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중가요의 역사: 테마가 있는 민중가요의 저녁 (행사 스크립트)

!@#… 드라마 ‘응답하라 1994’가 인기리에 방영되던 때에 당대 대학문화에서 사실은 대중문화와 민중문화가 공존하던 모습을 논한 바 있는데, 옛날 자료 틈바구니에서 꽤 재미 있는 옛 학과모임 행사 스크립트를 발견해서 슬쩍 올려본다. 1999년 대동제 무렵에 카페를 빌려서 공연 형식으로 민중가요의 역사를 훑어나간 내용이었는데, 술만 퍼먹는 ‘꽈밤’과 다른 것을 해보자는 일환으로 학과 사람들이 우루루 모아서 진행한 공연(과학생회는 물론이고 학우들 다수의 선곡과 공연 준비, c모는 어쩌다보니 행사 감독, 스크립트 집필은 지금은 네임드 락커가 되어 있는 깜악귀). 오랜만에 다시 봐도 역시 꽤 괜찮은 민중가요 개요고, 당대 문화의 흥미로운 단면.

감상에 필요한 지문 외에는 자잘한 진행 주석들은 삭제했고, 이름들은 비밀은 아니지만 사전 양해를 구한 것도 아니니 우선 비공개 처리. 당시 녹화 테잎 같은게 없는 관계로 유투브 클립으로 삽입.

행사명: 테마가 있는 민중가요의 저녁 (1999년 5월 말 공연)

  • 서정조: 서정적 노래 담당 그룹.
  • 과격조: 과격한 노래 담당 그룹.

1. 새야새야 파랑새야
(감독이 사인을 보내면 공연 참가자 전원이 합창한다.(1절만) Background 분위기로 깔린다. 나레이션 시작한다.)
안녕하세요. 저는 이 공연 나레이터 중 한명인 OOO입니다. 이 노래, 여러분들 잘 알고 계시죠. 바로 동학농민전쟁 당시에 녹두장군인 전봉준 장군을 기리면서 불렸던 곡입니다. 곡 중에 나오는 파랑새는 팔왕(八王)을 말하는 것이구요, 팔왕은 한자 전(全)자의 파자입니다. 아마 그때도 검열이 있었는가 보지요. 이 노래가 오프닝에 흘러나오는 건, 이 노래가 억압받는 민중들에 의해 만들어지고 민중들의 입으로 불린, 가장 원형적인 민중가요로 꼽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민중가요란 바로, 민중에 의해 만들어지고 민중에 의해 불리는, 민중의 삶을 그린 노래일 것입니다. 그래서, 민중가요를 부른다는 건 다른 노래들을 부르는 거랑은 의미가 다를 겁니다. 민중가요에는 시대가 있고, 그 시대의 삶이 있습니다. 저희가 이번 공연을 마련한 것도 그런 이유입니다. 민중가요가 남의 노래가 아니라는 사실, 그리고 민중가요에 그 시대의 삶이 담겨 있다는 사실, 그걸 민중가요를 부르면서 여러분과 함께 확인하고 함께 나누고 싶은 것이 이번 공연의 의미라면 의미겠지요. 자, 이제부터 우리는 유명한 민중가요들과 함께 해보겠습니다.

2. 전태일 민중의 나라
70년은 전태일의 해였습니다. 전태일 열사가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고 외치며 몸을 불살랐던 때가 70년 11월이니까요. 70년대를 열어제친 불꽃이었다고 할까요.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이라는 영화를 보신 분도 있으시겠지만 그의 유서에는 “내게 대학생 친구 한 명만 있었더라면…”이라고 적혀 있었다고 합니다. 우연히 헌법 책을 뒤져보기 전까지는 근로기준법이라는 것이 있는줄도 몰랐던 전태일에게 대학생 같은 지식인의 존재가 절실했던 것입니다. 전태일의 분신은 조영래 변호사가 [전태일 평전]을 내면서 지식인들에게 엄청난 파장을 일으켰습니다.
이건 여담입니다만, 96년 새터에서 아직은 무명이었던 패닉이 초정되어서 이 노래를 불렀다고 하네요. 아시는 분도 있으시겠지만 패닉은 서울대 사회학과 선배이죠. 패닉의 어머니가 자식이 3명 다 서울대에 입학했다고 책도 냈는데, 거기에서는 아이들의 자유를 보장해 줬다고 되어 있잖아요. 가만히 내버려 두니까 서울대에 들어가더니 인기 가수가 되더라구. 근데 이적은 새터에 와서 후배들한테 자기는 대학 안 들어가면 호적 파내겠다고 협박당했다고 그랬데요.
(서정조 노래 부른다.)
(노래 듣기 포스팅 클릭)

