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의 성취감과 대가 : 프리라이터로 살기 [기획회의 225호]

!@#… 만만치 않게 굵직한 특집들을 수월하게 만들어내는 능력이 참 신기한 출판저널 ‘기획회의’의 지난 호 특집, ‘인디라이터로 살아가기’ 가운데 한 꼭지. 이런 이야기는 푸념도 뽐뿌도 아니게 균형맞추기가 은근히 힘들지만, 역시 풀어내기가 무척 재미있다.

 

자유의 성취감과 대가 : 프리라이터로 살기

김낙호(만화분야 프리라이터)

자고로 무엇이든 간에, 이름을 멋지게 붙이면 절반은 먹고 들어간다. 별다른 조직 신분에 얽매이지 않고 자신의 전문성 하나를 무기삼아 이런 저런 지면에 글을 써서 먹고사는 글쟁이들에게, 언젠가부터 무척 세련된 느낌의 명칭이 붙기 시작했다. 프리라이터, 혹은 인디라이터라고 하는데, 거의 비슷한 의미를 지녔으나 전문성의 측면에서 어감이 무척 다른 자유기고가라는 용어를 언젠가부터 밀어냈다. 어차피 (대체로) 소속 없이 글을 쓴다는 것은 대부분의 작가들도 마찬가지겠지만, 프리라이터들은 글 자체를 예술적 창작에 대한 욕심으로 다루기보다는, 대부분 전문분야에 대한 실용적 기획을 주로 다루며 글 역시 그 과정에서 나오는 하나의 결과물로 다룬다. 해당 분야를 소재 삼아 자기표현을 하는 작가와는 달리, 그냥 그 분야의 전문 인력인 셈이다. 그렇기에 창작의 기술보다 더 중요하게 기획 마인드가 필요하며, 기획자, 저널리스트, 창작자의 중간 어딘가에 있다.

필자의 경우는 현재 만화를 중심 분야로 하며, 온라인 매체 문화와 미디어 소통 일반까지가 담당영역인 뻗고 있는 ‘프리라이터’다. 현 상황은 특수한 경우라기보다는 동세대의 나름대로 보편적인 경로를 거쳤다. 공모전 입선이나 특정 지면의 러브콜에 응하면서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당시 떠오르던 손쉬운 자기 글 대중화 방법이었던 PC통신이 시발점이었다. 동호회 게시판 등에 분석글이나 정보글을 남기며 글을 연마하고, 그러다가 결국 직접 동호회를 만들었다. 잡지 지면에 투고글을 보내기 시작하고, 호흡이 맞는 이들과 의기투합하여 만화 비평 웹진 『두고보자』를 내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어느 정도 기반이 잡히자 점차 다른 지면으로부터의 글 의뢰, 공공사업 기획, 전시, 출판 등이 연결되었다. 그리고 글쟁이에서 기획자로 영역이 확장되자 그 분야의 인적 네트워크가 넓어지고, 다시금 여러 작업들로 이어졌다. 즉 특정한 데뷔무대를 거치는 것이 아니라, 확장된 미디어 환경을 활용하여 하나씩 운신의 폭을 넓혀간 방식이다. 현재는 블로그 같은 개인 미디어가 더욱 보편화되어 있으니, 이런 방식의 프리라이터 입문의 경로가 더욱 넓어지지 않을까 한다.

프리라이터는 글 솜씨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우선 대부분의 프리라이터들이 쓰는 글이 문학보다 실용문에 가깝다는 사실은 차치하고서라도, 프리라이터로서 자리를 잡기 위해 필요한 것이 바로 기획 마인드다. 단지 해당 분야에 대해서 글로 표현하고 싶다는 애정이 아니라, 그 판이 돌아가는 방식을 충분히 인지하고 개입할 준비가 되어있어야 한다. 잡지 연재라면 지면 성격을 분석하고 자신의 코너의 방향성을 조율하여 제시할 수 있어야 하며, 출판기획이라면 최초 기획서를 들고 가는 것은 물론 출판사 편집인들과 같이 마케팅 회의까지도 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프리라이터는 가내수공업 자영업자라는 분류로 치자면 작가들과 크게 다를 바 없지만, 기본적으로 그냥 자기표현보다 자신에게 의뢰된 것, 의뢰측이나 해당 분야가 필요로 하는 것을 충족시켜줄 수 있어야 한다. 가장 유능한 프리라이터는 트럼프의 조커 카드와 같다. 왜냐하면 프리라이터가 얌전히 자신이 바라는 칼럼 연재만 하는 식으로 유의미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언제 어떤 식으로 글 의뢰가 들어올지 모르고, 지면의 성격이 어떤 것인지는 매번 다를 수 있다. 특히 지명도가 올라갈수록 그렇다. 『한국문화예술대계』전집 같은 학문적 성격이 강한 책에 해당 분야의 챕터를 집필할 수도 있고, 중고등학생 대상 소식지에 칼럼을 넣을 수도 있다. 미술 전시회 도록에 들어가는 심층 작가론을 맡을 때도 있으며, 그냥 업계 최신 뉴스를 담백하게 넘겨야 할 때도 있다. 모든 것이 다 맞춰진 상태에서 특정 집필 주제를 의뢰받기도 하지만, 공공기관이 진행하는 한국만화 해외 홍보 사업을 위해 책자 작업을 의뢰받으며 아예 사업 전반의 기획 컨셉을 만들어줘야 하는 경우도 있다. 굳이 모든 분야의 팔방미인이 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전문 분야 내에서는 여러 형태의 일을 담당할 수 있는 것이 바람직하다.

