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만화의 모습들과 만화를 읽는다는 것 [학교도서관저널 / 별책 ‘만화책365’]

!@#… 2012년 12월호 학교도서관저널에는, 별책부록 – 이라고는 해도 380여 페이지의 두툼한 단행본 – 으로 ‘만화책365’가 나왔다. 가이드글 몇 꼭지가 있고, 만화책 365권을 몇가지 테마로 묶어서 추천 및 간단소개하는 방식이다(보다시피, 그간 기획회의와 도서관저널 지면에서 c모가 선정해 리뷰했던 작품들이 적잖이 들어있다). 그 중 첫 총론 꼭지를 집필했는데, 버즈워드의 허세를 부리지 않는 글쓰기를 지향하다보니 기본적으로 늘 좀 건조하고 빡빡하게 눌러담은 글이 되곤 한다. 구독자용 별책부록 선물이었지만 서점에서도 따로 구할 수 있으니, 같이 실린 다른 필자 분들의 꼭지와 함께 읽으시길. ‘홍보용 첫 챕터 공개’ 같은 의미로, 내 글은 여기 온라인 공개.

 

오늘날, 만화의 모습들과 만화를 읽는다는 것

김낙호(만화연구가)

어떤 예술 양식이든, 좀 더 깊게 즐기기 위해서는 그것이 오늘날 어떤 식으로 퍼져있고 그 안에서 어떤 부류의 작품들이 고도로 발달했는지 알아두는 것이 유익하다. 고급예술 취급을 받는 경우든 대중오락 취급 받는 경우든 마찬가지다. 오늘날 이 양식의 성향을 알아나가다 보면, 오늘날이 오기 전에는 또 어땠는지 약간 더 관심을 확장하고, 과거의 명작들도 나름의 맥락을 고려하며 즐길 수 있다. 예를 들어 영화를 생각해보자. 오늘날 헐리웃의 블록버스터식 제작관행과 캐릭터 유행을 인식할 때, [어벤져스]든 [다크나이트]든 헐리우드 슈퍼히어로 블록버스터를 더 재미있게 볼 수 있다. 혹은 한국 사회의 현란한 속도와 사회체제의 부실함 속에서 지난 수년간 안정적으로 발달해온 장르임을 알고 있을 때, [범죄와의 전쟁] 같은 한국의 사회파 코미디들이 훨씬 깊은 즐거움을 준다.

만화 또한 크게 다르지 않다. 어떤 식의 만화들이 형식적으로든 문화적으로든 부각되고 있는지 되짚어볼 때 비로소 (안 그래도 좋은 작품을 골라주는 지면은 물론이고, 잘 골라보는 방법을 알려주는 공간은 더욱 부족한) 만화라는 영역을 더 적절하게 즐길 수 있다. 그렇기에 한번쯤은 단순한 작품 추천 말고, 오늘날 만화의 모습 및 만화를 읽는 것의 특성을 슬쩍 살펴볼 필요가 있다. 태고적부터 이어지는 만화 역사를 지루하게 훑는 것은 다른 기회에 하기로 하고, 산업론이나 미학이론을 늘어놓는 것도 피하고자 하니 안심하시기를.

더 많이, 더 편하게, 더 쉽게

오늘날 만화를 읽는 것의 특성을 가장 단적으로 꼽자면, 더 많은 작품들이 눈 앞에 있고, 더 편한 방식으로 그것을 구할 수 있으며, 딱 원하는 작품이 있을 때 한층 손쉽게 구해서 읽게 되었다는 점이다. 매체기술의 발달에 따라서 어느 미디어문화 양식이라도 비슷한 방향에 놓였기에 다소 김빠지는 이야기일 수도 있지만, 한국의 만화 환경이 걸어왔던 이전 모습들을 놓고 보면 그 중요성이 뚜렷해진다.

