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에 관해 소통해보기

!@#… 격월간 청소년 인문잡지 ‘자음과 모음 R’ 의 다음 호 커버스토리 ‘소통의 기술’에 들어갈 꼭지로 원래 썼으나 안 들어가게 된 판본. “커뮤니케이션 일반에 대한 총론”을 의뢰받았는데, a) 커버스토리의 총론이라면 전체 판을 깔아주고 개념을 잡아주는 포괄적이고 설명적인 내용이야한다는 평소의 생각 + b) 소통에 대한 논의의 접근법을 논한 이전 글에서 이야기했듯 사회적 개념을 바닥부터 다져보자는 발상 등으로 접근. 그러나 통재라, 아무래도 지면 성격 파악이 부족했나보다. 편집부의 호응이 매우 좋지 않아 – “일반론 중심의 설명조”, “흥미가 뒷받침되지 못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정도의 평이 전달된다면, 편집부 내부에서는 얼마나 밟혔을까 OTL – 실제 출판될 원고는 좀 더 자극적인 방식으로 전면 수정했음(이라고는 해도 받았다 어떻다 따로 연락도 없는데, 어찌될지). 하지만 소통에 대해 공부시키는 글로써는 그럭저럭 공개해둘 수준은 될 것 같아, 그냥 이 버전은 이대로 공개해둔다.

 

 

소통에 관해 소통해보기

김낙호(미디어연구가)

사회에서 자주 거론되는 개념들이란, 그 사회에 꼭 필요한데도 매우 부족하다 여겨지는 것인 경우가 흔하다. 예를 들어 민주주의 제도가 미비한 사회에서는 그런 것들을 도입하겠다고 주목을 끌어보기 위해 민주주의라는 용어가 어디서나 들리곤 하지만, 정작 그것이 사회의 당연한 기본전제가 되어 있는 곳이라면 그보다는 구체적 세부 제도들로 이슈가 불붙는다. 그런 의미에서 ‘소통’이라는 말이 언론과 개인, 정치와 사적 영역에서 부쩍 많이 들리는 오늘날 한국의 상황은, 소통이 그만큼 불만족스러운 상태를 반영하는 것이 아닐까 한다. 위정자들이 국민과 소통을 하지 않는다, 사회적으로 소통이 부족하다, 소통을 해야 선진사회가 될 수 있다, 뭐 수많은 문제제기들이 넘친다.

그렇다면 여기서 뜬금없이 질문을 한 가지 던져보자. 필요하다는 그 소통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얄궂게도, 많은 사람들이 쉽게 어디서나 사용하는 추상적 개념일수록 실제로는 별로 뚜렷한 의미로 압축되지 않는다. 게다가 너무 당연한 것이기에 말로 설명하지 못하는 것을 자연스럽다고 생각하기 쉽다. 마치 사랑이 무엇인가 물어보면, 대체로 나름 그럴싸하다고 생각하는 비유나 특정사례를 들어 공감대를 유도할 뿐이지 정작 진짜 설명(“상대에 대한 강력한 정서적 선호가 지속되는 상태”라든지)은 좀처럼 하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누구나 소통이 필요하고 중요하다고 이야기하면서도, 정작 그것이 무엇이며 따라서 어떻게 이뤄낼 수 있는지에 대해 생각하는 것은 과감히 생략하고 그저 “소통이 중요하다”는 규범론 동어반복에 머무르는 경우가 흔하다.

이것은 소통을 설명해보고자 하는 글이다. 소통이란 무엇이고, 좋은 소통은 어떤 기능을 하며, 소통 능력을 키운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당연히 수많은 학자들과 기타 개인들이 이미 각자의 접근법으로 수도 없이 다뤄본 적 있는 주제다. 하지만 이번 기회에 오늘날 한국사회를 살아가는 개개인이 알아두고 생각해볼만한 부분들을 추려서, 개념어의 홍수에 익사시키지 않고도 소통해내는 것에 한 번 도전해볼까 한다.

 

소통이란 무엇인가

소통이라는 용어를 국어사전에 찾아보면 대체로 “(생각하는 바가) 서로 통하는 것” 또는 비슷한 의미의 문장으로 뜻풀이되어 있다. 하지만 통한다는 것은 무척 애매한 말이라서, 같은 생각을 한다는 것인지 아니면 상대가 무슨 생각을 한 것인지 알아듣는 것만으로 충분한 것인지 뚜렷하지 않다. 소통이라는 개념에 대한 이해의 첫 번째 분기점인 셈인데, 상대와 한 가지 생각으로 합의하는 것을 소통의 성립으로 보는 것인가 아니면 다름을 인정하는 것을 소통의 기본으로 보는가에 대한 관점 차이가 생기는 것이다. 두 가지 모두 뜻이 통한다는 ‘상태’를 나타내는데, 그것이 이루어질 때 비로소 소통이라는 점에서 다분히 규범적(“어떻게 해야 한다”) 의미를 담아낸다. 반면 학문 내지 관련업종의 실무 차원에서 사용하는 소통은 영어용어인 커뮤니케이션을 그대로 지칭하는 경우가 많은데, 누군가가 상대에게 정보를 전달한다는 행위 자체를 가리키는 지극히 기술적인 개념이다. 따라서 어떤 매체, 어떤 표현을 활용해야 더 효과적으로 정보를 전달할 수 있을지, 효과적인 정보 교환을 통해 어떤 식으로 사회적 의결사항들을 처리할 수 있을지 같은 것들을 다루곤 한다.

