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로 파시즘을 생각하기 [싱크 10호]

!@#… 내용이 너무 무겁다고 편집부의 저지가 들어오지 않아서 오히려 더 불안해지는 연재물, 이번에는 파시즘.

 

만화로 파시즘을 생각하기

김낙호(만화연구가)

현대사회가 복잡해질수록, 특정 개인의 엽기적 악행 만큼이나 사회 관계 속에서 만들어지는 어떤 보편적 악행의 패턴에 대한 관심이 증대하기 마련이다. 권력 관계를 남용하여 사회 속 개인들의 존엄과 생활조건을 망가트리는 행위들이, 일탈이 아니라 사회 구조에 깊숙이 박혀있다든지 하는 것 말이다. 그리고 그런 식의 문제들을 논할 때 오늘날 가장 대표적으로 떠올리게 되는 용어 가운데 하나가 바로 ‘파시즘’이다. 파시즘은 부당한 사회적 압박 일체를 칭하기라도 할 듯 광범위한 욕으로 활용되곤 하는데(영어권에서는 ‘나치’라는 말이 그런 용례로 쓰인다), 실제로는 좀 더 세부적 규정이 필요하다. 그래야 비로소 포괄적 불만이 아니라 좀 더 자세하게 현존하는 문제를 직시할 수 있기 때문이다.

파시즘을 설명하기 위해, 우선 비슷하게 혼용되곤 하는 다른 개념과 대비해보며 접근해볼 필요가 있다. 먼저 ‘권위주의’라는 개념이 있는데, 이것은 권위에 대한 복종을 요구하거나 체제화하는 사회관계 일반을 칭한다. 따지고 다투고 합의를 이뤄가기보다는, 권위의 위치에 지정된 이의 뜻에 따르는 것을 올바른 것으로 간주한다. 그리고 권위주의의 극단에서 나타나는 하나의 양상이 바로 ‘전체주의’다. 전체주의 사회에서 그 권위의 위치에 있는 것이 특정 개인이 아닌, 추상화된 전체 집단이 된다. 민족 등 적당히 편의적인 개념으로 묶어버린 집단을 권위로 여기고 복종하는 이런 방식은, 종종 전체의 이익을 내걸은 특정 정권의 독재로 귀결되곤 한다.

파시즘은 전체주의의 방향으로 가는 흐름이되, 민주제와 대중운동을 통해 가는 방식에 해당된다. 폭군 왕의 폭압이라기보다, 시민들의 자발적 우익 자경단을 떠올리면 된다. 전체의 이름을 내걸고 내부의 반대자를 찍어 제거해내는 방식으로 이뤄지는 것이 흔하다. 민주적 복잡함과 다양성을 배격하는 중앙 집중 복종 시스템을 만드는 흐름 중에서도, 파시즘은 외부의 적이 아닌 내부의 동조가 전제되는 것이기에 더욱 대처하기 어렵다. 민중의 의지에 의해 뒷받침된 독재, 그 속에서 소수자들이 말살당하는 최악의 방식인 셈이다. 게다가 당대에는 ‘국민의 뜻’ 따위로 포장되고 공감대마저 사기 때문에 더욱 위험하다.

물론 누가 다소 올림픽 한국팀 응원을 강하게 주장한다고 해서 거창하게 파시즘을 논하는 것은 과잉반응일 수 있다. 하지만 어느새 나 자신조차 걸려있을지 모르는 파시즘 기질을 적절히 통제하고 심각한 지경에 이르는 것을 방지하려면, 늘 기준점에 대한 고민, 다시 돌아올 부표 같은 성찰이 필요하다. 파시즘이 번지는 모습들을 담아내는 만화작품을 보면서 단서를 얻는 것도 그러기 위한 좋은 시작이다.

