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 4칸 시사만화의 어제와 오늘 [경향신문 111006]

!@#… 경향신문 창간 65주년 특집호에 들어간 글. 선정 작업이 필요한 이런 글이 쓰기에 참 즐겁다. 장도리 이전 만화들과 장도리를 반반씩 할애하는 컨셉의 원고의뢰였는데, 그래서 아예 경향신문의 간단한 역사 맥락, 그리고 주요 사회 토픽들을 뽑아서 거의 일대일 대응 시켜봤다. 의뢰받은 원고분량을 심각하게 초과했는데, 별로 많이 안 자르고 실어주시고 작품들 제자리 들어가도록 편집하느라 고생하셨을듯. 게재본은 여기, 그리고 여기. 사실 지면으로 봐야하는데, 무려 2개면에 걸쳐서(섹션4-5) 시사만화로 가득한 멋지구리한 풍경을 만들어준다. 이런 기획을 만들어내신 박순찬 작가님과 장용석 기자님께 박수.

* 원래 원고에서는 ‘화백’이라는 호칭을 쓰지 않았는데(이유는 여기), 신문사 입장에서는 관행이 관행인 만큼 붙여주었더라.

* 옛날(…)에는 이런 글을 쓰려면 눈알 빠지게 먼지삼키며 마이크로필름을 뒤져야 했는데, 이제는 스캔신문 온라인DB로 슥슥. 네이버가 포털로서 한심한 일도 적잖게 해서 비판하지만, 이런 대놓고 훌륭한 일도 은근히 많이 한다.

 

 

[창간 65주년 특집] 두꺼비부터 청개구리까지… 권력에 맞서, 시대와 함께
(초고 제목: 4칸 시사만화의 어제와 오늘)

김낙호(만화연구가)

경향신문의 4칸 시사만화는 반독재 야당지로 명성을 떨친 5-60년대, 66년 박정희 정권의 강제매각 후 타의로 얌전해진 7-90년대, 그리고 98년 사원주주제로 독립한 후 다시금 진보 방향으로 날을 세운 현재라는 신문 자체의 역사와 함께 볼 때 더욱 흥미롭다. 55년에 김경언이 시작하여 3개월 만에 안의섭이 이어받은 [두꺼비]는 비틀어 한탄하는 고바우영감과 달리, 거의 직설적으로 독재를 비판하고 권위주의 세태를 풍자하는 것에 거리낌 없었다. 통렬한 반전을 담아내며 4칸의 기승전결을 십분 활용하는 연출력 또한 뛰어났다. 덕분에 정권의 탄압으로 인한 삭제라는 명예로운 훈장을 수차례 얻었다.

하지만 박정희 정권의 개입으로 신문의 성격이 바뀌면서 만화도 함께 바뀌어, 중산층 주부의 시점을 빌어 소소한 생활상으로 시야를 좁힌 정운경의 [왈순아지매]가 들어왔다. 이 만화는 75년까지 이어졌고, 김세환이 시작했으나 6개월여만에 김판국이 이어받은 [청개구리]가 연재되었다. 두 만화 모두 가끔 좋은 유머를 보여주지만, 독재정권의 검열과 당시 경향신문의 성격상 전체적으로는 온순했던 것이 특징이다.

한국현대사의 정치상황을 생각할 때, 시사만화가 가장 흥미롭게 다룰 수 있는 소재 중 하나는 바로 권력의 감시와 검열이다. 55년 4월 1일에 게재된 [두꺼비]의 첫 회는 부정부패 명목으로 누구나 잡혀갈 수 있는 상황을 만우절 농담에 빗대어 그려낸다(만연한 부패에 대한 풍자의 역할도 한다). 이런 상황들은 반복되고 악화되는데, 그럴수록 만화는 최대한 저항을 한다. 59년 2월 6일자는 4.19를 예견한 사설코너 ‘여적’의 필화사건이 소재인데, 만화나 보지 말고 여적을 읽어보라고 권장하는 만화라는 재미있는 형식을 취한다. 물론 저항만큼이나 검열도 이루어졌는데, 80년 8월 14일 원래 실렸어야 했으나 삭제된 [청개구리]가 대표적이다. 검열에 찌들어 세상을 왜곡하는 언론과 그것을 걸러서 보는 사람들의 모습을 ‘색안경’으로 풍자했다.

   

법안 날치기, 색깔론 공세 같은 한심한 정계의 모습과 그것에 대한 비판도 나름대로 유구한 전통이다. 이승만 국가보안법 날치기 직후인 58년 12월 26일자는 산타조차 민주주의가 돌아가셨다고 한탄하고, 노태우 방송법 날치기 직후인 90년 7월 14일자는 “날치기스타”를 비꼰다. 난장판을 만드는 것도 비판하지만, 날치기꾼은 아예 더욱 못난 ‘검은 별’로 그린다. 색깔론은 한층 더 무거운 문제다. 58년 1월 15일자는 조봉암의 진보당에 대한 부당한 탄압을, 경찰들이 아예 진보당을 청사 통째로 끌고 가버리는 것으로 풍자했고, 다음 날에는 흙탕물 튀기는 것을 시민들이 방패로 막는 모습으로 다시금 우회적 비판을 했다.

