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격의 거인 히트 관련 문답

!@#… 최근 시사인 600호의 ‘진격의 거인’ 히트를 논하는 기사 관련해서(애니 이전에 원래의 만화부터 조명해줬다는 점에서 매우 마음에 드는 기사 접근법이다) 취재 받으며 답변한 내용. 경우에 따라서는 굉장히 질문자가 난감해질 수도 있는 식의 답변인데도, 잘 추스려 기사에 활용해주셔서 굳. 그간 비평활동 속에서 내가 추구하게 된 룰 중 하나는, “작품 내적 논리 -> 해당 장르/산업의 논리 -> 창작의 해당 사회 논리”의 순서라는 것. 전자로 충분히 설명되는 향유 요소라면, 전자를 건너뛰고 후자만 적용해서 나오는 건 운 좋으면 덤, 운 나쁘면 오바.

Q. 진격의 거인이 어필하는 지점을 소년만화의 특징으로 풀어가시는 게 인상적이었습니다. 소년만화의 매력이었던 강렬한 감정선과 처절한 박력이 다시 인기를 끌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A. 안전하게 공식화된 히트작의 전개 코드 – 기계적으로 캐릭터간 필살기를 안배하고 또다른 필살기의 적과의 배틀로만 전개된다든지 – 에 아무래도 질릴 때도 되었죠. 이야기의 ‘부품’에만 신경쓰며 그럭저럭 히트작들을 조립했지만 정작 거침없는 전개의 감정선과 박력을 잃었던 때에, ‘강철의 연금술사’가 등장해서 주의를 환기하고 ‘진격의 거인’이 확 밀어붙인 격입니다.

Q. 주간점프에서 퇴짜를 맞은 이유를 처절한 세계관, 덜 다듬어진 그림체 등으로 말씀하셨는데 예상과 달리 그런게 어필한 사회문화적 배경이 혹시 있을까요.
A. 아베노믹스 신자유주의의 무한경쟁의 현실에서, 살려면 싸워라!라는 메시지가 공감을 샀… 다는 식의 제멋대로 의미부여는 역시 상당히 곤란합니다. 그보다는, (세련되었지만 활기가 적은 갑갑한 세태가 오랫동안 현실에서 계속되었기에 반대급부로) 좀 더 고에너지의 대중문화에 대한 수요가 충분히 생기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익숙한 공식에만 안주한 주간점프의 보수성이야말로 일본의 사회문화적 배경을 보여줬죠.

Q. 저도 읽어봤는데, 취향과 별개로 사실 그렇게까지 인기인 이유를 잘은 모르겠더라고요ㅜㅠ 신인의 작품이 이렇게 화제가 된 적이 자주 있는 일인가요.
A. 소년만화독자들이 박진감을 갈구하고 있던터라, 의외로 강력한 박진감을 주는 작품이 나오자 신인이라도 환호한거죠. 충분한 세계설정이 되어있음에도, 설정놀음으로 지면을 낭비하기보다는 아주 직선적으로 사투를 보여주는 방식.

Q. 작품이 가진 미덕으로 거인들의 존재가 가진 힘을 꼽으셨습니다. 짧게 언급하셨지만 기존 만화에서 보이던 ‘악’의 세력과 다른 지점은 뭘까요.
A. 우선 확실히 강대하다는 것이고, 인간을 매우 닮았으면서도 다르다는 것이고(‘언캐니 밸리’같은), 나아가 목표도 뭣도 보이지 않는다는거죠. 인간이 보이면 몰려가서 먹는다는 ‘습성’만 있을 뿐.

Q. 에반게리온과의 유사성이 언급됩니다. 이야기 설정 측면에서 그렇다는 건가요.
A. 주인공이 거대 병기(스포일러: 거인)와 일체화하여 싸우게 되는 부분에서 그런 이야기가 많이 나왔지만 그건 어차피 둘다 울트라맨 영향권 아래에 있는 것이고, 그보다 진짜 유사한 부분은 그 작품 이전의 해당장르물들에서는 이미 잃어버린듯했던 처절함과 박력을 갑자기 재발견시켜주었다는 점이라 봅니다. 에반게리온의 폭주와 육탄전, 진격의거인의 많은 병사들의 동시 ‘입체기동’ 공격 같은 것은 그들 이전의 로봇물, 중세풍판타지물에서 기대하지 않았던 것들이죠.

Q. 만화도 만화지만 요즘 인터넷으로 진격의 거인을 패러디한 패러디물이 유행입니다. 일부 팬은 만화속 인물의 동작을 따라하는 인증샷을 페이스북에 올리기도 하는데요. 일종의 문화라고나 할까요. 패러디의 확산엔 어떤 이유가 있을지요.
A. 충분히 유명해지면 뭐든지 따라하고, 패러디로 애용됩니다. 강남스타일의 세계적 히트 당시에는 싸이도 그런 대상이었죠. 그런데 지금의 매체환경에서는 자신의 즐김을, 더욱 빠르고 보편적으로 뿌릴 수 있습니다. 그 이상의 의미를 부여하면 대체로, 과잉 해석입니다.