‘우리를 위한 것’이 과연 정말로 우리를 위한 것인가

파시즘의 물결에 동참하는 이들이 가장 뚜렷하게 내세우는 것은, 이것이 바로 우리를 위한 것이라는 점이다. 대의를 위한 희생이든, 타인으로 규정한 소수자에 대한 배격과 탄압이든, 바로 그것이 우리를 위한 최선의 방도다. 2차대전 말기 히로시마에 떨어진 핵폭탄과 그 이후 피해자들이 어떻게든 다시 살아나가는 모습을 감동적으로 그려내는 작품 [맨발의 겐](나카자와 케이지 저)은 그 부분을 효과적으로 비판한다. 핵폭탄이 떨어지기 전, 군국주의의 물결에 휩싸인 히로시마의 평범한 주민들은 태평양전쟁의 무모함에 눈을 감고, 그저 천황폐하 만세를 외치며 진심으로 강한 일본에 대한 헌신이 자신들을 위한 길이라고 믿는다. 그리고 그것을 위해 강제 징병도, 조선계 주민에 대한 차별도 당연한 것으로 여기며, 그런 광기에 동참하기를 거부하는 주인공 가족을 ‘비국민’으로 몰아세우며 집단적으로 비난한다.

그렇게 평범한 주민들이 나서서 우리를 위한 길이라고 믿던 그 전쟁은, 핵폭탄의 투하와 함께 모두에게 거대한 비극만을 가져다준다. 삶의 터전은 불타버리고 가족들은 죽었으며 살아남은 이들에게도 방사능병이라는 무서운 후유증이 생명을 갉아먹는다. 국민의 이름으로 뭉치던 그 주민들은, 재앙이 닥치고 난 후에는 그저 각자의 살 길에 바쁠 뿐이다. 우리를 위한 것이라고 표방하는 것들의 ‘우리’의 범주는 무엇이고, ‘위한 것’은 또 무엇일까. 파시즘의 물결에 동참한 이들만이 ‘우리’고, 실제로는 무엇이든 간에 자신들의 맹목성에 거짓 충족감을 주는 것이 ‘위한 것’이었을 따름이다. 결국 사람들에게 편견을 가지지 않고 주변인들을 챙기며 잘못 된 것은 잘못되었다고 바로 항의할 줄 아는 주인공 소년 겐은 허망한 그들만의 외침과 자멸을 뒤로 하고 꿋꿋하게 살아남고 성장한다.

번져나가는 모습을 방관하기

하지만 그런 희망찬 주인공만 있는 것은 물론 아니다. [오!한강](허영만/김세영 저)의 주인공 이강토는 일제시대, 해방정국, 한국전쟁의 물결을 거치며 여러 차례 새롭게 파도치는 파시즘의 현장들을 경험한다. 식민지가 된 조국에서 더욱 열심히 일제의 앞잡이를 하며 대의를 부르짖는 이들 사이에서, 해방 정국에서 자신들만이 진정한 조국을 건설할 수 있다면서 갈라진 패거리들 사이에서, 그리고 결국 그들이 일으키는 비극적 전쟁의 와중에서 말이다. 해방정국에서 돌팔매 맞는 이들은 반드시 식민시대에 착취를 일삼던 자들도 아니고, 전쟁의 와중에서 횡행하는 것은 인본주의와 거리가 먼 일방적 진영논리 뿐이다.

그리고 화가였던 이강토는 각자의 집단적 정의감에 도취되어 무의미하게 상대를 말살하고 자신들의 과오에는 눈을 감는 모습들을 보고 또 보다가, 그 모든 것으로부터 한 발짝 떨어져서 그저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최대한 자세히 그려내는 쪽을 선택한다. 그가 선택한 극사실주의는 사람의 숨결을 집착적으로 배제하고 사진 같은 세부묘사를 하는 방향성이다. 아무것도 하지 못한 무력감이 아무것도 하지 않겠다는 방관이 되어, 군부독재와 신군부독재라는 계속되는 새로운 파시즘의 세상에서도 그를 무력하게 만든다.

