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와 이야기와 그림 도착증.

!@#… 저번 씨네21 원고에서, 만화가의 존칭이 ‘화백’으로 통용되는 현실을 싫어한다고 밝힌 바 있다. 화백은 원래부터 미술계의 용어로서 그림 잘 그리는 이에게 붙이는 것인데, 만화는 그림 그 이상이기 때문이다. 만화는 어떤 감성과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서 이야기를 하는 매체이며, 그 이야기의 수단으로서 그림이라는 표현방식을 자유롭게 활용하는 것에 불과하다. 물론 이런 반론이 제기될 수 있다:

 * 분업화의 시대, 스토리 작가가 따로 있는 경우는 어쩌고? : 스토리 작가는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사람, 하지만 결국 만화작가가 그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사람. 각본가와 감독의 차이다. 사실 분업화가 좀 더 되면, 그림도 직접 다 그리지 않게 된다(어시/문하생을 시킨다). 그 경우 더더욱 화백과 거리가 멀어지지.

 * 여하튼 그림을 그리니까 화백이라고 하는데 뭐가 불만이냐: 호타준족에 지능형 플레이까지 하는 야구선수에게, 당신은 최고의 육상선수라고 ‘나름대로 추켜세우면’ 좋아하겠나. 영화감독을 사진가라고 부르는 격이랄까. 원래 화백은, 신문사에서 신문만화가를 부른 호칭이다. 다른 부분은 어차피 다 빽빽하게 글인데, 만화만 그림이 들어가서 확실히 차별화가 되니까. 그뿐이다. 

 * 그래도 화백이라고 하니까 폼나잖아?: 정확히 하자. 화백이라고 부르면 폼이 나는 것이라고 서로 어느틈에 합의를 했을 뿐이다. 단적으로, 내가 보기에는 하나도 폼 안난다. 고작 그 정도 호칭에 편승하고자 만화를 미술계 담론의 하위분류 중 하나로서 전락시켜버리면서 그게 무슨 폼인가. 그래서, 그냥 보편적인 극존칭인 ‘선생’을 쓰는 것이 좋다. 이야기꾼, 혹은 아예 그림 이야기꾼에 대한 극존칭 단어가 새로 생겨나기까지는. 아니 생겨나지 않아도 사실 상관없다. 영화판에서, 명감독에 대한 전용 극존칭이 따로 있던가?

!@#… 하지만 보다 본질적인 차원에서 볼 때, ‘화백’ 호칭은 만화계의 만성적인 그림 도착증의 여러 결과중 하나에 불과하다. ‘미술’에 대한 하등 필요 없는 혼자만의 열등감. 

http://montblanc-kay.com/blog/archives/2005_05.html 참조.

…유효적절한 문제제기다. 확실히, 상당수/대다수의 본격 만화 커뮤니티들은 그림 페티쉬에 걸려있다. 이야기의 부재를 메꿔주는 것은 아이러니컬하게도 오히려 DC 카겔 같은 곳들의 여러 개인플레이어들. 하지만 사실 그 쪽도 90%는 서사적 완성도에 대한 고민보다는 즉각적인 아이디어를 4칸 속에서 발휘하는 것에 매진하고 있다. 물론 만화를 창작함에 있어서, 그림을 잘 그리는 것은 흉이 아닐 뿐더러 굉장한 장점이다. 하지만 그것은 그림 잘 그리는 것이 장땡이라서가 아니라, 자신이 표현하고 싶은 이야기를 풀어나감에 있어서 시각적 연출의 선택의 폭이 늘어나기 때문이다

!@#… 만화에서 좋은 그림이란 “잘 그린 그림”이 아니라, “적합한 그림”이다. 그런데 애초에 표현하고 싶은 이야기도 없는 주제에 그림만 딥따리 수련한다고 해서 도대체 무슨 좋은 만화를 만들어내겠다는 것인가. 그런데 표현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는 것은, 우선 세상에 대해서 생각하고 고민하는 것을 전제로 한다. 예를 들어 소위 대학이라는 곳의 만화학과에 필요한 “교양과목”은 교육학 개론이니 일본어회화니 일과 윤리니 하는 것이 아니라, 한국근현대사와 철학사와 세계신화학이라는 말이다. 그런 고민들을 갖추지 못하면 단지 속이 빈, 즉각적인 이미지만 난무하는 때깔좋은 쭉정이가 될 뿐. 화려하니까 독자들이 몰려들었다가, 얕으니까 이내 실망하고 우루루 흩어지는 패턴의 반복에 불과하다. 똑같이 그림 도착증에 걸려있는 창작 지망생들에게나 선망의 대상이 될 뿐, 이야기를 느끼고 싶어하는 일반 독자들과는 점점 멀어진다. 

