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묘한 감각의 인간 찬가 – 죠죠의 기묘한 모험 [기획회의 346호]

!@#… 이번 리뷰의 맛은… 죠죠러의 맛이구나!

 

기묘한 감각의 인간 찬가 – [죠죠의 기묘한 모험]

김낙호(만화연구가)

오늘날 주류 소년만화의 가장 흔한 전개방식이 독특한 캐릭터들의 무력 대결이다. 그런데 단순히 싸움구경이 아니라 이입 가능한 이야기로서의 재미를 주려면, 그 안에서 주인공들이 인간으로서 성장을 이뤄내야 한다. 호쾌한 대결, 그리고 인간의 뜨거운 의지와 성장을 얼마나 자연스럽게 연결해내는지가 그냥 자극적인 인기작과 두고두고 기억될 명작의 분기점이다.

이런 장르에서 무력 대결의 방식은 크게 두 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하나는 전투력의 우세에 대한 대결이고, 다른 하나는 능력의 상성에 대한 대결로, 전자가 마치 격투기에 가깝다면 후자는 가위바위보에 가깝다. 그 중, 강렬한 대결과 인간에 대한 낙천적 희망을 조화시키되 전투력 우세 대결이라는 요소를 완벽에 가깝게 끌어올려서 확실한 명작이 된 사례들의 대표작이 [드래곤볼]이다. 그 후로 나온 전투력 승부를 다루는 주류 인기작들 다수 내지 대부분이 직간접적 영향을 받았을 정도로 하나의 큰 흐름을 세운 작품으로 꼽힌다. 그런데 그와 쌍벽을 이루는, 노골적으로 인간 찬가를 부르되 상성 대결이라는 길을 걸어 타의 추종을 불허할 상상력과 완성도로 엄청난 영향력의 명작이 된 대표작이 바로 [죠죠의 기묘한 모험](아라키 히로히코 / 김완, 김동욱 옮김 / 애니북스 / 12권 발간중)이다.

이 작품은 주인공의 애칭이 ‘죠죠’이며 특수한 초능력 대결들을 통해서 이야기가 전개되는 여러 작품들의 연작이자, 1986년 첫 연재를 시작한 이래로 2013년 현재 제8부가 이어지고 있는 끈질긴 운명의 대서사시다. 각 부는 일부 인물이 연계되어 있지만 독립적인 완결성을 지니는데, 각각 다른 장르물을 기본으로 깔면서도 그 모든 것을 계속 이어지는 주인공 진영과 적들의 초능력 배틀을 통해서 풀어나간다.

처음을 장식하는 1부 ‘팬텀 블러드’는 서양을 무대로 하는 소년들의 성장과 악의 유혹, 흡혈귀 같은 소재로 가득한 호러판타지 사극으로 시작한다. 그런데 뒤로 갈수록 주인공 죠나단 죠스타는 ‘파문’이라는 다분히 무협물의 기공을 연상시키는 인간만의 특수능력을 수련하여 여러 싸움을 벌이는 배틀물로 전환하며, 마지막 대결은 인간의 의지와 초월적 악의 싸움으로 장렬하게 끝난다. 2부 ‘전투조류’는 1부에서 50년이 흐르고 죠나단의 손자인 죠셉 죠스타가 주인공이다. 이번에는 호러의 요소가 거의 사라지고 아예 고대의 음모와 봉인된 마왕, 숨겨진 나치 기술 등 모험물의 틀을 가지고 오는데, 이번에도 그 위에 실제로 진행되는 것은 배틀물이다. 그런데 이제는 힘의 강약보다는, 주인공의 영민한 기지(혹은 사기)를 강조하며 힘을 어떻게 활용하는지에 관한 두뇌싸움의 요소가 강해진다. 이런 흐름은 3부 ‘스타더스트 크루세이더’에서 사실상 완성되는데, 2부 주인공 죠셉의 외손자인 쿠죠 죠타로를 주인공으로 하며 ‘스탠드’라는 새로운 초능력 개념을 도입했다. 스탠드는 그것을 시전하는 이의 정신을 특정한 혼령의 모습으로 구현화하는 것인데, 각자의 개성을 반영한 한가지의 특별한 능력을 발휘한다. 그것은 빠른 속도와 강한 힘으로 움직이는 기본적인 것일 수도, 다른 사람의 얼굴을 종이책처럼 페이지로 펼쳐서 생각을 읽고 글씨를 써서 행동을 조종하는 특이한 것일수도 있다. 3부는 이런 능력들을 바탕으로 주인공의 팀이 오랜 운명의 숙적을 물리치러 여행하는 퀘스트 방식을 따른다. 이렇듯 계속 기반 모티브 장르는 계속 바뀌어, 4부 ‘다이아몬드는 부숴지지 않아’는 동네 일상물과 연쇄살인스릴러, 5부 ‘황금의 선풍’은 갱스터물, 6부 ‘스톤 오션’은 탈옥물, 7부 ‘스틸 볼 런’은 서부극, 8부 ‘죠죠리온’은 미스테리 추리극의 모습을 따르고 있다. 다만 중요 전개들이 계속 스탠드를 통한 초능력 배틀로 이루어질 따름이다.

