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이버 기사 댓글 체계 단상.

!@#… 개인이 네이버 댓글을 매크로 돌려서 여론 조작을 시도하고 그걸로 정치적 권력을 얻고자 한 속칭 ‘드루킹 사태‘를 통해서 간만에 다시 끄집어보는, 댓글이라는 온라인 장치에 대한 소고.

적어도 00년대초 이래로 뭐 그냥 당연한 형식이 되어버린 웹 공간의 흔한 내용 구현 방식, 원문과 하단 댓글. 특히 댓글 부분에 뭇 지식인들이 ‘공론장’의 희망을 오래전부터 걸곤 했는데, 일방적으로 던지는게 아니라 읽는 사람들이 뛰어들 여지가 생기며 뭔가 양방향 “소통”이 이뤄지는 모양새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댓글 자체가 사실상 본문인 토론방이 아니라 명백하게 본 정보가 원문에 있는 경우, 그러니까 기사의 경우는 약간 미묘하다.

기사 댓글의 규범적 기능, 그러니까 이상적인 결과는 다음과 같다:

  • A. 불특정 다수가 협업하여 제공한, 추가적 정보/관점의 망라.
  • B. 사안에 대한 토론 활성화. 기사에서 정보를 얻고 논하는 것이니까 숙의 토론의 희망까지.
  • C. 기사에서 다루는 사인에 대한, 여론 확인.

물론 그런 것이 이뤄지는 기반에는, 즉각적인 기계적 효용이 있다:

  • A-1. 어떤 생각의 정당성 확인. (예: “나는 혼자가 아니야”)
  • B-1. 댓글을 올리면 내 주장이 모두에게 선보여진다는 즉각적 효능감.
  • C-1. 공간을 굴리는 이들의 입장에서는, 여론이 형성되는 장이라는 느낌을 줘서 유저들을 유치하기.

효용을 바탕으로 규범이 짜잔 저절로 이뤄지면 그야말로 파라다이스. 하지만 실제로는 적잖이 어려운 필요조건이 좀 있다 :

  • A-2. A가 이뤄지려면, 실제로 대안적이고 유용한 정보와 관점을 지닌 이들의 반응이 전면으로 끌어올려져야 한다.
  • B-2. B가 이뤄지려면, 논리와 근거에 기반하는, (거의) 모두가 지켜주는 토론의 룰이 필요하다.
  • C-2. C가 이뤄지려면, 실제 여론 분포가 보이도록 표집의 대표성이나 총체적 지도가 필요하다.

그런 전제를 갖추지 않고 그냥 공간만 던져주면, 아주 장기적으로는 어떤 균형점이 자생적으로 올라올 수 있을지 어떨지 몰라도, 기본적으로는 웬만하면 망한다. 망하면 장기적이고 뭐고 없다.

  • A-3. 쓰레기 정보/관점이라도, 많이많이많이 올리기만 하면 다른 정보를 밀어낸다.
  • B-3. 분노의 고함대잔치.
  • C-3. 조롱이 호쾌할수록 히트를 치며, 분위기를 읽는 순환과정 속에 단순화 극단화.

포털뉴스공간은 그 거대한 기사 공급 규모 때문이라도 우선 망하기가 너무 쉽다.

  • A-4. 수많은 기사단위로 댓글잔치가 이뤄지기 때문에 정보와 관점이 나온들 사안 토론에 활용되기 어렵고 걍 흐트러진다.
  • B-4. 룰이 있다고 한들 그 수많은 이들 상대로 집행할 방법이 없으니 뭐 걍 분노의 고함대잔치.
  • C-4. 튀어보자 얍!

…그리고 양이 압도적인 공간이라면 “양”적인 측면을 어떻게든 조작하는 방법을 누군가가 찾을 수 있다는 취약점까지 함께 고려해야 한다. 입력 매크로라든지.

그렇게 망하다보면

  • 심지어 댓글이 붙은 본문 내용에 대한 인상까지 함께 망한다(실험적으로 검증됨).
  • 망한 댓글동네라는 인식때문에, 망한 댓글러들만 더욱 신나서 남는다.

해결책으로 생각해볼만한 건 크게 이렇게 나뉜다.

