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궁관 사건, 합리적 타협의 기회를 놓친 비극

!@#… 소위 ‘석궁관 사건’에 대해서 약간만 더(아무래도 교수라는 직종, 학계라는 것의 역할에 대해서 생각이 많을 수 밖에 없다보니…). 이전 포스트에서 이야기한 바는 이 사건은 교수라는 직종 자체가 애초부터 그냥 ‘학자’이기만 해서는 안되기에 벌어진 일이고, 부당해고와 교수라는 직종의 한계와 석궁테러는 각각 책임져야한다는 것. 그런데 그렇다면 도대체 어떻게 했어야 했다는 말인가. 이런 상황이 또 닥치면 학자가 양심을 지키지 말아야 한다는 것인가? 설마. 그래서 이왕 말나온 김에, 문제의 ‘첫 단추’를 한번 되짚어보며 어떤 ‘다른 방법’들이 있었을지 한번 살펴보면 어떨까 한다.

!@#… 우선은 당시 입시의 상황맥락부터. 입시문제 사건이 터진 95년 입시라면 수능 + 본고사 시스템이 도입된지 고작 2년째. 특히 학교별로 직접 문제를 내는 시험이 십수년만에 겨우 부활된 것이기에, 본고사는 각 학교의 특성과 자존심이 걸려있는 시험으로 간주되던 시기다 (소위 ‘자존심 좀 있는’ 학교들만이 자신있게 본고사를 들고왔을 정도니까). 수능이 소수점 이하 단위로 좁은 점수차만을 발휘하는 데다가 아직 학력에 대한 변별력이 확보되지 못한 불안정한 시험으로 여겨졌던 것과 달리, 본고사는 ‘진짜 실력’에 따라서 큰 점수차가 날 수 있는 서술식 시험으로 자리매김하고자 했던 것이 당시의 상황이었다. 그렇기에 본고사는 대학교 입장에서는 채점방식과 변별력에 있어서 촉각이 곤두설 수 밖에 없는 이슈였던 것.

그런데 아뿔싸, 이미 시험 답안지를 다 받아놨는데 나중에 수학 시험문제 – 그것도 15점이나 차지하는 대박 문제에 오류가 발견된 것이다. 이 때 과연 어떤 결정을 내려야 할 것인가. 단순히 ‘학자‘의 입장에서 보자면, 당연히 문제 자체를 무효화해야 한다. 그런데 그렇게 할 경우, 시험의 변별력이 그만큼 크게 희생당해서 선의의 수험생 피해자가 나오는 것은 물론, 그 사실이 공개되었을 때 그 해의 해당 학교의 본고사 시험 자체에 대한 신뢰도가 크게 실추되어 학부모들의 거센 항의가 뻔히 보이는 상황이다. 그렇다면 ‘교직원‘의 입장에서 보면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그래도 논리적으로 대답을 해 나간 사람들에게는 논리의 완결성에 따라서 채점을 해주는 것이 가능하다. 그런 발상에서 95년 당시의 성대 입시관리자들이 만든 ‘모범답안’이 과연 얼마나 말이 되는지는 수학자가 아니라서 직접 판단하기 어렵지만(심히 문제가 있다는 포스트가 간간히 있지만), 이러한 발상 자체는 결코 틀렸다고 할 수 없다. 순수한 학술 논문의 장이 아니라 입시라는 실용적 목적의 평가 차원에서 보자면 결정적으로 임무도 완수하고 아무도 다치지 않으니까. 그런데… 이제는 알려질대로 알려졌다시피, 당시 오류를 발견한 김명호 교수는 일괄 0점 또는 15점의 무효처리를 강변했고, 다른 교수들은 기존 모범답안에 약간만 수정한, 문제 자체를 합리화해버리는 ‘수정모범답안’에 집착했다. 한 명은 ‘학자’에 올인하고, 나머지 팀은 위신을 생각하려는 ‘직원’스러움에 올인했다.