프리라이터는 기본적으로 자신을 스스로 관리한다. 그것이 바로 가장 큰 이점이자 치명적인 약점이다. 스스로 들고 가든 부탁을 받든, 도대체 어떤 상황에서 프리라이터의 작업이 이루어지는지 생각해보면 명확해진다. 바로 클라이언트가 자신의 조직 내에서 해결할 수 없는 경우다. 만약 잡지사의 기자 중에 평론가급 만화 전문가가 있고 작업을 시킬 여력이 된다면, 신간 리뷰를 위한 외부 칼럼니스트는 필요 없다. 출판사 김과장이 아이템을 기획하고 완성 원고도 이미 물색해 놨다면, 프리라이터의 작업에 따로 돈을 지출할 필요가 없다. 그렇기에 프리라이터가 존재할 수 있는 조건은, 조직화된 클라이언트가 할 수 없는 영역을 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지나치게 이질적인 틈새에만 집중하면 어차피 수요가 없다. 그렇다면 해야 하는 것은 수요가 있는 해당 분야에서, 조직화된 이들로는 충족하기 힘든 강력한 전문성의 수준을 유지하는 것이다. 전문성이 떨어지는 프리라이터는 프리라이터로서 존재할 수 없다. 그것도 계속 전문성을 향상시키지 않으면 안 되는데, 프리라이터에게 의뢰해서 작업한 노하우를 조직에서 배워가기 때문이다. 첫 해에는 외부 전문가에게 의뢰해서 기획한 출판 사업이, 그 다음 해 사업부터는 이전 출판의 형식을 그대로 반복하며 내부인력으로 관리하는 식으로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다. 물론 그런 경우 단순한 반복을 표방하기에 외부 전문가의 작업보다 품질이 떨어지는 경우가 많지만, 그런 것은 어차피 조직의 입장에서 볼 때 줄어드는 비용과 견주어 판단하기 마련이다(혹은 최악의 경우, 아예 품질의 차이를 판별할 줄 모른다든지). 따라서 전문성을 향상시킨다는 것은 스스로의 전문적 실력을 키우는 것과 동시에, 나만이 가진 더 훌륭한 전문성이 당신들에게 필요하다는 것을 어필하는 것까지 포함한다.

자신을 스스로 관리한다는 것의 또 다른 요소는 바로 이해관계다. 조직에 속하면 해당 분야에서의 이해관계의 상당부분이 자동적으로 정리된다. 하지만 프리라이터는 그것을 스스로의 의지로 다스려야 한다. 물론 해당분야의 전문인력이면서 이해관계로부터 자유로울 방법은 전혀 없다. 업계 관계자들을 만나서 술자리를 한다는 식의 직접 대면의 차원이야 당연히 이런 점이 적용될 수 밖에 없고, 심지어 문자 그대로 그냥 글만 쓰더라도 그렇다. 어떤 부분을 더 밀어주고 싶은지, 어떤 부분은 비판하고 싶은지 자신의 소신에 의한 선호 역시 엄연한 이해관계로 엮이기 때문이다. 다만 이해관계를 보다 폭넓게 펼치고, 큰 시야로 융통성 있게 조율할 수 있다면 그렇게 하는 것이 좋다. 결국 장점은 어쨌든 능력이 늘어다는 것, 단점은 무척 피곤하다는 것이다.

이렇게 이야기하면, 힘든 점은 있지만 무척 도전적이고 매력적인 직종으로 보인다. 하지만 당연하게도, 약간만 들춰보면 좀 더 세세한 난관이 하나 가득하다. 그중 가장 큰 난관은 역시 시장이 협소하다는 것이다. 소속된 바 없이 프리라이터가 정기적인 고료로 정상적인 생계를 유지하는 것은 현재의 한국 글 시장에서 불가능하다고 단언할 수 있다. 상품의 품질에 대한 가치를 부여하는 것이 아니라 원고지 매수로 계산을 하다 보니 차등 시장이 없고 경쟁이 애매하다. 무슨 말인가 하면, 치밀한 자료 조사와 촌철살인의 진단으로 쓴 저널리즘으로 치자면 특종급 글과, 그냥 대충 느낌으로만 어렴풋이 서술한 글이 같은 가격, 예산상 잡혀 있는 원고료에 팔리기 십상이다. 그러다보니 품질을 대가로 더 높은 가격을 부르는 것이 이루어지지 않고, 또는 품질 좋은 원고를 위한 경쟁 속에서 글 값이 올라가지도 않는다. 그 근간에는 품질에 따라서 차별화되는 지면 경쟁 자체가 부족한 좁은 시장의 한계가 있다. 연봉을 받고 연간 계약으로 프리라이팅을 하는 것이 아니라 글 단위로 결제하는 방식 역시 글값 상승을 막는다(최근에는 영화의 이동진 기자나 미국야구의 민훈기 기자 등 진일보한 경우들이 생기고 있기는 하다). 좀처럼 오르지 않는 고료만 주어지는 제한된 시장에서 원고로 먹고 사는 것은 그다지 현실적이지 않다. 결국 고정 인세를 벌어다주는 베스트셀러 책을 내든지, 제대로 된 월급을 주는 정규 직업을 취하든지, 원래 잘사는 집안이든지 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미니멀리스트 생활로 버틸 수 밖에 없다. 업계 전문 인력 역할이 메인이고 글이 부수적인 것이면 그나마 낫고, 글이 메인이라면 생계는 더욱 압박받을 것이다. 아, 그 와중에서도 물론 앞서 이야기했듯 자기 비용과 노력을 들여서 전문성을 계속 향상시키고.