3. 친구
4. 작은 연못

70년대에 음악적으로 가장 중요한 것은 포크의 등장입니다. 본래 포크는 미국에서 반전운동 등 저항가요의 색채를 많이 띠고 있었는데, 한국 대중음악에 수입되면서는 그것과는 무관하게 그저 새로운 유행 정도로 취급받았죠. 그러면서 송창식이나 서유석 등의 포크 가수들이 스타가 되기도 했는데요, 하지만 이 당시 포크는 김민기라는 걸출한 작곡가를 낳기도 했습니다. 여러분은 모두 양희은이 부른 [아침이슬]의 작곡자로 김민기를 알고 계시겠지요. 김민기는 우울하고 어두운 현실을 노래에 담으면서 그나마 한국에서 포크의 본래 의미를 간직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사실 김민기의 노래는 고뇌하는 지식인의 모습을 담고 있기는 하지만 투쟁적이거나 명확하게 행동지향적인 노래는 아니예요. 이렇게 김민기의 노래에 담겼듯이 당시 사람들은 정치적인 영역으로부터는 소외되어 개인적인 실존 문제에 매달려 있었고, 분노하기보다는 아직 고뇌하고 있었습니다.
뭐 좌우간, 김민기가 나오면서 대학가에서는 기타를 못 치면 간첩이라는 말까지 나올 지경으로 통기타 열풍이 불었습니다. 지금 과방에 있는 기타들이 다 그때의 전통의 산물이라고 할까요. 여기서는 김민기의 대표곡인 [친구]와 [작은 연못]을 들어보겠습니다. [상록수]를 불러볼까 했었거든요. 그런데 이 곡은 원래 김민기가 야학을 할 때 가르치던 노동자가 결혼을 하게 돼서 기념으로 만들었다는데, TV에 나온 다음부터는 영 부를 때마다 느낌이 이상해서…
70년대는 이별이 무척 많은 시기였습니다. [친구]는 김민기가 시대의 고뇌를 이기지 못한 채 기차에 뛰어들어 자살한 친구를 생각하며 작곡한 곡입니다. 기타로 반주하는 것이 가장 아름답지만, 여기서는 피아노 반주 위주로 부르겠습니다. 그에 이어서 역시 잘 알려진 곡인데 [작은 연못]을 부르겠습니다. 그럼…….
(서정조가 [친구] 1절과 [작은 연못]을 부른다.)

5. 나무
덧붙여서 대학 이야기를 해 봅시다. 77년에 학내에서 노래운동을 하려는 목적으로 ‘메아리’가 결성되었습니다. 메아리는 그 자체로도 훌륭하게 이후 대학가의 노래운동을 독보적으로 이끌어나갔지만 사실 인재의 산실이기도 했습니다. 작곡가는 물론이고, 가수라든가, 현재 신현준이라는 Rock평론가도 81년에 메아리 출신 작곡가로 기록이 되어 있더라구요. 서울대 총학생회가도 메아리에서 작곡된 것이죠. 지금도 학교 안에서 간간히 메아리의 노래를 들을 수 있죠. 얼마 전에는 「메아리에겐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는 제목의 공연을 했었는데, 저도 한번 가 봤었거든요, 글세, 뭐랄까 현재 메아리는 정치적 음악과 순수 음악의 사이에서 헤메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메아리의 노래 중에서 한동헌 씨의 [나무]라는 곡을 들어보겠습니다. 이 곡은 김광석의 3집에 리메이크 되어 있습니다.
([나무] 부른다. 2인조)