그런데 보통 사회에 소통이 필요하다고 할 때는, 규범과 기술의 중간 어디쯤에서 양쪽을 같이 포괄하거나 임의로 왕복한다. 정부가 정책에 반대하는 시민들의 시위를 일정장소에 막아두기 위해 트레일러로 장벽을 쌓은 것이 소통되지 않음의 상징으로 꼽히며, 연인들이 상대가 마음을 헤아리지 못했다고 생각할 때도, 심지어 그냥 서로 의견이 도저히 좁혀지지 않을 때도 “소통이 안 된다”고 불만을 터트린다. 실생활에서는 하나의 일관된 정의에 의거해서 무엇이 소통이고 무엇이 아니라고 경계를 긋기보다, 좋은 소통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좀 더 구체적인 조건들을 떠올려서 함께 적용하기 때문이다.

조건들은 대체로 암묵적이지만, 필자는 크게 3가지 두드러지는 특성으로 종합해볼 수 있다고 본다. 첫째는, 매개된 방식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언어든 그림이든 음악이든 무엇이든, 뜻을 상대에게 직접 각인하는 것이 아니라 매개된 표현으로 알아듣게 만든다는 말이다. 반면 강제나 폭력에 의해 특정 조건에 대한 반응을 각인시키는 것은 소통이라고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예를 들어 상대가 마음에 들지 않는 짓을 했을 때 말로 이유를 설명하여 못하게 하는 것은 소통이지만, 그냥 몽둥이를 들어 두들겨 패는 것을 소통이라고 인정할 이들은 많지 않을 것이다. 또한 매개라는 것은, 그것이 실체를 반영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우리는 A라는 정책에 반대한다”는 메시지 속에는, 그 정책에 반대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행동으로 이어질 수도 있는 실제 의지가 있다. 둘째, 일방향이 아니라는 것이다. 커뮤니케이션이라는 기술적 개념 자체만 놓고 보자면 일방향이라도 상관없지만, 현실세계에서는 소통이란 보통 어떤 사회적 관계맺음과 결부된 하나의 ‘과정’이다. 예술가와 청중, 정부와 시민, 개인과 개인 그 어떤 관계든, 말하는 이의 건네는 내용 그리고 듣는 이의 그 내용에 대한 반응이라는 두 방향이 함께 한다. 두 방향의 흐름이 더 대등하게 보장될 때 소통이 잘 된다고 일컫어지곤 하며, 그렇지 않을수록 소통이 안 된다고 느낀다. 이것을 좀 더 큰 차원으로 확대한 것이 셋째, 소통은 열려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소통은 뜻을 합의하는 과정이 되어줄 수 있어야 하는데, 그것을 위해서는 의미 전달의 흐름 속에 누구나 필요하다면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 모든 발언이 동등하게 다루어질 필요는 없지만 공정하게 발언기회가 주어질 때 소통으로 여겨지고, 사안에 대해 발언할 필요가 있는데도 발언할 기회가 주어지지 않을 때 소통이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보게 된다.

즉 사람들이 흔히 소통이라는 말을 꺼낼 때는, “의미를 전달하며 경우에 따라서 동의까지 이어지도록 하는 기술이자 규범 가운데, 강제가 아닌 방식으로 서로 공정하게 뜻을 나누어보는 것” 정도를 연상한다고 보면 무리가 없으리라 본다(물론 반드시 이렇게 정리된 정의의 형태로 연상한다는 것은 아니다). 소통은 의미 전달의 기술이고, 합의 또는 동의를 얻어내자는 규범이고, 매개성, 상호성, 공정성이라는 룰을 전제하는 특정한 방식인 셈이다. 이런 설명 역시 소통은 이런 것들을 포괄해야 한다는 필자의 규범적 사고의 산물이지만, 이 정도의 정리라면 본격적으로 역할과 기능을 논하기에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

 

소통의 역할

소통이라는 것이 수행하는 기능, 좋은 소통이 필요한 이유란 무엇인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인간들이 서로와 관계하며 살아가는 모든 과정을 애초에 가능하게 해주는 기본요소다. 언어를 함으로써 인간들이 만물의 영장이 되었다느니 하는 인류학적 이야기를 통째로 끄집어내자는 것이 아니라, 그만큼 여러 층위에서 소통이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는 의미다.

개인의 차원에서 소통은 자기 생각이나 감정을 자신 이외의 다른 사람들에게 표현하는 것이자, 그들이 표현한 것을 통해 정보를 흡수하는 방식이다. 약간 철학적으로 접근하자면, 사회라는 생활환경 속에서 개체로서 의미를 확보하는 수단이다. 표현을 할 때 비로소 개인의 사고가 타인들에게도 인식될 수 있으며, 주변의 것을 학습할 때 개인은 전체로부터 받아들일 부분과 자신의 것을 만들어야 할 부분을 구분하고 계발할 수 있다. 전혀 말도 몸짓도 통하지 않는 어떤 외국에 떨어진다면, 그 곳에서 당신이라는 존재는 개인으로 인식되지 않고 어떤 가시적 특성(가령 동아시아인이라든지)에 따라 만들어진 분류에 속해있는 하나의 요소가 뿐이다. 소통을 할 수 있어야 개인은 개인이 된다.

