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게재본은 여기로.
남자라면 읽읍시다, [며느라기]
김낙호(미디어연구가)
사회구조적 불평등 속에서 유리한 위치에 있다는 것은 참 미묘한 일이다. 내가 나서서 뭔가 누구를 박해한 것도 아닌데, 나도 나름 피하지 못하고 피곤한 부분이 있는데, 나는 사실 상대측을 배려한다고 믿는데, 무슨 죄의식을 자꾸 강요하니 말이다. 물론 그런 인식의 태반은, 현실의 불평등을 매우 대단히 턱없이 과소평가하는 것에서 나오곤 한다. 문제는 그런 현실을 직면시키기가 매우 어렵다는 점인데, 상황의 습득보다 억하심정이 빠르게 올라오기 때문이다.
[며느라기](수신지)는 며느리라는 신분에 처하게 된 한 젊은 ‘신혼’ 여성의 생활을 담은 만화다. 만화의 내용뿐만 아니라 연재 방식 자체가 작품의 일부라는 점도 독특한데, 작중 캐릭터인 민사린이 직접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을 운영하는 설정이다. 그렇기에 자전적 이야기를 만화로 연재하며, 틈틈이 먹은 것 입은 것 등 일상의 소소한 개별 순간도 사진 찍어 올리는 식이다. 오늘날 매체환경을 누리는 동세대의 모습을 입체적으로 구성하여, 작품의 내용이 그려내는 이미 현실감 넘치는 생활상을 더욱 극대화하는 것이다.
그 생활상은 무서울 정도로 일상적이고, 모든 상황은 덤덤하다. 너무나 일상적인 느낌이라면 오히려 무엇이 갈등이 발생하는 극적 지점인지 자칫 지나칠 수도 있겠다 싶지만, 절묘하게도 이 작품은 갑갑함의 순간을 놓치도록 내버려두지 않는다. 첫 화에서, 사무실에 있는 주인공 사린은, 시누이의 문자가 와서 일을 잠시 접고 확인한다. “언니~ 바쁘세요?” “내일 엄마 생신인거 아시죠?” “오빠가 맨날 깜빡해서요^^;” 더 강력한 다음 대화까지 갈 것도 없이, 이 안에 ‘며느리’라는 입지에 대한 여러 부당한 역할 부여가 간접적이지만 노골적으로 스며 나온다. 아침드라마스러운 악의를 날리는 모습도, 분노든 슬픔이든 감정을 폭발시키는 대목도 없지만, 이보다 선명할 수 없다. 나중에 시댁 제사 에피소드쯤 가면, 담담한 스릴러가 무엇인지 깨달을 정도다. 사위가 장모님에게 귀여움 받으며 노래방을 청하는 싹싹함조차, 상황 맥락에 따라서는 민폐다.
[며느라기]는 악인들의 탄압을 그려내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불평등이 고착된 사회 관습 안에 익숙하게 살아가는 대충 선량한 이들이 함께 만들어내는 지뢰밭을 생생하게 묘사한다. 패악질의 집약체를 허수아비로 세우고는 일침을 가하는 식의 어설픈 훈계를 하지 않는다. 강한 주장을 위한 위악적 위협이나 윽박지름도 없다. 그저 뼈저리게 현실적으로 넌지시 보여주는데, 그것이 너무나도 효과적일 따름이다. 그렇기에 이 작품은 이런 일상에 공감대를 표하는 여성 독자들 이상으로, 나를 포함한 여러 남자 독자들이 읽어야 할 작품이다. 나쁜 놈 취급당하는 억울함 없이도, 내가 더 유리한 입지에 있는 구조적 불평등의 지점들을 알아가기에 매우 적합하기 때문이다. 이미 밟은 여러 지뢰들을 돌아보게 만들고, 아차하면 밟게 되겠구나 싶은 더욱 많은 지뢰들의 위치를 친절하게 알려주는 고마운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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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신문 문화비평 코너 타이거살롱 연재. 만화비평과 사회적 지향점을 슬쩍 엮어놓는 것이 목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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