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사회에 속한다는 것의 공포 – 인간실격 [고대신문 / 18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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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사회에 속한다는 것의 공포 – 인간실격

김낙호(만화연구가)

유명 원작을 만화로 이식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적절한 장르적 분위기를 찾는 것이다. “부끄러움 많은 인생을 살아왔습니다”로 시작해서 “태어나서 죄송합니다”로 끝나는 경우라면, 그 특유의 염세적 인간관과 집착적 묘사로 한 사회에서 시대적 절망을 공명시켰다면, 어떤 접근이 가장 적절할 것인가. 일본의 패전 후 잿더미 위에서 발표된 다자이 오사무의 유작 [인간실격]을 만화로 옮기면서, 희화화하지도 밀착하지도 않으며 오롯하게 그 불온하고 갑갑한 에너지를 이 시대의 독자들에게 전달하려면 말이다.

답은 의외로 당연했다. 신경질적 묘사로 표현하는 기이하게 뒤틀리는 세계, 그 안에 그대로 녹아들어 버리는 사회 속 인간들로 공포물을 그려내는 만화가 이토 준지에게 맡기면 된다. [인간실격](이토준지 / 다자이 오사무 원작)은 원작의 염세적 정서가 고스란히 세계의 모습 곳곳에 녹아들어간 채로 전개되는 이야기다. 넉넉한 가문에서 태어났으나 그 이면에는 성적 학대를 당했던 어린시절을 보낸 주인공 오바 요조는, 타인을 진정으로 이해할 방도는 없다고 믿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치 서로를 아는 듯 지내는 흔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펼치는 사회적 관계의 위선과 가식에 유별나게 민감하다. 그는 이런 괴리를 알고도 생존하기 위해, 남을 잘 웃기는 인기인을 연기한다. 그 이미지를 지키기 위한 노력, 미술공부와 학생운동과 동반자살기도, 중독 등의 인생이 이어지는 과정에서, 인간이라는 존재를 극도로 불신하되 사람에게 근본적으로 무심해지고 떨어지지는 못하는 피로와 미련이 반복된다.

인간사회의 험함에 던져진 요조를 다루는 원작 소설의 지배적 정서가 체념적 무력감에 가까운 느낌이었다면, 이토 준지의 만화는 불안이 강력하게 전달된다. 소설은 위선에 대한 자기인식을 무디게 하고 사회에 녹아들어버리면 편할텐데도 그것을 못하는 자신에게 절망하는 무게감이라면, 만화는 겨우 자아를 유지하는 자신의 본질이 들통나며 기괴한 인간 세계로 붙잡혀 끌려들어갈까봐 끝없이 불안하고 신경증에 시달리는 모습에 가깝다. 공포만화로 정평이 난 작가의 그림 속에서, 요조가 바라보는 인간 세상은 타인의 가식에 대한 머리 속의 실망 너머, 실제로 기괴한 곳이다. 탐욕도 불안도 심지어 애정도, 사람들의 표정과 그 주변 공간의 분위기를 불온하게 일그러트린다. 사랑을 나누는 두 사람의 몸이 하나로 녹아드는 묘사는 여타 수많은 다른 만화 작품에서는 낭만적 애정의 클리셰로 활용되건만, 이 작품에서는 주인공이 극도의 불안 속에서 결국 자신을 포위해버린 거대 생물에게 흡수당하는 공포물의 결말을 연상시킨다. 이 경우 그 생물은 바로 인간들의 사회다.

이해불가능하고 얄팍하며 위선 가득한 인간 시회의 일부로 기능해야한다는 염세적 실존의 정서가 전후 일본 사회만의 것은 아닐 것이다. 아니, 발전된 미디어 도구로 더욱 촘촘하게 사회적 관계를 강요당하는 지금 여기에서 더욱 절실할 수도 있다. 자학적 원작의 매력도 뛰어나지만, 옥죄이는 세계의 굴레의 공포를 효과적으로 그려내는 이토 준지 만화를 펼쳐볼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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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신문 문화비평 코너 타이거살롱 연재. 만화비평과 사회적 지향점을 슬쩍 엮어놓는 것이 목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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