한 단계 더 나아가 대인(inter-personal) 차원에서 소통은 관계맺음을 가능하게 해주는 연결기능을 담당하고 있다. 개인들이 서로 어떤 식으로 관계를 맺을지 결정하는 것은 대인 소통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친하게 지낼 것인가 적으로 지낼 것인가 적당히 사무적 관계로 거리를 둘 것인가 무관심해도 될 것인가.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 맺음의 종류와 범위에 따라서 일상생활 범위의 각종 조건들이 만들어진다. 가족의 화목이든 친구와의 친교든 연애가 되었든, 소통은 그런 연결 관계의 강도와 품질, 방향성 등을 정해준다. 그리고 그런 연결들이 복잡하게 서로 모인 것이 바로 사회다.

사회적 차원에서 소통이란, 관계맺음 위에서 더 체계적이고 합리적으로 사회적 삶의 환경을 관리하는 기능을 한다. 사회가 더 크고 복잡해지고 성원들의 이해관계를 효과적으로 조율하는 방향으로 발달할수록 소통의 역할은 핵심이 된다. 몽둥이로 리더를 정하고 함께 사냥감을 뜯어먹는 정도면 충분하던 시절도 있었겠지만(아예 없었을 수도 있다), 부족사회 정도만 해도 족장이 혼자 마음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 성원들이 이익관계와 요구를 파악하고 조율하지 못하면 머리를 내놓아야 했다. 하물며 현대적 민주주의 사회라면 소통 없이는 작동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분산해놓은 권력구조 속에서 정책 사안에 대해 결단을 내리려면, 소통으로 합의해놓은 결정구조 속에서 토론으로 각종 장단점과 이해관계들을 조율하게 되어있다. 선거라는 체계적 소통을 통해서 권력행사의 대리인을 선정하고, 수시로 개인, 언론 또는 제도화된 감사의 형태로 평가와 비판을 가한다. 나아가 더 나은 발상들을 제시하고 함께 이해하며 적용하는 기제를 통해서 사회를 발전시킬 수 있다. 마치 컴퓨터가 전자의 이동을 활용함으로써 작동하듯, 사회 시스템은 소통의 흐름을 통해서 작동한다.

소통이 사회의 근간이 된다는 발상에 대해서는, 여러 저명한 커뮤니케이션 사회학자들이 각자의 이론틀을 제시하며 그것이 나아가야할 방향성을 제시해온 바 있다. 그 중에서도 현재 가장 실용적인(!) 차원에서 사고의 근간으로 삼아볼 수 있는 것을 4가지만 간단하게 소개하고 넘어갈까 한다.

첫째는 독일의 사회학자 니클라스 루만이 이야기한 사회 시스템 이론이다. 루만은 사회라는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환경과 구분되는 시스템 개념을 이야기한다. 무한한 복잡성과 무질서로 이루어진 ‘환경’에서 시작하여, 이런저런 상호과정이 축적되다보면 그 중 복잡성이 감소된 일정 영역이 분리되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시스템’이다. 단지 사람들이 많이 있는 것이라면 그저 ‘환경’이지만, 좀 더 쉽게 설명할 수 있는 단순화된 관계(간단한 예를 들어, “주먹이 쎈 사람의 명령에는 복종한다”)가 발생하고 그에 따라서 사람들이 움직이게 되면 그 부분은 시스템이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하나의 시스템 속에는 여러 하위시스템이 생길 수 있고, 하위시스템들이 합쳐지며 그 위에 상위 시스템이 생기기도 한다. 게다가 이런 것은 하나의 통일된 의도에 의한 것이라기보다는, 여러 의도의 조합과 우연에 의해 형성된다. 그런데 사회라는 것은, 커뮤니케이션의 시스템으로 만들어진 사회적 시스템의 결정체다. 인간들이 모여 산다는 ‘환경’ 속에서 정보를 추려내어 복잡성을 줄여나가는 과정을 통해 ‘사회’가 형성되는데, 그 취사선택의 과정에서 소통의 역할이 중요해진다. 무엇을 취하고 어떻게 버릴 것인가가 시스템과 그 안의 여러 하위시스템들을 방식으로 묶어내는 패턴이 되고, 그 사회의 정체성을 규정한다. 다소 복잡한 이야기일수도 있지만, 결국 소통을 사회구성의 근간으로 보면서 다양성과 복잡성이라는 원리를 열어놓고자 하는 이론이다.

둘째는 위르겐 하버마스의 공론장 개념이다. 공론장이란 정치 및 경제 권력의 논리로 사회적 판단이나 결정이 만들어지는 여타 영역과 달리, 합리성(도구적 합리성과 소통적 합리성을 다시 구분하지만, 여기서는 너무 깊게 들어가지 않도록 하겠다)이라는 규칙에 의거하여 가장 자유롭고 논리적으로 공공 사안들에 대한 토론이 이루어지는 영역이다. 사실 한국어나 영어(public sphere)로 개념을 옮기면서 공간의 비유를 사용하기는 했지만, 원래 독일어인 Öffentlichkeit는 추상적 개념이다. 즉 단순히 특정 매체나 물리적 공간이 아니라, 그런 활동들이 이루어지는 조건들을 지칭하는 셈이다. 그리고 소통은 공론장을 통해 공공적이고 합리적인 의사 합의를 이루기 위한 기본 원리가 된다. 쉽게 짐작할 수 있듯, 오늘날 소통의 규범적 역할에 대한 여러 주장의 기틀은 공론장 개념 위에 서 있는 경우가 흔하다. 하지만 이상적 규범과 달리 실제 사회의 소통채널은 워낙 다양하고 여타 이해관계로부터 분리하기 힘들기 때문에, 이론에 정확히 들어맞는 순수한 공론장은 존재하기 힘들다. 다만 공론장의 요소를 최대한 녹여내, 일정 부분 공공적인 소통을 이뤄내기 위한 지향점으로 세울 수 있는 정도다.