!@#… 그 이후 과정은 솔직히 완전히 고삐풀린 일들의 연속이다. 김 교수는 이런 행태에 크게 불만을 품었는지 ‘성대입시부정’이라는 자극적인 키워드로 각종 게시판들을 도배하고 다녔다고 한다. 솔직히 ‘엉터리 시험‘ 즉 자신들의 오류를 덮고 지나간 것이지 ‘입시부정‘ 즉 특정 누군가에게 특혜를 주는 부정부패는 아닌데도, 필요 이상의 감정적인 대응을 해버린 것이다. 당연히 학교 당국도 열받고, 수학과의 다른 교수들과의 사이가 악화될 수 밖에. 대학원생들하고는 원래부터 그다지 사이가 좋지 않았던 듯 하고 (아무리 대학원생들의 실력이나 공부에 임하는 자세에 불만이 많아도, 대놓고 쭉정이라고 부르면 참…). 외부인으로서 알 수 있는 것은 별로 없지만, 아마 상당한 충돌의 에피소드들이 연이어지지 않았을까 한다. 왜냐하면 학교측이 나름대로 자신들이 생각할 수 있는 수습책을 내놓을 정도였으니까. 즉 95년 6월. 부총장, 교학처장, 연구처장 등의 명의로 김 교수에게 교육대학원으로 적을 옮길 것을 강요, 응하지 않으면 징계위원회에 회부하겠다고 했단다. 물론, 응하지 않고 여름에 사전공고 없는 4학년 전공필수 강좌까지 개설. 그러자 학교당국은 결국 승급심사 미끄럼과 재임용거부라는 수단으로 보복. 솔직히 학교 당국의 처사도 도저히 이해가 안가는 것이, 아무리 다른 항목들로 명목상 맞추어서 ‘합법성’을 갖춘다고 할지라도, 그렇게 소동이 일어나 있는 상황 바로 다음에 그렇게 하면 어떻게 자료를 갖추어 놓더라도 입시문제 오류 지적에 따른 보복인사라는 것이 드러나지 않겠는가. 만약에 만약에 만약 정말로 입시문제 건과 관계없이 그냥 교직원으로서 문제가 있기에 자르는 것이라고 할지라도 행여나 그렇게 보일 수 있으니 다른 방법을 찾았어야 했건만 말이다. 어지간히 같이 감정적이 되어 판단이 마비되었거나, 아니면 한국 입시담론의 힘의 지속성을 과소평가했거나.

!@#… 다시 시계를 95년 입시 채점 현장으로 돌려보자. 만약 학자와 교직원의 입장 양쪽을 추구해야 하는 ‘교수’들이라면 어떻게 해야 했을까. 사실 의외로 간단한 접근법이 있었다. 당시의 새 입시시험에서 도입되었던 가장 획기적인 발상 가운데 하나가 바로 ‘정답없음’이었다. 즉 문제를 풀 수 없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 바로 문제의 의도인 종류의 문항들이 수능에서 처음 등장했던 것이다. 물론 입시교육에서도 수능과 본고사에서 그런 것이 나올 수 있음을 강조했고. 그렇다면 당시 문제의 오류를 지적한 김명호 교수와 마찬가지의 방법으로, “문제 자체가 성립하지 않음”을 제대로 증명해낸 사람들에게 점수를 주었으면 좋았을 것이다. 애써 전제조건을 멋대로 재단해서 문제를 합리화할 필요도 없고, 문제 자체를 폐기할 필요도 없었다. 여튼 이렇게 맨 처음에 합리적으로 서로 조율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치자, 오버는 오버를 낳고 결국 김 교수는 10년 넘게 떠돌아다니며 억울한 고생, 성대는 결국 이미지에 화끈하게 X칠. 완벽한 lose-lose 상황.

