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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미국만화계 정리: 대체로 긍정적 지표의 한 해
김낙호(만화연구가)
미국만화계의 2016년은 출판업계의 여러 부침, 디지털 개척과 기존 판매망 사이의 가능성과 잠식 사이의 갈등 등 지난 몇 년간 이어졌던 몇 가지 혼란이 정리되고, 거의 오롯이 안정적 발전을 이뤄간 한 해였다. 주류 ‘이슈’ 단위 코믹북, 서점 중심 단행본, 온라인만화, 만화 원작사업 등 주요 분야별로 나누어 살펴본다.
1. 이슈 단위 주류 코믹북 시장의 안정적 성장
매해 만화산업백서를 내고 있는 ICv2과 코믹북 분야에 특화한 ComicChron 공동조사에 의하면 북미지역 만화시장은 이미 2015년에 10억3천만 달러를 돌파했고, 2016은 그와 비슷한 수준에서 완만한 성장을 이룬 것으로 추산되었다. 미국에서 지난 수십년간 주류 장르만화의 기반을 책임졌던 것은 이미 잘 알려졌듯, 이슈 단위 다이렉트 마켓이다. 이슈(주: 24-32페이지 내외 중철 제본으로 구성된, 단일작품 연재 발간물을 지칭) 방식의 제작 형태, 소매점들이 사실상 독점 도매업체인 다이아몬드에서 직구매를 후 독자에게 판매하는 유통 형태, 그리고 그런 것을 판매하는 각 만화전문서점들이 해당 지역의 만화 문화 팬덤 구심점 역할을 하는 것이다. 이런 방식은 00년대 후반의 경기침체, 주류 슈퍼히어로 장르의 노쇄화, 디지털 오락거리와의 경쟁 등으로 한 때 위기를 겪었는데, 지난 5년간 완만한 성장세로 회복되고 있었다. 그리고 2016년에는 마침내 확실한 건재를 과시하게 되어서, ComicChron의 추산에 의하면 2016년 6월 소매점들의 상위 300여 만화 타이틀 월간 구매량이 1997년 12월 이래로 가장 높은 850만부에 달했다. 이 수치는 5년전과 비교해도 42퍼센트 증가세였고, 침체기가 오기 전인 15년전과 비교해도 56퍼센트 증가한 수치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연 단위로 집계해도 2016년의 상위 300종 판매부수는 9천9백만부로, 2015년의 9천8백만, 2014년의 9천2백만부에 이어 성장을 이어갔다.
2016년에 이슈 단위 코믹북 방식 흥행 성공의 가장 표면적인 이유는 역시 시장을 양분하는 두 거대출판사인 마블과 디씨코믹스가 자사 슈퍼히어로 세계관의 새로운 분기점을 표방한 스토리라인 이벤트를 펼친 것이었다. 마블은 자사의 2006년 이벤트를 차용한 헐리웃 블록버스터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에 맞물려서, [시빌 워 II]를 야심차게 선보였다. 10년 전과 마찬가지로 이번에도 마블 세계관의 주요 히어로들을 두 개의 각각 타당한 구석이 있어 보이는 진영으로 갈라서 싸우게 한 것이었다. 갈등의 이념 축이 어설프고 작품 속 진행보다 장기적 포석의 복선이 과다하여 평단의 평가는 박했지만, 게임 중심 서브컬쳐 웹진 IGN의 보도에 의하면 첫 호의 판매량이 38만 부를 넘겼다. 한편 디씨코믹스 역시 세계관 전체를 리부트하겠다는 ‘리버스’ 이벤트를 펼쳐서, 그 중 대표격인 [배트맨] 1호가 28만부 가량 판매되었다.
헐리웃 영화의 성공과 맞물리며 화제성을 더 많이 가져가는 것은 종종 마블이지만, 만화 출판이라는 분야에서 2016년에 더 흥미로운 시도들을 성공시킨 것은 디씨코믹스다. 앞서 언급한 세계관 전체 갱신 이벤트 외에도, 수십 종에 달하는 다양한 핵심 라인업 작품들의 이슈 단위 가격을 상대적 저가인 2.99달러로 고정하고, 월간이 아닌 격주 연재로 만드는 등 공격적 접근을 선보였다. 나아가 ‘리버스’라는 단단하게 구성된 핵심 사업 외에도, 융통성 있게 다양한 성향의 만화를 만들기 위한 하위 임프린트 사업을 확장했다. 락밴드 가수 겸 [엄브렐라 아카데미]의 스토리작가인 제라드 웨이가 주도하는 “영 애니멀” 임프린트가 출범한 것에 이어, [헬블레이저] 시리즈 같은 위악적 안티히어로로 유명한 워렌 엘리스가 주도하여 “와일드스톰” 임프린트를 재시동한다는 발표가 이어졌다.
