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를 모르는 불꽃남녀들에 관하여 [온라인진상열전 / 자음과모음R 2012 봄호]

!@#…계간 자음과모음R에 12년 봄호부터 시작한 새 연재, [온라인 진상열전]. 컨셉은 뭐 보다시피, 합리적 담론 형성을 가로막는 찌질한 진상질 패턴을 계열화하여 끄집어내는 것. 딱히 사례로 든 개인들을 까겠다는 취지라기보다, 그런 패턴이 범람하고 각자 스스로들도 빠져드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일종의 서바이벌 (“나까지 괴물이 되면 안돼!”) 가이드다. 가급적 원고 작성할 때 기준의 최신 사례를 활용하고자 하는데, 잡지 발간하고 유예기간 두고 여기 백업해놓을 때 즈음에는 한국사회 특성상 마구 새로운 떡밥들이 휘몰아치고 지나가서 좀 지난 이야기가 되어있음에 미리 양해를.

 

[온라인 진상열전] 사과를 모르는 불꽃남녀들에 관하여

김낙호(미디어연구가)

연재를 시작하며

“소통이 중요하다”고 너도나도 쉽게 말한다. 그도 그럴 것이, 사회적 삶에서 발생하는 문제들을 해결해야 할 때 총칼주먹보다는 말로 된 논지의 교환과정인 ‘소통’으로 합의를 도출하도록 강제하는 단계까지 우리 사회가 나름대로 발전했으니 말이다(세기말패왕전을 꿈꾸는 미개한 개별 영역들과 개인들은 가끔 있지만). 개인간 지질한 의견다툼이든, 법정싸움이든, 국가정책을 둘러싼 논쟁이든 마찬가지다. 그렇기에 훌륭한 사회를 만들겠다고 나서든, 자기계발을 꿈꾸든, 그저 호구로 전락하지 않고 살아남고 싶든, 좋은 소통방식을 판별하여 소통에 관한 교훈을 얻고 소통능력을 키우는 것이 늘 필요하다.

그런데 좋은 소통이란 어떤 것인지, 무슨 논리학 교과서를 반복하는  것이 아니라 오늘날 이곳의 현실 사례들을 통해 생동감 있게 따져보려면 어떤 식이 좋을까. 첫째, ‘온라인’을 매개로 일어나는 사례들을 살펴보면 편리하다. 오늘날 사회적 소통의 대부분이 최소한 일부분이라도 온라인을 거치고, 게다가 매체공간의 속성상 찾아보기도 참여하기도 좋다. 그저 기관들의 발표와 언론사 기사들이 웹에 돌아다닌다는 수준이 아니다. 트위터나 페이스북의 실시간 단문교류는 사람들이 늘 해오던 잡담 대화의 진화형태며, 블로그는 살을 붙인 개인 의견의 보고다. 둘째, 좋은 소통을 논하면 추상적 미덕들만 가득한 도덕교과서처럼 되기 쉬우니 이왕이면 반면교사가 더 효과적인 면이 있다. 뭔가 크게 어긋나는 불통, 즉 사고치는 소통 패턴을 살펴보는 것이 도움된다. 그런 짓을 흔한 용어로 ‘진상’이라고 부른다. 셋째, 아무렇게나 늘어놓기보다는 그런 모습들을 잔뜩 모으고 범주화해보는 것이 좋다. 패턴을 찾아내 교훈으로 삼아야하기 때문이다. 즉 일종의 ‘열전’을 기술하는 것이다.

세 가지를 합쳐놓고 보니까, ‘온라인진상열전’이라는 썩 그럴듯한 조어가  되어버렸다. 소통방식을 탐구하자는 퍽 야심찬 연재물의 제목은, 이것으로 낙착이다.

