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 공짜신문의 꽃이라고? [한겨레21]

!@#… 지난호 한겨레21에 기고한 박스기사. 이전 인물과 사상 원고와 거의 같은 기조인데 재활용 만화 저작권 문제를 언급해주고, 지면개편 노력이 진행중이라는 부분 추가. 개인적 희망이야 데일리줌이 좀도 화끈하게 전면적인 개편을 해서 잘만든 좋은 신문으로 거듭나는 것이지만… 내가 하는 이런 비판적 지적들이 그쪽에는 어떻게 받아들여질지(받아들여지기는 할지) 지금으로써는 전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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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 공짜신문의 꽃이라고?

격심한 경쟁체제에도 불구하고, 지하철 무가지는 좁은 관심분야, 연합뉴스에서 일괄공급되는 똑같은 기사, 그리고 신문의 성향이 담긴 사설의 부재 등으로 인하여 차별화가 쉽지 않다. 이러한 환경 속에서, 경쟁지와 차별화하는 효과적인 수단으로 (이미 비슷한 상황에서 수십년전 스포츠신문들이 채택했던 전략이었던) ‘신문만화’가 무가지에서도 각광받고 있다.
지하철 무가지의 만화편성 전략에서 종합일간지의 안방마님인 한칸 시사카툰은 역할이 대폭 축소되었으며, 4칸 시사만화는 아예 찾아볼 수 없다. 대신 스포츠신문에서 볼 수 있던 1면 4페이지 호흡의 에피소드 만화나 연재극화가 일정 지면을 차지하고 있고, 인터넷에서 주로 히트한 생활속의 따뜻한 감상을 다루는 속칭 에세이툰이 한편 이상 편성되어 있다.
무가지의 만화편성 가운데 가장 특이한 시도는 ‘재활용 만화’로, 이미 단행본으로 오래 전에  유통된 바 있는 에피소드 방식의 만화들이 다시 한 회씩 그대로 연재되는 것이다. 어차피 다음 줄거리에 대한 호기심으로 끌고 나가는 작품이 아니라면 차라리 원고료도 아끼고, 이미 대중적 재미가 검증된 작품을 한편씩 되새김질해도 충분히 효과적이라는 계산인 셈이다.
그러나 재활용 만화는 한국 특유의 모호한 저작권 계약 관행상 문제 발생의 소지를 품고 있는데, 최근 만화 <무대리>를 둘러싼 설전이 대표적이다. 사건의 발단은 일간스포츠에서 연재중인 인기만화 <용하다 용해>가 한 지하철 무가지에서 <무대리>라는 제목으로 연재 개시된 것이었다. 이 작품은 원래 스포츠서울에서 연재되다가 몇 개월전에 일간스포츠로 연재지면을 이전했던 것인데, 무가지측은 해당 작품의 단행본 발간 출판사와 계약을 하고 스포츠서울에서 연재되었던 분량인 첫 화부터 개재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인기 작품을 자사 신문의 얼굴로 내세우려면 연재중인 특정 에피소드가 아니라 시리즈 자체에 대한 독점적 연재권한을 주장할 필요성을 느낀 일간스포츠는, 이 사건을 ‘도의 없는 만화판’으로 강하게 비난하는 기사를 내보냈다. 그 결과 한동안 해당 무가지 지면에서 <무대리>의 연재가 중단되었으나, 이내 다시 연재를 속행했다.
만화로 무가지 시장의 경쟁을 돌파하고자 하는 더 본격적인 시도는 만화 무가지를 표방하며 6월에 창간된 ‘데일리줌’이다. 군인공제회의 투자를 받아서 지면의 60% 이상을 만화로 채우겠다는 야심찬 포부와 이현세, 강철수, 고우영 등 스포츠신문의 인기만화가들을 올스타팀으로 포진시킨 위용은 업계를 긴장시키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뚜껑을 열어보니 결과는 생각보다 잠잠했다. 문제는 지명도 있는 작가, 좋은 작품, 그리고 시의적절한 편성은 모두 별개의 것이라는 점이었다. 예를 들어 대표작으로 내세웠던 이현세의 <신들의 시간>은 자신의 현재 주력작품인 <천국의 신화>의 패러디에 가까우며, 고우영의 <십팔사략>은 출판사의 원고분실사건으로 소실되었던 동명의 작품을 복원해내는 과정에 불과했다. 하지만 진짜 약점은, 이러한 작품들이 유료 스포츠신문이 아닌 지하철 무가지에서 어떻게 효과적으로 편성되어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이 부족했다는 점이었다. 거창한 신화와 역사의 세계를 다룬 작품, 80년대에 대한 맹목적 향수를 다룬 작품, 가벼운 에세이툰 등이 유기적인 독서의 흐름을 만들어내기보다는 수평적으로 뭉쳐져있었다. 또한 일반 뉴스보도가 만화가 조화를 이루지 못하고 완전히 뒤로 밀려나버림으로써 출퇴근길에 읽는 ‘신문’으로서의 의미가 퇴색되어버렸다.
최근에는 이러한 실수에 대한 반성으로 점차적인 지면개편이 이루어지고 있기는 하지만, 극심한 무가지 경쟁구도 속에서 인지도/선호도 면에서 이미 확실한 열세로 시작되어버린 현재의 판도를 뒤집을 수 있을 정도의 힘을 발휘해줄지는 아직 미지수다. 만화는 사랑받는 신문을 만들기 위한 좋은 파트너지만, 신문으로서의 완성도를 확보해주는 요행수가 되어주지는 못한다는 평범한 진리를 다시한번 확인시켜준 셈이다.

(출처: 한겨레21 제521호 / 2004.8.12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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