셋째는 존 듀이가 이야기한, 민주주의 사회의 결집이다. 그는 “공중과 그 문제들”이라는 저술을 통해서, 민주주의 체제에서 어떻게 사람들이 사회발전을 만들어낼 수 있게 되는지 규명하고자 했다. 아무래도, 단순히 사람들에게 대표선출권이라는 형식으로 권력을 분산한다고 해서 민주주의가 저절로 더 나은 사회로 이어지는 것이 아니다. 모든 사람들이 사회의 모든 사안에 대해 늘 심사숙고를 하는 만인의 지도자화 역시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보다는, 사회에는 특정 행위의 결과를 공동으로 받게 되는 공동의 집단이 늘 존재한다. 모든 행위는 의도치 않은 결과를 낳기에 여러 종류의 공중(public)이 수시로 생겨나고 겹치고 해체되는데, 그런 특정한 공중이 그들에게 영향을 주는 특정한 공공사안에 참여하는 것이 발전을 만들어낸다. 따라서 그런 공공사안 참여를 더욱 장려하고 제대로 할 수 있도록 정보와 지식을 서로 나눌 수 있어야 하는데, 따라서 소통이 필요하다. 특히 저널리즘이 대표적인데, 단순히 사건보도를 하는 것이 아니라 사안들의 조건과 맥락, 대안들에 대해 정보를 나누는 심층성이 필요하다고 역설하고 있다. 그 과정에서 공중은 청중이 아니라 참여자가 되며, 소위 “위대한 커뮤니티”를 만들어낼 수 있다. 즉 소통이 공공에 대한 의식과 실제 참여를 이끌어 내어 사회를 움직이는 셈이다.

넷째는 배리 웰먼이 주장한 ‘네트워크화된 개인주의’ 개념이다. 이 이론에서 사람들이 사회적으로 결집하는 공동체 개념은, 강력한 사회적 연결을 통해 좁지만 촘촘히 연결된 곳(예: 이웃들을 모두 서로 속속들이 잘 아는 마을)에서, 좀 더 복잡한 연결로 바뀐 바가 있다고 본다. 소위 전지구지역화(glocalized)된 네트워크라고 부르는데, 사회적 연결은 더 성기지만 그래도 촘촘히 엮인 클러스터가 존재하며, 지역적 혹은 전지구적으로 연결되어 있는 상태를 말한다. 하지만 오늘날의 공동체는 심지어 한 단계 더 변모했는데, 그것이 바로 네트워크화된 개인주의다. 이제는 공동체라는 것이 하나의 집단을 중심에 놓기보다는, 개인의 필요와 관심에 의해 조합되는 네트워크로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개인들이 공간에 구애받지 않고 성기게 연결된 상태로서, 지역성조차 지역적으로 분산된 개인화 커뮤니티로 재해석된다. 이것은 인터넷 이전부터 이미 시작된 추세며, 개인성 자체도 네트워크 속에서만 구축될 수 있다. 이렇듯 이 이론에서 이야기하는 개인화란 개개인이 분리되어 고립된 상태와는 다른데, 개인의 정체성은 프라이버시와 집단의 멤버로서의 모습 사이 어딘가에 위치하고 있다. 그리고 당연히, 소통은 그런 네트워크의 유지, 확장, 변화의 기본 도구가 되어준다.

꽤 커다란 이론들을 한꺼번에 수박 겉햩기로 지나가느라 다소 난해하게 읽히는 부분도 있겠지만, 이쯤이면 하필이면 이 4가지 이론틀을 끌어온 이유가 보일 것이다. 바로, 소통이 사회의 체계성 그 자체를 만들어내고, 공론의 조건을 만들고, 시민적 참여를 이끌어내며, 더욱 복잡하고 유연한 방식으로 재구성되는 사회를 가능하게 한다는 이야기다. 소통은 개인에서 사회 전체까지, 개별 사안에서 큰 시스템까지, 규범부터 구조까지 사회의 거의 모든 영역에서 기본이 되어준다. 이 정도까지나 중요하다면, 더 나은 소통을 추구하는 것 또한 당연한 귀결이다.

 

더 나은 소통이란

앞서 소통의 의미를 다루면서 매개성, 상호성, 공정성 같은 지향점들을 간단히 언급하기는 했다. 하지만 커다란 철학적 원칙의 규범적 차원에서라면 몰라도, 구체적으로 개인의 소통능력을 향상시키거나 사회적 소통채널을 만들고 정비하는 것에 활용하기에 적합한 층위의 가치는 아니다. 철학책이 아니라 실세계에 개입하고 싶다면, 소통의 사회적 기능을 어떻게 구현할 수 있을지 위의 원칙을 한 층 실용적 층위의 사고로 변환하는 것이 필요하다.

