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남녀: 여름 만화도서 추천 [중앙일보]

!@#… 중앙일보 여름 특집 도서 추천 “떠나자 책캉스” 의 지난주 꼭지, 만화 특집. 기선민 담당기자님이 설정한 컨셉은 만화남녀. 즉 남자 필자에게 남성 취향, 여자 필자 여성 취향의 추천을 받아서 병렬하는 것. capcold는 당연히 남성 필자 부분을 담당(…). 나름대로 평범한 남성 취향에 맞추어보려고 노력했지만, 결과는 어떨지. 여튼 책으로 나왔으며 대중적 취향을 갖춘 작품 가운데에서만 선정. 시차를 깜박하고 있다가 원고마감을 오버해서 아주 여러 사람 식은땀을 흘리게 만들어 드린 대단히 송구스러운 에피소드를 남김. 여기 백업한 건 당연히 직접 쓴 남자파트 only. 뉴스 편집 거치기 전의 원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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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책읽기Review] 낭만녀 `꿈이면 어때, 백마 탄 왕자님 … 역시 순정물` [중앙일보]
[떠나자 `책캉스` 만화남녀 `네모칸` 속으로]

…(전략)

<일지매> (고우영 / 애니북스 / 전8권)

호쾌한 재미의 원형이란 역시 기구한 운명에 맞서며 대의를 위하여 움직이는 호걸의 일생만한 것이 없다. 다만 그것이 허황된 공상이 아닌 진짜배기 쾌감을 줄 수 있으려면 초인들의 이야기가 아니라 사람 사는 향기가 진해야 한다. 바로 고우영의 사극만화들이 그러하다. 그 중에서도 특히 그 정수가 담겨 있는 것이 바로 <일지매>다. 양반계층의 사정으로 버려지게 된 서자 일지매가 기구한 운명을 겪으며, 청나라와 일본에서 수련한 무술을 바탕으로 의적이 되어 부패한 조선사회에서 활약을 하게 되는 이야기를 담은 창작사극. 고우영식 해학과 풍자, 자유로운 서술 방식이 완전히 제 모습을 갖춘 명작. 특히 일지매라는 주인공 캐릭터의 복합적인 심경묘사와 변천과정은 섬세함의 극치를 이룬다. 무협물이자 정치 사극의 요소도 가지고 있으며, 일지매라는 한 인간의 성장드라마이기도 한 탁월한 모험물이다. 특히 고우영 선생의 다른 어떤 작품보다도 주인공의 성장과 고뇌가 잘 드러나며, 진정한 영웅의 풍모가 강조되고 있다. 사회 모순에 대한 분노가 개별 악당들을 넘어 제도 전체에 대한 문제제기로 이어지지는 못하는 것이 못내 아쉽기는 하지만, 마치 소리꾼이나 마당극의 광대처럼 호쾌하고 시원하게 세상을 풍자하며 이야기를 들려주는 작가의 솜씨 앞에서는 그냥 작은 옥의 티에 불과할 뿐이다.

<아파트> (강도영 / 문학세계사 / 전2권)

진정한 공포는 바로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곳에서 시작된다. 뒷간에서 귀신 손이 나온다는 식의 설정이나, 호숫가 숲속의 처녀귀신은 유감이지만 유통기한이 지난 셈이다. 진정한 공포는 바로 우리가 살고 있는 이 현대적 공간, 바로 아파트에서 시작된다. 아파트의 사람들은 서로를 잘 모른다. 하지만 항상 공간으로서는 마주보고 좁게 붙어있도록 되어있다. 많은 사람들과 많은 사연들이 담겨 있을텐데, 서로 만나게 되지는 않는다. <아파트>는 바로 아파트라는 공간이 주인공인 공포만화다. 밤 특정시간에 반대편 아파트의 모든 불이 꺼지고, 누군가가 죽는다. 익명의 공간, 익명의 죽음. 그러나 그 속에는 각자의 사정과 깊은 원한이 서려있다. 수많은 주인공들 각자의 사연을 촘촘히 깔고 서로 미묘하게 교차시켜 나가는 작가 강풀의 솜씨는 이미 발군의 경지에 이르렀으며, 그 속에는 필연적인 비밀, 미묘한 오해들이 서로 엇갈린다. 공포와 해학이 수시로 교차하며, 사람 사는 관계에 대한 질문을 던져주는 여름철 최고 추천 작품.

<짧은 소개>
– 단구 (박중기 / 학산문화사 / 8권 발간중): 상고시대를 바탕으로 하는 동양식 무협 판타지. 운명과 맞서는 처절하고 호쾌한 싸움의 연속이 강한 카타르시스를 선사한다.

– 식객 (허영만 / 김영사 / 12권 발매중): 한국 요리를 가장 먹음직스럽게 그려내는 만화. 음식 속에 우리가 살아가는 인생사가 고스란히 담겨있다.

– 히스토리에 (이와아키 히토시 / 서울문화사 / 3권 발매중) : 알렉산더 대왕의 전투 서기관 에우메네스의 특이한 일대기. 인간 사회에 대한 물오른 통찰력으로 중무장했다.

– 츄리닝 (이상신, 국중록 / 애니북스 / 5권 발매중) : 허름하고 편한 차림새로 친한 복학생 선배 자취방에서 농담 따먹기를 하는 듯한 분위기의 개그만화. 인간의 치졸함에 대한 멋진 유머.

– 어~이! 료마 (코야마 유우, 타케다 테츠야 / 삼양출판사 / 17권 발매중): 검술의 달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난세를 평정하기 위해서 힘보다 화합과 실용주의를 펼친 특이한 영웅, 일본 근대화의 일등공신으로 꼽히는 사카모토 료마의 일대기.

– 야후 (윤태호 / 학산문화사 / 전 20권): 8-90년대를 관통하는 이 사회의 부조리함이 한 인간을 어떻게까지 분노하게 만드는지에 대한 대안역사 SF물. 거침없는 호흡과 전개가 마지막권을 부른다.

– 바람의 파이터 (방학기 / 길찾기 / 전 10권): 강함의 진리를 찾아 나선 구도자, 최배달의 인생. 굵고 간결한 화풍 속에 진정함 강함을 추구하던 의지가 역동적으로 녹아들어가 있다.

– 비천무 (김혜린 / 대원씨아이 / 전 4권): 선 굵은 무협물의 틀에 드라마틱한 순정만화 특유의 섬세함이 결합한 수작. 여성팬들 만큼이나 남성 팬들도 많은 대하 무협사극.

– 아기공룡 둘리 (김수정 / 대원씨아이 / 전 5권): 둘리의 귀여운 모험도 모험이지만, 둘리가 식객으로 눌러 살고 있는 집의 주인인 고길동이라는 가장의 페이소스가 더욱 일품이다.

김낙호(만화 연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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