첫단추에서 조율하지 못해서 윈윈 상황은 망가졌지만, 이후에 피해만이라도 최소화할 수 있는 방법 역시 없던 것은 아니다. 김 교수가 피해를 줄일 수 있던 기회라면 95년 6월에 교육대학원으로 적을 옮기라고 인사발령받았던 때. 어차피 한 학문분야의 학계는 좁기 때문에 성대 수학과에서 어떤 식으로 트러블이 있던 교수라는 소문이 다 났을 수 밖에 없었을텐데, 어느 정도 연관성을 유지할 수 있는 다른 학문 분야로 이전하는 것 역시 최선은 아닐지언정 충분히 합리적인 선택이다. 혹은 최소한 신분을 유지하면서 해외에 안정된 job을 찾아볼 수 있는 시간이라도 벌 수 있으니까 말이다. 유능한 수학자로서의 자존심과 경력을 고작 입시문제 하나에 올인했다는 것은 당혹스러운 일일 뿐이다. 입시문제에 오류가 있었다는 사실은 언론에 몰래 찔러주기만 해도 한국의 입시담론 과열 현상 속에서 자연스럽게 공론화되었을텐데 말이다.

대학 측이 피해를 줄일 수 있던 방법은, 부교수 승진을 거부시키고 나서 소송에 들어간 이후, 입시문제 오류가 언론에 95년도 11월에 보도된 다음, 인정할 것을 인정한 후 김 교수와의 충돌에 휴전을 내리는 것. 수습할 것은 수습하고, 특히 그런 방식의 이미 감정적이 되어버린 충돌을 괘씸죄로 다스리겠다는 식의 발상을 버렸어야 했다. 바른 말을 한 교수와 결국 관계가 악화되었다는 식으로 나가면 그때부터 이미 이미지 X칠 시작 아닌가. 만약 그때 확실히 밟아버리겠다는 듯 더욱 강수를 두는 것이 아니라 김 교수의 지적사항에 대해서 깨끗하게 인정을 해버렸더라면 그 때 이미 매듭이 지어졌을 것. 그 후 유감스럽게도, 곧바로 몇주 후에 3개월 정직 처분을 내려버리고 그 후 곧바로 정직처분을 바탕으로 재임용 거부라는 연타를 때려버리고 말았지만.

!@#… 일어나지 않은 일에 대해서 아쉬워할 생각은 없다. 여전히 사실관계는 변함없으니. 보복인사로 인한 부당해고가 있었으나 서류 근거 모양새를 잘 갖춰놔서 법적 하자는 없다고 판결이 났고, 그 과정 속에서 한 학자의 커리어와 제정신이 망가졌고 학교는 크나큰 이미지 손실을 입었다. 하지만 역시, 그런 식의 충돌지점에서 도대체 왜 합리적인 조율을 하지 않고 끝장을 보고 싶어한걸까, 그런 상황을 보면서 중간에서 조율해줄 만한 사람이 그렇게도 없었던가, 궁금해질 수 밖에. 타협은 원칙의 반대말이 아니라, 원칙을 실생활에 응용하기 위한 중요한 방법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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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1. 글 잘 읽었습니다. 황우석 사태 시 네이버 시절부터 캡콜드 님의 글에 항상 감탄해 오던 눈팅 유저로써 이번 기회에 인사를 드립니다.

    그런데 인문학 같은 학문도 아닌 수학이란 학문의 특성상 오류가 있으면 있는 거고, 없으면 없는 거지 어떤 타협점을 찾는 다는 것이 과연 가능한 일인가인 점에서는 의문이 있습니다. 관련 학계의 저명한 학자들이나 학술지 등에서 수학문제의 오류 지적이 정당하며 0점처리를 해야한다고 하는 것을 보면 김 교수의 주장 자체에는 무리가 없어 보입니다.

    다만, 이러한 사태 발생시 합리적인 조정장치가 없는 대학 현실에 대한 지적은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그래서 사학의 민주적 운영을 위한 전향적인 사학법의 필요성을 더욱 느낍니다.