하지만 이슈 코믹북 시장의 성장이 무조건 과거 모델로의 회귀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만화평론가 데이빗 하퍼의 분석에 따르면 이 시장의 특징이었던 장기 연재 시리즈가 갈수록 자리를 잃어가고, 그 자리에는 계속 새로운 시리즈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 화제성이 점점 짧아지는 대중매체 환경 속에서 어떻게든 주목을 얻기 위해, 심지어 같은 캐릭터들의 이야기라고 할지라도 빨리 완결 짓고 새 시리즈로 재시동거는 흐름이 꾸준히 이어진 셈이다. 그 결과, 2016년에는 상위 300종 가운데, 66%가 연재 10회 미만인 상태로 집계되었다. 이런 트렌드는 한 편으로는 새로운 독자들을 영입하기 위한 다양한 진입점을 만들어주는 장점이 있지만, 다른 한 편으로는 그만큼 화제성 자체만을 위한 잦은 설정 변경으로 고정팬들을 오히려 멀어지게 할 위험도 지니고 있다.
요약하자면, 주류 이슈 코믹북 시장은 지난 수년간 많은 우려 속에서도 나름대로 성장을 이어갔고, 2016년은 그런 흐름이 안정적으로 성과를 낸 해다. 임프린트 전략은 완만한 성장 이상의 성과를 거두어낼 가능성에 대한 투자로, 2017년에 화제작을 낼 수 있을지 기대를 가지게 만든다.
2. 서점 시장 그래픽노블 분야의 양적, 질적 성장
만화책이 여타 일반서적과 함께 유통되는 서점 시장에서도 만화는 2016년에 좋은 성과를 거두었다. 출판통계업체 북스캔에 의하면, 출판시장 전체가 예년 대비 3.3% 성장을 이루었는데 그 중 그래픽노블은(주: 평론적 의미와 무관하게, 산업통계에서는 서점 유통되는 단행본 만화 전체를 지칭) 11%의 성장을 이루어서, 성인 픽션 가운데 호러물, 종교물과 함께 성장세를 기록한 소수의 분야로 기록되었다. 그 결과 한 해 동안 약 1천2백만부가 판매된 것으로 추산된다. 거시적 통계자료가 아니라도, 현재 미국의 가장 큰 서점망인 반스앤노블의 점포들 대부분이 만화 코너를 한 해 동안 확대하는 쪽으로 사업전략을 이어가고 있다. 물론 이런 전략의 기반에는 전자책 사업의 실패 속에서 장난감 코너 등 대중문화 취미 코너 전반을 늘려서 물리적인 지역 서점의 존재의의를 재정립하는 시도가 있지만, 그 일환으로 만화의 지분이 늘어난 것은 뚜렷한 현상이다.
서점 유통 만화책의 2016년 베스트셀러는 온라인 유통의 대표격인 아마존닷컴과 물리적 서점의 대표격인 반스앤노블 사이에 다소 차이가 있지만, 스테디셀러를 제외하고 양쪽을 함께 재패한 대표적인 작품은 두 개다. 하나는 레이나 텔게마이어의 신작 [유령들 Ghosts]로, 이 작품의 성공에 힘입어 전작들 또한 다시 순위에 올랐다. 청소년기 성장 과정의 관계 갈등을 섬세하고도 유머러스하게 잡아내는 작가 특유의 장기에, 환상적 요소가 듬뿍 담기며 대중적 히트를 거뒀다. 다른 하나의 작품은 [행진 The March]으로, 미국에서 흑인들이 동등한 시민권을 얻기 위해 대대적 투쟁을 했던 60년대 민권운동 시기에 마틴루터킹 목사의 오른팔로 최일선에서 활약한 존 루이스 의원의 경험담을 그려냈다. 3부작의 완결편이 2016년에 출간되자 전국 청년문학상을 타는 등 질적 완성도에 대한 평가도 높았고, 극우적 인종차별 여론이 득세한 대통령 선거 상황과 겹치며 더욱 부각된 작품이었다. 두 작품 모두, 북미지역에서 만화가 슈퍼히어로 서브컬쳐 너머 문화 일반에 대중적 각인을 새겨온 지난 십수년의 흐름이 이제 느슨해질 겨를이 없음을 조용히 웅변해주었다.
