간 것을 기억하는 기계적 기억이나 막연하게 지나간 것을 그리워하는 퇴행 같은 것과 살짝 다르다. 지금의 현실 속에서, 이전에 겪고 느꼈던 것을 문득 다시 끄집어내고 마주치며 새로운 일면을 발견하여 결국 그 위에 서있는 현재의 자신을 더욱 풍부하게 가꾸는 적극적 과정이다. 특히 어릴 적 읽던 만화, 그 중에서도 가족의 이야기가 중요하게 등장하는 작품을 다시 펼쳐보는 것이 그렇다. 흔한 속설로 [아기공룡 둘리]를 읽을 때 어린 시절에는 둘리에게 이입했지만, 어른이 된 지금은 그를 구박하는 어른 가장인 고길동이 와닿게 되었다고들 하지 않던가. 그저 뭉클하고 절대적이어야 하는 피상적인 이상향이 가족인 것이 아니라, 가족이라는 함께 살아가는 가장 긴밀한 공동체를 가꾸어가기 위해 적잖게 갈등하고 무엇보다 노력해야하는 이들의 삶이 바로 진짜 가족이다. 그런 의미에서 다시 읽어보고 싶은 몇가지 추억의 만화를 들춰본다.

[크레용신짱](요시토 우스이) , 혹은 좀 더 연식이 되는 분들은 [짱구는 못말려]라는 출간명으로 기억하시는 작품은 바로 그런 다시 읽기에 가장 적합한 작품 중 하나다. 이 작품이 주는 첫 인상은 낙천적이고 되바라진 유치원생 주인공이 성인들의 세계를 흉내내며 피우는 말썽, 그로 인하여 성인들이 오히려 난처해지는 상황의 발랄한 유머다. 무슨 뜻인지 사실은 모르면서 “헤이~ 아가씨”를 외치는 짱구(신짱), 쩔쩔매는 아빠와 엄마, 그럼에도 아이가 나름대로 돌보는 역할을 할 수 밖에 없는 아기 동생, 유치원생 친구들 등 다양한 사람들의 틈바구니에서 소재가 무궁무진하다. 그런데 이 작품을 다시 펼치며, 가족을 만들어가는 이들의 모습에 주목하면 더욱 흥미로운 작품이 된다. 도시 소시민들의 일상적 삶의 방식이 소소한 디테일로 이뤄져있고, 무엇보다 그 속을 살아가는 핵가족의 역할 분담과 인간적 결속력에 대한 응원이 가득하다. 엄마의 할인품목에 대한 집착이든, 늘 냄새가 구린 아빠의 양말이든, 최선을 다해 가족으로 살아가며 나쁘지 않은 이웃인 어떤 평범한 이들이 일상을 영위하고자 힘쓰는 결과이다. 아이가 벌이는 엉뚱한 일탈의 유머는, 어떤 일탈도 일상으로 복원시킬만큼 노력하는 가족이 있기 때문에 그만큼 박장대소할 수 있다(이런 면면은 장편 판타지 에피소드에서 더욱 확연하게 드러난다).

가족의 일면을 느끼기 위해서는, 반드시 장르를 ‘가족만화’로 기억하고 있어야할 필요도 없다. 격투 판타지 만화의 빛나는 고전인 [드래곤볼](토리야마 아키라)만 해도, 알고보면 가족의 이야기로 가득하다. 주인공인 손오공은 원래 인류를 멸망시키기 위해 아기 상태로 지구에 온 우주인이지만, 한 무술가가 그를 손주로 키워내며 결국은 온 우주를 여러번 구원하는 히어로가 된다. 그런데 그런 그는 정작 격투 수련을 하고 모험을 할 뿐이지 도저히 좋은 가장은 아니라서, 부인은 아들을 과보호하면서까지 가족을 이끈다. 한편 그 아들은 다른 외계 무술가에게 수련을 받으며 아버지처럼 따르게 된다. 한편 인류의 또다른 적으로 시작한 경쟁자 외계인은 손오공과 어릴적부터 모험을 했던 과학자와 결혼하여 겉으로 냉정하지만 속으로는 신뢰와 자긍심 가득한 가족관계를 만들기도 한다. 지구인 최강의 무술가는 한 때 적이었던 생체개조 인조인간의 마음을 열어 가족을 이루고, 많은 인연이 다음 세대와 그 다음 세대로 이어진다. 우락부락한 근육으로 변신하며 기공을 빔처럼 쏘는 우주적 격투가들이 호쾌한 격투가 질리지 않게 매력적일 수 있던 이유, 그것은 그 캐릭터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만들어내는 가족적 관계 덕분임을 다시 읽으며 발견하기 좋다.