Q. 다른 하시고 싶으신 말씀이 있으시다면요.
A. 즉 제 견해는, 이 작품의 히트는 장르문화를 즐겨온 맥락 안에서 대체로 설명이 된다는 것입니다. 현실의 일본 현대 사회에 대한 메시지를 의도적으로 심은 작품인것도 아니고. 다만 세상은 원래 잔혹하니 억지로 미화해서는 안되며, 사람은 새장 속에서 안도하기보다는 싸워야만 제대로 살 수 있다는 뚜렷한 세계관을 탁월한 재미로 풀어낼 따름입니다. 더 흥미로운 것은 사실, 열심히 거대한 해석을 붙이고 싶어하는 사람들의 심리겠죠 – 최근에는 어떤 글에서 무슨 사투르누스 신화와 세대간 대결 이야기까지도 봤습니다.

(추가) 함께 읽으면 좋을 글1 (by 박인하 선생)

 


** 2013. 7.17. 추가. 한겨레 토요판에서도 유사한 설문이 들어와서, 비슷한 맥락으로 대답.

Q. 진격의 거인이 인기를 끄는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A. 소년만화라는 주류 장르에서, 세세하게 아기자기하며 반복적인 캐릭터 필살기 위주의 히트 공식이(일본식 편집부의 안정적 내용 설계의 장점이자 단점이죠) 노쇄해지며 반대급부로 거침없는 전개와 박진감으로 밀어붙이는 류의 작품에 대한 수요가 생겼습니다. [강철의 연금술사]가 그 수요를 채우며 큰 히트를 한 바 있고, 2009년에 괴물신인을 건져낸 것이 바로 [진격의 거인]입니다. ‘처음에는 소년점프에 원고를 들고갔으나 탈락한 작품인데 사실은 이렇게 대단하다’ 라는 배경스토리와 함께 유명해졌죠 – 즉 앞서 말한 요즈음 다른 양산형 히트작품들과는 전혀 다른 재미다, 라는 점이 먹힌 것. 계속 히트치다가 2013년 애니메이션이 방영되기 시작했는데, 워낙 고품질로 제작되어준 덕분에 한층 더 널리 히트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결국 티핑포인트를 넘었죠.

Q. 한국에서 특별히 더 인기가 있다고 할 수 있을까요?
A. 아닐겁니다. 다만 몇가지 코드가 기성언론의 흥미를 끌어(애니 1화 방영 당시의 네이버 실급검 등극으로 시작, 벽이나 거인에 대하여 한국의 논자들이 상상하는 상징 의미 등) 기사화가 자주 되는 바람에 더 알려졌죠.

Q. 거인이 은유하거나 상징하는 것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A. 거인이 나타내는 것은 우리와 비슷하게 생겼으나 실체는 알 수 없는, 거대하고 멈추지 않는 절대적 위협입니다. 그런데 한발 더 나아가, 작품이 전개될수록 우리들 ‘인간’과 ‘거인’ 사이 경계도 미묘하게 흐려져갑니다. 그런 틀 안에, 작품을 보는 사람들이 각자 자기가 원하는 것을 투영하는 격이죠 – 신자유주의를 읽고 싶은 분들은 그것을, 세대대결을 넣고 싶은 분들은 그것을 넣습니다. 참고로 ‘이만화가 대단하다2012’에 실린 내용에 의하면 작가는 과거 넷카페 알바를 할 때 본 심야 취객 손님들을 모티브로 했다고 합니다.

Q. 진격의 거인이 뿌리를 두고 있거나, 유사한 내용의 공포영화(좀비물?)나 괴물만화(울트라맨같은)가 있을까요?
A. 마브러브, 완다와 거상, 에반게리온, 울트라맨 등 직간접적 영향의 계보는 끝도 없습니다.

Q. 진격의 거인을 일본 우경화의 관점에서 분석하기도 합니다. 예를 들면 거인은 중국이고, 거인에 맞서싸우는 이들은 일본 재무장을 상징한다고요. 이런 시각을 어떻게 보시나요?
A. 감상자의 자의식 투영이죠. 작품을 그런 식으로 감상하는 것이 꼭 잘못된 것은 아니지만, “내가 이 작품을 계기로 세상 속의 이런 부분을 깨달았다”와 “이 작품의 내용은 이런 것이다”를 착각하는 것은 매우 곤란합니다.

Q. 진격의 거인 패러디도 주목 받고 있습니다. 가장 비극적인 내용을, 가장 재미있게 패러디하는 현상도 재미있는데요. 패러디가 많이 되는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A. 히트작이 엄청난 패러디 2차창작의 소재가 되는 것은, 수십년된 만화 중심 대중문화의 습성입니다. 다만 SNS의 범람 등으로, 더 많은 이들이 그런 문화를 접해보게 된 것이죠.

Q. 배경이나 분석만이 아니라, 독자들이 함께 고민하고 추적할 수 있게 만드는 미스테리 스릴러 스토리 구조도 인기에 한 몫을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예를 들면 지금까지도 거인이 어디서 왔는지, 왜 인간을 잡아먹는 지, 사람이 왜 거인으로 변하는 지 등은 알려지지 않았는데요. 이런 훌륭한 ‘떡밥’들이 사람들을 빠지게 하는 건 아닐까도 싶습니다.
A. 정확히는 떡밥 자체가 빠지게 하는 것이 아니라, 떡밥을 적절하게 풀어나가는 탄탄한 이야기 설계가 빠져들게 하는 것입니다. 즉 적절한 시점에 어떤 수수께끼는 풀어주고, 더 깊은 다른 떡밥을 새로 던지고, 잘 생각해보면 맞출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을 주면서도 또 의외의 무언가로 뒤집고, 이전에 아무렇지 않게 지나간 것이 사실은 중요한 복선이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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