***

(1) 사과를 모르는 불꽃남녀들에 관하여

사람들이 의견을 나누다보면, 그 과정에서 어떤 부적절한 발언이 새어나오는 상황이 자연스럽게 발생하곤 한다. 그 결과 원래 논박을 통해 이뤄내야 할 결과로서의 설득과 납득이 아닌, 엉뚱한 피해를 상대 또는 제3자들에게 입힌다. 막말로 상대를 열심히 “까다가” 도의적 선을 넘어버린다든지, 나름 통쾌하고 솔직하다는 농담을 던지다가 민감한 부분에 대한 편견을 드러낸다든지, 아니면 그냥 스스로는 신념에 찬 한마디라고 했는데 그게 아뿔싸 거의 혐오발언이었다든지(말이 혐오스럽다는 의미가 아니라, 상대에 대한 공격적 혐오를 조장한다는 의미의 용어) 뭐 방식은 다양하다. 그런 경우는 늘상 일어나기 마련이고, 특히 의견을 나누는 과정이 바로 존재양식 그 자체일 수 밖에 없는 온라인이라는 매체공간에서는 더욱 그렇다.

그런데 훨씬 중요한 것은, 바로 그 다음이다. 발생해버린 문제에 대해서, 어떻게 수습해야 억울하게 담론적 피해를 입은 이들도 추스리고 자신도 체면이 설 수 있을까. 사실 이것은 우문인데, 모범답안이 너무 뻔하기 때문이다. 바로, “사과하는 것”이다. 제가 잘못 말했습니다, 죄송하며 앞으로는 더 잘 하겠습니다. 문제는, 이쪽을 선택하는 것을 너무나 어렵게 생각하는 이들이 차고 넘친다는 점이다. 사과를 하면 마치 자아가 붕괴라도 될 것 같이 인식의 창문을 닫고, 자신이 사과하지 않아야 될 이유에 대해서 계속 이것저것 가져다 붙이는 모습 말이다. 마치 근대 초기에 고작 지동설을 거부하기 위해서 천동설이 설명될 때까지(물론, 절대 끝까지 설명되지 않는다) 모든 별들의 물리적 궤적을 재설계하는 모습을 보는 듯 할 정도다.

사과를 모르는 것, 그것이 바로 모든 건설적 대화를 막으며 이야기를 공전시키고, 감정만 불타오르게 만드는 온라인 진상질의 영원한 우승후보다.

내가 옳으니 사과하지 않는다

사과에 대한 가장 흔한 편견 가운데 하나는 아마도, “내가 옳으면 사과하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일 것이다. 여기에 중학교에서 배우는 ‘대우’ 변환을 거치면, “내가 사과하면 나는 옳지 않은 것이 된다.” 무척 그럴 듯하다. 옳은데 사과를 하는 것은 굴욕이고 부당한 일이지, 암 그렇고 말고.

그럴 리가. 완전히 틀려먹은 소리다. 옳고 그른 여부와 사과해야할 필요성 여부는 완전히 별개이기 때문이다. 전자는 내용 자체에 대한 판단이고, 후자는 그것이 훨씬 복합적인 어떤 맥락에 들어가며 생겨난 파급에 대한 판단이다. 내 발언만 떼놓고 보았을 때의 옳음과 별개로 피해는 생겼을 수 있다. 과연 내가 옳기는 한가에 대한 여러 판단 여부는 별도로 치더라도 말이다. 사과 때문에 내 말이 오류가 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사과하든 말든 나는 이미 틀렸을 수 있다.

최근 부각된 바 있던 사과 관련 온라인 진상질 가운데, 인기 시사개그 팟캐스트 [나는 꼼수다]의 진행자들이 투옥중인 정봉주 전 의원에게 비키니 사진 응원을 보내라고 종용한 사건이 있었다. 그간 남성 시점에 입각한 야한 유머코드를 깊숙하게 구사해온 바 있는 방송이었기에 그 발언 또한 기본적으로는 농담 시도로 보는 것이 자연스럽기는 하다. 하지만 문제는 함께 힘을 모아 적을 물리치고 상식 넘치는 새 세상을 만들자는 식으로 정치적 활동을 종용해온 방송에서, 여성들을 대등한 파트너가 아닌 성적 코드 제공해주는 이들로 폄하한 꼴이 된 것이다. 이미 그보다 수개월 전에, 나꼼수를 통해서 비로소 여성들이 정치에 눈을 떴다던 비슷한 문제를 노출시킨 발언이 있었으나, 이번에는 비키니 사진이라는 선정성에 힘입어 큰 이슈로 번졌다.