가족이라는 가까운 관계이기 때문에 서로를 그저 사람으로서 이해하기가 더욱 어려워지는 경우도 있다. 2차대전 나치 독일의 홀로코스트에 대한 고발성 다큐멘터리로 먼저 기억되곤 하는 [쥐](아트 스피글먼) 또한, 가족의 이야기로 찬찬히 읽을 때 더욱 깊은 일면을 발견할 수 있다. 이 작품은 작가의 아버지가 겪은 아우슈비츠 강제 살인 수용소가 중심에 있지만, 그저 기록을 생생하게 옮기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만화가인 자신이 아버지를 취재하며 알아가는 과정이 액자로 입혀지고, 그것은 저항문화에 빠져들어간 아들에게 엄했으며 어머니에게 도저히 잘 대해주지 않았고 그래서 결국 완전히 소원해졌던 아버지를 서서히 재발견하는 과정이다. 막연하게 아버지를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그 분이 겪은 그 지옥의 경험, 그 지옥에서 살아남기 위해 발달시킨 처세 방식과 그 과정에서 키워낸 세상에 대한 인식을 되짚으며 그런 방식이 있을 수 있다고 ‘인정’할 따름이다. 그렇기에 작품은 포옹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묘비로 끝나고, 아버지에 대한 감상적 회한이 아니라 아버지로 나타난 어떤 삶을 덤덤하고 다층적으로 그려낸 작품 자체를 화해의 손길로 내민다.

조금 더 친근하게, 그리고 훨씬 집중적으로 가족 생활이라는 애증의 드라마를 느끼기 좋은 추억의 작품이라면, [일곱 개의 숟가락] (김수정)을 추천하고 넘어가지 않을 방도가 없다. 특집드라마로도 만들어져 히트친 적 있지만, 역시 애잔하면서도 낙천적인 감성, 격한 드라마와 늘 함께 하는 유머의 힘, 그리고 그 모든 것을 어설픈 설명보다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멋들어진 그림체로 이뤄진 원작 만화가 최선이다. 부모가 사고로 돌아가시고 다섯 사촌 남매와 할아버지가 가난하게 살아가는데, 현실적 조건과 서로에게 부딪히며 조금씩 성장하며 내일을 향해가는 이야기다. 이들이 처한 현실은 가족이기 때문에 모두를 껴안는 손쉬운 삶이 아니다. 사실상 집을 이끄는 명주나 다행히도 속 깊은 꼬마 옹이가 그나마 큰 도움이지만, 가족이 찢어지게 가난하게 되어버린 원흉이 바로 자기 영화판 꿈만 쫒다가 전재산을 날려버린 철없고 자존심만 높은 할아버지며, 사고의 충격으로 자폐증에 빠진 삼룡, 말썽만 피우는 초등학생 소룡 등을 어떻게 이끌어야할지도 늘 난감하다. 그런 와중에서 고등학생인 일룡은 점차 권투선수로 성장해가며, 모두와 함께 점차 가족의 무게를 감당해 나간다. 할아버지도 가족을 위해 철이 들고자 하고, 아이들도 각자의 방식으로 좀 더 빨리 성숙해진다. 힘들어도 역시 가족이다 같은 말랑한 희망이 아니라, 결국 함께 힘들이는 것이 바로 가족이다. 들춰볼수록, 바로 그런 이야기가 담긴 만화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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