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포털사이트 도전만화란의 의의에 관하여. 간만에 GQ의 비평란에 기고.
도전만화, 상시 오디션의 성공 공식
김낙호(만화연구가)
신기하게도, 한국에서 만화는 대대로 프로와 아마추어의 경계가 흐릿했다. 재능 있는 아마추어들이 넘치는 것은 물론 만화뿐만은 아니라서 ‘전국노래자랑’을 보면 동네마다 명창들이 넘치고, 창의적인 영상클립을 던져놓는 이들이 유투브에 즐비하다. 하지만 동인지를 중심으로 감상과 창작을 동시에 추구하는 독자들의 문화가 오래 전부터 발달했고, 8-90년대까지 이런 활동들이 만화잡지의 독자투고란과 지역 만화행사에서 대부분 펼쳐지다가 00년대에는 웹의 보편화와 함께 상당 부분이 온라인으로 옮겨왔다. 개인 사이트에서 일기체로 작품을 연재하다가 히트를 치는 경우도 더러 있었지만, 빠르게 활력을 얻은 것은 바로 게시판 커뮤니티다. 디씨인사이드의 ‘카툰 연재 갤러리’, 룰리웹의 ‘만화가 지망생 소모임’ 등 여러 공간에서, 창작에 욕심이 있는 수많은 아마추어들이 자신들의 작품을 올리기 시작했다.
커뮤니티 게시판을 통한 작품 발표의 무엇보다 큰 장점은, 빠르고 활발한 반응과 추천이다. 게시판의 주요 사용자층이 바라는 무언가를 충족시켜주면 확실하게 칭송 받고 유명세를 얻고, 아니면 엄청난 욕설 덧글에 시달리며정신력의 한계를 시험 받는다. 그렇기에, 게시판은 창작자 자신뿐만 아니라 만화로 사업을 하는 매체에 있어서도 주목할 공간이 되었다. 취향이 변화무쌍해서 가늠하기 어려운 때가 많은 오늘날 독자층에게 확실하게 인기를 끌었다고 검증된 작품과 작가들을 골라낼 수 있는 것이다. 실없는 개그의 메가쇼킹만화가든 인문교양의 김태권이든 시사패러디의 굽시니스트든, 기존 출판만화계의 고정된 좁은 히트장르공식에서 벗어나 있는데도 독자들의 선택을 받았기에 여타 연재 매체들의 선택 또한 받게 되었다.
하지만 재능을 보여주다 보면 운 좋게 발탁된다는 희망을 넘어서, 하나의 정식 서비스 안에서 도전과 데뷔와 성공의 길을 일직선 서비스로 합쳐놓으면 한층 막강한 동기부여가 된다. 바로 그런 역할에 파고들어 신인들을 발탁해내는 것이 바로 오늘날 미디어다음의 ‘나도만화가’(현 ‘웹툰 리그’), 네이버의 ‘도전만화’ 등이다. 즉 아마추어 게시판에서 인기를 얻으면 원고료를 지급받는 정식 연재물로 승격시켜준다는 개념이다. 00년대 중반 이후 대형 포털사이트들이 온라인 만화 연재를 대거 확충하면서 병행하게 된 이런 방식이 수많은 지망생들을 끌어들인 이유로는 크게 세 가지를 떠올릴 수 있는데, 바로 공정한 느낌, 도달 가능해 보이는 성공, 그리고 성공의 크기다.
첫째, 공정한 느낌은, 공모전 같이 뭔가 다른 요인들이 작용할 듯한 불안을 주는 것이 아니라 순전히 자신의 작품을 온 천하에 공개하고 실력을 정직하게 인정받아 성공을 얻는다는 명쾌한 룰에서 온다. 관문은 모두에게 열려있고, 심판은 대중 독자 전원이다. 성황을 이루면서 운영방식 역시 점차 개선되어, 도전만화란에서 일정 수준 이상의 호응을 얻은 것을 다시금 모아서 본격적인 연재 형식으로 경쟁시키는 베스트 도전 게시판 같은 것도 탄생했다(이런 방식은 원래 온라인 유머게시판들이 개척한 바 있다).
포털사이트의 상시적 만화 오디션은, 기존 출판만화에서 편집부의 주요 역할 가운데 하나였던 좋은 신인 작품을 골라내는 감별작업을 대체하고 있다. 그것도일반 독자 대중에게 아웃소싱을 하는 방식으로 말이다. 물론 아무리 우수해도 편집자의 취향에서 벗어나면 탈락하던 옛날과 크게 다르지 않게, 대중의 취향에서 벗어난 우수한 작품들이 설 자리가 없는 것은 명백한 한계다. 또한 결국 최종 발탁은 담당편집자들의 결정권에 달려있고, 결정이 내려지기까지 사실상 무임노동을 하는 격이 된다는 문제도 결코 가볍지 않다. 하지만 엄청난 숫자의 후보작 중에서도 상당히 괜찮은 작품을 압축해내는 나름대로 정당해 보이는 규칙이 보이기에, 지망생들 또한 열심히 도전할 동기가 되어주는 선순환이 있다.
둘째, 도달 가능해 보이는 성공은, 그간 쌓여온 만화 분야에서의 두터운 중간지대의 전통, 그리고 특히 온라인 공간에서 이미 십 수년간 진행된 스타 신인과 새로운 트렌드 발굴의 역사 덕분이다. 특히 그림의 기술적 완성도보다는 독특한 이야기나 기발한 연출 등으로 성공한 사례들 덕분에, 제2의 조석을 꿈꾸는 이들의 도전을 끌어들인다. 게다가 하나의 서비스에서 진행하는 것인 만큼, 네이버 도전만화에서 인기를 얻으면 네이버웹툰으로 전업작가 데뷔를 할 수 있다는 흐름이 보인다.
셋째, 성공의 크기는 두 말할 나위 없이, 양대 포털이 한국 인터넷 활용에서 지니는 과점적 지위에서 나온다. 정식으로 연재지면을 얻으면, 하루 수백만 독자들이 내 작품을 사랑해줄 가능성이 생긴다. 실제로 원고료를 얼만큼 받는지에 대한 공개 정보가 적음에도 불구하고, 조회수가 주는 희망만으로도 상당하다.
오디션이 대중문화 전반을 휩쓴 지 오래다. 대형 기획사 오디션 접수창구는 여전히 붐빈다. 하지만 양적인 팽창이 선순환을 담보하진 않는다. 지난해 원조 격인 슈퍼스타 K5에서 드러났듯이, 공정하고 흥미로운 경쟁의 장을 지속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다른 대중문화 분야에서 지망생들에게 보여주어야 할 것도 이 세 가지를 크게 벗어나지는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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