여기에 연결된 다른 문제가 바로 조직화의 어려움이다. 작년에 성공적인 파업으로 자신들의 권리를 신장시킨 미국의 극본작가조합의 사례에서 보듯, 물리적 조건을 향상시키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조직적 압력이다. 하지만 프리라이터라는 직종은 그나마 팀 작업에 익숙한 미국 극본작가들과는 달리 작업 방식이 각각의 사업체 사장 같은 면이 있다(수익면에서는 하위 노동자이면서도). 조직화를 통한 문제 해결, 즉 민주사회의 ‘노동’ 상식은 처음부터 기대하지 않는 쪽이 좋다.

그런데 이런 이야기들을 그대로 되짚어보면 프리라이터의 매력 역시 고스란히 드러난다. 전문성과 범용성, 그리고 무엇보다 자율성 말이다. 나아가 해당 분야에서 스스로 자신을 성장시키는 과정의 즐거움을 고수할 수 있다. 하지만 반대로 현실적인 난관들을 무시하고 자유로움만 보고 뛰어들 수 있는 직종과는 거리가 있다. 이 분야로 오시라고 추천하지는 않겠지만, 오시는 분들에게는 기꺼이 응원을 보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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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1.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역시 저는 한참 멀은것 같군요. 먼것을 그나마 인지하는게 다행이라고 자위나 해야할런지..

  2. 역시 낙호님 글답게 명쾌하고 예리하네요. 다만 갑을 관계에서 약자 혹은 피해자일 수 밖에 없는 위치라는 점, 그리고 시장이 협소하다는 저 문제는 아무리 기획력과 필력, 처신을 다듬어도 프리라이터의 존립 조건 자체를 뒤흔드는 독이 될 수 있는 가장 결정적인 시스템이 되어있는게 현실이거든요. 홍대로 이사와서 문화예술계에 적을 두고 있는 사람들을 일상적으로 접하고 삽니다만 전체를 100으로 보면 순전히 이쪽 일을 생계로 버틸 수 있는 퍼센테이지는 5%에도 못미치는걸 체감합니다. 요새 홍대에 아티스틱한 까페나 레스토랑이 우후죽순 생기는데, 사장님들이 대체로 문화예술쪽의 브레인으로 활약했던 분들인 경우가 많더라구요. 벌어둔 돈으로 사업을 펼치는 것도 아니고-벌어둔 돈 같은건 없으므로- 부모님이나 처가 돈으로-대개 남자들이므로-먹고 살 궁리를 꾀하고 남은 돈과 시간으로 하던 일을 계속하는데, 이것이 가장 현실적으로 존립 가능한 문화생산력이 아닐까 싶어 무력해 집니다.

  3. !@#… 난나님/ 아니 5%나 됩니까아아! 의외로 잘들 버시는군요. 원래 이런 것은 조건의 열악함을 시장의 역동성 – 즉 대박의 ‘가능성’으로 커버해야 하는데(아니면 닥치고 열정-_-;), 아직 무척 요원하죠. 아직, 만족할만한 해답은 저도 한참 궁리중입니다.

    nomodem님/ 가깝다고 생각하면 항상 너무나 멀지만, 한참 멀었다고 생각할 때 어느덧 굉장히 가까워져 있죠. (헛, 철학적이다!)

  4. 위 법칙은, 캡콜선생의 상대성심리법칙 으로…잘 새겨두겠습니다.

  5. 프리라이터가 프리(라이)터가 될 수 밖에 없는 원인은… 사실 출판시장이 협소한 것이 가장 큰 이유가 아닐까 싶네요. 사람들이 남의 글에 돈을 지불하고 싶지 않아하잖아요. ㅜㅜ

  6. !@#… hyol/ 글 뿐만이 아니라, 손으로 움켜쥘 수 있는 것이 아니라면 그 무엇이라도…;;;

    nomodem님/ 사실 이런 비슷한 문구는 자동차 사이드미러에도 쓰여져 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