첫째, 현실 영향력이 있어야 한다. 매개성은 소통이 그 자체로는 비강제적이면서도 실체를 대신 나타낼 수 있어야 한다는 가치다. 하지만 비강제적이기에 직접적 영향력이 덜해질 수 있는데, 그렇다고 해서 소통이 그것으로 매개된 어떤 현실에 영향을 별로 미치지 못한다면 사회적 기능 수행에 제한이 걸린다. 개인의 공감대 획득이든 공공 사안의 의결이든, 현실에 영향을 줄 것으로 보여야 더 나은 소통이 가능하다. 현실 영향력은 사람들이 소통에 참여하게 만드는 동기부여가 되어주며, 무엇을 위해 어떤 소통을 할 것인지 방향을 잡아가기 위한 가이드가 되어준다. 반면 현실 영향력이 없는 소통은 단순한 말의 향연으로 끝날 수 있으며, 토론이 오가도 의견의 조율이나 정보의 수용이 이루어지기보다 쉽게 공회전으로 빠진다. 예를 들어 지역에 기피시설을 세우는 것에 대해 주민들과 소통을 해본다고 생각해보자. 실제 담당자들이 자리에 배석하는 충분한 양과 질의 공청회, 세부 정책 수립에 도움이 되는 구체적 내용의 공개토론, 그런 논의를 충분히 반영하지 않으면 현 행정세력에게 합리적 불이익을 가할 것이라는 압력의 표명, 그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하는 공공단체의 투명한 자료 공개 등이 더 나은 소통의 정석이다. 반면 현실을 보여주는 자료도 미비하고 공청회도 형식적이며 너희들이 어디서 게시판질하면서 반대하든 말든 우리는 상관없이 강행한다, 하지만 우리의 홍보광고를 열심히 구경해봐라 뭐 그런 식이라면, 그것에 전적으로 동의하지 않는 이들을 제외한 나머지는 물리력까지 동원해서라도 반대하고 나설 수 밖에 없어진다.

둘째, 이치와 규칙이 있어야 한다. 공정성은 모든 이들에게 무조건 모든 것을 보장한다는 것이 아니라, 뛰어들 수 있는 기회를 주며 내용과 무관한 요소에 의해 부당하게 차별받지 않도록 한다는 선에서 이해해야 한다. 대신 소통의 과정에서 더 나은 발상을 돋보이게 만들고, 문제점을 비판하여 탈락시킬 수 있는 기준은 가지고 있어야 한다. 선별 또는 조율 기제 자체가 없다면 그것은 만인이 각자 허공에 소리를 지르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참여와 판단이라는 공정성을 추구하기 위한 기제가 바로 ‘이치’이며, 이치를 극대화하기 위한 약속이자 방법론이 ‘규칙’이다. 명시적이든 암묵적이든 이치와 규칙을 지니는 소통은 소통하기 전보다 더 나은 결과물을 낳고, 반면 그런 것이 없다면 단순한 아우성과 끝나지 않는 막말 싸움으로 귀결되곤 한다. 온 주변에 넘치는 온라인 게시판의 정치관련 토론을 떠올려보자. 비교적 전문분야가 뚜렷하고 커뮤니티 결속력이 강한 게시판이라면(예를 들어 BRIC 같은 곳이 과학정책에 대해서 토론한다든지), 사실성, 논리적 정합성, 정책적 실용성 같은 것을 이치로 삼을 수 있다. 나아가 근거의 거짓이 드러나거나 논리로 밀리면 자기 의견을 수정한다는 과학계의 일반적 규범을 암묵적 규칙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이런 전제를 공유한 상태에서 토론을 하면 결국에는 멋진 토론정리 포스팅이든 유용한 정책제안이든, 온라인 협업에 의한 건설적 생산물 탄생하곤 한다. 그런 것이 없는 곳에서라면, 대부분의 토론은 결국 지리한 답글 말꼬리 잡기와 대화 중단 후 자신의 지지자들만 데리고 혼자 승리를 선언하는 “정신승리”로 귀결된다.

셋째, 소통을 막지 않아야 한다. 상호성이라는 가치에 기반한 소통이 지속되기 위해서는, 한쪽에서 발언한 후 그것에 대해서 반응이 돌아오는 것을 막거나 피하는 행위를 방지해야 한다. 물론 사람들이 특정한 표현을 하거나 사안논의에 대해 할애할 수 있는 시간과 노력은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개개인이 늘 모든 반응에 응대할 상태를 유지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언제라도 다른 이들이 의견을 개진할 수 있도록 소통 통로를 열어두고, 의사결정 직전까지는 최대한 그간 모인 반응들을 취합하여 반영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으며, 소통과정의 규칙을 세울 때는 1회적 질의와 해명보다는 그에 대한 재반론과 추가 논의 등 상호대화의 틀을 기본으로 잡는 것이 낫다. 이런 것을 등한시하면 결국 소통의 흐름이 금방 끊길 뿐이다. 길거리 시위의 진로를 막기 위한 트레일러 바리케이드가 ‘산성’으로 조롱당하고, 반론 발언권이 없는 “국민과의 대화” 같은 것들이 불통의 사례로 꼽히며 불만의 대상이 되는 이유다. 중간에 다른 근거가 나와도 나는 옳고 오류가 없다는 독선, 열띤 논쟁 와중에 자기 블로그를 폐쇄하고 ‘잠수’하는 것, 정책 공청회의 일방적 축소 내지 취소, 토론을 빙자한 일방적 자기 홍보 등 문제 사례는 끝도 없다.