원래 한국 사회에서 만화는 유통이라는 측면에서 무척 취약했다. 다들 학창시절에 만화책의 추억이 있는데 무슨 소리인가라고 하고 싶은 이들도 있겠지만, 추억이 있다는 그 작품을 얼마나 나중에도 구해볼 수 있었던가 생각해보면 이해가 갈 것이다. 또한 가족이 이사 한 번 다닐 때마다 짐이 된다고 만화책들을 묶어서 폐휴지로 내놓은 흔한 경험들을 떠올려보자. 아주 오랜 기간 동안, 만화는 책으로서의 지속성을 일반적으로 부정당했다. 한국전쟁 무렵의 떼기만화는 형식 자체가 내구력 없는 싸구려였다. 60년대 이래의 대본소 만화방 만화들은 애초에 업소용으로 유통되었고 작품의 유통수명이 다하면 폐기되었기에, 개개인들의 서가에 꽂히는 경우가 적었다. 클로버문고 등 책으로서의 정체성을 제대로 호소할 수 있던 운 좋은 사례들은 그 반대급부로 아동용이라는 한계를 벗어나면 안 되었다. 교양 잡지의 부록으로 나온 만화들은 단행본으로 새로 묶여서 책으로 구할 수 있는 행운을 만나지 못하면 그냥 철지난 잡지를 버릴 때 폐휴지가 되었다. 90년대 들어서 다시금 만화 단행본 판매가 꽃피운 시대에도, 난립한 총판 구조 속에서 한번 유행이 지난 작품을 다시 찾아본다는 것은 매우 힘들고 중간 권이 빠지는 경우도 허다했다.

책으로서의 지속성이 부족하다는 유통의 문제는, 작품의 내용에 영향을 미친다. 깊은 호소력을 목표로 하는 섬세한 구상의 작품보다는 당장의 연재 반응에 특화된 것, 다시 앞을 찾고 반복 독서를 하기보다는 단번에 자극을 주고 지나갈 방식들이 남았다(그럼에도 불구하고 뛰어난 재능을 보인 명작들은 나왔지만). 만화의 향유 역시 당대의 인기작 외에는 나머지는 추억으로나 남기는 것이 고작이었고, 취향의 세부 분화가 이루어지기 쉽지 않았다.

이런 흐름은 00년대에 들어오며 확실히 변하기 시작했다. 물론 출판계의 장기불황과 함께 잡지 경로가 축소되는 등 부정적 요인도 많았고 구멍가게식 총판 운영에서 오는 유통문제도 여전했지만, 발전은 찾아왔다. 대형서점들의 만화 코너 확대, 총판 등과도 연계된 온라인 도서 구매가 주는 검색의 자유, 그리고 전용 만화 도서관 또는 지역 도서관의 만화책 취급 확대 등에 힘입어, 만화는 책으로서의 지속성을 얻을 기회가 늘어났다. 만화 전문 출판사 말고도 기존 대형 출판사들이 만화 출판으로 확장하며 새로운 작품군으로 자극을 주었다. 그리고 이 모든 것 위에, 아예 책의 형식을 넘어서고도 책 이상의 지속성을 확보하는 매체양식이 만화와 결합했다 – 바로 온라인 웹 기술 말이다.

동시대 오락 문화의 단면을 유지하면서도 동시에 지속성 있는 작품으로서 자리 잡을 환경을 얻어내자, 만화는 어떤 식으로 더욱 다양하게 발전하게 되었을까. 더 책다운 책으로서, 더 연재물다운 연재물로서 뻗어나갔다.

책으로서의 만화

지속성 있는 책으로서의 유통 경로가 반드시 필요했던 작품들은 무엇보다도, 연재물보다는 완성된 작품으로서 읽어야 매력이 전해지는 작가주의 성향 만화들이다. 독자들과의 밀고 당기기를 하면서 작품을 조금씩 만들어 나아가는 연재물과 달리, 작가의 비전을 완전히 담아서 내미는 식의 작품들이다. 그렇기에 잘 된 작품들이라면 이야기의 호흡과 구성이 치밀하고 일관성이 있으며, 깊게 취재나 분석을 해야 하는 복합적 주제와 섬세한 묘사도 가득 담아내고, 시각적 표현의 완성도 역시 마감시간이라는 제한보다는 작가의 표현력 그 자체에 달려있다.

이런 부류의 한쪽에는 소위 인디만화라고 통칭되는 작품들이 있다. 인디라는 용어는 자본이든 주류의 흐름이든 그런 압박으로부터 벗어나 독립적으로 작가의 뜻에 집중한다는 뉘앙스를 담는 것이다. 물론 실제로는 대형 주류 출판사에서 그런 성향의 작품을 소화하는 임프린트 팀을 운영한다든지 좀 더 회색지대에 있는 경우가 흔하기에 엄밀하게 쓸 만한 용어는 아닌데도, 편의상 다른 용어보다 더 흔하게 쓰이곤 한다. 그런 성향을 담아내는 국내 작가들의 작품은 물론이고 해외에서 인디만화로 흔히 분류되어온 작품들의 한국어판을 책 유통망을 통해 손쉽게 구하게 되었다.

