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는 모습 과시하는 만화들 [도서관저널 1311]

!@#… ‘천고마비의 계절’용 소재였는데 어쩌다보니 늦게서야 써냈고, 그걸 게재 후 온라인 공개하는 타이밍은 한층 더 늦어짐(…)

 

먹는 모습 과시하는 만화들

김낙호(만화연구가)

어떤 고급 레스토랑들에서는, 손님들이 음식 사진을 찍지 못하도록 당부한다고 한다. 요리를 곧바로 먹지 않고 요란스러운 카메라로 사진을 찍어대는 광경이 레스토랑의 전반적 분위기를 해친다는 것이 이유인데, 이것은 반대로 말하면 그만큼 너도나도 음식 사진을 찍는 것이 보편적 생활 습관이 되었다는 말이기도 하다. 물론 촬영에서 머물지 않고, 온라인 공간에 올려서 좁게는 지인들, 넓게는 만천하에 실시간으로 과시하곤 한다. 그리고 음식 사진 올리기만으로는 만족할 수 없는 경지에 도달할 때, 맛있게 먹는 모습으로까지 확장된다.

시각적 자극을 통해서 그것을 바라보는 이의 식욕을 돋구어 내는 이런 접근을, 영어권 속어로 ‘푸드포르노’라고 부른다. 그만큼 감각적 자극이 본능에 호소하여 오락성을 주는 단순명확한 기제라는 것이고, 또 보는 이들을 쉽게 빠져들게 만든다는 것이다. 먹는 모습을 맛깔나게 보여주어 식탐을 자극하는 것은 강력한 공감의 기제다. 만약 그 위에 적절한 이야기를 담아낼 수 있다면, 이야기를 통해 담아내고자 하는 정서와 메시지의 전달 역시 그만큼 거의 감각적일 정도로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다. ‘먹짤’(먹는 모습을 담은 그림/사진)이 넘치는 만화들, 아니 먹짤로 이야기를 표현해내는 만화들을 몇가지 살펴본다.

음식소개, 맛집소개

먹짤 만화로서 뛰어나기 위해서 반드시 요리만화, 특히 요리 대결만화의 형식을 취할 이유는 전혀 없다. 장르공식으로서의 대결과 성장을 담아내기 위해 요리사들간의 대결, 어떤 심각한 위기를 기발한 요리로 극복하는 과정 같은 것을 담아내는 것도 잘 만들어낸다면 당연히 큰 재미가 있으나, 승부를 가리는 과장된 평가에 초점을 맞추다보니 종종 먹는 것 자체의 즐거움을 놓친다. 그런 의미에서 요리를 승부의 수단이 아니라 음식으로서 독자들에게 소개하는 모습 자체를 중심에 놓은 작품들이 주목할 만하다.

[오무라이스잼잼](조경규)은 생활의 에피소드 한 가지를 기억나는 음식과 연결시켜서 펼쳐놓는 음식소개 만화다. 다루는 음식의 종류는 츄파춥스 사탕 같은 완성품 군것질 거리부터, 동파육 같은 본격적인 요리까지 다양하다. 작가 자신이 겪는 가족과의 생활, 유학시절이나 유년시절의 경험담 등 일상 속의 어떤 상황을 보여주고, 그 안에서 넌지시 어떤 음식이 딱 떠올랐다는 내용과 함께 자연스레 그 음식의 유래와 매력 포인트 등을 유려하게 설명한다. 클라이막스에 등장하는 것은 가벼운 카툰화법의 원래 그림체와 눈에 띄게 구별되는 세밀한 작화와 색감이 돋보이는 음식 클로즈업이고, 그것을 너무나 맛있게 먹어내는 모습들이 이어진다. 삶의 순간들과 음식을 이어내며 어쨌든 이런저런 일이 있지만 맛있게 즐겁게 살자는 낙천적 세계관으로 가득하다.

하기야, 맛있는 음식을 소재로 한다고 해서 반드시 낙천적이어야 할 필요는 없다. [사랑이 없어도 먹고 살 수 있습니다](요시나가 후미)는 섬세한 여성 심리와 남성 동성애물 등을 주종목으로 하는 여성만화작가의 자전적 이야기다. 음식 자체에 대단한 상징을 부여하는 겉멋은 멀리 버리고, 맛있는 음식을 찾아다니며 먹는 것에 혈안이 된 자신의 모습을 유머러스하게 던져 놓을 따름이다. 요리에 얽힌 사연이나 장인정신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생활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날려버릴 만한 끝내주는 음식을 지금 사먹을 수 있는 것에 행복해한다. 음식평론가로서 음식에 들어있는 영양학적 가치나 문화사적 의의를 눈에 떠올리는 것이 아니라, 생활 미식가로서 시고 짤 것 같은 외양과 다른 달콤함과 감칠맛에 대해 진심으로 기뻐 수다를 떠는 것이다. 가장 솔직하게 식탐을 부리는 식사의 자리에서 오히려 여러 인간관계의 순간들이 스쳐지나가는 특이한(사실은 오히려 우리들의 현실에 가까운) 에피소드들이 전개된다.