현실 영향력, 이치와 규칙, 소통의 지속이라는 지향은 여러 차원에서 적용해볼 수 있다. 블로그에 간단한 만화 감상을 올릴 때, 단순히 “이거 짱 재미있음”을 외치며 이미지 수십 개를 올려놓을 수 있다. 하지만 그보다는 다른 이도 그 작품을 구해 읽을 매력을 전할 수 있는 방향으로 감상글을 가다듬으며, 다른 작품들과 비교당할 때 논리적으로 변호하고, 계속 다른 의견도 답글로 달 수 있도록 열어두는 것이 더 나은 소통이다. 사회운동을 하고 싶다면, 나는 분노했다 다들 나를 따르라 외치며 조잡하고 자극적인 설명용 이미지를 뿌릴 수도 있다. 하지만 그보다는 왜 이런 운동이 필요한데 어떻게 여러분도 참여할 수 있는지 차근차근 설명하며 직접 살펴볼 수 있는 원본 자료들을 제공하고, 반론에 대해 적극적으로 토론하고 받아들일 부분은 수정하는 것이 소통으로서는 단연 더 낫다. 일방적인 이미지가 강한 홍보나 공지라고 할지라도, 각각의 것은 어쩔 수 없는 경우가 많다고 해도 그것들이 속해 있는 캠페인 과정 또는 정책집행 과정이라는 차원에서는 이런 원칙들을 충분히 적용할 수 있다.

물론 이런 원칙들을 굳이 적용하는 것은 경우에 따라서 매우 많은 노력이 필요해서, 그런 노력을 투입할만한 동기가 없으면 이루어지지 않는다. 사람들이 자신들에게 영향이 있는 더 나은 소통에 대해서는 활발한 참여로 북돋아주고, 부실한 소통에 대해서는 개선 압력을 행사해줘야만 하는 이유다. 사회와 개인 각 층위에서 소통 채널과 운용방식을 손보고, 각종 의사결정이 소통을 통해 만들어진 합의와 혁신을 반영할 수 있도록 관행과 제도를 정비하는 것이 필요하다.

 

개인의 소통 능력을 키우기

사회적 기능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가다 보니 소통의 틀거리를 개선하는 것을 먼저 언급했지만, 개개인들이 소통능력을 키우는 것도 마찬가지로 중요하다. 더 합리적으로 의미를 받아들이고 체계적으로 의미를 건네는 개개인의 능력이 모일 때, 사회적으로도 좋은 소통체계 또한 제대로 작동할 수 있다. 혹 체계가 다소 부실한 점이 있어도, 개인들의 소통능력이 그 부족분을 채워줄 수 있는 경우도 있다. 그런 의미에서, 어떤 세부 능력들을 다듬어야 한다는 것인가. 아예 문화인류학적으로 한국인의 소통문화는 이런 점이 문제라고 하나씩 지적해나갈 수도 있겠지만, 여기서는 좀 더 기본틀을 정립하는 방식으로 접근하고자 한다.

받아들이기

합리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정보와 의견을 모으는 것에서 시작하는데, 여기에는 수집력과 선별력이라는 두 가지 능력이 포함된다. 수집력은 어떤 사안에 대해 적절한 판단을 내리기 위한 정보를 충분히 많은 출처로부터 끌어 모으는 능력이며, 선별력은 모아낸 자료를 솎아내서 가장 질적으로 좋은 내용으로 자신이 소화할 수 있을 정도의 양을 남겨내는 것이다. 인터넷으로 사례를 들자면 수집력은 적절한 검색어로 여러 검색엔진을 효과적으로 돌려서 정보소스를 뽑아내는 능력에 가깝고, 선별력은 그렇게 뽑아낸 2만개의 결과 중 실제로 읽어볼 20개를 추려내는 능력에 가깝다. 어떤 사안에 대한 소통에 참여하고자 하면서 관련 정보 검색도 잘 하지 않고 그나마 그 중 내용은 별 볼 일 없는데 포장만 자극적인 정보만 읽는다면, 예상되는 결과는 명백하다. 미디어를 통해 정보가 홍수를 이루고 있는 오늘날에는 선별력이 더 중요하게 부각되곤 하는데, 이미 과거에 많은 논의가 되어 거의 결론이 난 사안이 다시금 옛날의 문제제기만 다시 ‘펌’ 당하며 인터넷상에서 화제로 떠오르는 사례들이 가끔 등장하는 것으로 미루어 볼 때 수집력 역시 여전히 훈련이 필요한 영역이다.

나아가, 정보들을 연결하고 맥락을 파악하는 능력이 더해져야 한다. 각각의 정보가 사안의 어떤 부분을 보여주고 있으며, 여러 입장들은 어떤 맥락에서 서로에게 관여하고 있는가. 소통은 하나의 과정이고, 그 과정에 의미 있게 뛰어들기 위해서는 그간 논의의 흐름과 구도를 읽어낼 필요가 있다. 그것을 위해서는 정보의 출처를 확인해두는 버릇 역시 중요하다. 아무래도 현대 사회에서는 접하게 되는 정보의 대부분을 미디어를 통해서 전달받게 되는 만큼, 정보 수집력, 선별력, 맥락 파악 능력 등에 대한 교육과 훈련 역시 주로 ‘미디어 리터러시’ 분야에서 주로 다루고 있다.

사고하기

정보의 기반 위에서 자신의 사고를 정리해내기 위한 능력이라면, 다소 철학적 접근으로 보자면 성찰적 비판정신 같은 폭넓은 개념을 제시할 수도 있다. 하지만 필자는 그보다 몇 단계쯤 기술적 접근을 선호하기에, ‘복잡성을 감안하는 능력’과 ‘자신을 예외로 두지 않는 능력’을 제안하고자 한다.