  • X. 댓글을 없애기. (e.g. NPR)
    • X.x. 바리에이션: 댓글을 디폴트로 닫아놓고 원하는 이들만 펴서 읽을 수 있게 장치. (e.g. 많은 미국쪽 언론사)
  • Y. 댓글 기능을 다른 데에 넘기기 (e.g. 아예 기사 본문까지 다른 데에서 보라고 아웃링크)
    • Y.y. 바리에이션: 다른 공간에서 모아오기. (e.g. ‘소셜댓글’류)
    • Y.yy. 바리에이션: 다른 전문업체에게 맡기기 (e.g. Disqus)
  • Z. 헉 놀랄만큼 뛰어난 새로운 의견 더하기 시스템을 구축하기.

그런데 단점이 있다.

  • X의 단점은, 업체가 사용자들의 (질적으로 몰락했을지언정) 열띤 양적 호응을 포기해야한다는 것이다.
  • Y의 단점은, 퀄리티에서 별 차이가 없다는 것이다. 어차피 아무말 대잔치.
  • Z의 단점은, 그런걸 만들어내는게 헉 놀랄만큼 어렵다는 것이다.

일정 규모 이상의 포털뉴스에는 사회적 책임을 요구하여 X를 강제하거나, Y의 퀄리티를 올리거나, 아니면…

Z를 만들거나.

Z에 필요한 고려사항은 무엇인가.

  • 기사 단위가 아닌, 이슈 단위의 공간. 기사 댓글 게시판이 아니라, 이슈 토론방 개념으로. 해당 이슈 토론방에는 주요 기사들이 머리말 공지로 링크 정리되어, 언제나 참조하도록 장려.
  • 토론 규범 관리. 도를 넘는 내용을 판단하고 밀어내는 관리자 역할을 넣어야 한다.
  • 질적인 논의 경과 정리. 모든 담론이 망하는 흔한 과정이, 이미 다 논의한 내용을 처음부터 또 해야하고 또 해야하다가 지쳐 나자빠지는 것이다. 그간 논점 요약이 정리되어, 시즌4부터 봐도 줄거리 따라잡게 하지 않으면 영원한 시즌1 1화다.
  • 여론 지형…은 제발 좀 바라지 말자. 자유참여에 의한 댓글 토론류로 엿보는 것은 각종 생각들의 브레인스토밍이지, 분포가 아니다. 그런건 별도로 적절히 인구 요인 통제된 여론조사를 매우 자주 실시하고 그 결과를 연결해주는 것으로 이룹시다.

결국 PC통신시절 토론방 구조, 디씨의 안 망가진 마이너취향 갤러리들의 공지 방식, Reddit의 소재 분류 모습들을 일정부분 떠올려 섞어보게 된다. 각 기사의 말미에, 해당 기사와 관련 높은 토론방으로 (토론방은 자유생성 가능하되, 대/중/소 분류로 주제를 체계적으로 묶어냄) 연결. 연결이 이상하게 이뤄지지 않도록 하되 엄청난 기사 규모도 함께 감안해야 하니 자연어분석 + 인간 큐레이션의 적절한 혼합법도 찾아야한다. 그 토론방에는 머리말에 그간 내용 FAQ와 최근의 관련 여론조사결과 그래프가 붙어있고. 토론에 참여한 내용은 당연히 up/down vote가 이뤄지되, 개인화된 여러 정렬방식이 가능. 방에는 개설자, 참여자들의 투표, 혹은 업체에서 배정하는 게시판지기(!)가 있고. 확장된 논의가 가능하도록 모든 댓글에는 퍼마링크. 이왕 하는 김에, 그 사안과 관련해 실제로 실천행동에 참여할 수 있는 공식단체 링크 (예: 민변 후원, 정당 가입, 서명, 봉사 자원…)도 검색결과로 함께 사이드바로 제시하고. 그러니까 얼추 정보, 토론, 실천의 허브.

!@#… 적고 보니 역시 개발에 많은 재원이, 자발적인 운영 문화 수립에 많은 시행착오가 필요한 방식이다. 강제로 시키지 않는 한, 아무도 안 할 것 같다. 찔끔찔끔 이번에 당장 적발된 어뷰징 기술 하나쯤 막고 눈아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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