여기에 대해서, 만약 이 방송이 원래 표방해온 ‘B급 잡놈 방송’이지만 제대로 된 사회 의식이 박혀있는 내용이라는 컨셉트를 제대로 살려서 대처한다면, 크게 어렵지 않은 모범답안이 나올 수 있다. “아, 이 농담 실패… 엉뚱하게 피해를 입혀서 죄송합니다. 저희가 성 정치 같은 토픽에는 아직 엄청 부족하니, 앞으로 더 배우겠음. 사과의 의미에서 저희들의 비키니를 감상하시길” 정도면 어땠을까. 하지만 현실은 훨씬 민망하게 흘러갔다. 사과를 너무 대단하고 어려운 것으로 만들어버렸기 때문이다. 방송의 색깔을 좌우하는 김어준 진행자가 사과 자체를 계속 유보하며, 사안의 내용에 대해 자꾸 엉뚱한 방향의 분석을 시도하며 팬들에게 사고틀을 던져주고자 한 것이다. 여성의 몸도 시위 표현의 자유이며, 누드 시위, 슬럿 워크 같은 것들이 오히려 여성의 주체적 방식이니 그것을 미안하게 여기고 막아서는 안된다는 논지다. 그리고 팬의 자발성이지 권력 관계가 없기에 성희롱에 해당되지 않는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자발적으로 보낸 그 사람에 대한 성희롱이 아니라, 방송을 듣는 불특정 다수에 대한 성적 대상화가 문제였는데도 말이다. 그렇게 설익은 천동설은 시작되었다.

그 전후로 해서 온라인 여러 공간에서 시끄러운 후속 토론들이 이어졌고, 농담 실패와 부대피해에 대한 사과보다는 왜 그런 것으로 화내느냐는 식의 삿대질이 곳곳에서 터지고, [나꼼수]를 계기로 피어오르던 ‘상식적 세상에 대한 열망’이 실제로는 성 평등에 대한 인식 같은 민감하고 오랜 사안조차 제대로 합의되지 않은 것이었다는 공허한 현실을 여러 사람들에게 직면시켰다. 그리고 입장을 정리할 심사숙고의 기간이 지나고, 차기 방송분량에서 결국 김어준은 이런 말을 남겼다:

“사진을 처음 보고 나서 순간적으로 그녀의 몸매를 대상화했다. 동시에 같은 뜻을 가진 동지로도 감정이입을 했다”

이런 양가성에 대한 자각은 무척 중요하다. 다만, 자신이 상대를 동지로 여기면서도 동시에 얼마든지 타자화, 대상화 할 수 있으니 그만큼 더 서로에 대해 조심하고 성찰하자는 의미일 때 피가 되고 살이 된다. 반대방향(“타자화하지만 동지로도 여길 수 있다”)으로 하면, 그냥 자신의 생각 없음에 대한 뜬금없는 사과 거부의 변이 되어버린다.

자신의 무오류성에 집착하다보면 처참한 악순환에 빠진다. 무오류니까, 반론이 들어오면 내 주장을 고쳐야할 것이 아니라 반대자들이 나를 음해하는 것이다. 그런 전투상황이 되기 때문에, 더욱 내 편을 결집해서 그들을 배척해야 한다. 점점 내용은 선명하게 극단화된다. 그렇기에 더욱 그 기조에 맞는 더욱 극단적인 지지자들만 남게 되고, 다시 더 극단적인 자기 몰입으로 돌아온다. 이 고리를 끊는 방법은, 아무리 어려워보여도 사실은 매우 명확한 한 가지다: 자신의 행위를 통해 발생한 피해에 대해, 사과를 하는 것이다. 사과를 하면서 이왕이면 “내가 이런 부분은 틀렸을 수 있구나” 성찰까지 이어지면 금상첨화다.

아, 이 고리를 끊는 다른 방법도 하나 있다. 다수의 사람들이 열광하는 다음 토픽에서 그들의 판단이 옳은지 그른지를 떠나, 그들의 ‘정서’에 불을 질러주며 함께 편을 들어주는 것이다. 황우석 줄기세포 사기 옹호, 심형래 디워 열광, 닥치고 반MB 뭐 그런 것이 딱 좋겠다.

