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발 이 페이스를 잃지 말고 끝까지 달려주길 바라는 작품.
처절한 박력의 재발견 – [진격의 거인]
김낙호(만화연구가)
일찍이 일본의 잡지시스템에서 크게 발전하고 현재는 한국은 물론 세계 곳곳에서 주류적 장르규칙이 되어있는 소년만화라는 분야는, 대결과 우정, 노력과 성장 같은 모티브들을 적당한 자극적 요소를 담은 세계관과 대결규칙에 기반해 촘촘히 박아 넣는 것이 특징이다. 때로 그것은 프로야구에서의 승리를 위해 괴상한 스프링 강화복을 입고 산골짜기에서 특훈을 하는 것이기도 하고, 요괴와 인간이 융합해서 악마와 대적하는 것이기도 하며, 고대문명과 연결된 운명적 영웅으로서 외계종족과 숙명적 대결을 하는 것이기도 하다. 하지만 00년대에 들어서며 소년만화의 중심지인 일본에서 점차 장르가 노쇄화하고 출판시장이 위축되면서, 점차 안전한 공식들만 늘어났다. 소년만화 장르를 일으켜 세웠던 강렬한 상상력의 세계관과 그 속을 살아가는 이들의 처절한 박력, 승산이 부족한 상황에서도 치열함으로 결국 성장을 이뤄내서 승리를 일구는 모습 등이, 많은 오늘날의 히트작에서는 극의 핵심이 아니라 기계적 코드로서만 남게 된 것이다. 캐릭터 라이센싱 상품 등 미디어이식을 노리는 티가 역력한 각 캐릭터 능력 설정이라는 게임적 요소가 난무하고, 나아가 모에 요소라고 불리는 코드화된 매력 요소들의 조립식 재조합에 머무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런 작품들은 안전한 구경거리이자 몇몇 개별 캐릭터에 대한 애정창구일 뿐, 이야기에 대한 감정적 몰입을 시키지 못한다. 티비 프로그램으로 치자면 원래 대하드라마가 차지하던 역할을 스타예능프로가 대체한 격이다.
그런 것이 장사가 된다고 이미 업계가 자포자기하는 시대에, 소년 장르만화의 원래 매력이었던 강렬한 감정선과 처절한 박력을 다시 들고나오는 신인이 주류 잡지의 편집부를 찾아온다면 어떨까. [진격의 거인](이시야마 하지메 / 학산 / 2권 발매중)을 둘러싼 이야기에는 늘 이 사연이 전설처럼 따라붙는다. 데뷔도 하지 않은 젊은 신인작가가 연재의 꿈을 꾸며 가장 판매량 높은 주류소년만화잡지 주간점프에 원고를 내민다. 그런데 퇴짜당한다. “다음에는 점프(에 걸맞는 만화)를 가져오세요”라는 말과 함께 말이다. 그래서 소년매거진이라는 2위업체의 편집부에 가져가는데, 그곳에서도 반신반의하며 자신들의 주력 주간지가 아니라 상대적으로 인지도가 많이 떨어지는 마이너한 월간지로 시험삼아 배치한다. 그런데 연재 개시 후 엄청난 입소문에 기대어, 잡지 판매량을 훌쩍 뛰어넘는 단행본 판매량은 물론이고 언론과 평단의 관심을 휩쓸며 2010 최고의 신인으로 평가받게 되었다. 현재의 주류소년만화에 어울리지 않아 보였던 것은 이 작품에 담긴 어둡고 처절한 세계관, 거칠고 치열한 주인공들의 조건, 귀엽지 않고 덜 다듬어진 그림체 등이었다. 하지만 막상 뚜껑이 열리자, 도저히 극복하지 못할 것 같은 세상, 처절한 도전과 그 과정을 그려내는 엄청난 박력과 직선적 메시지가 원래 소년만화 최대의 매력 포인트였다는 것을 수많은 독자들이 기억하고 있었던 셈이다.
이야기는 인간들이 중세/근대풍의 사회를 이루며 사는 어떤 미래를 배경으로 한다. 언젠가 난데없이 출현했으며 지능을 보이지 않고 인간을 산 채로 잡아먹는 거인들에게 인류는 대다수 절멸당했는데, 살아남은 이들은 거인들보다 큰 성곽을 만들어서 그 안에서 살아남는 것에 성공했다. 스스로를 새장에 가둔지 100년 동안 인류는 그런 좁은 평화에 익숙해졌는데, 어느날 갑자기 성곽의 높이를 뛰어넘는 더욱 거대한 거인이 나타나서 다시 거인들에게 인간들이 잡아먹히기 시작한다. 눈 앞에서 어머니가 산 채로 잡아먹히는 것을 목격하고 거인들에게 복수와 벽 바깥 세상 탐험을 다짐하는 주인공 에렌, 그를 보호하고자 하는 뛰어난 전투력의 미카사, 체력은 부족하지만 판단력이 뛰어난 아르민 등 주인공들이 군인이 되어 거인들과 싸우는 줄거리가 펼쳐진다.
