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만화계, 한국 만화 [만화정보 0702]

!@#… 부천에서 발간하는 종이소식지 ‘만화정보’에 실린, 한국만화의 미국 만화판 진출 패턴에 관한 정리. 수박 겉에 침바르기 수준으로 개요만 풀어낸 정도지만 (예를 들어, 한때 이현세 만화 출판 건 덕분에 한국언론에서는 엄청난 곳처럼 포장해주었던 CPM 정도는 과감히 생략), 약간은 현재 미국의 분화되고/변화하고 있는 만화판 상황 속에서 한국만화, 만화가를 한번 생각해볼 기회가 될 수도. 아니면 말고.

미국 만화계, 한국 만화

김낙호(만화연구가)

한국 만화가 미국 만화계에서 자리잡는 방식은 어떤 것들이 있을까. 우선 가장 쉬운 구분은 한국에서 출판된 한국만화를 미국에서 번역 출판하는 것, 또는 한국의 만화가가 미국의 출판사에서 만화 작품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그런데 앞의 경우야 그렇다고 치더라도, 사실 뒤의 경우는 세부적으로 들어가면 약간 더 경우의 수가 많아진다. 한국에서 미국에서 출판하기 위한 창작 스튜디오를 만든다면? 분업화되어 있는 미국의 만화 스튜디오 특성상 데생 등 특정 작업만 전담해서 수행한다면? 혹은 아예 작가와 작품의 국적 자체도 애매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어떤 조건이 충족되어야 한국의 만화가인가? 한국에서 태어났으나 미국에서 교육을 받고 미국식 만화를 그린다면 그 작가는 한국작가고 작품은 한국만화가 되는 것일까. 또한 미국식 만화와 한국식 만화의 차이는 어떻게 해야할 것인가. 한번 간단하게, 한국만화가 미국 만화계에 들어온 방식들을 훑어보는 기회를 마련해보도록 하겠다.

1) 대본소식 성인극화의 진출 시도와 실패

초기의 한국만화 미국 진출은 미국 만화 시스템에 대한 뚜렷한 분석 없이 단지 한국 작품을 미국에서 출판한다는 비교적 단순한 컨셉으로 시작했다. 그 전에도 ‘아마게돈’ 등 개별 작품들이 시험적으로 미국에서 포켓 판형으로 출간된 바 있었지만, 조직적으로 본격적인 시리즈로 출간하고자 한 방식은 스토리작가 야설록씨가 운영하는 야컴(YACOM)에서 ‘Demon Hunter Eton’ 등 대본소 성인극화 방식의 작품들을 단행본 단위로 출간하는 것이 처음이었다. 하지만 전통적인 미국만화 특유의 24페이지 중철 컬러 연재 방식인 ‘이슈’ 포맷과도 다르고, 고급 단행본 만화들의 형식에 맞지도 않은 200페이지 가량의 흑백 제본 단행본은 그다지 인지도를 끌어모으지 못했다. 또한 작품 자체도 당시 조금씩 메인스트림으로 올라오기 시작했던 일본 장르 소년만화 계열이나 그 전부터 컬트적 인기로 자리매김했던 SF/환타지의 명작들과는 달리 대본소용 성인극화 특유의 밀도 낮은 작화와 줄거리 전개로 일관하여 더욱 잊혀지는 존재가 되었다. 만약 미국의 주류만화시장이 아니라 슈퍼마켓 중심의 펄프문화 시장을 노렸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만 남기고, 시도는 실패했다.

2) 미국식 만화에 맞춘 한국인 운영 프로덕션

2000년대 초에는 김재환, 이태행, 강찬호 등 필력이 좋은 편이며 한국에서는 미국적 그림체에 가깝다고 간주되던 작가들을 중심으로 미국만화 데뷔가 이루어졌다. 한국인이 운영하는 ‘침프 대디 스튜디오’(현 ‘스튜디오 아이즈’의 모태)에서 프로덕션을 담당하여 미국의 주류 만화 출판사인 Image Comics에 유통 배급을 맡기는 식으로 진행되었다. 이들의 작품은 미국 주류 만화의 24페이지 컬러 중철 방식에 맞추었으며, 배급 역시 미국의 주류 만화 유통방식을 따랐다. 이런 방식으로 ‘Defiance’ 시리즈 같은 신작은 물론, ‘타임시커즈’ 같은 이미 기존에 한국에서 출간된 작품을 미국 주류만화의 형식에 맞추는 방식 역시 이루어졌다. 즉 전통적인 미국 주류만화의 형식에 맞추어 작품을 만들고, 작품의 성향 역시 본격적인 슈퍼히어로물은 아니지만 유사 히어로를 내세우는 SF라는 주류 장르를 표방했다. 이토록 공들인 완전 현지화 전략의 결과는 그러나 일장일단이 있어서, 미국 주류 만화계에 직접 진출했다는 장점은 분명했으나 충분히 미국 독자들의 코드에 맞춘 서술방식이나 주제의식을 만드는 것에 실패해서 제한적인 성공만을 거두었다. 그 결과 ‘메크워리어’나 ‘워크래프트’ 같이 이미 게임 등을 통해서 인지도가 있는 문화콘텐츠 브랜드의 만화화라든지, 미니 시리즈의 안정적 지속에 성공한 ‘디파이언스’ 정도를 제외하고는 대체로 판매순위권 바깥에 머물렀다. 즉 역설적으로, 지나치게 정밀한 현지화가 오히려 감점요인이 되었던 셈이다.

