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폄하발언… 보도할까/말까?

!@#… 다이내믹 코리아는, 당연하다는 듯이 총선 지지도도 다이내믹 그 자체였다. 농당조로 흘러나온 ‘이제 쉬세요’따위 발언이 한 당의 지지율을 십수프로 갉아먹을 수 있다니, 정말 엄청난 널뛰기다. 널뛰기 건너편에는 대략 코끼리. 지금 막 착지하면서 나를 저 하늘의 별이 되도록 날려버릴 것만 같은 현기증.

그래서… 여기 하나의 화두가 있다. “대학생 아마투어 기자 박하린은, 과연 속칭 정동영 노인폄하발언을 보도했어야 했을까, 말아야 했을까?” … 공당의 대표가 아무리 지나치는 농담으로라도, 그런 말꼬투리 잡힐 수 밖에 없는 가벼운 비유를 코멘트로 던진 것은 분명히 문제가 있지 왜 없겠나. 그게 솔직한 모습인가보구나, 하고 나름대로 의욕도 불타올랐을꺼다, 안그래도 의욕만땅일 대학생 기자니까. 그런데, 아무리 아마투어든 뭐든, 기자라는 역할에 나름대로 자신을 위치시켜보고 싶다면 두 가지 중요한 전제를 생각했어야 했다.

1. 기자는 중립적이지 않다

– 언론의 중립성? 말이 되는 소리를 해라. 20년전, 지나가던 동네 꼬마들이나 신봉했을 법한 소리다. 언론은 중립적이지 않고, 중립적일 수도 없고, 중립적일 이유도 없다. 다만 얼마나 사실에 기반한 확실한 보도 근.거.를 가지고 있느냐의 문제일 뿐이다. 조선일보고 뭐고가 지랄스러운 것은 논조가 개판이라기 보다는(물론 개판이기도 하지만), 비열하게 사실을 끼워맞추고 왜곡하기 때문이다. 제대로 된 근거도 없이 마구마구.

당연히, 그 언론을 만드는 기자도 중립적일 수 없다. 중립적인 기자가 필요하다면, 저기 명동 옷가게의 마네킹군을 추천한다. 중립을 지향한다는 주장 자체도, 굉장히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맥락에서의 이데올로기일 뿐이다. 당연히 의식하든 말든 자신의 가치관에 따라서 어떤 주장을 하는 것이고, 그 주장이 얼마나 옳은 것인지를 자신이 조사한 근거를 가지고 증명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것들이 보도조직 내에서 뭉쳐지고 또한번 의도에 따라서 걸려져서 짜잔! 완성품. 게이트키핑이고 어젠다세팅이고 하는 저널리즘 이론들이 왜 있을 것 같은가.

즉. 대학생 기자든 프로든, 의도한 방향이었든 아니었든, 결국 자신이 능동적으로 정치적 실천행위를 한 것이라는 점을 인식할 필요가 있단 말이다. “나는 그냥 썼는데 다른 언론들이 왜곡해서 확대시켰다”는 것은 변명 축에도 못든다.

2. 보도는 끝이 아닌 시작이다

– 이번 보도를 하면 된거다… 되긴 뭐가 되나. 죽도밥도 안되지. 보도는 시작이다. 담론형성이라는 큰 틀에서 볼 때, 보도라는 것은 논의와 토론의 시작점, 혹은 중간에 재점화의 근거자료를 주는 것이다. 만약 어떤 보도가 의도하지 않은 효과로 번진다면, 선택할 수 있는 길은 두 가지다. (1) 의도하지 않은 방향이기는 하지만, 그냥 방치한다. (2) 내 의도가 잘못 전달되었음을 알리고 원래의 의도를 주장하기 위하여 혼신의 힘을 다해서 노력한다. (1)번을 선택했다면, 혹은 매우 소극적인 정도로만 (1)번을 벗어나겠답시고 끄적거린다면, 원래부터 그 결과대로 의도했던 것이나 사실 전혀 다를 바가 없다. 보도를 하면서, 자신이 담론형성에 적극적으로 개입하고 있다는 것을 만약 아예 자각을 하지 못한다면? 그러니까, ‘나는 단지 사실을 보도할 뿐이야’ 같은 꿈같은 소리를 지껄인다면? 대략 낭패다. 희망없는 바보인거다.

정동영이 노인투표 어쩌고 발언한 것을 보도하는 그 순간에는, 이 보도를 보고 사람들이 정동영, 그리고 그가 대변하는 어떤 집단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해보고 더 부정적인 이미지, 나아가 실제로 표를 그쪽으로 행사하지 말아달라는 분명한 의도가 개입된다. 스스로 의식하든 말든, 적극적이든 소극적이든 말이다. 그것이 원래 의식하고 있던 의도 이상으로 엉뚱하게 부풀려지는 것은 뭐 안타까운 일이지만. 그것이 자신의 의도가 아니었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다면, ‘후일담’이 아닌 ‘허위/과장 보도 및 명예훼손 고소’로 맞서야 했을 것이다. 그래서 자신의 보도로 인하여 만들어진 그 소동 속에서, 자신이 계속 능동적으로 담론 형성에 개입하고 있어야 했다. 보도는 담론의 과.정. 일 뿐이니까.

!@#… 그래서, 아마투어든 뭐든 내가 생각할 때 기자로서 가져야할 가장 중요한 덕목은, ‘책임’이다. 자신의 주장, 자신의 선택에 대해서 책임을 지는 것. 열린우리당 표가 떨어지는 것을 원했던 것이면, 그냥 적극적으로 ‘그래, 나는 원래 그런 생각이었다’라고 하든지, 정말로 아무 생각 없는 행보였는데도 불구하고 전혀 의도하지 않은 방향으로 간 것이라면 언론사들을 고소라도 하든지. 애매하게 얼버무리고 수면 밑으로 사라지는 것은… 곤란하다. 나는 기자가 정동영 노인폄하발언을 보도한 것 자체는 하등 잘못된 것이 없다고 본다. 하지만 해당 기자 자신, 나아가 방송국과 신문들이 그 여파에 대한 책임을 전혀 지려고 하지 않는 – ‘우리는 단지 보도했을 뿐이다’ 라는 자세는 참으로 씁쓸하다. 아니 구역질난다. 언론은 저기 머리 위에서 날아다니면서 훈수를 두는 것이 되어서는 안된다. 여기 땅위에 발을 딛고, 여기서 이 짐 저 짐을 옮겨주고 다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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