3. 디지털 만화의 독자적 성장과 혁신
출판만화의 디지털본을 유통하는 것에 집중된 디지털 만화 시장에서도 2016년의 흐름은 긍정적이었다. 매해 업계 백서를 제작하는 ICv2의 자료를 바탕으로 경제채널 CNBC가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 5년간 디지털 만화 시장이 뚜렷하게 성장하며 자리를 잡아온 흐름은 이슈 코믹북 시장 및 서점용 단행본 시장을 잠식하기보다는 독립적인 영역으로 이루어졌다. 특히 코믹솔로지로 대표되는 디지털 만화 플랫폼에서 제공하는 서비스의 주종목이 바로 이슈 코믹북을 디지털본으로 동시 발매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두 영역은 전반적으로 동반성장을 해내고 있음이 자료로 드러났다. 다만 2016년 7월의 ICv2 발표자료에 따르면 2015년 디지털만화 판매규모는 전년 대비 소폭 감소한 9천만 달러로 추산되었는데, 이는 만화시장 자체의 위축보다는 신규 전자책 및 모바일 기기 성장세 둔화에 맞물린 것으로 진단되었다.
이러한 흐름은 매체간 잠식이 심한 것으로 평가되던 일반 서적, 잡지, 신문 등과 다소 다른 결과다. 만화가 디지털로 인한 시장변화에서 인쇄시장에 대한 잠식을 보이지 않고 있는 것은 같은 콘텐츠에 대해서 두 시장층이 별개로 존재한다는 의미로도 해석되는데, 미국만화 특유의 고밀도 페이지 미학부터 코믹북 팬들의 물리적 수집욕까지 여러 가설이 제기된 상태다. 이런 상태가 지속될 수 있을 것인지는 출판물과 디지털 구매의 비율을 오래된 고연령 팬들과 젊은 신규 팬들 사이에서 비교해야 가늠할 수 있겠지만, 통합된 전국규모 독자 분포 조사는 아쉽게도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코믹솔로지가 자사 고객들을 대상으로 2013년에 실시하여 공개한 자료 및 기타 컨퍼런스 발표 내역들을 종합하면, 디지털에서는 여성 독자의 비중이 지역 만화전문점보다 유의미하게 높고, 매해 30세 미만 젊은 층의 이용이 늘고 있다는 진단이 내려지고 있다. 즉 기존 오랜 코믹북팬의 디지털 이동보다는 새로운 층의 개척이 이뤄지고 있다는 단서가 될 수 있다.
한편, 코믹솔로지의 새로운 정액제 서비스 역시 큰 화제를 모았다. 고정 구독료를 내고 대부분의 작품들을 무제한으로 읽는 개념은 이미 수년전 마블의 독자적인 서비스인 마블 언리미티드, 아치 코믹스 등에서도 개척한 바 있었지만, 이번 서비스는 환경 조건이 훨씬 무르익은 상태에서 이뤄졌다. 코믹솔로지가 디지털만화 유통에서 사실상의 표준처럼 자리 잡으면서 결제의 편의는 물론이고 다양한 출판사의 막대한 라이브러리를 이미 구축한 상태고, 넷플릭스와 아마존 프라임 등 영상업계, 스포티파이, 애플 뮤직 등 음악업계의 정액제 모델이 개별 제작사와 일반 사용자들에게 완전히 익숙해진 상황인 것이다. 이런 조건에서 코믹솔로지 언리미티드가 2016년 5월 서비스를 시작했고, 자체 디지털 서비스에 집중하는 마블과 DC 외 대부분 출판사의 작품들을 월 6달러짜리 정액제 상품 안에 포함시키는 것에 성공했다. 이로서 코믹솔로지는 디지털 정액제, 디지털 낱권 구매, 그리고 약간 더 확장하면 2014년부터 소유주가 된 아마존을 통한 온라인 주문까지 포괄하는 다양한 만화 향유 모델을 포괄하게 되었다.
4. 원작 산업, 안방극장에서 꽃피우다
2009년 디즈니가 마블코믹스의 모회사인 마블엔터테인먼트를 40억 달러에 인수했을 때 제기되었던 회의론은, [어벤져스]는 물론이고 상대적으로 마이너한 캐릭터였던 [가디언 오브 갤럭시] 영화판의 큰 성공을 거치며 사라진지 오래다. 하지만 2016년에 특히 주목할만한 지점은 극장이 아니라 안방극장이었다. TV를 통한 원작산업의 수익성은 비단 양대 만화 출판사의 전유물이 아니라서, IDW 출판사는 매체이식 판권을 관리하는 [더크 젠틀리], [와이오나 어프] 등의 성공에 힘입어 2016년에 기업 가치를 2.8억 달러로 평가 받았다. 정작 다이렉트 마켓을 통한 코믹북 판매가 전체 매출에서 차지한 비중은 15-20퍼센트에 불과하다고 발표했다.