사과하면 지는거다

무오류 착각과 비슷하되 조금 다른 방향에서, 사과를 패배로 생각하는 인식도 무척 문제가 많다. 이명박 정권에서 4년이라는 긴 기간동안 방송통신위원장을 맡으며 각종 낙하산 인사를 통한 정권의 언론 장악과 조중동 종편 특혜 등 정파적 이권을 앞장서 확보하는 것에 혁혁한 성공담을 남기고, 반면 방송통신의 산업적 진흥이나 사회담론 인프라로서의 발전에 대해서는 혁혁한 실패담을 남겼다가, 결국 각종 부정부패에 대한 책임을 지고 사퇴한 최시중의 두 건의 사과를 예로 들 수 있다. 온라인에서 한 발언은 아니지만(온라인을 제대로 알고 활용할 정도의 매체 전문성이라도 갖춘 인사였다면 차라리 그의 재임기간 중 방송통신계가 덜 갑갑했을지도 모른다), 뉴스라는 것이 오늘날 워낙 온라인 공간들을 통해 퍼지고 많은 논쟁으로 이어지기에 사례로 끌어오도록 한다.

하나의 사과는, 경영부실이라는 엉터리 죄목을 뒤집어씌워 당시 공영방송 KBS를 경영하던 정연주 사장을 임기 만료 이전에 쫒아내고, 노골적인 정권의 나팔수들로 경영진을 채운 것과 관련된 것이었다. 오랜 법정 싸움 끝에 정연주 전 사장에 대한 부당해고가 최종 판결되었다. 여기에 대해 최시중은 “부당해고로 판결나면 책임을 지겠다”고 발언해왔고, 대법원 판결 이후 그에 상응하는 무언가를 요구받았다. 그러자 내민 사과 내용은 바로 “(정 전 사장의 무죄 판결을) 축하하고 미안하다” 였다. 하지만 그에 따른 사임 또는 기타 조치는 없다고 못박았다. 무슨 7-80년대 일본 수상들의 식민지 사과 생색내기 릴레이를 보는 듯한 광경이다. 마지못해 미안하다는 어휘만 등장했을 뿐, 내용적으로는 전혀 사과가 아니다.

반면, 같은 자의 다른 사과가 하나 있다. 이번에는 자기 팀의 부정부패 문제가 본격적으로 불거진 것에 대한 대응이었다. 전 정책보좌관의 금품수수 의혹에 대해, “진위 여부를 떠나 심려를 끼쳐 진심으로 죄송하다며, 검찰 수사를 통해 시비가 가려질 것”이라고 하고, 한국방송연예진흥원 이사장의 구속에 대해서도 “진심으로 사과하고 책임감을 느낀다”고 했다. 깨끗하게 사과하여 문제 인력들을 털어내고 정치적 위기를 돌파하려는 자세가 돋보인다. 그리고 결국 부정부패 문제에 대한 압력을 받아들여, 실제 사임으로 이어졌다. 뭐 정치적 책임을 자신의 팀에 확산하지 않고 혼자 껴안고 소멸하기에는, 사임 시기가 4년쯤은 너무 늦었지만 말이다.

이런 사과에 대한 차별적 자세의 근간에는, 사과를 패배로 보는 인식이 깔려있을 가능성을 생각하게 된다. 그런 경우라면, 비리에 대해서 국민 일반에게 사과하는 것은 그냥 정치적 과정이다. 반면 정연주 전 사장에 대한 사과는 적에게 패배를 인정하는 것이 된다. 묘한 역설이 발생하는데, 자신이 거꾸러트리고자 적극적 악행을 가한 상대에 대해서 오히려 사과를 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그에 비해서 간접 피해를 입은 정도인 이들에게는 상대적으로 사과의 제스쳐를 보내기 쉬워진다.

굳이 최시중이 아니더라도, 이런 경우를 우리는 수많은 온라인 말싸움에서 쉽게 목격할 수 있다. 쓰러트려야할 적에 대해서는 온갖 말꼬리를 잡고 온갖 감정싸움으로 번지고 결국 한 쪽이 ‘버로우 탈 때’까지 ‘까’지만, 그 과정에서 정보 몇 가지 수정해주는 제3자들에 대해서는 적당히 고마워하고 미안해하고 하는 광경이다.