6. 사계
자, 이제 80년대로 넘어갑니다. 70년대를 열어젖힌 것이 전태일 열사의 분신이었다면 80년대를 열어젖힌 것은 광주였습니다. 그건 부인할 수 없는 폭력과 살인 그 자체였고, 사람들은 70년대처럼 더 이상 개인적인 고뇌에 빠져 있거나 낭만주의를 간직할 수 없었습니다. 그 자각의 결과로, 80년대에는 민중운동 진영에서 매우 굵직굵직한 발전들이 이루어졌습니다. 예전의 소시민적인 지식인 중심의 운동이 뚜렷하게 민중지향성을 가지기 시작했구요, 또한 사회변혁의 중심세력으로 노동자들이 부상하기 시작했습니다. 학생운동에서도, 84년에 학생회가 조직되고 학회들이 학우들에게 대중화되었어요. 이러한 것들은 80년에 일어났던 광주민중항쟁에 자극받은 학생운동 진영이 좀더 조직화되고 힘있는 체계를 만들려는 의도였습니다. 노래운동도 마찬가지였어요. 이 무렵에 조직되기 시작한 대학의 노래패들은 70년대와는 달리 명확한 목적을 가지고 있었는데, 바로 사회변혁의 수단으로서 노래를 생각하는 것이었습니다. 대학마다 이런 노래패 한 둘 씩 없는 대학은 없었죠. [해방을 향한 진군]등이 이 때 학내에서 만들어진 대표적인 노래입니다만, 이번에 들을 노래는 80년대 초반에 생겼던 ‘새벽’이라는 노래운동모임이 만든 [사계]입니다. 왜 예전에 [퀴즈아카데미]라는, 대학생들 나오는 퀴즈 프로에 주제가로 쓰인 적이 있었죠. 기억하실는지 모르겠지만, 노래 중에 ‘미싱은 잘도도네 돌아가네~’라는 부분이 나오는데, 그게 ‘시계’로 바뀌었었죠. 저도 첨엔 그게 원래 ‘시계’인줄 알았어요. 공장 여직공들의 생활을 담은 노래가 아니라 아름다운 대한민국의 사계절을 노래한 건줄 알았었죠.
([사계]부른다. 여성보컬들로)

7. 동지를 위하여
[사계]는 비록 대중적으로 잘 알려졌지만 온전한 모습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트롯트나 뻔한 발라드 일색이었던 대중음악에 이들 민중가요의 등장은 매우 신선하게 여겨졌죠. 사회적으로도 진보운동이 많이 확산되어 있어서 비록 검열되고 짤리고 했지만 이러한 노래들에 대한 수요가 조금씩 생기기 시작했어요. 그래서, ‘노찾사’의 [솔아 솔아 푸르른 솔아]가 대중가요 인기차트에 등장하고 그 음반이 50만장이 팔리는 ‘사태’가 벌어졌습니다. 이번엔 노찾사의 대표곡 중 하나인 [동지를 위하여] 들어볼께요. 사실 노찾사가 대중무대에서 소개되었고 호응이 있었다고는 하지만 이건 노찾사 한 그룹의 힘이라기 보다는 그간 민중가요 진영의 축적된 역량이었다고 할 수 있었요. 실제로 노찾사의 초창기 노래들 중 대부분은 기존에 알려진 민중가요를 세련되게 소개한 측면이 강합니다.
([서정조] 노래 부른다.)

8. 파업가
9 무노동 무임금을 자본가에게

이번에는 노동가요입니다. 80년대 후반에 가장 중요한 것은 87년 6월 노동자 대투쟁입니다. 대통령 직선제를 이루어내면서 형식적인 민주주의나마 이끌어냈던 바로 그 6.29선언을 이끌어냈던 것은 바로 노동자들의 힘이었습니다. 굳이 맑스주의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노동운동은 정말 중요해졌죠. 이런 중에 노동자들 내부에서 노동자들의 현실과 정서를 표현하는 노래가 만들어지져 불리기 시작했습니다. 노동자들의 자신들의 노래를 갖기 시작한거예요. 바로 김호철이라는 작곡자인데요, 이 사람은 [단결 투쟁가]라든가, [무노동 무임금을 자본가에게], [들불의 노래], 등 무수한 노동가요를 작곡했어요. 그 중에 두 곡을 들어볼 텐데요, [파업가]랑 [무노동무임금을 자본가에게] 두 곡입니다. [파업가]는 처음으로 노동자들 사이에서 알려지기 시작한 기념비적인 노래이고, 노동가요의 [아침이슬]이라고 할 만한 노래입니다. 그리고 [무노동 무임금을 자본가에게]는 제목대로 무노동무임금, 그러니까 파업을 하는 노동자에게는 임금을 주지 않는다, 는 자본가의 논리에 대한 답가라고 할 수 있겠죠. 파업권이 헌법에 보장된 기본권이라는 사실은, 굳이 말 안해도 되겠죠?.
(과격조 노래 부른다. 집회의 분위기가 잘 살아나도록 부르기)

10. 대결
11. 들어라 양키야

자, 80년대가 대충 정리되어 가고 있는데요, 뭔가 빠진 느낌이 들어요.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당시 진보운동은 NL/PD의 양대진영으로 정리되어 있었어요. 그러니까…간단하게 말하자면, NL은 한국사회의 가장 큰 모순이 분단이라는 거고, PD는 노동과 자본의 대립이라는 거죠. 그래서 NL은 통일, PD는 노동해방을 중요하게 생각한답니다. 자세한 건 (알만한) 선배한테 물어보시구요, 어쨌거나 NL과 PD는 지향이 다르니만큼 부르는 노래도 달랐습니다. 여기서 양쪽의 노래를 메들리로 불러보겠습니다. [대결]과 [들어라 양키야]인데요, 양쪽 노래는 다 랄랄라, 가 들어가는 랄랄라 송이지만 NL노래와 PD노래가 어떤 식으로 다른지 단번에 알 수 있을 겁니다. 설마 들어 보고도 어느 게 어느 건지 모르진 않겠죠?
([대결~들어라 양키야], 과격조 두 곡을 연이어서 노래 부른다.)