DC코믹스는 극장에서는 마블이 이룩해놓은 캐릭터 연동 시리즈물 개념의 뒤를 쫒아가기에 바쁜 상태지만, TV에서는 정반대로 시청자와 평단의 호평을 받으며 선두 자리를 지키고 있다. 현재 [애로우], [레전드 오브 투모로우], [플래시], [고담], [슈퍼걸] 등의 드라마, [틴 타이탄즈] 등의 애니메이션이 DC유니버스를 공유하며 진행중이며, 교차 출연 역시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DC코믹스의 모기업인 타임워너에서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16년동안 DC코믹스 원작 TV물이 올린 매출은 10억 달러를 상회했다고 한다.
한편 마블이라고 안방극장을 방치한 것은 아니어서, 수년전에 이미 [에이전트 오브 실드], [에이전트 카터] 등으로 극장과 TV를 잇는 세계관 구축을 시도했다. 하지만 그보다 본격적인 성공은 2015년 하반기부터 거두었는데, 바로 지상파나 케이블이 아닌 주문형 비디오 업체인 넷플릭스의 오리지널 콘텐츠로 가는 방식이었다. 드라마 한 시즌 분량을 한꺼번에 올리는 방식이 당초의 우려와 달리 쉽게 시청자들에게 받아들여졌고, 반면 표현 수위나 제작 품질은 마음껏 끌어올릴 수 있었다. 그렇게 [데어데블], [제시카 존스], [루크 케이지] 등이 좀 더 거친 슈퍼히어로물을 원하던 팬들에게 큰 호응을 얻었다. DC와 마블 모두 이런 성공에 힘입어, 2017년에는 더욱 많은 시리즈와 크로스오버가 계획되어 있다.
5. 기타
개별 시장 상황이나 작품의 성취 외 2016년에 제기된 만화계의 관심사는 현실 정치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었는데, 바로 퇴행적 대통령 선거 과정과 트럼프 대통령의 당선이었다. 보수 정치세력이 다양한 표현의 보호에 좀 더 인색했던 전통적 경향에서 오는 일반적 우려를 넘어, 새 대통령 당선자가 아예 인종차별과 성차별을 대놓고 지지기반으로 삼았고, 표현의 자유 보호 헌법조항을 존중하지 않겠다는 신호를 수차례 보냈기 때문이다. 지난 1-2년 사이 더 넓은 시장 개척과 사회 반영을 위해 창작자와 작품 속 캐릭터들을 더욱 다양한 인종으로 만들어온 만화 창작계에서, 이런 현실정치의 흐름이 크고 작은 논란을 일으켰다. 그 결과 12월에는 만화계의 대표적 권리 운동 기구인 CBLDF에서 표현의 자유 수호를 위한 법적 대응에 만반의 준비를 하겠다고 선언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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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공간은 매우 마이너한 관계로, 여러분이 추천을 뿌리지 않으시면 딱 여러분만 읽고 끝납니다]
The Walking Dead는 IDW가 아니라 Image입니다. IDW의 만화책중에 TV로 옮겨진 작품은 Beau Smith가 만들어낸 Wynonna Earp가 있죠. (Dirk Gently’s Holistic Detective Agency도 TV로 나왔지만 어차피 IDW의 만화책과 TV시리즈 둘다 Douglas Adams의 원작소설들을 근거로 한것이기 때문에 IDW의 만화책을 TV로 옮긴 경우라고 할수는 없겠죠.)
Comixology Unlimited는 런칭 이전에 출판사들의 협의를 얻는데에 집중하고 상당수의 Image 타이틀처럼 작가들이 권리를 소유한 경우에도 작가들에게는 사전접촉을 소홀히 해서 자신들도 모르는 사이에 자신들이 소유한 작품이 Comixology Unlimited에 포함된 것에 대한 작가들의 불만이 있었고, 독자들의 입장에서는 상당수의 타이틀이 1권만 Comixology Unlimited에서 읽을수 있고 2권 이후부터는 일반 Comixology를 통해서 구입해야만 하게 되어있어서 사실상 sampler들을 읽기 위해 월정액료를 낸다는 불만이 있다는 점도 간과할수 없는것 같군요.
DreamLord님/ 억, 어째서 그런 기본적인 에러를…(제 머리 속에 IDW와 이미지가 뒤섞여버렸던 것입니다). 늘 꼼꼼히 체크해주셔서 감사하며, 해당 서술을 냉큼 수정했습니다. // 말씀하신 바 대로였던 코믹솔로지 언리미티드의 잡음은, 유사한 문제점을 노출했던 스포티파이나 킨들언리미티드 등과 묶어서 언제 한번 따로 다뤄볼 필요가 있죠. 지면 계기를 잡아보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