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에 필요한 것, 인적 청산 너머 관행 청산 [IZE / 20180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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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에 필요한 것, 인적 청산 너머 관행 청산
김낙호(미디어연구가)

오랜 압제를 몰아내고 나면 덜 신나고 덜 감동적인데 훨씬 중요한 일이 기다리고 있으니, 그것이 바로 재구축 과정이다. 정치적으로 악용될 구석이 많은 현행 공영방송의 지배체계를 알차게 악용하여 체계적으로 유린한 우익 정권이 남긴 폐허 위에서, MBC에는 PD수첩의 전성기를 이끌었고 해직자로서 뉴스타파의 탐사보도를 맡았던 최승호 사장 체제가 시작되었다. 약 두 달이 지난 지금, MBC는 “기레기” 딱지를 떼고 다시 한때 시민들과 독특한 친근감을 과시한 애칭인 “마봉춘”으로 돌아오는 중인지 초기 점검을 해볼 때다.

장기간에 걸쳐 망가진 것을 고치려면, 어떻게 무엇이 망가진 것인지 먼저 짚어봐야 한다. 우익정권은 방송문화진흥원의 이사 배치 관행을 악용하여 오로지 정권의 이익에 철저하게 복무하는 사장을 심어 넣고, 사장은 간부진을 같은 식으로 배치하고, 파업을 통한 노조의 저항을 정권의 비호와 시민의 무관심 속에 억눌렀다. 저항하는 숙련 인력을 쳐내면서 방송 콘텐츠 전반, 특히 저널리즘의 규범과 결과적 품질이 하락했다. 이것은 시청자들의 신뢰와 호응의 저하를 낳았지만, 견제가 작동하지 않는 체계 속에서 책임추궁 없이 이어졌다. 이런 문제의 연쇄 속에서, 최승호 체제가 출범하자마자 뚜렷하게 장점을 보인 것은 인력의 청산이다. 간판급 뉴스의 얼굴을 바꾸고, 대대적 간부 인사에 들어가고, 정치적 해직을 당한 숙련 인사들을 다시 들여오는 등 화려한 행보를 보였다. 하지만 나머지 부문은 그만큼 속 시원한 개선을 보이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최승호 사장은 시사인 인터뷰에서 지난 MBC의 위기는 뉴스와 시사 프로그램 신뢰의 몰락이고, 그 회복을 위해 시도할 것은 진실 추구라고 꼽았다. 그간 망가진 저널리즘의 회복이라는 지난한 과업을 위해 MBC가 현재 선택한 방향은 탐사프로그램의 강화와 토론프로그램의 대중화로 보인다. 최승호 사장의 홈그라운드인 [PD수첩]이 자사의 지난 몰락 과정을 다루는 방송을 터트리고, 다시 굵직한 사회문제로 초점을 맞추게 되었다. 한편 폭로성 탐사에 집중하는 방송인 [스트레이트]를 신설, 타사 기자를 출연시키는 시도를 하고 있다. 토론 프로그램으로는 유명 철학가 김용옥 진행의 [도올스톱]을 통해 다양한 당사자들이 등장하여 대담과 토크쇼를 아우르는 형식을 보여준다.

물론 각자 앞으로 갈 길이 멀다. [피디수첩]은 SBS의 [그것이 알고 싶다]가 소셜미디어를 관심 조성과 제보 수집의 공동체 조성으로 활용해내는 경지와 경쟁하려면 따라잡아야할 구석이 많다. [스트레이트]는 폭로성 시사 팟캐스트의 매력인 자유로운 의혹제기와 통쾌한 언어를 구사할 수 없는 상태에서 시청자들을 모아야 한다. [도올스톱]은 분야전문가들 사이의 토론이 아니라 도올과의 토론이 되지 않도록 선을 지키는 것이 난제다.

하지만 진실 추구라는 정론적 대의 이상으로, 방송 포맷의 연구 이상으로, 먼저 구체적인 보도 관행의 개선에 노력을 집중할 필요가 있다. 경영의 색이 달라졌다고 해서 그간의 문제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는 첫 번째 적신호는 청와대 비서실장의 중동 방문 목적이 이명박의 비리 추적이라는 단독 기사였다. 물론 취재 과정에서 그렇게 믿을만한 정황을 얻었을 수 있고, 정부의 행보를 투명하게 드러내 시민들에게 알리는 것은 저널리즘의 기본기능이기에, 보도를 결정한 논리는 성립한다. 그러나 부패나 인권침해 같은 시급한 공적 사안도 아니고 오히려 지난 시절 부패의 해결 과정에 방해가 들어올 수 있는 사안을 보도에 대한 청와대의 사실관계 부인을 뒤집을 정도로 확고한 근거 확보 없이 터트린 것이었다. 진실 추구의 의지가 부족했다기보다는, 섣부른 의제 관철이라는 보도 관행 문제인 셈이다.

혹은 지난 새해 시민 반응 보도에서 벌어졌던 취재 대상자 조작 사건을 기억해보자. 자사의 인턴기자 출신인 섭외자를 지나가던 행인처럼 포장하는 바람에, 그 사람의 발언에서 현 정권의 정책과 배치되는 면이 나오자 뭇 사람들이 MBC의 진영 정치적 의도를 확신해버리는 지경까지 갔다. 저널리즘 정직성을 덜어내는 한이 있더라도, “그림이 되는” 사회적 함의의 발언을 하는 행인들을 모아내는 것에 드는 시간과 노동을 절감하는 관행이 빚어낸 민망한 촌극이었다.

보도 관행의 개선은 더 엄격하고 구체적인 내적 규제로, 더 많은 돈과 인력과 시간의 지원으로, 집요하게 고쳐나갈 수밖에 없는 영역이다. 하지만 그럴 가치는 충분하다. 정의감은 어디에나 각자의 방식으로 넘치는 세상에서, 보도 관행의 엄격함이야말로 전문적 언론이 만들어낼 수 있는 신뢰의 근간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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