[울기에는 좀 애매한](최규석) 같이 사회파 문학을 연상시키는 작품들, [혜성을 닮은 방](김한민), [지미 코리건](크리스 웨어), [올라 치꼬스](조훈) 등 작가 개인의 실험적 시도를 극대화한 경우, [열아홉](앙꼬) 같은 자전적 관찰을 담아내는 작품들이 가장 먼저 눈에 띄는 성향이다. [기억의 촉감](김한조) 같이 일상 속의 감정적 깊이를 파내는 깊이부터 [나는 공산주의자다](박건웅) 같이 커다란 사회적 역사의 흐름에서 사회적 화두를 던지는 것까지 다양하다. [페르세폴리스](마르잔 사트라피)처럼 개인에 대한 일상 관찰과 큰 역사를 자연스럽게 함께 엮어내는 성공적 시도도 드물지 않다. 이런 작품군의 출간에는 전문 출판사들의 역할이 큰데, 아예 독립만화를 표방하는 ‘새만화책’ 등의 부류, 인문적 감성과 매니아 취향을 줄타기 하는 ‘길찾기’ 등의 전문 출판사들, 대형 출판사의 임프린트로서 특정 성향에 집중하는 ‘세미콜론’ 등의 부류가 있다. 반면 90년대말~00년대초에 부각되었던, 미술적 요소를 부각하며 [잉칼](뫼비우스), [니코폴](엥키 빌랄) 등 일군의 시각적 요소가 강한 유럽만화를 수입하던 흐름은 상업적 실패 속에 다소 침체되었다.

작가주의적 성향이라고 해서, 특정 소재를 중심으로 ‘기획’된 작품이 배제되어야 하는 것도 아니다. 얼마나 깊숙한 완성도를 보여주는가에 달려 있다. 용산 철거민 사태를 다양한 시각에서 다룬 옴니버스 [내가 살던 용산](김홍모 외)와 [사람냄새 / 먼지없는 방](김수박, 김성희]는 물론이고, 인권위에서 모아낸 [사이시옷](손문상 외) 등이 완성도 있는 책 단위 완결성을 위주로 하는 책의 모범적 사례다.

인디적 감수성보다는 대중오락 코드를 더 적극적으로 구현하면서도 개별 작품으로서의 완성도를 갖춘 부류의 작품들 또한 활발하게 출간되고 있다. 예를 들어 슈퍼히어로물이라는 고도로 대중오락성에 특화된 장르물을 작가주의적 깊이로 재창조한 [왓치맨](앨런 무어, 데이브 로이드], [다크나이트 리턴즈](프랭크 밀러) 등이 그렇다. 이 작품들은 90~00년대 내내 국내에서는 만화 매니아 중에서도 소수에게 추앙받던 소문의 걸작이었는데, 최근 수년의 그래픽노블 출판 붐 속에서 덜컥 한국어판이 출간되어버렸다. 다양한 신화를 재해석하는 [샌드맨](닐 게이먼 외), 빅토리아 시대 런던 연쇄살인극 [프롬 헬](앨런 무어, 에디 캠벨)등에서 볼 수 있듯, 작가적 깊이를 성공적으로 결합하는 장르물의 폭은 얼마든지 넓다.

조금 더 대중오락 코드가 강한 쪽으로 건너오면, 주류 잡지 연재물로서 대중적 히트를 얻은 작품들 가운데 다시금 지속적 관심을 받아온 작품들을 고급 양장으로 묶어낸 소위 ‘애장판’ 들이 자리잡고 있다. [아기공룡 둘리 애장판](김수정)과 [불의 검 애장판](김혜린) 같은 고전 반열의 작품에 오른 것이나 [슬램덩크 완전판](이노우에 타케히코) 같은 대형 히트작은 물론이고, 게재 지면이 흩어져있고 구하기 힘들기에 전설로만 남았던 단편 발표작들을 모아내는 [박흥용 단편집](박흥용) 같은 경우들이 있다. 이런 양장본은 만화를 서가에 집어넣었을 때 책등이 멋있기에 부당한 편견의 폄하를 쉽게 당하지 않는다는 장점이 있다.

