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올 봄, 아주 도발적이고 강렬한 제목의 기사가 여러 신문의 과학 섹션을 때렸다. “이메일-문자메시지 많이 하면 IQ 나빠져(동아일보)” , “엄지족의 빛과 그늘(시사저널)” 외 다수, 이 기사들의 요지는 간단하다: 인터넷과 문자메시지 등등 각종 온라인 정보 통신을 많이 활용할수록, 머리가 나빠진다는 것이다! 아하, 이것 참 충격이다. 심지어, 마리화나 복용보다 두 배 더 많이 떨어진다고 한다.
이런 혁신적인 소식이라니, 머리와 학력에 목숨 거는 동방의 어떤 나라 입장에서는 정말 아주 쇼킹한 일이다… 여담이지만, 물론 그다지 큰 풍파를 일으키지는 못했다. 왜냐하면, 과학 섹션에 보도된 기사니까. 한국에서 저널리즘이 여론형성이라는 사회적 영향력을 발휘하는 건 솔직히 정치, 경제, 사회면 뿐이다. 사람들은 다른 면 따위는 전혀 신경 쓰지 않다 – 아마 애국가 가사로 가득 채워넣어도 눈치채지 못하리라 확신한다. 뭐 여하튼, 사람들이 가면 갈수록 멍청해진다는 과학적 발견은 평소 capcold의 사회적 목격담과 매우 일치하는 바, 그래서 이 보도를 좀 자세히 읽어보기로 했다. 보통 그렇듯 뉴욕타임즈, 더 타임즈 등 해외 뉴스 타전을 연합뉴스 통해서 받고는 그대로 배껴서 서로 비슷한 기사들을 양산해낸 것이었는데, 내용인 즉슨 영국의 King’s College London 심리학과의 글렌 윌슨 교수(시사저널은 무려 글렌 교수라고 써놓는 굉장한 취재능력을 발휘했다)가 발표한 연구결과였다. 임상실험을 해본 결과, 정보통신을 많이 쓰는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IQ 포인트가 크게 떨어졌는데 신경 분산과 집중도 저하 때문이라고 한다. 그래서 그것을 무려 ‘인포마니아'(infomania)라고 부르기로 했다고 한다(“정보화 기기에 매몰돼 일시적으로 주의가 산만해지고 IQ가 떨어지는 현상”).
결론은 참 해피하고 좋은 내용이지만, 뭔가 수상쩍다. 그래서 과연 어떤 ‘실험’이었는지, 좀 더 뒤져봤다. 여기서부터는 물론, 국내 언론(언론이라고 쓰고 찌라시라고 읽는다)은 전혀 신경도 안쓴 부분이다. 내역인 즉슨, 지원자 성인 80명을 대상으로 테스트를 실시하고 1100명을 설문조사 했다고 한다. 연구는 휴렛패커드사에서 자금지원을 했다고 한다. 오오, 이거 좀 설득력 있어 보이는걸. 더 자세한 걸 알고 싶으니, 발표된 논문을 한번 직접 읽어봐야지.
없다.
결과까지 저널리즘에 발표된 적지않은 규모의 과학적 연구인데, 논문이 어디에도 없다. 이것 참 좌절스럽고 수상쩍은 일이다. 그래서 휴렛패커드 쪽으로 가봤더니, 논문은 커녕 브리핑 자료만 달랑 있다. “이런이런 현상이 있으니, 정보통신 좀 작작 하세요, 좀 쉬면서 자제해가면서 인간다운 생활 누려봅시다, 오케이?” 뭐 그런 내용이다. 이를 수상하게 여긴 사람들은 capcold 말고도 당연히 많이 있었고, 그 중 하나인 마크 리버만이라는 블로거가 아예 윌슨 교수에게 직접 문의를 했다. 그 결과, 답장에서 드러난 더욱 당혹스러운 것이었다. 아니 그냥 그대로 옮겨오자.
This “infomania study” has been the bane of my life. I was hired by H-P for one day to advise on a PR project and had no anticipation of the extent to which it (and my responsibility for it) would get over-hyped in the media.
There were two parts to their “research” (1) a Gallup-type survey of around 1000 people who admitted mis-using their technology in various ways (e.g. answering e-mails and phone calls while in meetings with other people), and (2) a small in-house experiment with 8 subjects (within-S design) showing that their problem solving ability (on matrices type problems) was seriously impaired by incoming e-mails (flashing on their computer screen) and their own mobile phone ringing intermittently (both of which they were instructed to ignore) by comparison with a quiet control condition. This, as you say, is a temporary distraction effect – not a permanent loss of IQ. The equivalences with smoking pot and losing sleep were made by others, against my counsel, and 8 Ss somehow became “80 clinical trials”.