세상사의 사안 대부분은 꽤 여러 가지가 함께 얽혀있다. 사안에 관여된 사람들의 이해관계가 엇갈리고, 작용하는 제도나 기술적 요소들도 뒤엉킨다. 각각의 요소만 떼놓고 보면 단순명쾌할 수도 있지만, 서로 얽히며 상호작용하다보면 예상하지 못했던 결과들이 만들어지는 경우도 허다하다. 그렇기에 사안을 파악하려면 여러 관점을 모아 비견하는 것이 중요하며, 단순한 찬/반 따위가 아니라 각자 바라보는 영역의 다름과 상호작용을 생각해야 한다. 세부적 디테일이 조건에 따라서는 큰 차이를 만들어낼 수 있으며, 의외로 서로 다른 사안에서 큰 그림을 보면 보편적 패턴이 나올 수도 있다. 그런 맥락 속에 있을 때 비로소 발전적 해결을 위해 더 적절한 입장을 골라내거나 새로 만들어 취하는 것이 가능하다. 여러 입장을 접해볼 만한 경로가 없다면 모를까, 무슨 일에 관해서든 빠르게 정보가 넘치는 세상이니 더욱 수련해볼 만한 능력이다.

자신을 예외로 두지 않는 능력은 문자 그대로, 사안에 대해 판단할 때 그 판결에 자신도 포함시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대중은 속물적이라고 판단내리고 싶을 때, 자신도 그 대중에 포함되어 있다는 것을 직시하고 함께 문제점을 찾아 고쳐보고자 하는 자세를 취하는 능력이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이 두 가지 능력을 바탕으로 사고를 정리하며 소통에 뛰어드는 것은 이야기의 설득력이라든지 논의를 건설적 방향으로 끌어나가는 것에 있어서 많은 득이 된다.

뛰어들기

소통의 표현 부분에 있어서는 고등학교 논술교재의 논리 오류 목록 같은 것도 나름대로 유용한 부분이 있을 수 있겠지만, 논리구조가 덜 세련되었거나 아예 별로 신경 쓰지 않는 경우에서도 널리 범할 수 있는 몇 가지 설명방식의 보편적 오류를 피하는 능력이 필요하다. 첫째는 비유나 개념어를 내용설명으로 착각하는 것이다. 비유는 설명하고자 하는 대상의 어떤 특성을 좀 더 친숙한 어떤 것으로 흥미롭게 포장하여 관심을 끌어오는 것이지, 실제 설명이 아니다. 개념어는 설명하고자 하는 대상의 복잡한 실체 가운데 가장 특징적이라고 판단한 일부를 추상화한 것인데, 이것 역시 이해를 위해 단순화한 공식이며 딱히 개별 사례의 내용 자체를 설명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비유나 개념어로 내용설명을 충분히 소통했다고 착각하는 순간이 서로의 의미가 어긋날 가능성이 시작되는 순간이다. 둘째는 가정을 결론으로 착각하는 것이다. 논의가 길어질수록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는데, “만약 한민족이 바이칼까지 퍼져있었다면…” 으로 논리를 쌓아가기 시작했으나 결론에 도달할 때 즈음에는 “그런데 대쥬신제국의 광활한 영토를 되찾아야 한다”가 되는 식이다. 가설연역법을 시도하다가 중간에 잊어버린 격인데, 그 결과 당연히 논의는 산으로 간다. 셋째는 규범적 신념과 물리적 현실을 착각하는 것으로, 그것을 추구해야 하는 것이라고 강하게 믿기 때문에 그것이 사실이라고 전제하는 오류다. 강력하게 지지하는 대상이 있기에 모든 근거를 그 믿음에 쏟아 붓곤 하는 이들이 흔히 범하는 문제다. 자신과 타인들이 이런 식의 오류들을 범하려고 할 때는 적절히 지적해서 방향수정을 해가는 소통 관리가 중요하다.

또한 논의의 흐름을 끌어가는 것도 중요한 소통 능력이다. 당장 훈련해서 일상에서 활용해 볼 만한 것으로 소통을 지속시킬 수 있는 예의, 자신을 고쳐내는 능력, 그리고 소통 참여자들이 함께 득을 보도록 하는 능력에 관한 기술 각각 한 가지 씩을 제안한다.

예의에 관한 기술은 바로 내용 바깥의 것으로 상대를 공격하지 않기다. 주장이 아니라 사람을 비판하는 것은 실생활의 많은 장면에서 소통을 시궁창으로 몰아넣고 단절시키는 일등공신이다. 그 사람이 이전에 했던 발언들을 근거로 비판하는 것이라면 문제가 없지만, 표현하는 내용과 관계없는 경우에도 출생지, 성격, 성별, 종교, 국적, 외모 등을 바탕으로 비판하면 소통 끝 싸움 시작이다.

자신을 고쳐내는 능력이란, 자신의 주장이 틀릴 수 있다는 것을 미리 전제하고 근거가 뒤집히면 인정하는 것을 말한다. 유도를 배울 때 안전하게 넘어지는 낙법을 가장 먼저 익히듯, 소통에서는 안전하게 틀린 부분을 도려내고 판단을 고치는 논리의 낙법이 필요하다. 그 능력이 없을 경우 자신은 무오류여야 한다는 착각에 빠져서 자기 입장의 오류를 증명하는 근거들을 부정하고, 그 결과 대결적 아집이나 심한 경우 음모론에 빠진다. 정상적인 소통은 물론 불가능해진다.