3) 망가 붐에 합승하기

2000년대 초중반, 미국에는 일본만화가 대중적으로 크게 확산되었다. 미국의 전통적인 만화들이 슈퍼히어로물의 폐쇄적 매니아성의 함정에 빠지고, 그 빈 자리는 물론 새로운 자리들을 채우고자 나선 것이 바로 일본만화였다. 원래는 90년대까지만 해도 내내 소수 매니아들의 전유물, 특히 SF환타지 장르 또는 포르노를 중심으로만 유통되던 일본만화가, 일본 애니메이션을 TV에서 보고 자라난 청소년들을 주 고객으로 삼고자 고개를 든 것이다. 즉 매니아들이 좋아할 장르에서 일반 대중적 취향의 소년만화와 순정만화로 출간의 폭이 대폭 확대되었고, 출시량 역시 VIZ와 Tokyopop 양대 출판사의 경쟁구도 속에서 다양한 새로운 경쟁자들을 낳으며 확산일로에 처했다. 라이센스 취득을 위한 경쟁과 출판 종수 경쟁의 와중에서, 꼭 일본의 만화가 아니라도 미국에서 일본만화 특유의 특징 – 그림체, 서술방식 등 -으로 꼽히는 소위 ‘망가’ 계열 작품에 대한 수요가 늘어났다. 비슷한 표현 및 서술코드를 공유하고 있으며 일본 다음으로 대중 만화 산업이 잘 발달한 한국 만화에 시선이 쏠린 것은 당연한 귀결이다. 여기에 2003년 앙굴렘 축제의 한국만화 특별전을 필두로 문화콘텐츠 진흥원을 중심으로 한 한국만화 세계 홍보 사업이 나름의 결실을 맺고 있던 터이기에 여러 한국만화작품들이 망가 계열의 장르만화로 미국에서 출판되기에 이르렀다. 특히 토쿄팝 출판사는 ‘라그나로크’, ‘프리스트’ 같은 유명 소년만화는 물론 ‘여왕의 기사단’ 등 모험요소가 담긴 순정만화 다수를 일찌감치 선점하는 저력을 보였다. 이렇게 진출한 만화들은 미국만화의 분류기준으로는 ‘그래픽 노블/망가’ 계열로 분류되어, 일부 작품은 판매 상위권에도 오르는 좋은 호응을 이끌어내고 있다. 한국의 시공사에서 직접 경영에 개입하고 있는 ‘Ice Kunion’ 역시 ’천일야화‘ 등을 통해서 좋은 반응을 이끌어내는 망가계열 출판사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중이다.

4)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결합

지난 몇 년간, 한국에서 장르만화의 대세는 서서히 온라인으로 옮겨가고 있는 중이다 (상업적인 전망을 제외하고, 창작에너지의 집중을 놓고 말하자면 말이다). 이런 와중에서 온라인 만화를 미국시장에 내놓는 것은 어떨까, 하는 생각이 미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한국의 만화 서비스 업체인 이코믹스가 미국에서 현지회사로 운영중인 NETCOMICS가 바로 그 첫 단추다. 이곳은 netcomics.com 사이트를 통해서 한국의 온라인 만화의 영어 버전을 서비스하고 있으며, 작품들을 현지에서 책으로 묶어서 출판하기도 한다. 아직 작품의 라인업이 미국의 전통적인 히어로 장르 시장도 청소년 대상 모험성 소년만화 순정만화 위주로 되어있는 망가시장도 확실하게 공략하지는 못하고 있지만, ‘위대한 캣츠비’ 등 간판 작품들이 단행본으로 평단의 좋은 반응을 받고 있는 중이다. 얼마나 마케팅과 장르 공략에서 현지의 트렌드를 잘 잡아낼 수 있을지가 이러한 사업방식의 향후 진로를 가늠하는 중요한 열쇠가 되리라고 전망된다.

