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층적인 부조리한 인연 – 인터뷰 [기획회의 345호]

!@#… 이후 에세이만화들에서 보여준 작가 특유의 유머코드도 사실 약간씩 씨앗이 심어져 있음.

 

다층적인 부조리한 인연 – [인터뷰]

김낙호(만화연구가)

가끔, 발화자는 나름대로 칭찬이라고 생각하며 붙인 표현인데 정작 실제로는 칭찬이 아니어서 난감해지는 경우가 있다. 그 중 하나가 바로 묘사와 연출이 좋은 만화 작품에 대해서 “이건 숫제 만화가 아니라 영화다”라고 감탄하는 것이다. 만화가 훌륭하면 영화가 된다는 위계적 사고는, 만화가 만화 자체로서는 훌륭할 수 없다는 황당한 편견의 반영이다. 마찬가지로 어떤 허구적 상상력이 풍부한 영화 작품을 보면서 “이건 숫제 만화다”라고 부르는 행위 또한 이런 엉터리 ‘칭찬’의 거울상이다.

하지만 칭찬이나 경멸이 아니라, 정말로 특정 영화 작품 또는 장르를 연상시키기에 영화를 떠올리게 만드는 경우는 분명히 있다. 단순히 같은 소재를 사용한다는 정도가 아니다. 인상 깊은 표현 또는 전개 방식들을 이쪽 작품으로 노골적으로 이식시켜서, 그 이종 교배 속에서 독특한 새로운 재미를 창조하는 것이다.

[인터뷰](루드비코 / 세미콜론)는 연재 당시부터 유독 “영화 같다”는 평가를 많이 받은 작품이다. 그런 인상을 벌어주는 즉각적인 다른 요인으로는 아마도 그림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강하게 카툰화된 그림체를 쓰기보다는 실사에 가까운 캐릭터들을 확실하게 표정을 클로즈업한다. 칸에 집어넣는 개별 장면들의 선택 역시 만화적으로 과장된 동세의 긴장감보다는 영화 스틸에 가까운 정적인 장면들로 이루어져 있곤 하다. 하지만 실제로 작품을 제대로 읽다보면 그림의 첫 인상 이상으로 영화의 느낌이 역력해서, 어떤 성향의 영화들을 그럭저럭 챙겨보며 지내온 사람들은 자신만의 연상 영화 목록을 떠올릴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작가가 실제로 어떤 작품들을 모티브로 삼았을지는 모르겠지만, 필자의 경우는 코엔 형제 감독의 ‘바톤 핑크’ 위에 팀 버튼의 ‘빅 피쉬’를 입히고 주연으로 데이빗 린치 감독을 캐스팅한 후 ‘퍼니 게임’ 시절의 미하엘 하네케에게 감수를 맡긴 것이 아닐까 하는 망상 퍼즐을 머리 속에 끼워 맞추고 있었다. 액션보다는 긴장, 필연보다는 절묘하게 맞물린 우연의 부조리, 명쾌한 현실파악보다는 허구와 현실의 교차, 작중 세계의 완결성보다는 매체 자체의 속성에 대한 성찰 등을 건드린 일련의 작가주의적 영화들이 떠오른 셈이다.

작품의 줄거리는 한 베스트셀러 작가가 낯선 청년에게 인터뷰를 당하는 이야기다. 작가는 자신이 생각하는 다른 훨씬 좋은 작품들은 묻힌 채, 마음에 별로 들지 않는 작품 하나로 유명작가가 되어버려서 한탄하며 슬럼프에 빠져있다. 그렇기에 인터뷰 취재에 응하지 않는 작가에게, 어느 날 낯선 청년이 찾아오는데 어쩌다보니 그와 대화를 나누며 자신이 훨씬 마음에 들어하는 다른 작품들의 줄거리를 설명해준다. 그런데 그 청년 또한 딱히 보이는 모습 그대로가 아님이 드러나며, 인터뷰 과정과 액자 속 이야기들이 교차하기 시작한다.