확실히, 맞서 싸우고 있는 상대가 있다면 내가 사과를 했다가 상대가 승리로 의기양양해 하는 모습을 상상하는 것만도 끔찍할 수 있다. 하지만 사과는 패배가 아니라, 문제를 인정하고 수정하는 과정이다. 문제를 직면하지 않고 자신만의 정신승리에 빠져들면 발전을 이루지 못하고 당연히 확실한 패배가 될 뿐이다. 혼자만의, 그리고 자신에게 적당히 비위 맞춰주는 작은 버블 안에서는 편할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아니 사실 개인으로서는 꽤 행복한 경지일지도 모르겠다.

죄송해요, 그런데…

사과가 필요한 사안이 아닌데 엉뚱하게 사과가 튀어나온다면, 그것도 은근히 민폐가 될 수 있다. 사안의 초점을 전환시켜버린다는 점에서 논의를 더욱 산으로 가도록 만들기 때문이다. 특히 사과를 정서의 영역과 이치의 영역을 흐트러트리는 방식으로 끌어들여 버리는 경우가 그렇다. 예로 들기 적합한 최근 사례는, 언젠가부터 사회적 발언에 대한 대중의 반응도가 상당히 높아진 소설가 공지영의 최근 몇몇 화제가 된 트윗들이다.

공지영 작가는 조중동 종편방송에 출연하는 모든 이들에 대한 맹목적 반감 표시로 이미 구설수에 오른 적 있는데, 인터뷰 출연을 했다는 이유로 피겨스케이팅 김연아 선수에게 훈계조를 늘어놓아 뿌리 깊은 가부장 정서를 드러낸 바 있다. 그 후 중앙일보에 자신이 소설을 연재했던 바를 지적당하자 노무현 정권 당시는 상황이 달랐다며 미디어판에 대한 부족한 이해력을 아낌없이 노출하기도 했다. 그런데 부패한 관료적 한국사회에 대한 비판으로 관객들의 호평을 받고 있는 영화 [범죄와의 전쟁]에 대해서, 이런 트윗을 남기고 말았다.

“(범죄와의 전쟁) TV조선이 투자했단 말에 급호감 하락ㅜㅜ”

즉 타도할 대상인 조중동 종편이 투자한 영화라니 문제가 있다는 식의, 이전 내용들의 연장선상에 있는 말이다. 그런데 여기에 대해서 많은 이들이 창작자들이 제작투자처에 대한 선택권이 없다는 당연한 반론을 제기했다. 그랬더니 나온 것이 바로 다음의 의례적 사과다.

“죄송해요. 그런데 비호감이에요”

물론 이런 발언들을 일부 뉴스매체에서 공지영이 영화에 대한 보이콧을 종용했다고 포장한 것도 논란을 더욱 키웠다. 하지만 여기서 주목하고 싶은 것은 사과 부분이다. 헷갈리기 쉽지만, 애초의 발언은 자신이 그 영화를 비호감으로 느꼈다는 사적 감정에 대한 견해다. 애초에, 자신의 사적 감정인 ‘비호감’은 사과할 일이 아니다. 다만 그것을 공적 효과를 노리는 형태로 발언했기에 – 전체 공개로 해놓은 수십만 팔로워의 트위터 계정에 올려놓고 그것이 오로지 자신만 읽기 위한 사적 메모라고 변명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 – 그에 대한 다양한 논란이 붙는 것은 자연스러운 귀결이다. 보이콧을 종용한 적은 없기에 그렇게 적시한 매체들은 모두 거짓말을 한 것이지만(그것이 얼마나 부끄러운 일인지 해당 언론인들이 제발 좀 깨달아줬으면 좋겠지만), 그 정서에 ‘공감’하여 영화를 나쁘게 이야기할 어떤 이들이 생길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그런데 그 뒤에 이어진 ‘죄송해요’ 발언은, 공적 효과의 발언을 해놓고는 다시금 사적 감정의 영역으로 도피하는 행위다. 감정의 영역이라고 강조하면서 동시에 자신이 여전히 옳음을 강조하고, 그 매개로서 사과를 동원했다. 나는 당신들의 이야기를 들었으나 무시하고 계속 싫어하겠다는 이야기로, 그런 반론 논지들이 전혀 중요하지 않다는 뉘앙스를 품는다.