12. 가장 늦은 통일을 가장 멋진 통일로
자, 우리가 80년대를 정리하면서 진보운동의 확산과 노래운동의 발전을 함께 다루어 왔는데요, 여기서 빠진 것이 하나 있는 것 같습니다. 바로 통일 문제입니다. 정부나 관변단체들 말고, 진짜 통일운동이 등장하게 된 것도 80년대의 힘이죠. 그 계기가 된 것이 임수경의 방북이었구요. 이번에는 통일에 대한 염원을 담아서, 서태지의 [발해를 꿈꾸며], 아니 [가장 늦은 통일을 가장 멋진 통일로] 불러보겠습니다.

13. 전화카드 한장
자, 이제야 90년대입니다. 90년대 들어서는… 어쨌거나 군부독재가 물러났고, 소위 문민정부가 등장하면서 전체적으로 ‘진보/보수’의 구분이 이전만큼 쉽지 않아졌죠. 그러면서 노래패들이 자기 정체성을 찾기가 힘들어지기도 했습니다. 대중음악에서 Rock 등 저항성을 띈 노래들이 차차 등장하기 시작한 것도 중요하구요. 이에 따라서 90년대 중반 이후로, ‘민중가요’라는 범주 자체에 대한 회의가 일어났다고도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진보적이고, 민중을 위한 노래는 무엇인가, 조PD나 인디Rock은 진보적인가, 민중적인가, 등등. 요약하자면 대중음악에서 Rock 등 저항성을 띄는 음악들이 출현하고 대학문화에서는 민중가요 노래패들이 약화된다는 것이 90년대 중반부터의 경향입니다. 대중음악에서 저항성을 띈 노래들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은 주목할 만한 일입니다. 하지만 이들이 대중음악의 영역에서 활동하니만큼 자본주의의 상업적 논리에 제약받지 않는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일 거예요. ― 그렇기 때문에 민중성이나, 진보성이 아니라 그냥 저항의 몸짓에 그치게 되죠. ― 그렇다면 대중음악의 이러한 흐름과 동시에 상업적 논리에 제약을 받지 않는 비대중문화 즉, Underground에서 민중성, 진보성을 목적으로 하는 노래들이 널리 만들어지고 불리워져야 하는데, 지금 상황은 그렇지가 않은 것이 문제일 겁니다. 대학내의 노래패가 70, 80년대처럼 그런 역할을 하는 것은 역량으로 보아 무리인지도 모르죠. 그렇다면 우리는 어디에서 진정한 민중가요를 찾을 수 있을 것인지?, 참 힘든 문제인 것 같습니다.
이런 속 상황 속에서도 노동진영과 학생진영 양쪽에서 독보적인 지지를 구축한 노래패가 출현하였습니다. 바로 이나 [가자 노동해방], [세상을 바꾸자] 등으로 잘 알려진 꽃다지입니다. 여기에서는 꽃다지의 최대 히트곡이라고 할 만 한데요. 95학번 이상이라면 사연 한 두 개쯤은 얽혀있을 [전화카드 한 장]을 듣겠습니다.
(서정조, 노래 부른다.)

14. 세상을 바꾸자
다음은 꽃다지의 최근 싱글 앨범 중 타이틀 곡입니다. 이번 지하철 노동자 집회에서 참 많이도 들었던 곡이기도 하구요, 꽃다지의 노래들이 민중가요의 최근의 경향인 rock을 수용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음을 말해주고 있기도 해요. 이전까지의 노래들과는 달리 집회 등에서 다 같이 부르기가 어려워졌어요. [세상을 바꾸자].
(과격조 노래 부른다.)