5) 네오 망가

망가 붐이 일정 시간 이상 지속되고 보니, 그 영향을 받은 작가층 역시 대두되었다. 사실 영미권 작가들이 망가풍의 영향을 받은 것 자체는 최소한 80년대의 ‘아키라’ 이래로 계속되어온 일이지만, 특정 작품이나 작가가 아니라 장르 자체를 뚜렷하게 흡수한 것은 최근의 현상이다. 이러한 영미권 작가의 망가풍 만화를 속칭 ‘네오망가’라고 부르는데, 최근에는 ‘Mangaka’ 라는 제목으로 네오망가 계열의 유명 작가들을 소개하는 책이 따로 나왔을 정도로 일반화되었다. 실제로, 일본만화의 대량 수입을 통해서 빠른 시간에 입지를 구축한 바 있는 토쿄팝 출판사의 경우 특히 네오망가의 육성에 적극적이다. 미국의 일반적인 출판 형태인 코믹북이나 큼직한 TPB 방식이 아니라, 일본만화의 포켓형 단행본 판형에 맞추어 일본 만화와 아예 출판 외관에서부터 구별이 되지 않도록 하는 출판 방식을 실행중인 것이다. 그것도 1-2년전에만 해도 단편들을 긁어서 모음집을 만드는 방식을 선호하더니, 어느덧 여러 권 단위의 시리즈도 출간하고 있다.

네오망가 시장은 아직 규모가 크지 않지만, 한국에서 아직 데뷔하지 않은 재능 있는 신인들이나 새로운 도전을 하고 싶어하는 중견들에게 있어서 좋은 기회가 될 수 있다. 실제로 최근 토쿄팝에서는 ‘12Days’라는 네오망가 순정물이 출시되었는데, 작가는 June Kim(김유월)이라는 미국에서 활동중인 한국인 작가의 작품이다. 이 경우는 망가풍의 영향권 하에 있을 수 밖에 없는 한국 작가가 미국에서 만화 관련 정규 교육을 받으며 미국식 스타일을 익혔는데, 결국 다시금 망가풍의 묘사를 특기로 하는 라인업에 들어가서 작품을 만든 독특한 케이스다. 실제로 이 복잡한 태생의 결과, 작품에는 한국식 순정만화의 문법, 미국 인디 만화 특유의 사색적 분위기 등 여러가지 요소들이 골고루 섞여있게 되었다. 마치 일본에서 일본잡지에서 연재를 하는 실력있는 작가들이 늘어나고 있듯, 미국에서도 비슷한 패턴의 국제 작품 활동을 할 수 있는 길이 점점 더 넓어지고 있는 셈이다.

한마디의 사족…

항상 하는 이야기지만, 미국의 만화계라고 해서 한국보다 대단히 크고 대단히 조건이 좋은 것은 물론 아니다. 아니 창작물에 대한 작가의 권리 측면이나 대중 일반의 만화독자 비중 같은 점을 놓고 보자면 오히려 미국이 한국보다 더 열악하다. 그렇기에 한국만화, 만화가가 미국 만화계를 노리는 것은 무엇보다 더 많은 독자들과 만나고 호흡하는 것 정도를 뚜렷한 목표로 잡는 것이 좋다. 상업적 성공, 대박은 그런 공감대를 형성한 후 자연스럽게 따라오도록 하는 것이 정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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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thoughts on “미국 만화계, 한국 만화 [만화정보 0702]

Comments


  1. 저는 작년에 도쿄팝에서 각 아트스쿨을 돌며 벌인 네오망가작가모집 포트폴리오 리뷰에 참가했었죠… 문제는 제가 망가그림이 하나도 없었다는것..-_-;;

  2. !@#… Dreamlord님/ Eastern Comics라, 상당히 의욕적인 라인업의 출판사군요. 회사 배경을 좀 더 뒷조사를 해보고 싶어집니다 :-) 하기야 그와 거의 비슷한 시기에 한국에서도 ‘까치의 풋사랑’ 같은 이현세 만화 영어판을 ‘영어학습’ 명목으로 출간한 적이 있었죠. 번역 품질은… 노코멘트.

  3. 예전에 어디에선가 읽어본 기억으로는 Eastern Comics는 재미한인이 설립한 출판사로 알고있습니다. 인터넷을 뒤져봐도 찾을수있는건 San Jose에 주소를 두고있었다는 것 외에는 달리 알 방법이 없군요.

    당시 Eastern Comics의 번역을 맡았던 사람은 주한미군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Heinz Insu Fenkl 이라는 대학원생이었는데, 지금은 뉴욕에서 대학교수로 일하면서 1960년대에 자신이 한국에서 자라면서 겪었던 기억을 토대로 한 소설을 쓰기도 하고 한국의 전설과 설화를 번역하기도 하는 것으로 나와있군요. 지금도 가끔 한국만화에 대한 강연도 한다고 하니까 그분한테 문의해보면 Eastern Comics에 대해 좀더 알수있을것 같군요.

    http://www.geocities.com/gnoth7/fenklpage.html

  4. !@#… Dreamlord님/ 정보 감사합니다. 한번 컨택해봐야겠군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