연속극으로서의 만화

매체기술 발전이 만화에 있어서 책으로서의 정체성에 도움이 된 것과 별개로, 만화가 오랫동안 지켜왔던 연속극으로서의 속성 역시 오늘날 (각론에서 적지 않은 부침은 있을지언정) 나름대로 건재하다. 잡지나 신문을 통해 매일 일정 분량 연재되면서 일상적 즐거움을 주는 방식은, 그 기법의 선두주자였던 연재소설보다도 만화에서 훨씬 보편적으로 주류화되었던 바 있다.

하지만 전통적인 연재공간인 종이 잡지는 출판 불황과 특히 정간지류의 부수 감소 속에서 00년대 내내 고전했다. 많은 만화잡지들이 수익성 악화 속에 사라졌고, 신문들의 연재만화 지면도 둘쭉날쭉했다. 그런 와중에 만화 연재지면의 구원투수가 되어준 것은 한쪽으로는 온라인이고, 다른 쪽으로는 만화 비중을 키운 전문소재 잡지다.

온라인은 개인사이트의 연재, 연재개념을 도입한 온라인 만화방에 대한 실험, 만화 웹진, 만화 오픈마켓, 그리고 포털사이트의 만화연재 코너 등으로 여러 시도들이 10년 조금 넘는 기간동안 활발하게 일어났다. 그런데 그 중 오늘날 상업적 지속성이라는 의미에서 가장 성공적으로 정착한 것은 포털사이트다. 그 중에서도 군소 포털의 만화코너는 흥망을 겪었고, 네이버와 미디어다음 양대 포털의 ‘웹툰’ 코너가 만화판의 주류로 확고하게 자리를 잡았다. 이들 연재공간은 90년대 종이잡지들만큼 독자층을 취향으로 좁게 묶어 기획하기보다는, 공모전과 도전게시판 등을 통해서 온라인 독자들의 반응이 있으면 정식 데뷔시키곤 했다. 따라서 아무래도 각각의 작품이 나름의 팬층을 누리고 있지만 잡지공간으로 보자면 작품색의 구심력은 흐릿하다는 특성도 있다. 다만 확실한 것은, 접근성이 워낙 좋기 때문에 만화의 일상적 향유라는 측면에서는 더할 나위 없다는 점이다.

00년대 후반 이래로, 포털 연재 웹툰은 젊은 창작자들의 재능은 물론이고 종이잡지 축소 속에 다른 길을 갈구하던 중견 스타작가들 일부도 흡수했다. 완전히 주류화된 이 공간에서 최근 수년간 가장 대중적으로나 비평적으로나 주목할 만한 명작들 상당수가 나왔다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순정만화], [26년] 등을 위시한 강풀 작가의 만화들이 포털 웹툰 연재물의 대중적 인기에 물꼬를 튼 이래로, [신과 함께](주호민)가 보여준 신화적 상상력과 유려한 이야기 솜씨, [이끼](윤태호)에 나타난 긴밀한 연출력, [다이어터](네온비, 카라멜)나 [어쿠스틱 라이프](난다)가 보여주는 일상적 고민의 무게와 즐거운 감수성 등 인기 요인들이 웹툰 영역에서 적극적으로 추구되며 성공을 거두었다. 특히 연재 분량을 올리고 독자들의 실시간에 가까운 덧글을 통해서 바로 감상을 교류하는 웹 매체 특유의 활력은 연재물로서의 즐거움을 더욱 강화해주고 있다.

오늘날 한국의 만화 독자들 가운데 세로 스크롤 방식으로 읽는 주류 포털 웹툰의 독서 방법을 혼란스러워 하는 이는 많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창작자의 수익성과 향유자의 책으로서의 물질적 만족감 등 여러 요인에 의하여, 웹툰의 종이책 출간이 계속 이루어지고 있는 편이다. 그리고 00년대 후반까지의 상당한 시행착오를 거치며, 현재는 화면에서 종이로 바꾸면서 종이책에 적합한 재편집, 작화 수정 등이 당연하게 받아들여지게 되었다. 도자기와 일상의 통찰을 연결한 [도자기](호연)의 경우처럼 연재 과정에서 작화스타일이 바뀐 경우 통일감을 위해 앞 부분을 새로 그린다든지, [미생](윤태호) 같이 처음부터 종이책을 염두에 두고 작업하되 웹 연재시에 칸을 재배치하기도 한다. 이런 식의 차이점들 역시 작품을 더욱 즐기고 싶을 때 한 번씩 주목해볼만한 요인이다.

