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늘상 강조하는 “민주주의 사회에서 효과적 참여”에 대한 이야기로, 서울시 교육감 선거 목전에 발매된 팝툰 지난 호 원고. 이렇게 놓고 보면, 북두신권도 한번 ‘다크나이트’ 처럼 사실주의적 터치의 현대범죄물로 리메이크하면 꽤 쓸만할지도…(과연?)
상대평가에 참여합시다
김낙호(만화연구가)
핵전쟁 이후 황폐한 세계, 주먹질로 지배구도가 갈라지는 지옥도 속에서 정의를 실현하는 고독한 사내의 이야기를 그려서 한 세대의 뭇 (남자)청소년들을 설레게 했던 북두신권이라는 만화가 있다. 일자전승의 일격필살 살인무술로 거친 세상의 불의를 하나씩 두들겨 패서 바로잡는 의협심과 사정없이 온몸이 폭발해 찢겨 나가는 폭력적 호쾌함의 향연 속에 단연 돋보이는 인기 캐릭터가 있었으니, 바로 권왕 라오우다.
사실 권왕은 빼도 박도 못할 악역이다. 압도적인 폭력으로 구축한 공포의 권위 위에 세계를 지배하려는 자이자 인권의식 따위는 눈을 씻고 찾아보려고 해도 없을뿐더러 동생의 연인까지 빼앗고자 한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작품이 뒤로 가면 갈수록, 특히 극중에서 그가 죽어서 퇴장한 후 캐릭터의 재해석이 이루어진다. 방식이 달라서 그렇지 알고 보니 철권의 통치로 황폐한 세상에 질서를 가져다주려고 한 사나이, 개인의 욕심보다는 세상을 바라본 자 뭐 그런 식으로 말이다(한국의 모 과거 독재자에 대한 종교적 숭배현상을 연상시킨다).
작품 초반에는 분명히 그런 비슷한 복선조차 없는데 어쩌다 그런 인식 전환이 이루어졌을까. 해답은 가까운 곳에 있다. 상대평가 덕택이다. 우선 그는 악당들 사이에서 상대평가로 가장 인기를 끌만 했다. 다른 잔챙이 악당들과는 격이 다른 압도적인 최종보스였기에 폼나게 최후를 맞이했고, 이후의 모든 강력한 악의 보스들이 오로지 개인적 탐욕만 추구할 정도로 ‘찌질’한 성격 일변도였다. 하지만 왜 정의의 주인공과 정의의 동료들조차 권왕에게 순위가 밀리는가. 작품 속 특정 캐릭터를 지지해줄 만큼 작품을 즐기는 많은 애독자들이, 작품을 즐기는 이유이자 핵심정서인 힘과 폭력의 결정체와도 같은 권왕을 좋아했기 때문이다. 무언가를 지지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상대적으로 지지가 높으면 인기순위 1위다. 상대평가니까. 정의의 사도 여러분, 지켜주지 못해 미안.
세상의 중요한 부분들은 자고로 상대 평가로 움직인다. 예를 들어 현 정부와 여당의 무능을 질타하든 어쩌든 그 자체로는 아무런 실질적 효과가 없다. 한나라당이 압도적인 지지율 1위면 말짱 도루묵이니까 말이다. 조중동문의 빈약한 언론윤리를 수만 블로거들이 욕하든 말든, 그들이 여전히 뉴스언론 사이에서의 점유율이 과반에 달하면 영향력은 그대로다. 무언가를 여하튼 실제로 지지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하필이면 그들을 지지하는 비율이 가장 크면, 상대평가에 의해서 절대적 주류가 되어버린다.
그렇기 때문에 만약 무언가 진짜로 내 힘을 보태서 상식적인 세상을 만들어보고 싶다면, 첫 번째로 극복해야할 것이 그 놈이 그 놈이다 투의 판 자체에 대한 혐오다. 상대평가를 내리는 평가단에서 스스로를 제외시키는 꼴이 되기 때문이다. 지지정당이 없다는 것은 지적인 쿨함이 아니라 스스로의 성향도 못 챙기는 멍청함이며, 한국 언론이 다 그렇지 뭐 하면서 통짜 비웃음을 날리는 것은 사회 담론 발전의 가능성을 생매장하는 것에 불과하다. 다들 각자의 독특한 방식으로 악행이 있고 이점이 있는 것인데 쉽게 판 전체를 싸잡아 냉소하고 외면해버리면, 나를 빼놓고 남은 이들 사이에서 가차 없이 상대평가가 발동한다. 그 상대평가의 장에 뛰어들어 판세를 바꾸려 노력하지 않는다면, 아무리 수십만 수백만이 촛불을 들고 ‘절대평가’를 내리노라 선언한들 그 어떤 구도도 바뀌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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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주간 <팝툰>. 씨네21 발간. 세상사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그 양상을 보여주는 도구로서 만화를 가져오는 방식의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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