이 작품의 미덕은 바로 밑도 끝도 없이 위협적인 거인들의 존재다. 악의 세력이고 충돌하는 가치관이 아니라, 압도적인 힘으로 그냥 닥쳐오는 생존 자체에 대한 위협이다. 10미터가 넘으며 왜곡된 체형의 벌거벗은 인간의 형상인 그들이 손을 뻗어 인간을 움켜쥐고 거대한 입에 넣고 씹을 때의 위압감은 대단하다. 작가는 그런 대목에서 갖은 기교로 공포물을 연출하지 않고, 그저 느리고 자연스럽게 그들이 포식행위를 하는 모습으로 그려낸다. 그 앞에서 인간들은 마치 모기들처럼 공중을 도약하며 칼을 휘두른다. 거대하고 알 수 없지만 완전히 일상적 세계의 일부가 된 위협요소에 대항하기 위해 인간들은 조직을 만들고, 싸움법을 만든다. 하지만 화려한 이름의 필살기가 난무하는 무협지 초인들의 세계가 아니라, 비록 알 수 없는 요소들에 대한 탐구는 계속되지만 기본적으로는 인간에게 주어진 기술로 전투를 할 뿐이다.
어두운 이야기에 희망을 넣어주는 것은 바로 박력이다. 이야기 속 주인공들의 정서에, 그것을 풀어나가는 그림에 그간 오랫동안 주류 작품에서 보기 힘들었던 박력이 녹아있다. 가장 밑바닥인 세계에서 가장 정직하고 직선적으로 자신의 의지를 피력하는 에렌, 처절한 사연을 겪으며 그를 지켜주기로 목숨을 걸기로 한 미카사, 어떤 식으로든 짐이 되지 않고 같이 서고 싶어하는 아르민 등은 소년만화에서 바랄 수 있는 거의 원형적인 매력덩어리다. 무엇보다 이들에게는 적당히 폼나는 대사를 하며 캐릭터로서 인기를 끌고자 하는 의도가 역력한 “허세”가 없다. 그보다 정말로 이런 것에 매달려야 겨우 살아남을 수 있다는 처절함으로 한마디의 대사, 하나의 행동이 펼쳐진다. 그리고 각 조연들도 언제 어떻게 죽어나갈지 예상할 수 없는 상황에서 독자들도 그 비정한 세계에 함께 던져진다.
그림 역시 선이 안정적이지 않다든지 캐릭터의 구도가 불안하고 스타일리쉬한 매력이 없다든지 하는 표면적인 요소들을 치우고 보면, 오로지 스릴과 박력을 위한 연출로 가득하다. 잔선 등의 특수효과에 의존하기보다는 잔뜩 왜곡된 비례로 속도와 힘을 표현하며, 칸 구도를 통해 거인의 거대함과 인간의 왜소함의 대비에 항상 만전을 가한다. 게다가 죽음이란 스타일리쉬한 필살기에 소멸되는 것이 아니라, 잡아먹혀서 신체가 처절하고 고통스럽게 훼손되는 것이다. 그 모습을 자극적으로 엿보지도, 애써 숨기지도 않고 그대로 그 세계의 당연한 일부분인 것처럼 보여주는 식이다.
익숙한 주류에 대해 처절한 박력으로 더욱 원형적인 매력을 끄집어낸 이런 식의 충격적 대중서사물은 90년대 후반의 애니메이션 [신세기 에반게리온] 정도였다. 우연찮게도, 그 작품은 큰 화제는 물론이고 이후 일본 애니메이션의 이정표 역할을 해주었다. [진격의 거인]이 그렇게 될 수 있을지는 더 지켜봐야 알겠지만, 시작만큼은 결코 뒤처지지 않는다.
진격의 거인 1 이사야마 하지메 지음/학산문화사(만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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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주간 <기획회의>. 한국출판마케팅 연구소 발간. 여기에 쓰는 글에서는 ‘책’이라는 개념으로 최대한 접근하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결과야 어찌되었든. 즉, 업계인 뽐뿌질 용.)
다음 회 예고(즉 현 발간호 게재중인 글): 본격시사인만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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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격의 거인』 화제작이 된 이유가 있구나…
『진격의 거인』은 일본에서 출간되고 난 뒤 엄청난 화제가 되었고 “이 만화가 굉장해! 2011″에서 남성판 1위를 차지했을 정도입니다. 그 여파로 국내에서도 이미 정식으로 출간되기 전부터 만화팬들의 기대를 모으고 있었죠. 덕분에 스캔본을 통해 유포도 많이 이루어졌다는 점은 좀 짜증나긴 하지만요. © 2010 Hajime Isayama 스캔본 유출에 대한 우려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국내 정식 출간도 예상외로 빨라서 3월 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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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eun0318 "진격의 거인"에 대한 제대로된 평은 역시나 캡콜사마( @capcold )님의 글을 보심이 :) http://capcold.net/blog/6935 @textremix @NudeMod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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