정서로서조차 사과할 상황도 아닌데 이치에 대해 사과의 용어를 쓰는 혼란스러운 언술은 그냥 사람들 헷갈리게 만드는 함정일 뿐이다. 공지영 작가의 경우는 자신의 사적 정서에 (공적 반론을 뭉개버림으로서) 나름의 공적 정당성을 자동 부여하기 위한 도구로 사용했다. 물론 정상적인 합리적 논의를 위해서는 가급적 피해야 할 기법으로, 논의고 자시고 상대를 놀려 먹는 재미를 즐기고 싶을 때나 구사하는 것이 낫다. 만약 논의를 염두에 두었던 것이라면 “여러분들이 제기해주신 내용은 타당하다고 봅니다, 다만 논리를 떠난 제 사적 감정 차원에서는 아직 즉각적 거부감을 극복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정도가 적합했을 것이다. 애초부터 진지한 사고가 뒷받침되었다기보다는 단지 피상적 공감을 구하는 메시지라면 뭐 어쩔 수 없지만 말이다.

게다가 이치에 대한 남의 말을 귀담아 듣지 않는다는 것이 드러났으니, 아마 앞으로도 비슷한 방식의 진상은 계속될 것이라고 예고하는 것이나 다름 없다.

사과 전과 사과 후가 같다

기적의 다이어트 식이요법이라고 홈쇼핑 광고를 보고 구매를 했는데, 먹기 전과 먹은 후가 같다면 그 식이요법이 그냥 아무것도 아니었던 것이다. 사기를 당했다고 생각하며 화를 내는 것이 적합하다. 사과 역시 비슷한 이치다. 사과에 대한 또다른 흔한 편견은 사과가 무언가를 마무리 지을 것이라는 인식이다(“사과하고 끝내라”). 정반대로, 사과는 후반의 시작이다. 사과는 자신이 일으킨 문제를 인식했음을 선언하는 것이고, 그 인식이 이제 실제로 박혀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은 사과 뒤에 비로소 일어난다. 선언은 이후 행동을 위한 공개적 다짐이고, 이후 행동에 대한 평가 척도가 될 따름이다.

진영이나 다수의 지지에 얽매이지 않고 화려한 독설과 날카로운 논리로 90년대말부터 사회 논평의 이슈메이커로 자리매김한 진중권의 예전 사례를 끄집어내 보자. 그는 2004년 한 인터뷰에서 정몽헌 회장, 남상국 사장의 자살 사안에 대해 “앞으로 자살세를 걷었으면 좋겠어요. 왜냐면 시체 치우는 것 짜증나잖아요”, “검찰에서 더 캐물으면 자살하겠다고 ‘협박’하는 넘들이 있다고 합니다…검찰에서는 청산가리를 준비해놓고, 원하는 넘은 얼마든지 셀프서비스하라고 하세요” 라는 발언을 남긴 적이 있다. 그런데 5년 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자살 이후 과거 발언이 다시 문제시되자 그제서야 “독설을 퍼붓다가 넘어서는 안 될 선을 넘어버린 것 같다”는 사과를 진보신당 게시판에 간략하게 남겼다. 걸린 시간이나 사과를 하게 된 맥락, 발표 매체, 사과 내용에 대한 불만도 만만치 않지만, 적어도 충분히 구체적인 사과였다.

문제는, 그 사과 후 자살을 바라보는 인식에 대해서 수정이 이루어졌는가 여부다. 스포츠스타와의 염문 이슈가 붙었던 한 아나운서가 괴로움을 호소하며 자살기도를 암시하는 내용의 트윗을 올렸는데, 그 것이 사실은 자살을 암시한 것이 아니었다고 당사자가 해명한 사건이 있었다. 그러나 결국 얼마 후 실제 자살을 하고 말았다. 그런데 당사자 해명과 자살 사이의 기간동안, 관심을 끌기 위해 거짓 경보를 울렸다는 식의 비난이 적지 않았다. 그 흐름에 편승하여, 진중권은 “1.30알 넘게 삼켜봤습니다 2.끈으로 목을 매봤습니다 3.뛰어내리려고도 했습니다. 황당한 기사를 읽고나서 문득…아, 1.M&M 2.넥타이 3.번지점프 얘깁니다”라고 트윗을 남겼다. 맥락상 언론에 대한 비웃음이라고는 하지만, 논쟁 승리를 위한 독설과 조롱을 위해서라면 자살이라는 무거운 사안조차 쉽사리 경박하게 다루는 사고방식이 사과 이후에도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음을 노출한 사건이었다.