  2. !@#… 말줄임표님/ 말씀하셨듯, 오류는 100% 오류죠. 그래서 오류를 알게 된 후에도 오류 자체를 적당히 우회하는 수정모범답안을 내버린 성대 수학과 채점진이 명백하게 잘못한 것이고 말입니다. 오류는 솔직하게 인정하되, 그로 인해 발생하는 피해를 수습함에 있어서는 한국의 당시 입시제도 맥락을 고려하면 타협의 여지가 분명히 있었다는 것이 제 의견입니다. 어차피 당시의 수험생이라면, 문제 자체에 오류가 있다면 그 오류 자체를 지적하는 것이 정답이라고 입시교육을 받았으니까요(제가 94년 수능+본고사 1세대라서 경험적으로 아는 부분입니다). 김 교수의 빵점처리 의견은 ‘옳습니다’. 다만 수험생들, 학교, 무엇보다 자기 자신에게 돌아올 부대적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가장 합리적인’ 선택이 아니었던 것일 뿐. 그런데 그런 조정은 이미 서로 열받아 충돌하는 당사자들이 직접 해결하기란 어렵고, 중간에 조율할 수 있는 시스템이 정말 중요한데… 뭐, 없거나 형식적으로만 갖추놓기 일쑤니까요. 사학법 개혁의 필요성이 정말 절실하기는 합니다.

  3. 좀 더 생각해보자면, 만약 교수가 부당하게 해직되었을 경우 그나마 법에 호소라도 해볼 수 있게 된 것은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그 전까지는 모조리 ‘각하’되었으니까요. (기각도 아니고 –) 2003년 헌법 소원 걸어서 2005년부터는 그나마 법에 호소라도 할 수 있게 되었지만, 일단 법정에서는 단순히 한 교수의 해직이 옳았느냐 잘못된 것이냐를 판단하는데 있어서, “절차상 하자”가 있었냐 없었냐’만’ 놓고 따지고 만약 절차상 문제가 없었다면 그걸로 끝이라고 들었습니다. 이번 판결도 그 정도 수준이었다고 들었고요. 교수의 사회성, 인간성을 판단하는 과정과 내용이 제대로 이루어졌느냐 같은 건 애초부터 법정의 관심 밖이라는 이야기죠. 설혹, 여기서 법정 싸움에서 이겼더라도, 학교 측에서 다시 맞소송을 걸 수 있기 때문에 임용되기까지는 다시 또 몇 년이 걸릴 겁니다. 판사에게 석궁을 쐈지만, 만약 다른 경우였다면 학교 관계자에게 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차라리 이게 나으려나 –;;)

    어쨌든, ‘석궁’을 아이템으로 사용한 것은 역시 ‘석궁관’이라는 전무후무한 (유도관보다 더 충격) 대학계의 만담을 성사시키기 위한 위대한 희생이었다는 데에 한 표를 던지고 싶습니다. 감동입니다. 전 김명호 교수의 뜻을 존중해, 앞으로 성균관 대학은 무조건 석궁관 대학이라고 부르기로 했습니다. 뺨 맞기 전까지는.

    정말 너무 좋은 이름입니다. 석궁관 대학교. 가슴이 뭉클해져 옵니다. 저도 얼른 만담 수련을 거듭해서 석궁관에 못지 않은 멋진 아이템을 찾아야 겠다고 날마다 다짐하고 있습니다.

  4. 수능 1세대인 94년에는 두 번의 수능 시험을 치루고 더 나은 점수를 택하는 방식이었고, 수능 2세대인 95년에는 단 한 번의 수능 시험과 본고사를 치루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5. !@#… Laurent님/ 아, 그렇죠 맞아. (도대체 도입 1년만에 그런 메이저한 입시제도 변경이라니… -_-;) 이놈의 기억력. 하기야 정작 자신이 입시의 굴레에서 벗어난 다음의 입시제도들에 대해서는 기억이 흐려지는 것을 막을 수가 없다는…;;; 지적 감사하며, 살짝 수정 들어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