!@#… 뭐 기술이 본질을 압도하는 이런 현상이 오로지 만화만의 문제인 것도 아니다. 영화든 소설이든 뭐든, 현대 이야기 매체들의 보편적인 골칫거리. 기술을 갖추는 것은 좋은 일이다. 그리고 기술만 갖춰도 얄팍하게나마 호응을 얻어낼 수 있는 듯 보인다(화려한 의상으로 TV화면에서 열심히 춤추는 붕어 엔터테이너 – 자칭 가수 – 들을 생각해보라). 그것이 목표하는 바라면, 말리지 않겠다. 하지만 10명 중 1명, 아니 100명 중 1명이라도 본질적인 길을 갈 때 비로소 만화는 진화한다.

 

— Copyleft 2005 by capcold. 이동자유 /수정자유 / 영리자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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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thoughts on “만화와 이야기와 그림 도착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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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pcold 좋은 논평인데 저는 다른 글에 더 크게 공감했네요 :-) http://t.co/Qf7viPQQ 만화가한테 '화백' 운운하는 걸 무지하게 싫어했는데 말이죠. 예전에 한참 어린 저한테 '화백'이라고 부르면 놀리는가 싶었던;;

Comments


  1. [네이버덧글 백업]
    – 전진석 – 저도 만화가를 화백이라고 부르는 걸 싫어합니다. 오히려 그림 밖에 모르는 만화가를 비꼬고 싶을 때 화백이라고 부르기도 하지요. 만화가는 화백이 아니고 작가인 것을… 2005/05/14 13:42

    – 크로이 – 음…. 확실히 만화는 ‘적합한 그림’, ‘다양한 표현방법’이 중요시 된다고 생각합니다. 2005/05/15 02:39

    – pinksoju – 1. 미술계에서 화백이란 용어는 대체 언제 쓰는지 잘 모르겠지만, 적어도 미술계에서도 폼나는 용어는 커녕..정말 거의 구경하기 힘든 용어이기도 합니다.

    어쨌든 화백 뿐 아니라 최근 미술판에도 거의 쓰지 않는 개념들 :
    1) 작품 : 신미술사학(http://blog.naver.com/pinksoju/60008568516 참조)의 영향력 하에, 현대작으로(최소한 19세기 이후) 올수록 작가들의 생산작에 대해서 작품이란 단어를 쓰면 무식한 인간 취급당하는 경향이 절대적. 작업이란 용어로 대체됨.
    2) 화가 : 들어본지 백만년 된 용어. 최근에는 거의 아무도 쓰지 않는 단어. 물론 작가란 용어로 대체. 그림으로 작업하시는 분들은 페인팅 작가라고 하지요. 하물며 만화가가 창작자나 작가로 불려야 하는건 더 말할 필요도 없는 사항.

    2. 적합한 그림이 잘 그린 그림.

    3. 기타 나머지 생각들은 엮었습니다. 2005/05/15 19:36

    – 코믹스팸 – 오옷…동감만빵! 다만 이미지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새로운 서사의 패러다임을 찾아내는 것이 필요한데… 2005/05/15 20:21

    – 캡콜드 – !@#… 하기야 생각해보니 미술에서 화백 용어 붙이는 것을 본 건, 아주 원로급(주로 동양화)들의 무슨 회고전 기사 나갈때 신문에서 어쩌다 한번씩 정도. 아하, 미술계 내부에서도 거의 사어였군요. –; 2005/05/15 22:11

    – 마야 – 100% 동감. 이야기가 비어있는 만화가 다 무슨 소용이랍니까. 2005/05/16 13:50

    – 잠본이 – 왜 사람들이 김성모씨를 화백이라 부르는지 이유를 알 것 같습니다. (…뭔가 아닌데…) 2005/05/18 12: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