사과라는 선언을 시작으로 하여 이후 인식을 바꾸지 않는다면, 애초에 무엇을 위한 사과란 말인가. 사과가 끝이 아니라 중간 기준점임을 망각하기에 벌어지는 문제이며, 비슷한 토픽분야에 대해서 반복적으로 논쟁이 붙는 게시판과 블로그의 고정 논객들에게 종종 보이는 패턴이다. 논쟁과정에서 물의를 일으킨 후 여러 근거 자료와 사람들의 압박에 못 이겨 사과 비슷한 무언가를 남기고는, 잠시 게시판에 그만 출몰하거나 블로그 활동을 접는다. 하지만 일정 기간 후 슬그머니, 같은 아이디 혹은 다른 필명으로 다시 나타나서 똑같은, 아니 자신의 억울함을 토로라도 하려는 듯 한층 극단으로 흘러간 내용으로 또다시 논쟁을 쫒는다. 디씨 정치사회갤러리, 이글루스 우익성향 시사 블로거들 등 그런 방식이 흔하다 못해 거의 일상적인 온라인 공간들도 여럿 있다.

명심하자. 이후 발언과 행동에 대한 수정으로 이어지지 않는 사과는, 그냥 또 다른 공개적 조롱에 불과하다. 뭘 실제로 만들어나가기보다 그냥 조롱이 최종 목적이라면 뭐 어쩔 수 없지만.

누구에게나 있는 기질

그러나 사과를 모르는 기질은 유명 필자들의 전유물이 아니라, 우리들 누구에게나 쉽게 발생할 수 있는 속성이다. 내가 무오류임을 고집하고자 사과를 피하고, 패배로 받아들여질까봐 사과를 또 피하고, 슬쩍 사과인 척하며 자기 이야기를 강화하기 위한 엉뚱한 방향전환을 하고, 이후에 수정을 하지 않는 빈 사과를 날리는 것이 어떤 특수한 사람들의 사례일 리가 없으니 말이다. 트위터든 페이스북이든 블로그든 커뮤니티 게시판이든 채팅방이든 또 어디든 참여중인 논의 공간에서, 사과를 모르기에 짜증나는 진상질을 펼칠 그 누군가가 바로 나일 가능성이 언제나 열려있다.

마치 감기가 걸리는 것을 완전히 막지는 못하지만 건강한 생활 습관으로 가급적이면 예방은 할 수 있듯이, 그런 진상이 되지 않기 위해 할 수 있는 사고방식 습관이 있다. 첫째, 무오류성에 관해서는, “틀린 것보다, 틀린 것을 고치지 않는 것이 100배 더 굴욕”이라는 점을 기억하면 된다. 틀리는 것은 자신의 문제라기보다 불가항력인 경우도 있다. 하지만 틀린 것을 고치지 않는 것은 온전히 자신의 문제다.

둘째, 패배 인식에 대해서는, 사과한다고 해서 모든 논쟁에서 지는 것도 아니며 설사 해당 사안에서 상대의 우위를 인정한다고 해도 무슨 인생의 패배자가 되는 것이 아님을 상기하면 된다. 어떤 부분에서 “졌다면” 과연 내 모든 사고와 인격 가운데 어느 정도의 부분이 패배한 것인가.

셋째, 사과를 사과가 아닌 전략적 레토릭으로 남발하는 것을 줄이려면, 그냥 사과는 사과로서만 하는 습관을 들이는 것이 좋다. 사과에 각종 조건을 달고, 어떤 반론을 위한 접속절로나 사용하면 피차 피곤해진다.