Since then, I’ve been asked these same questions about 20 times per day and it is driving me bonkers.
80명이 아니라 8명이고, 그건 지속적 아이큐 저하가 아닌 일시적 주의산만 작용에 불과하다(즉, IQ 테스트하고 있는데 옆에서 계속 이메일오고 전화 울리면 점수가 떨어진다는 참으로 놀라운 과학적 발견인 셈이다-_-;). 게다가 이 모든 건 HP사의 PR 프로젝트의 일부였으며 이 사람의 역할은 단지 자문을 좀 해주는 것, 정도였다는 말이다. 요약하자면, 완전히 대기업의 개사기다.
이런 ‘진짜’ 내용은 한국언론은 물론이거니와, 영국이나 미국 언론에서도 후속보도로 다루어진 적이 없다. 왜냐하면, 아무도 진실 따위는 신경쓰지 않거든. 중요한 것은 기사로서의 ‘매력’ 뿐. 인포마니아라는 멋진 단어를 유행시키고, 정보통신에 대한 딴지를 화근하게 걸어주면 땡이다. 아니면 말고. 뭐랄까, 저널리즘의 가장 근원적인 병폐를 드러내는 부분이 바로 가장 높은 전문성을 요구하는 과학 저널리즘 분야라는 것이 참 아이러니컬한 일이다. 신문과 TV는 연합뉴스를 베끼고, 연합뉴스는 더 타임즈를 베끼고, 더 타임즈는 대기업의 PR보도자료를 그대로 덥썩 물어버리고, 보도자료는 애초에 뻥투성이고. 이 전 과정이 한번의 딴지나 검증 없이 일사천리로 흐러갔다는 것이 참 두려울 정도다.
황우석 교수 연구실의 연구결과 덕분에 난데 없이 과학한국이 되어버리고 있는 오늘날, 드디어 한국에도 과학 저널리즘이라는 화두가 좀 수면위로 부상할만한 때가 되었다. 하지만 고차원적인 언론 윤리적인 문제를 떠나서, 최소한 기자와 편집자들이 자신들이 써내는 내용의 근거에 대해서 한번쯤 찾.아.볼. 정도의 전문성은 발휘해줬으면 한다. 아… 정치 경제부로 갈 준비중이라서, 무리라고? -_-;
PS. 인포마니아라는 용어를 ‘정보광’이라고 해석하는 방식 자체에 대해서도, 좀 애매한 부분이 있다. 매니아는 흔히 아는 ‘열광하는 사람’이기도 하지만, 임상심리의 차원에서는 ‘조증’이라는 뜻도 있기 때문이다. 간단하게 정의하자면, 지나치게 감정적으로 업되는 기분장애. 반댓말은 울증, 합치면 조울증. 그리고 이 증세의 일부로서 주의산만, 과다한 행동, 사고의 비약 등이 수반된다. 아이큐 저하(?)의 원인은 광적인 집착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이러한 조증 증세에서 온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애초에 임상심리학자인 윌슨 교수가 이 용어를 어떤 발상으로 꺼내왔는지 대략 짐작이 가지 않는가(물론 그렇다고 해서 진짜로 ‘정보 조증’으로 해석하면 너무 매력이 없어서 깔쌈한 대중 기사가 되기는 힘들겠지만). 물론 휴렛패커드는 이런 중의적 의미 가운데 ‘정보광’이라는 측면을 강조하고 싶었겠지만 말이다. 뭐 여튼, 이런 미묘한 지점들도 있다는 거다. 이 것 역시, 과학 저널리즘에 종사하는 기자들이 약간만 더 현명하다면 충분히 같이 고민하고 해결해야할 문제지만.
PS2. 한국의 과학 저널리즘에 대해서 개탄하는 글로, 딴지일보의 이 기사도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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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덧글 백업]
– 정서방 – 헉.. 정말. 신문 제대로 봐야겠네요. 2005/11/14 07:53
– drmlord – “가정환경에서의 간이실험”이란 말은 없는데요? “A small in-house experiment”에서 in-house는 “가정환경”이란 의미가 아니라, 실험실 환경이 아닌 HP 회사 내에서 실시한 실험이란 뜻입니다. 2005/11/14 15:52
– 캡콜드 – !@#… dreamlord님/ 지적 감사합니다. 제가 어째서인지 in-house와 on-site를 거꾸로 기억해버렸습니다…;;;(제가 과학부 기자가 아니라서 다행입니다) 대세에 지장 없는 문장이라, 통째로 빼는 쪽으로 수정했습니다^^ 2005/11/14 16:31
– tender_green – 아..너무 공감하며 읽었어요!! 담아갑니다… 2005/11/16 10: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