소통 참여자들이 함께 득을 보게 하는 기술로 제안하는 것은, 공동의 이해관계를 뽑아내는 것이다. 서로 이해관계가 완전히 일치하지 않더라도 여기까지는 같이 이해하며 함께 해볼 수 있지 않을까하고 제안하는 자세다. 이런 것을 해내는 능력이 기반이 될 때 소통은 그 안에서 가장 적절한 가능성을 중심으로 합의하고 함께 무언가를 만들어내기 위한 원동력이 되어준다.

이런 능력들을 향상시키기 위한 훈련이라면, 당연히 실제로 사안에 대한 논의에 직접 뛰어들어보는 것이 가장 좋다. 그 주제는 가능하면 효능감이 있는 것, 즉 논의를 통해서 실제로 어떤 가시적인 결과를 얻을 수 있는 것이 좋다. 소통능력을 훈련하기 위해서는, 민주주의의 철학적 논제보다도 학급 환경미화에 대한 논의가 더 의미 있을 수 있다. 소통이 그저 말의 향연이 아니라, 현실에 관여하여 무언가를 움직인 경험이 되어주기 때문이다. 또한 논의에 참여하는 것은 단순한 익명 리플로 단발마를 남기는 것이 아니라, 블로그가 되었든 더 간략한 트위터가 되었든 일관된 정체성(꼭 실세계의 자신과 동일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이라는 기반 위에 자신의 사고의 맥락을 축적해보는 것도 좋은 훈련이 된다. 세부적인 실습 방법들과 관련해서는 다른 더욱 좋은 글들이나 프로그램들이 많은 관계로, 여기서는 그런 곳에서 소개하는 훈련들을 시도해보면서 지금껏 장황하게 설명한 좋은 소통의 요소라든지 소통 능력의 종류 같은 것들을 염두에 두고 좀 더 능동적으로 달려들어 보라는 이야기 정도로 마무리를 지으려 한다.

 

*****

 

많은 설명을 돌고 돌아왔는데, 소통이라는 것에 대해서 만약 딱 한 가지만을 기억할 수 있다면 바로 이 점을 남겨두기를 제안한다. 소통이 곧 개인이자, 관계이자, 사회다. 더 합리적이고 진취적이며 공정한 소통은 그대로 더 합리적이고 진취적이며 공정한 사회의 씨앗이 된다. 좋은 소통이란 아무래도 추구해볼만한 가치가 있다.

Copyleft 2010 by capcold. 이동자유/수정자유/영리불가 —    [ <--부디 이것까지 같이 퍼가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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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capcold.net/blog/6490 아 정말 좋은 글인데 길어서 지금 다 못읽겠다; 링크해놓고 나중에 마저 읽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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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1. 어쩌면 뭔가 위에서 말씀하신 것처럼 “대체로 나름 그럴싸하다고 생각하는 비유나 특정사례를 들어 공감대를 유도”하는 것이 아닐까 하지만 소통이란 “이야기”라고도 생각이 되어지네요. 개인과 개인 혹은 개인과 단체와 같은 여러 관계 속에서 이야기를 한다 혹은 소통이라는 말처럼 이야기가 된다. 라고 말을 꺼내 보는 것도 나름 의미가 있다고 생각되어집니다.
    특정한 객체가 해당 객체를 제외한 나머지 객체에게 어떠한 정보나 사실 혹은 객체의 의미를 전달 할 때 그 것을 이야기 한다 라고 말하지 않나요? 비유적인 표현으로는 “나무가 나에게 이야기를 한다.”, “(김씨에게) 그 일은 잘 이야기 되었다.” 따위로 표현 될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물론 일방적인 방향도 “이야기를 한다”라고 표현 할 수 있지만 대부분 훈계, 알림, 경고, 제시등과 같은 단어들로도 충분히 거론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이야기” 라는 단어를 쓰지 않는 것 같고요.
    음…어째 지식이 부족하다 보니 결국 “대체로 나름 그럴싸하다고 생각하는 비유나 특정사례를 들어 공감대를 유도”같은 이야기가 되었지만 나름대로 ‘소통’이라든지 ‘커뮤니케이션’이라든지 외래어보다는 고유어 사용이 우리에게 더 이해가 되지 않을까 해서 모자람을 얼굴에 붉게 찍어 바르고 적어 봤습니다 ㅎㅎ;

  2. !@#…kalcrim님/ 필요한 그 능력과 체제를 더 폭넓게 장착하는 것에 도움이 된다면야, 그걸 선호하시는 분들에겐 ‘이야기’라는 방식으로 ‘공감’시키는 것도 괜찮죠 :-) 다만 저 같이 좀 더 설명적인 사람들도 제발 좀 필요하고.

  3. !@#… 루시앨님/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이왕이면 10군데에 링크를 뿌려주시고… (핫핫)

  4. 자음과모음R, 좋죠. ‘우쭈쭈’하는 느낌도 안들고.

    다만 이러다가 청소년은 없고 어른들만 겉돌것 같은 느낌이들어서원.

  5. !@#… holy님/ 전 아직 잡지 전체를 읽어본 적이 없어서;;; 그저 이택광 박권일님 등 몇몇 필자/편집위원분들이 자신의 글을 저처럼 개인공간에 따로 공개하셔서 접했을 따름인데, 그나마 그걸로는 제가 뭔가 잡지성향을 잘못 파악했는 듯. OT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