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에 충실한 이와 함께 나아가기: 나빌레라 [고대신문 / 20171114]

!@#… 잘 뽑힌 신파는, 매우 좋은 것. 게재본은 여기로.

 

지금에 충실한 이와 함께 나아가기: [나빌레라]
김낙호(만화연구가)

“늦었다고 생각이 들 때가 진짜 너무 늦었다”라는 개그맨 박명수의 명언이 있다. 누구나 쉽게 아련한 꿈을 이야기할 수는 있지만, 그것을 성취하는 것이 더 수월하거나 힘든 시기와 여건은 당연히 있기 마련이다. 그렇기에 꿈의 내용이 무언가 결과를 이뤄내는 것에 있다면, 꿈과 현실의 저울질을 해보고는 늦었다면 늦었다고 깨닫는 것이 합리적 선택이다. 옆에서 어떤 감상적인 표피적 위안이 쏟아지더라도 말이다. 하지만 꿈의 내용이 그 꿈을 추구하는 과정에 있는 자신이라면 이야기는 다르다. 지금의 한계 안에서도 큰 방향을 향해서 할 수 있는 만큼씩을 충실히 해나가며, 매 순간 이뤄내는 결과 못 이뤄내는 결과 모든 것이 꿈의 일부다.

[나빌레라](HUN 글/ 지민 그림/ 다음웹툰)는 70세의 심덕출 할아버지가 오래 묻어두었던 꿈인 발레를 시작하는 이야기다. 의욕이 낮은 젊은 발레리노 이채록이 노인 초보 제자의 지도 역할을 맡게 되고, 가족들은 민망한 유니타드를 입고 격하게 몸을 쓰는 것을 민망하게 여기며 반대한다. 얼핏보면, 전형적인 왁자지껄 슬랩스틱 코미디의 재료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이 작품은 현재의 꿈을 충실하게 살아가는 것에 대해서, 그런 모습을 받아들이고 그 속에서 함께 일부분 성장하는 것에 대해서 묵직한 감동을 만들어낸다.

주인공 덕출은 앞으로 다가올 어떤 삶의 분기점을 깨닫고는 오래전의 꿈을 다시 꺼낸다. 하지만 그에게 발레는 한스러웠던 과거에 대한 미련스런 복귀가 아니다. 그가 자세를 연습하고 몸을 만들며 발레 동료들과 어울리는 것은 바로 현재다. 대회 우승이라든지 어떤 막연한 미래의 영광을 바라는 것도 아니다. 지금의 신체 상태로 지금의 훈련 속에서, 결국 자신이 할 수 있는 발레를 해내려 할 뿐이다. 당사자는 막연하게 최선을 다할 따름이지만, 꿈을 추구할 수 있는 지금을 충실하게 꿈에 쓰기에 꿈을 실현하고 있다. 이런 제자의 모습이, 젊은 이채록에게도 서서히 자신의 여건을 직시하면서도 재능에 걸맞는 의욕을 찾도록 만든다. 어떤 유사 가족적 관계 이전에, 발레라는 꿈으로 엮인 서로에게 성실한 좋은 사제관계다.

그리고 실제 가족이 있다. 흔히 꿈을 추구하지 못하는 전형적인 이유는 생활 여건이지만, 그것이 안정되었다는 조건이라면 과연 어떨까. 덕출의 직계 가족은 전통적 가부장 구도에 충실하고 발레에 대해 민망함부터 떠올릴 정도로 “보수적”인 세대에 속하되, 반대를 위해 난리법썩을 떨 정도로 서로에게 무례한 이들이 아니다. 자신들의 막연한 체면도 있지만, 무리한 운동에 대한 걱정도 앞선다. 그런데 이 작품은 현명하게도, 그들을 희화화된 악역으로 만들지 않는다. 책임감과 꿈을 함께 보듬어, 결국 가장 현재에 충실하게 만들어갈 수 있도록 서로 배려하는 방향을 찾아가는, 함께 섬세하게 성장하는 사람들일 따름이다.

이런 기조 속에서, 작품의 결말 또한 그저 꿈의 위대함을 응원하기 위해 초자연적 상상력으로 빠지지 않는다. 하지만 그 어떤 무리수보다도 더 자연스럽게, 꿈을 살아갈 가치가 있음을 모두의 삶을 통해서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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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신문 문화비평 코너 타이거살롱 연재. 만화비평과 사회적 지향점을 슬쩍 엮어놓는 것이 목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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