특이한 능력들은 강점이 있으면 반드시 다른 약점이 있고, 각자 다른 능력들을 구사하다보면 아무리 강한 능력이라 한들 어떤 특정한 어처구니 없는 다른 능력에 취약할 수 있다. 그렇기에 필요한 것은 서로 다른 능력을 지닌 이들 사이의 팀워크, 그리고 그런 것을 풀어나갈 수 있는 판단력, 신뢰, 그리고 필요에 따라서 자기 희생이다. 그리고 바로 이런 것들이 바로 인간 의지의 아름다움이다. [죠죠]는 싸움은 싸움이고 닭살 돋는 우정 타령의 훈계는 훈계라는 식으로 어설프게 분리되어있지 않다. 싸우면서 부딪히고, 협력하고, 기지를 발휘하고 자신을 버리며 자연스럽게 함께 담겨버릴 따름이다. 파문 기술을 평범한 전투력으로 쓰는 단계를 넘고, 기발한 재기를 통해 다양하게 활용하다가, 결국 스탠드라는 아예 독특한 능력체계를 만들며 그런 인간 의지 찬양을 구현하는 순간들을 점점 더 늘려나간다. 이 작품에서 더욱 처절한 싸움이란, 더욱 강렬하게 인간 찬가를 부를 기회와 다를 바 없다. 게다가 죠죠라는 애칭을 부여받은 각 부의 주인공들은 하나 같이 나름대로의 선함과 무엇보다 끈질긴 의지를 지닌 고집불통들이라서, 그런 기회가 차고 넘친다.

알맹이에 인간 찬가가 있고 그것을 전달하는 요소로서 흥미진진한 조합의 초능력 배틀이 있다면, 단순히 완성도 자체를 넘어 도저히 따라갈 수 없는 독특한 매력을 부여하는 것이 바로 ‘기묘한’ 감각이다. 대사도 박력 넘치게 기묘하고, 작명센스도 어처구니 없지만 말은 되도록 기묘하고, 무엇보다 캐릭터들의 기본 포즈와 패션이 기묘하다. 이 작품에서 수많은 팬들이 최고로 꼽으며 따라하는 대사는, 훈계성 감동을 주는 대목들이 아니다. 너무나 비현실적이고 작위적인데도 박력이 넘쳐서 도저히 한번 따라서 써먹어보지 않고는 못 배길 것 같은 대사들이다. 다른 유명 작품의 “너는 이미 죽어있다” 같이 폼을 잡기는 하지만 그냥 그렇게 이야기하기도 할 법한 종류와 거리가 먼, “요동친다 하트 불타버릴 만큼 히트 새긴다 혈액의 비트!”다. 괴성을 지르며 난타전을 주고받을 때 외치는 소리는 으아악 헉헉이 아니라, “오라오라오라오라!” “무다(‘소용 없다’)무다무다무다!”다. 기묘한 작명센스는 또 어떤가 하면, 주요 캐릭터들과 스탠드 특수능력의 이름들이 대부분 영어 팝/락 음악계의 가수 이름 또는 노래 제목이다. 그런데 캐릭터나 능력의 속성과 뭔가 절묘하게 맞아떨어지게 붙인다. 기묘한 포즈와 패션은, 따로 설명할 필요도 없이 작품 속 몇몇 이미지만 펼쳐봐도 금방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팬들 사이에서 그런 모습들을 따라하는 ‘죠죠(식으로 포즈를 잡고) 서기’가 놀이로 유행할 정도니까 말이다. 처음에는 그 넘치는 기묘한 감각이 거슬릴 수 있겠으나, 작품에 몰입해서 익숙해지면 바로 그 맛에 계속 보게 된다.

이런 기묘한 감각의 인간 찬가 배틀물이, 한국에는 오랫동안 정식으로 소개되지 못하고 있다가 – 해외의 정식판을 구하지 못한 이들에게는, 종이책과 온라인의 해적판으로만 입소문이 퍼졌을 따름이다 – 최근 마침내 정식 한국어판 발간이 시작되었다. 소년만화의 이 찬란한 금자탑이(이미 일본 현지에서 2010년에 시리즈 100권을 넘어갔으니, 문자 그대로 탑이다) 더 많은 이들에게 널리 재미를 주게 되기를 희망한다.

죠죠의 기묘한 모험 1~12 세트 (묶음)
아라키 히로히코 지음/애니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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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주간 <기획회의>. 한국출판마케팅 연구소 발간. 여기에 쓰는 글에서는 ‘책’이라는 개념으로 최대한 접근하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결과야 어찌되었든. 즉, 업계인 뽐뿌질 용.)

다음 회 예고: 아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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