[인터뷰]를 읽으면 가장 먼저 영화 ‘바톤 핑크’를 떠올린 것은 이야기를 만드는 사람과 그가 만드는 이야기들이 전개되는 다층성, 그리고 그 과정을 묶어내는 부조리 때문이다(단순히 뜬금없다는 의미로서의 부조리가 아니라, 의도와 결과의 인과에 어긋난다는 의미에 가까운 부조리다). 애초에 이 작품은 단도직입적으로 한 남자가 권총 자살하는 장면에 대한 세부적인 심리묘사부터 시작하는데, 그것이 작가가 작성중인 소설의 한 대목인 것으로 바뀐다. 작가가 청년에서 소개해주는 자신의 미공개 작품이나 구상중인 이야기는 대체로, 부조리하고 역설적인 상황에 처하게 된 주인공의 고난이다. 헝가리의 사진사든, 어느 마을의 괴물이든, 연쇄살인을 쫒는 형사든,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세상을 살아가는 것 같지만 사실은 현실은 뒤틀려 있고 그 속에서 자신이 수행하는 역할 또한 그랬던 것으로 드러난다. 선의와 성실함이 좋은 결과를 가져오는 것이 아니며, 하나의 행위는 엉뚱한 방식으로 나중에 뒤통수를 치는 것이 세상사의 이치다. 그런데 작가의 그런 솔직한 이야기들은 당연히 대중적 성공을 거둘 수 없고, 비평적으로도 쓰레기 취급을 받은 것으로 그려진다. 그에 비해 가장 신파적이고 단순한 느낌의 비극을 그린 소설인 ‘오렌지빛 스카프’ 하나만이 베스트셀러로 평가받으며 진심이 가득하다고 호평을 받는다. 작가의 이야기 속 만큼이나 작가가 살아가는 현실도 충분히 부조리한 셈이다.

그리고 개별 이야기들이 담아내는 역설들은, 청년과 인터뷰 대화를 나누는 과정에서 함께 엮이며 모자이크처럼 하나의 큰 그림을 그려낸다. 그런데 그 큰 그림은, 각 조각들보다도 더욱 절묘하게 우연으로 맞물린다. 그것으로도 모자라, 그 모든 것이 이뤄지는 인터뷰의 현장과 결국 작가와 청년이 서로 인연이 엮여있는 관계야말로 부조리한 인연의 궁극을 달린다. 이야기 속 현실과 이야기 바깥의 현실은 결말에서 결국 한층 진실과 허구의 경계를 섞으며 급작스런 파국을 맞는다. 통쾌한 명확함이 아니라 느슨한 혼돈을 주며, 이야기의 끝에 어떤 식의 감정을 느낄지 독자에게 감상의 폭을 활짝 열어버린다.

12부작짜리 만화 연재 형식으로 만들어진 페이스 배분이 작품이 그려내는 에피소드 구성의 페이스와 완전히 부합되지는 않아서, 긴장관계가 자연스럽고 점진적으로 고조되기보다는 다소 급작스럽게 전환되곤 하는 단점도 없지 않다. 하지만 다소 복잡하거나 지루할 수도 있는 이야기를 원활하게 읽히도록 만드는 것은 각 에피소드를 연결하며 구사하는 적절한 이완이다. 작가는 보기보다 멋지지 않고 자기 세계에 도취되어 있는 ‘찌질함’을 지니고 있다. 인터뷰어 청년은 드러나면 드러날수록, 전혀 성실하지 않다. 이런 사람들의 대화이기에 손쉽게 만담 같은 분위기로 빠지기도 하며, 궁금해 하지 않는 청자와 알려주고 싶어하는 작가의 역전된 관계의 궁상이 마치 [인터뷰]라는 작품을 읽고 있는 독자와 만화를 그려낸 작가의 관계를 반영하는 듯한 느낌을 주며 이야기의 층위를 하나 더 씌워준다.

작품 바깥의 독자와 만화가, 작품 속의 작가와 인터뷰어 청년들이 각자 작품 속 작품의 이야기에서 펼쳐지는 내막을 조금씩 훑어가며, 사소한 계기와 우연들이 이상하게 맞물리며 파국으로 향하는 모습을 발견한다. 그것을 말도 안 되는 작위적 이야기라고 비웃고 싶으면서도 각자의 현실은 정말 그것과 다른지 문득 떠올리게 만들면서 말이다. 이 책을 읽는 독자들, 바로 우리들의 세상은 그런 작위적일 정도로 절묘한 우연 및 사소함에서 비롯되는 파국과 다르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까(만약 그랬더라면 우리 사회에 그 수많은 음모론들이 넘쳐날 일도 없었을 것이며, 어쩌면 종교 같은 가장 원초적인 문화 현상마저 생겨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다층적으로 펼쳐진 부조리함을 효과적으로 구현해낸다는 것은, 바로 독자에게 그런 서늘한 여운을 안겨주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충분한 재미를 줘야 하는데, 그런 희귀한 성과를 어떻게든 이뤄낸 작품이 바로 [인터뷰]다.

인터뷰
루드비코 글.그림/세미콜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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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주간 <기획회의>. 한국출판마케팅 연구소 발간. 여기에 쓰는 글에서는 ‘책’이라는 개념으로 최대한 접근하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결과야 어찌되었든. 즉, 업계인 뽐뿌질 용.)

다음 회 예고: 죠죠의 기묘한 모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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