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베충의 일기’, 그리고 안티에 대처하는 방법 [만화 톺아보기/미디어오늘 130609]

!@#… 대부분의 이슈 붐들이 그렇듯 언제 그랬냐는 듯이 또 관심들이 짜게 식고 있는 ‘일베’ 토픽, 이번에는 안티라는 속성에 관하여. 게재본은 여기로.

 

‘일베충의 일기’, 그리고 안티에 대처하는 방법 [만화 톺아보기]

학부시절에 수업을 통해 알게 되었던, 행동력 좋던 어떤 사람이 기억난다. 그는 당시 학생 자치사회의 운영주도권을 쥐고 있던 ‘운동권’ 학생회들의 권위주의적 문화에 대해 자유주의적 개인주의에 가까운 사고방식으로 적극 반발했으며, 점점 활동의 폭을 넓혀갔다. 그런데 어느덧, 진보로 통칭되는 이들이 지지하는 전반적으로 모든 것에 대한 극렬 안티가 되어있었으며, 논리와 근거보다는 자의적 자료 동원으로 선동을 일삼으며,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라면 어디에나 손쉽게 ‘종북’ 딱지를 붙이는 상태에 이르렀다.

이런 경우가 모든 것에 대해 곧바로 일반화될 수 있는 것도 아니며, 분명히 다른 요인들도 적잖이 작용했겠으나, 안티가 극단화되며 브레이크가 풀려버리는 것이 딱히 드문 일은 아님에 대한 하나의 일화 정도는 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최소한, 최근 여러 주 동안 주류언론에서 적지 않은 화제의 대상이 되었던 ‘일베’에서 조롱조의 극우적 정치발언을 일삼는 이들을 바라보며 다시 떠올릴 정도는 된다.

근거를 신경 쓰지 않는 넘겨짚기 통찰에 머무르지 않고자 노력한 언론 보도의 경우는, 최소한 일베 이용자 인터뷰 등을 통해 그들의 자의식을 그들의 언어로 들어보는 시도를 했다. 객관적 현실과 완전히 일치하든 아니든(보통은, 아니다) 그런 자의식이 바로 그들의 행동 양식을 만드는 동기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떤 인터뷰보다도 이미 그들의 자의식을 명료하게 표현했던 내용물이 이미 있었으니, 바로 [일베충의 일기](링크)라는 만화다. 대선 정국이었던 2012년말, 일베가 디도스 공격을 받았다고 의심되었던 당시 한 일베 사용자가 일베에 올린 작품인데, 자신들이 억압적 거짓에 대한 ‘안티’에서 시작되었다고 자처하는 사고의 정수가 일목요연하게 압축되어 있다. 온라인은 진보를 자처하면서 근거 없이 감정몰이만 하며 반대를 용납하지 않는 비민주적이고 억압적인 위선자들의 세상이었는데, 그것에 반발하며 모여든 것이 일베라는 것이다. 비이성의 안티이기에 ‘팩트’를 가져오며, 억압적 위선의 안티이기에 모두 함께 ‘병신’을 자처하고 서로 보며 비웃고 즐기다가 뭉쳤으며 – 그렇기에 훨씬 ‘민주적’이며 – 나아가 자신들을 억압한 부당한 강자들을 싸워 물리치겠다는 소명의식까지 표방한다. 자신들이 적대하는 대상들에게 ‘지금 와서 약자인척 하지마라’ 훈계를 날리며, 자신들은 소수라고, 항상 더 큰 적들과 싸웠다고 자처한다. 이쯤 되면 거의 완성형에 가까운 전형적인 해방의 서사다.

그런데 어느 토픽이든 어느 진영이든, 브레이크 풀려가는 안티의 특징은 적대감에 휩싸인 자기 편애에서 모순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당장 이 작품 안에서조차, 비이성의 안티를 자부하면서도 자신들이 맞선다는 이들을 간단하게 종북, 전교조 등의 레이블로 매도한다. 보다 강력하게 안티를 하기 위해, 애초에 안티를 하는 대상과 느슨하게라도 관련이 있어 보이는 것은 모두 안티의 대상이 확장된다(진보를 자처하는 온라인 사용자들을 반대하겠다면서, 앗 하는 사이에 어느덧 5.18항쟁의 희생자들을 조롱하고 있지 않던가). 이런 의식들이 실제 게시판에서는 한발 더 나아가, 자신들이 평등한 ‘병신’들임에 도취되어 세상 모든 이들을 강제로 그런 취급해버린다. 또한 강자와 싸운다는 자의식을 보존하기 위하여 자신들이 적대하는 눈 앞의 모든 것 – 여성이든, 호남이든, 외국인노동자든, 라이벌 유머사이트든 – 을 무리해서 마음대로 욕해도 되는 억압적 강자로 조작해낸다. 그 과정에서 자기연민과 박탈감 과시는 점점 강해지며, 공간의 원래 기조인 유머라는 요소 또한 모순의 풍자보다는 선명하고 극단적인 조롱, 즉 감성팔이로 흐른다.

‘안티’에 대해 적절한 합리적 소통으로 합의 영역을 모색해내지 못하면, 언젠가 그들이 브레이크가 풀리며 극단화된 영역에서 퇴적될 위험을 안게 된다. 운이 나쁘면 그 상태에서 실제 조직력을 얻어 진지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도 있다(주류화된(!) 미국의 극우 풀뿌리 운동인 ‘티파티’의 사례를 복기해볼 필요가 있다). 언제 어떻게 브레이크가 풀리는 것인지 세부 메커니즘은 신중한 연구의 대상이지만, 추구해야할 대처의 원칙만은 아주 상식적인 선을 되새기는 것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을까 한다. 개별 서술의 심각한 악의적 허위가 특정 개인이나 집단에 대한 직접적 위협이나 명예 훼손이 되면, 당사자들의 민사 소송으로 단호하게 바로 잡는다. 하지만 표현의 자유에 입각하여 발언의 통로는 보장하며, 사회적 공존의 가치에 위배된다고 보이는 잘못된 정보가 확산되는 것은 더 정확한 내용을 적극적으로 유통하고 토론하여 담론의 장에서 대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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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오늘 연재 칼럼. 웹툰 짤방 출판 만평 안가리고 그 시기에 등장한 어떤 떡밥 사건을 생각해보기에 도움되는 만화 작품을 연동시켜보는 코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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