넷째, 빈 사과가 아니라 실제 수정으로 뒷받침하려면… 그냥 그렇게 하는 수 밖에. 그 자체가 생활습관이지, 비법도 지름길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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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교양지 자음과모음R 연재. 합리적 담론 형성을 가로막는 찌질한 진상질 패턴을 계열화, 반면교사 삼는 일종의 서바이벌 가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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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 thoughts on “사과를 모르는 불꽃남녀들에 관하여 [온라인진상열전 / 자음과모음R 2012 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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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Pingback by 남신의주유동이씨봉방

    "사과 때문에 내 말이 오류가 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사과하든 말든 나는 이미 틀렸을 수 있다." http://t.co/8TfArPRC

  2. Pingback by 용감한 나무

    사과는 패배가 아니며, "틀린 것보다 틀린 것을 고치지 않는 것이 100배 더 굴욕" 이라는 점을 기억.
    나부터도 머리로는 알고 있는데 정서적으로 참 실천하기 힘들다… http://t.co/KKJmjVvQ @capcold 에서

  3. Pingback by Pentacle

    "사과는 패배가 아니라, 문제를 인정하고 수정하는 과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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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1. ‘사과는 패배가 아니며 틀린 것을 고치지 않는 것이 훨씬 굴욕’
    맞는 말이긴 한데… 예로 드신 김어준씨 같은 경우 과연 자신이 ‘틀렸다’라는 점을 제대로 인지했는지 모르겠습니다. 처음에는 ‘이게 왜 틀린 거지?’라고 보다가 나중에 생각이 다소 바뀐 게 아닌가 싶더군요.

    저 같은 경우는 사실 ‘생물학적 완성도’ 운운 – 이런 말을 했는지는 오늘 처음 알았습니다 – 한 것 말고 어떤 면에서 비판을 받았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여성의 육체 상품화’라는 관점이라면 제가 그리 공감하지 않고요…

    그런 점을 떠나 논지 자체는 잘 읽었습니다.

  2. 방금 전에 올린 글은 이메일을 짜가로 대충 올렸더니 스팸 처리된 듯하군요. 큰 상관은 없습니다만.. ^^;; 그나저나 하나 더 쓰자면 ‘잘못한 게 없는데 왜 사죄를 하나’라는 인식은 다들 갖고 있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훨씬 복합적인 어떤 맥락에 들어가며 생겨난 파급’을 책임진다면 자신이 의도치 않은 상황에 대해서도 사과를 해야 하는 건지 제가 잘 이해를 못하겠군요. 물론 정치적인 관계에서는 당연히 필요한 일이지만 사회대중 상당수는 ‘사실은 그게 올바른 거다’고 보고 있지 않을 듯합니다.

    혹시 시간이 나셔서 설명해주신다면 좋겠군요. 물론 굳이 그럴 필요는 없습니다만… ^^;;

  3. !@#… 지나가던이님/ 헉, 스팸필터가 메일주소로도 팍팍 잡는군요 이젠(저도 다른 사이트에서 임의 주소 자주 넣는데…);; 여튼 끄집어냈습니다. //

    1)동지취급 당하다가 갑자기 성적대상화 당하면, 열받는거죠. 그런데 그걸 간단히 인정하면 될것을(정봉주는 그렇게 했죠), 변명을 돌려막으며 반감을 더욱 키우고.

    2)정치가 아니라 일상적 상황에서도 “별다른 악의 없이 던진 돌에 개구리는 맞아 죽는” 상황이야 넘치니까요. 혹은 이 사례를 키우면, “이쯤 천천히 던지면 보통 개구리는 피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이 개구리는 못피해서 맞았다”는 경우도 발생하죠. 상황 인과가 뚜렷하면, 의도는 후순위라고 봅니다.

  4. 부부싸움할 때도, 내가 잘못했다고 사과하기가 쉽지 않더군요. 사과를 했으면, 앞으로 같은 잘못을 반복하지 않게 해야하는데, 그렇지 못하니까, 잘못이 아니라고 자꾸 우기게 되는 것 같습니다. 사과하고나서도 내 행동을 바꾸지 못할 것 같을 때 사과안하고, 잘못아니라고 우기게 되더라구요.

  5. !@#… 모조인간님/ 문제는 부부싸움의 경우라면, 잘못인 것을 알면서도 우길 때는 상대가 백이면 백 금새 눈치챈다는 것이죠(핫핫)

  6. 사과가 어려운 것은 인간의 본성이 기인한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저는 듭니다만.
    지나간 글이지만, 제게는 처음 읽는 글입니다. 앞으로도 적절한 시기에 적절한 글을 알려주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