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탈고 제목은 평범한데, 게재 제목은 “‘이건희x이명박’에서 무엇이 상상되나요?“다. 지난번 슈퍼맨 팬티 제목도 그렇고, 글의 본심을 그냥 확 뽑아주시는 카피작성 센스가 마음에 쏙 든다!(핫핫) …아니 그보다, 마지막 문단에서는 뭔가 저질러버린 듯한 느낌이;;
제목 한 줄로 이야기를 새로 만드는 독자문화 – 공수 커플링
김낙호(만화연구가)
만화애호가들이 그들의 매체공간에 남기는 내용들을 보다보면, 이름 두 개를 x로 결합시킨 표기를 종종 볼 수 있다. 오징어소녀x케로로 같이 주로 작품 속 캐릭터들인 경우가 많지만, 가끔은 정치인이나 연예인 등 실존 인물들이 등장하기도 한다. 얼추 분위기를 보자면 두 사람을 함께 묶는 것으로 보이는데, 실제는 좀 더 정교한 장르법칙들을 한 무더기 장착하여 이야기를 함축해 넣는 절묘한 독자문화다.
x로 표기되는 소위 커플링은 소비와 창작을 겸한 독자문화, 즉 동인문화의 상상력에 기반하고 있다. 작품 또는 현실 속에서 실제로는 어떤 관계를 맺는 등장인물들이든 간에, 독자의 상상 속에서 그들 사이에 관계를 새로 설정한다. x보다 앞에 나오는 이는 ‘공’으로, 관계에서 적극적으로 들이대는 역할이다. 뒤에 오는 이는 ‘수’로, 소극적 또는 수동적이지만 결국 그 관계를 받아들이는 역할을 맡는다. 이 쯤 되면 쉽게 눈치챌 수 있듯, 이들이 맺는 관계는 바로 애정관계다. 동료나 라이벌인 두 남자 주인공들의 관계를 독자의 상상 속에서 끈끈한 동성애로 묶는 것은 흔해 빠졌고, 공수라는 설정을 통해서 캐릭터 성격을 완전히 재해석하는 향유 행위가 널렸다. 공에 해당하는 이는 내심 공격적, 적극적인 쪽이 강조되는 쪽으로 다시 읽히고, 수에 해당되는 이는 원래 작품 줄거리에서는 어땠든 간에 사실은 수동적으로 애정을 기다리는 섬세한 측면을 품고 있다는 식으로 재창조된다.
x로 묶이는 공수 커플링은 일본 동인계, 특히 의미 없는 패러디에서 시작하여 현재는 남성 동성애물이 대부분이 된 ‘야오이’ 장르에서 발전시킨 방식이다. 하지만 원류는 지금도 번성중인 영미권 팬픽문화인 슬래시 픽션에서 찾을 수 있다. 70년대 스타트렉팬들 사이에서, 커크 선장과 스폭 부관의 동성애 로맨스 동인 창작글을 쓰며 ‘커크/스폭’으로 표기한 것이 대표적이다. 즉 생각보다 이런 식의 재창조 접근법은 대중문화가 발달한 곳이라면 여러 문화권에서 보편적 호소력을 가지고 있다고 볼 수도 있다.
공수커플링은 오늘날 만화 및 만화 중심 콘텐츠를 중심으로 가장 흔하다. 아무래도 그런 상상력을 그럴듯한 일러스트나 창작서사물로 풀어내기가 상대적으로 쉽고, 특히 일본과 한국은 만화 동인지의 저변이 상당히 넓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이런 식이 커플링은 금기의 관습에 대한 전복적 재미와 작품에 대한 능동적 참여의 즐거움을 준다. 게다가 그것을 대단히 효율적으로 만들어내는 시스템이라서, 캐릭터간 관계를 간단하게 기호화해내어 제목 자체에 이미 내용과 상당한 양의 장르법칙들을 내포함으로써 상상력을 전달한다. 즉 전복의 재미와 장르 서사에 꼭 필요한 예상 가능함을 제목 하나로 만들어버리는 셈이다. 덕분에 주어진 단서들을 새롭게 해석하고 사소한 망상을 붙여 새로운 이야기의 가능성을 탐구하며 재미를 느끼도록 해주는 중요한 팬덤 현상이다. 동인 패러디로서의 향유활동임을 명확하게 드러내고 있기에,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모욕을 느낄 이유도 없다.
다만 아무래도 기존 장르 규칙들, 특히 캐릭터 중심의 장르만화에 익숙하지 않은 이들에게 그 절묘함을 전달하기는 쉽지 않다는 것이 단점이다. ‘이건희x이명박’이라는 제목을 볼 때 곧바로 현실 사건들과 장르 클리셰가 뒤섞인 망상스토리가 연상되며 오한과 폭소를 동시에 터트릴 수 있는 이들이 얼마나 될 것인가. 하지만 그 쪽에 익숙한 이들에게 만큼은, 확실한 재미를 보장해줄 수 있다. 총공인지 다정공인지 약공인지 문외한들에게는 수수께끼 같은 내용으로 논쟁하며 더욱 상상에 몰입할 수도 있다(굳이 말하자면, 필자는 이 경우 총공이라고 생각한다). 만화팬이라서 누릴 수 있는 확실한 즐거움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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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의 격주 칼럼 ‘네남자의 만화방’. 4명의 필자들이 만화에 관한 이야기를 하나씩 풀어나가는 코너인데, c모의 경우는 만화의 어떤 코드에 관한 이야기를 하며 은근슬쩍 세상이야기로 유도하는 것이 의도.)
PS. 나름 자극적 소재 덕에(이게 자극적이란걸 안다면) 은근히 여러 덕스런 공간에도 퍼졌는데, 흔하게 나오는 리플인 “요즘 기자 아무나 하네” 같은 경우 기자와 외부기고도 구분 못하는걸 보면 “요즘 독자 아무나 하네”라는 말 밖에는(핫핫). 여튼 정경유착의 끈적함, 그리고 건희제는 한국사회 어떤 권력자 캐릭터를 대상으로 하든 ‘공’이라는게 뽀인뜨.
— Copyleft 2012 by capcold. 이동자유/수정불가/영리뿔가 — [부디 이것까지 같이 퍼가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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