그리고 이런 와중에, 시민들은 시위로 저항하고 그 풍경을 다시금 만화가 그려냈다. 65년 7월 1일자가가 특히 훌륭한데, 전경 아들과 시위대 아버지의 반전효과는 지금 봐도 서늘하다. 긴 가뭄 뒤에 단비가 내린 날씨상황과 연계시킨 5일자 역시 연출이 뛰어난 걸작이다. 그러다가도 갑작스러운 국가수반 관련 사망 소식에는 애도를 보낼 줄 아는데, 슬픔을 강조한 육영수 피살 후 74년 8월 16일의 장독대 울음, 상실을 강조한 79년 10년 27일의 망연함 등이 특징적이다.

사회의 흔한 모습으로는, 오랫동안 가정생활을 괴롭혀온 입시 열기가 있다. 전두환정권이 과외금지를 선언한 80년 7월 31일자를 보면 칸을 뚫어버리는 엄청난 기쁨이 묻어난다. “어느 때라고 봉투야!”를 외치는 75년 11월 25일자처럼 부패와 위선에 대한 일상적 풍자도 있고, 통제된 사회 속을 살아가는 무력감을 광주 민주화항쟁 발발 직후인 80년 5월 19일자에서 “할 말이 없구나”로 간접적으로 표현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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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도리, 세로에서 가로로… 오늘의 통찰, 내일의 큰 창

4개월 가량 최정묵이 자리를 지킨 곳에 새롭게 95년부터 새롭게 들어온 4칸만화가 바로 박순찬의 [장도리]다. 아직 20대였던 젊은 작가를 기용한 것도 신선했지만, 특히 신문이 제 방향을 되찾은 98년 이후부터 진가를 발휘했다. 사회상황에 대한 전방위적 날카로운 발언, 지문의 독특한 리듬감, 각 칸 내용물의 병렬을 통한 절묘한 직유법, 그리고 그 모든 것을 감싸는 유머감각이 돋보였고, 이는 온라인 통신의 보편화와 만나며 더욱 호소력을 높였다.

 

하지만 시사만화가 꼬집어 줘야할 세상의 여러 모습들은 상당부분 그대로다. 권력의 감시와 검열은 좀 더 세련된 형태로, 하지만 여전히 노골적으로 이뤄진다. 경제전망에 대한 허위 내용을 올렸다고 온라인논객 미네르바가 체포되자, 09년 1월 9일자는 현 정권의 747 거짓말을 꼬집었다.

여전히 횡행하는 법안 날치기와 색깔론도 마찬가지다. 10년 12월 12일자는 재치있는 리듬으로 날치기 4종 세트를 논하며, 마지막에는 그 날치기꾼들이 은퇴 독재자 전두환에게 인사드리는 모습을 그린다. 적절한 날짜의 작품임은 물론이다. 자신들에게 불리한 모든 것은 북한으로 연결시키는 색깔론은 11년 9월 17일자에서 “김정일교”로 풍자한다.

그리고 아직도 원활한 정치수렴절차가 부족한 상태에서, 시민들은 큰 불만을 제기해야할 때 시위에 나서야 하는 풍경이 이어진다. 미국쇠고기 수입 졸속 결의 국면에서 큰 시위가 있었던 08년, 5월 28일자는 말로 하는 것이 답답하던 이전 정권의 상황과 아예 말로 안 되는 지금 정권의 상황을 효과적으로 대비한다.

한국사회의 가정생활 파괴범 1호, 과도한 입시열에 대한 지적은 항상 유효하다. 그렇기에, 09년 12월 10일자는 이런 분위기를 ‘교육열’로 착각하고 긍정적 사례로 인용하는 미국 오바마 대통령에게 보여주고 싶은 걸작이다. 이것은 11년 4월 13일자에서 “한국학위 안 됩니다”로 통렬하게 마무리하는 뿌리 깊은 사대주의에 대한 비판과 묘한 쌍을 이룬다. 부패와 위선에 대한 문제제기 역시 중요해서, 11년 6월 3일자의 뒷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내고 찔러주고 모습은 이 정권의 기본 작동패턴을 생각하게 만든다. 그렇기에 8월 23일자에서 정권의 최신표어 ‘공생’으로 말장난을 한 것이 통렬하다.

2011년 6월 3일 '장도리'
2011년 8월 23일 '장도리'

그 중에서도 가장 빛나는 순간은, 시대의 흐름에 대한 통찰을 할 때다. 작은 일상의 소시민 정서보다 훨씬 직접적으로 세상을 보여주는 것이다. 08년 12월 1일자는 역대 정권들을 각각을 상징하는 해산물로 나타내며 그들 공통의 귀결을 논하고, 11년 9월 20일자는 역행적 시대상을 각 분야로 나누어 점진적으로 보여준다. 오늘의 단면을 나타내는 본연의 역할에만 그치지 않고, 한 시대의 큰 그림까지 그려내는 귀중한 능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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