한국에 아직 미출간된 [베를린](제이슨 루츠 저)은 1920-30년대 독일에서 여러 입장에 처한 수많은 사람들이 각자의 이야기를 펼쳐가고 그것이 촘촘히 겹쳐들어가는 모습을 뛰어난 공간묘사와 선명한 선으로 그려내는 작품인데, 그 안에는 노동자 시위에서 동료를 잃는 젊은 노동자들, 퇴폐적 향락에 빠지는 젊은 예술가들, 시류에 휩쓸리며 나치가 되어가는 청년 등 다양한 이들이 있다. 그리고 주인공들 가운데 하나인 쿠르트 세버링은 앞서 살펴본 이강토 이상으로 무기력하다. 그는 바이마르 공화국 말기, 한쪽에는 공산주의가 약속하던 노동계급 해방에 대한 열망이, 다른 쪽에는 민족사회주의가 약속하는 독일민족의 자긍심 회복에 대한 열기가 뭉치는 모습을 지식인 저널리스트로서 목도하고 있다. 나치즘의 물결에 참여하는 것은 악마의 자식들이 아니라, 그저 자식들 손을 잡고 함께 오는 평범한 아버지들이다. 그들이 함께 모여, 유태인들을 타자로 설정하여 증오를 터트리는 방식으로 대중시위를 하고 폭동으로도 이어진다.

끝물에 다다른 공화국의 공권력이 자본계급의 이해에 따라서 노동자들의 단결을 총으로 막아내는 와중에, 파시즘 특유의 대중적 호소력으로 나치들의 세력은 점점 길거리와 의회에서 동시에 커져나간다. 이런 것을 보면서도, 이것이 커다란 파국으로 이어질 것임을 예견하면서도,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상황을 진단하는 것과 비슷한 고민을 지닌 이들과 속풀이를 하는 것 뿐이다. 자연스럽게도, 그는 점점 더 폐인이 되어간다. 한번 불붙은 파시즘의 물결에서는, 아무리 합리적이고 옳다한들 거스르는 쪽이 반역자 취급을 받고, 개인이 사회의 흐름을 뒤집는 것은 힘겹기만 하다.

어떻게 뒤집는가

[브이포벤데타](앨런 무어/데이브 로이드)는 극단까지 도달한 파시즘 사회에 저항하는 상상력을 발휘하는 SF다. 가상의 미래 영국은 전체주의적 경찰국가의 완성형을 이뤘다. 민주제의 껍데기를 뒤집어쓴 독재 정권은 시민들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며, 체제에 저항하는 모든 이들은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진다. 불안은 있지만 저항으로 이어지지 못하는 지극히 체계적인 감시사회다. 하지만 강요된 표면적 평온 아래에는 여전히 하층민의 삶도 있고, 끔찍한 인권침해도 존재한다. 그 안에서도 사람들은 좀 더 무표정하지만 통제에 익숙해진 상태로, 안정과 번영을 자찬하는 프로파간다를 들으며 그럭저럭 살아간다. 이런 세상을 뒤바꾸도록 균열을 일으킬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불온하게도, 이 작품에서 그것은 바로 무정부주의적 테러다. 뛰어난 격투능력과 생존력을 지닌 수수께끼의 테러리스트 ‘브이’는 의회건물을 폭파하려 했던 전설적 테러리스트 가이 포크스의 가면을 쓰고, 고전 영문학의 구절들을 읊으며 주요 시설들에 대한 파괴행각을 벌이며 무질서를 전파한다. 새로운 세상에 대한 해답을 제시하는 정치인이 아니고, 딱히 타인의 존엄과 인권을 추구하는 것도 아니다. 그저 하나의 억압적 방식으로 짜였고 다들 어느덧 두려움으로든 무심함으로든 순응하고 살게 된 그 체제에 강제로 균열을 내는 것을 집요하게 추구할 따름이다. 그리고 결국 그 의지는 아주 조금, 다른 누군가에게도 이어진다. 작더라도 뚜렷한 균열을 일으키는 것, 파시즘이 유도하는 하나의 길 이외에도 다른 선택이 가능함을 눈 앞에 보여주는 것에서부터 바로 공고한 그 질서는 뒤바뀔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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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 만화잡지 격월간 [싱크]. 이미지프레임 발간. 테마별 만화들을 소개하며 인문사회적 화두를 넌즈시 이끌어내는 것을 목표로 하는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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