그리고 한쪽에서는 종이잡지가 나름대로 분투하고 있다. 우선 종이 만화잡지라는 분야에서 어느 정도 계속 대중적 히트작의 맥이 아예 끊어지지는 않고 있다. [궁](박소현) 같은 여러 매체에 걸친 성공작은 물론이고, [열혈강호](전극진, 양재현), [짱](임동원) 같은 90년대부터 무한히 연재가 지속되고 있는 장기연재작도 그렇다. 다만 새로운 히트작의 등장이나 히트의 파급력에 있어서 갈수록 약화되고 있는 것은 아쉽지만 인정해야할 부분이다.

반면 주목할만한 다른 부분은 만화의 비중이 높은 전문소재 잡지들의 역할이다. 어린이 교양 잡지 ‘고래가 그랬어’를 통해서 노동자 전태일의 이야기 [태일이](최호철)이나 [피터 히스토리아](변준용, 송동근) 같은 무게감 있는 작품들이 탄생했고, 인문교양만화지 [싱크], [어린이 과학동아] 등 여러 세부 분야에서 만화가 연재물로서의 재미를 만들어내고 있다.

만화와 도서관

이렇게 살펴보았든 만화는 책으로서 연재물로서 상당한 발전을 이뤘지만, 아직도 완벽한 것은 아니다. 여전히 만화는 은근히 출간에서 절판까지 이르는 출판 수명이 짧은 편이다. 전자책으로의 전환 역시 그림 중심이라는 속성 때문에, 제작비용이든 기기 속성의 진화든 독자들의 적응이든 일반 문자 서적들보다 한 걸음 더디다. 특히 장기 연재작의 경우 국내 창작이든 해외 번역물이든 작품이 중간에 끊기거나 또는 절판된 작품을 읽고자 할 경우 중간 권을 구하지 못하는 비극이 발생하곤 한다. 만화 연재를 담아낸 정간물의 보존성 역시 결코 뛰어나지 않다.

그렇기에 만화에 있어서야 말로 더욱 도서관의 역할이 중요하다. 전문 만화도서관의 경우는 부천에 소재한 한국만화영상진흥원의 만화도서관이나 서울 남산 애니센터의 만화자료실 같은 공공기관, 청강대 만화도서관 같이 만화관련 학과가 있는 대학의 시설 등이 있다. 그 외에도 물론 동네 만화방이 실질적 전문도서관 역할을 하는 경우도 적지 않지만, 업종 자체의 흥망을 놓고 볼 때 지속성을 고르게 보장하기는 힘들다.

반면 훨씬 많은 발전의 여지를 남겨두고 있는 것은 지역도서관 및 학교 도서관들의 만화 코너다. 만화가 출판물에서 차지하는 양적, 질적 비중에 비해 만화에 대한 전문성이 떨어지는 도서관들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적당한 인기작 몇 종을 비치하여 구색만 맞추려는 접근은 문제가 있고, 여느 도서관 대여 매체에 대해서든 그렇듯이 전문 평론가들의 도움을 얻은 적절한 소장 작품 선정과 분류 및 도서 지도가 이루어져야 한다. ‘중학교 도서관이라면 갖춰야할 만화 100선’의 정기적인 선정이라든지, 도서토론회를 할 때 참조하기 좋은 작품들을 주제별로 목록화하고, 사서와 교사들에게 만화 교육을 시키고, 신작들에 대한 분류 소견을 모아낸다든지 말이다. 물론 종이책에 한정하지 않고, 도서관이 앞장서서 도서관 컴퓨터의 브라우저에 온라인 만화들을 분류하고 색인하여 찾아볼 수 있게 하는 것도 추천할만 하다.

오늘날 한국의 만화 상황은 이전 그 어느 때보다도 다양한 작품들을 쉽게 접할 수 있는 시대고, 도서관 등이 힘을 내면 더 발전할 여지도 충분하다. 그래서 좋아하는 만화가 무엇이냐 물었을 때 흔한 대형히트작 한 줌에서 골라내는 것이 아니라, “내 취향에 너무 정확하게 들어맞아서 무척 좋아하지만, 대중적으로 그렇게 잘 알려져 있지는 않은 작품” 하나씩은 누구나 읊을 수 있는 세상이 되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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