15. 철의 노동자
자, 이제 90년대를 이야기하면서 안치환을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싱어 송 라이터인 안치환은 노찾사에서 독립한 이후로 많은 주옥같은 노래들로 사랑을 받았어요. [솔아 솔아 푸르른 솔아]도 안치환의 노래이지만, [잠들지 않는 남도], [철의 노동자], [마른 잎 다시 살아나], [지리산 너 지리산이여] 등 주옥같은 민중가요를 많이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안치환은 [내가 만일]이 대중매체를 통해 히트한 이후 민중가요의 명확한 지향이 흐려지고 있다고 보이기도 합니다. 여전히 노래는 아름답고 진취적이지만, [당당하게]라든가,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처럼 TV등의 매체에 거슬리지 않을 정도의 추상적인 메시지로 일관하고 있다고 할까요 그러나 대학가에서는 아직도 목청이 터져라 부르는 안치환의 최대 히트곡이 있지요. 노동영화의 영웅본색이라고 하는 파업전야에 수록되었던 주제가로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습니다. [철의 노동자]입니다.
(과격조 [철의 노동자]부른다.)

16. 수풀을 헤치며
안치환은 독립 이후로 꾸준히 민중가요에 Rock을 도입해 왔다고 할 수 있습니다. 최근의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는 꽃다지의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하고는 정말 많이 틀리죠. 이번에는 안치환의 최근 노래는 아닙니다만, 안치환 표 Rock의 한 전형을 보여주는 [수풀을 헤치며]를 들어보겠습니다.
(2인조 [수풀을 헤치며]부른다)

17. 청계천 8가
꽃다지와 안치환을 소개하면서 우리는 90년대의 민중가요가 Rock을 수용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은 Rock이라는 장르를 받아들여 기존의 민중가요의 정형화된 틀을 깨뜨리고자 하는 시도임을 알 수 있는데요, 그에 따라 민중가요 노래패들은 점점 민중가요 밴드로 그 모양이 바뀌어 왔어요. 그리고, 95 연도에 [천지인]이 밴드의 형태로 rock의 음악적 형식을 사용한 민중가요를 발표하여 폭발적인 반응을 얻는 첫 밴드였을 겁니다. 당시 천지인 1집에 수록된 [열사가 전사에게], [청계천 8가], [밤바다], [어쨌든 우리는 살아가니까]등등 거의 모든 곡이 대학내에서 히트할 정도였습니다. 그 중 이 노래는 천지인의 rock지향을 잘 보여주지는 않지만 90년대 중반 이후 발표된 노래 중 가장 서정적이고 아름다운 노래로 꼽을 수 있을 겁니다. [청계천 8가]를 들어보겠습니다.
(서정조)

18. 뒤돌아보아도
천지인 이후로 민중가요의 메시지를 Rock이라는 음악적 지향을 통해 풀어내는 밴드들이 늘어나게 됩니다. [메이데이]나, [이스크라]등의 밴드가 그런 것인데요, 밴드 이름을 보면 [메이데이]는 물론 노동절이고, [이스크라]는 레닌이 발행하던 기관지 이름으로 뜻이 ‘들불’인가 그렇다네요. 어쨌든 천지인이 rock의 음악적 형식을 사용했다고 하지만 사실 기존 메시지와 선율 위주의 민중가요에 Rock의 몇 가지 요소를 도입해서 신선함을 준 정도이기도 합니다. 소위 비유하자면 본조비랑 비숫하다고 할까. ‘뽕락’이라고 부르죠. 하지만 이들 [메이데이]나 [이스크라]는 음악적 형식에 있어서 거의 완전한 rock을 하고 있다고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뒤돌아보아도]인데요, 저희가 부르기는 힘들고 어떤 식인지 한번 들어보세요.
([뒤돌아보아도] 테입을 튼다)

19. 인터내셔널가
자, 여러분, 저희의 공연은 이 곡이 끝입니다. 잘 감상하셨는지, 그리고 20세기의 벼랑 끝에 서 있는 99년에 민중가요란 무엇이며, 무엇이어야 하는가라는 저희의 고민이 여러분에게 잘 다가갔는지 모르겠습니다. 사실 민중가요는 어떤 고정된 음악적 형식이나 내용을 가진 것은 아닙니다. 저는 그냥 민중의 삶을 담은 노래를 민중가요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만, 거기에는 또 ‘민중’이란 무엇인가, 라는 문제가 생기겠죠. 아, 답은 쉽지 않군요. 계속해서 고민해야 할 문제이고 이 공연이 그런 고민의 자리가 되었다면 다행이겠습니다만…
(모두 무대에 오른다. 나레이터가 하나하나를 소개한다.)
자, 여러분 마지막 곡입니다. 민중가요는 세계적인 곡입니다. 인터내셔널가 부르겠습니다.
(인터네셔널가 합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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