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다움의 역사 – 『하워드 진의 만화 미국사』[전자신문 100226]

!@#… 돌아가며 쓰는 연재칼럼 ‘만화로 보는 세상’ 금주 원고(게재버전은 여기로). 그런데 가서 주욱 읽다보면, 어째 아직까지도 만화로 세상사를 본다는 원래의 제목 컨셉에 계속 집착하는 건 c모 밖에 없는 듯 OTL

 

인간다움의 역사 – 『하워드 진의 만화 미국사』

김낙호(만화연구가)

흔히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는 이야기를 듣게 된다. 무력에 의한 점유, 정치권력 확보에 의한 강압 같은 것을 역사 속에서 승리를 거두는 것으로 치부하는 시각인데, 뭐 딱히 틀린 말은 아니다. 멀게는 통일신라 이후 고구려 백제가 상대적으로 부실한 역사서들이 있고, 가깝게는 독재 미화와 우익편향을 객관적 진리마냥 공인해온 8-90년대 중고등학교 역사 교과서들이 있지 않던가. “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 같은 우스개가 단순한 개그 이상으로 현 시대 최고의 캐치프레이즈 중 하나처럼 자리 잡은 상황이다.

하지만 승리를 무엇으로 정의하느냐에 따라서는, 완전히 다른 식의 역사를 기록할 수도 있다. 그저 당대의 권력을 잡는 것이 아니라, 시대의 속에서도 어떤 갈망을 지니고 계속 살아남아 움직이는 것이 승리라면 어떨까. 결정적 발화점이자 기폭제에 집중하는 역사가 아니라, 그 기저에 있는 커다란 연료통에 주목을 하는 것이다. 사회 엘리트들의 활극이 아니라 밑바닥에서 역사적 변화의 바탕이 되어온 당대의 평범한 사람들 및 그들의 갈망을 그려내는 역사 말이다. 지속적으로 살아남는 것을 기준으로 치자면, 잠시 왔다가 가는 권력자들과 달리 평범한 민중은 항상 승리자다. 물론 반대급부로 세상은 오로지 민중들의 힘으로만 움직였다는 식으로 과장하면 그것 나름대로 민망하고 무의미한 서술이 되겠지만, 권력에서 시작되는 여러 횡포 – 전쟁, 차별, 억압 – 들에 평범한 사람들이 대처하며 지금까지 끈질기게 사회를 이어온 이야기를 발굴하기 위해서는 매우 유용한 접근이 되어줄 수 있다.

최근 타계한 미국의 진보성향 역사학자이자 한 시대를 대표한 실천적 지성 하워드 진의 명저 ‘미국 민중사’는 한국에 출시되며 장사에 방해되는 어떤 특정 이미지를 피하기 위해서인지 ‘민중’을 빼고 『하워드진의 만화미국사』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었다. 원작도 재미있게 읽을 수 있지만, 만화판은 그보다 더 간편하게 추려낸 버전이다. 만화적 재미 측면은 그리 뛰어나다고 할 수 없지만(유감스럽게도 만화판을 그려낸 마이크 코노패키는 래리 고닉 같은 천재가 아니다), 원작에 대한 충실한 재현이 훌륭하며 원작 출간 후 십수년간 진행된 여러 부조리에 대한 추가 내용도 포함되어 있다. 이 작품은 미국 역사를 관통하는 여러 역사적 사건과 흐름 속에서, 권력자들의 결정 부분이 아니라 평범한 일반 시민들의 생활조건과 의지, 힘들이 모여서 움직임을 만든 부분들을 발굴해내는 과정으로 가득하다. 아메리카 원주민(‘인디언’) 학살, 노동운동 탄압, 흑인차별 등 여러 당시에는 누구나 일상적으로 경험했지만 역사에서는 애써 가려두곤 했던 부분들을 발굴하고 그 속에서 어떻게 상황을 개선해 나갔는지가 펼쳐진다. 그런데 그것은 계급 대립 속에 공산주의 혁명을 부르짖는 작위성이 아니라, 인간적인 자세를 간직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인간적 세상을 만들 수 있다는 희망의 메시지로 이루어진다. 시민들이 그저 투표하는 기계가 아니라 자신의 세상을 더 나은 방향으로 바꿀 수 있는 하나하나의 의지가 되어줄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하고자 동분서주하는 학자의 모습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사실 따지고 보면 역사라는 것이 오늘을 살기 위한 교훈을 주기 위해 필요한 것이야말로, 결국 역사적 위인이 아닌 나라도 무언가 해낼 수 있다는 효능감이다. 거대한 권력 활극이 아니라, 평범한 사람들이라는 승자들의 역사를 읽어내고 지금 자기 자신이 또 다른 승자의 역사를 계속 만들어 나아갈 에너지를 얻어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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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전자신문의 ‘만화로 보는 세상’ 연재칼럼. 필자들이 돌아가면서 ‘만화의 사회참여’, ‘만화 속 역사’, ‘만화와 여성’, ‘웹툰트렌드’ 등의 소재를 다룬다. 제일 무겁고 재미없어지기 쉬운 파트인 ‘역사’ 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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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thoughts on “인간다움의 역사 – 『하워드 진의 만화 미국사』[전자신문 100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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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비의 알림…

    『하워드 진의 만화 미국사』 추천 — via capcold…

Comments


  1. 오늘 전자신문에서 주최한 컨퍼런스에 참석했는데…
    기고한 글이 실린 오늘자 전자신문을 배포하더군요. ㅎㅎ
    그런데 이름이 무려 ‘감낙호’라고 인쇄되어 있었다는. OTL…
    거꾸로 인쇄된 우표처럼 레어템을 득했다고 해야 하나…
    인증샷도 찍었으니 필요하시면 말씀해 주셔요. ㅡ,.ㅡ;;

  2. capcold님/ 블로그 아래에 표시되어 있는 메일로 보냈습니다.
    트래백으로 달면 좋으련만 제가 아직 블로그가 없어서요. ㅡ,.ㅡ;
    (한참 워드프레스 설치 중…)

  3. !@#… 뗏목지기님/ 오오 감사히 잘 받았습니다. 감씨가 되었으니 가나다순으로 정할 때 무려 강씨들에게도 승리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