그런데, 시끌법적하지 않아도 식탐은 식탐이다. [고독한 미식가](쿠스미 마사유키, 타니구치 지로)는 개인 사업자로서 잡화 무역을 전문으로 하는 중년 아저씨가, 출장일을 하는 중간중간에 혼자 밥을 먹는 이야기다. 그렇기에, 밥 먹다가 인간사가 엮이는 정도의 큰 이야기마저 좀처럼 존재하지 않는다. 어떤 동네로 와서 일을 하다가 여러 방식으로 고객들에게 스트레스를 받고, 그 동네에서 대충 마음에 들어 보이는 가게로 가서 밥을 사먹는다. 그것 뿐인데, 대단히 재미있다. 나아가 TV드라마로까지 만들어져서 무려 시즌3까지 방영되었을 정도다. 아저씨가 혼자 밥 먹는 것이 도대체 무슨 재미인가 의아해하기 쉬운데, 매력은 바로 산책하듯 서성거리며 발견하는 동네 공간, 그리고 다른 상황 없이 오로지 밥에 몰두하는 먹짤에 있다. 먹으면서 하는 모든 대사는 마음 속 혼잣말이며, 내용은 먹는 것에 느끼는 솔직한 감동이다. 반면 겉으로 보이는 모습은 그저 무뚝뚝하면서도 맛있어서 실실 새어나오는 옅은 미소 뿐이다. 걸어다니면서 바라보는 사람 사는 동네의 모습, 실재하는 가게와 음식을 그려낸 식사 장면의 디테일은, 과장된 이야기 장치 없이 생동감과 느긋함을 만들어낸다.

음식을 통한 인간사

직선적으로 음식 자체를 즐기는 작품들을 먼저 소개했지만, 음식을 먹는 것을 통해서 인간사를 논하는 작품들의 재미도 물론 상당하다. 2000년대 내내 큰 히트를 기록한 [식객](허영만)에는 주인공과 라이벌 사이의 요리 승부가 등장하는 에피소드도 분명히 있으며 그쪽이 더 대중적 주목을 받은 면도 확실히 있지만(이 작품을 원작으로 한 극장영화, TV드라마 등이 승부 에피소드에 집중했다는 점에서 추론할 수 있다), 정작 작품의 진가가 드러나는 쪽은 무언가를 먹을 때다. 고향을 등지고 나오고 사회적 탈선 등 기구한 사연의 인생을 겪은 후 다시 먹어보는 두부에서 느껴지는 복잡한 회한, 각자의 취향에 따라서 ‘최고의 맛’이 사실 다를 수 밖에 없는 설렁탕 맛 등 다양한 방식으로 인생사의 깊은 맛을 우려낸다. 맛에 상징을 부여하기보다, 맛을 매개로 삶의 어떤 면모를 드러내는 식으로 말이다.

자고로 먹는 것의 시작은, 식재료부터다. 그리고 식재료를 만드는 업종이 바로 농업이다. [은수저](아라카와 히로무)는 농업전문고교의 일상을 그려내는 만화로, 일반적인 입시과정에 몰린 삭막함에 반기를 들고 농고로 진학해버린 소년 하치켄의 눈으로 오늘날 농업의 현장을 보여준다. 농업에 대한 큰 뜻이나 사전지식이 있어서가 아니라 그냥 반항심으로 온 하치켄이지만, 도시의 상식이 통하지 않는 노동량, 생명을 다루는 단호하고 직관적인 자세, 낭만적 농촌에 대한 향수가 아니라 효율성을 따지는 생업으로서의 현실이 넘치는 이곳에서 하루하루 적응해나간다. 그런데 농가의 자식들만 가득한 이곳에서 바뀌는 것은 하치켄 혼자만이 아니다. 농가에서는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것에 대해서도 새로운 발견을 하며 근본적인 질문을 하는 그를 통해 다른 학생들과 선생들도 변해나간다. 그런 식으로 학생들은 돼지를 탄생의 순간부터 돌보고 키우며 결국 도축되어 햄과 베이컨으로 만들어지는 과정을 겪는다. 생명의 순환 같은 거창한 철학이 아니라, 노동을 들여서 잘 키워 먹는 것의 일상성에 대해 단순히 당연하게 치부하며 잊기보다는 자각할 것을 유도해내는 작품이다. 이런 입체적 메시지가 완성되는 것은 두말할 나위 없이, 그렇게 만들어진 고기가 대단히 맛있다는 현실을 효과적으로 묘사하는 것에서 나온다. 온갖 신선한 재료들을 너무나 맛있게 먹는 박력 앞에, 음식을 만든다는 것에 대한 모든 화두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고민하면서도 추구해야할 것’이 된다. 먹는 것에 대한 감각적 공감이, 직접적 훈계 없이도 자연스럽게 더 많은 생각이라는 또다른 정신적 먹거리를 이끌어내는 절묘한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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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학교도서관저널. 특정 컨셉 아래 청소년들에게 추천하는 책들을 묶는 내용으로, 만화를 진득하게 즐기는 것의 즐거움과 세상사에 대한 관심을 적당히 배합해보자는 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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