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논쟁, 개념인에게 필요한 것은 복근이다
2008. 10. 28. 5:47 am!@#… 그냥 자주 즐겨 찾는 상당히 전문적 내용들을 자주 다루는 이웃 블로그들에서 이리저리 좀 시끄러운 모습들을 보면서, 인터넷 논쟁에 대한 단상.
!@#… 많은 이들이 쉽게 착각하곤 하는 지점이, 인터넷 상의 논쟁이 자신과 반대되는 의견을 지닌 어떤 상대와 승부를 가리는 것이라는 생각이다. 하지만 인터넷은 커녕, 실제 세상에서도 프리스타일 힙합 랩 배틀 콘서트장이 아니라면 그런 경우 따위는 거의 없다! 우선 도대체 어떻게 승부를 가린단 말인가. 상대가 더 이상 반박하지 못하면 승부가 갈린 것일까? 그럴 리가. 논리적으로 궁지에 몰리면 감정적으로 반격하면 되고(부부 싸움을 생각해보시길), 말꼬리는 어디에선가는 분명히 잡을 수 있다(특히 논쟁이 오래 지속되었을 경우). 게다가 약간만 논쟁이 격해진 상황이라면, 아무리 뻔한 내용이라도 아하 내가 틀렸소 하고 깨끗하게 인정하고 물러날 위인은 지극히 적다. 그런 경우 결국 승부에서 이겼다고 주장하게 되는 것은 상대가 지겨워서 입을 닫은 후에도 끝까지 물고 늘어져서 여하튼 마지막 줄을 써놓은 사람이거나, 아니면 각자 자기 개인 공간 – 블로그라든지 – 에 투덜대다가 서로 이긴 것 같다는 애매한 감상을 남기고 끝.
!@#… 사실, 인터넷 상은 물론 대부분의 논쟁은, 제3자들을 위한 것이다. 본인들이 자각하고 있든 말든, 구경꾼들을 위한 퍼포먼스라는 것이다. 내 주장에 감화시켜서 지금 당장 싸우고 있는 상대를 설득시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정치커뮤니케이션학이나 사회심리학 연구의 꽤 보편적인 결론이다… 특정 조건 하에서의 예외는 있겠지만). 진짜 효과는 그 과정을 바라보는 제3자들에게 나타난다. 논쟁의 과정에서는 각자가 논리를 전개하는 방식, 상대의 논점에 대처하는 방식, 뚜렷하고 효과적으로 자신을 표현하는 것 그 모든 것들이 샅샅이 드러난다. 좀 더 격한 논쟁의 경우 아예 기본적인 인격, 평소의 편견들까지도 고스란히 표면화되곤 한다. 그런데 상대를 거꾸러트리는 것에 올인해버린 논객은, 그런 측면에서 상당히 추해지곤 한다. 상대를 쓰러트려야 하는데 품격은 챙겨서 뭐하겠나. 게다가 자신의 왜곡은 전체적 옳음 속에서 미미하고 상대의 왜곡은 엄청난 것으로 간주해야만 적개심이 유지된다. 그나마 자신이 추해짐을 스스로 인식하고 고칠 수 있다면 다행이겠지만, 아무리 많은 이들이 그 점을 지적하더라도 두어 명의 확고한 지지자만 있으면 무지한 것들에게 박해받는 영웅적 자아이미지는 완성된다. 보통 그런 식의 자기 이미지에 빠지기 시작하면 나름 똑똑했던 사람 하나 자폐성 찌질이 되는 것 순식간이다.
그런 쌩쑈를 바라보는 제3자들은 과연 어떻게 생각할까. 만약 양쪽이 비등한 추함으로 진흙탕질을 하고 있다면 소위 ‘병신올림픽’으로 간주할 것이다. 하지만 한 쪽이라도 좀 더 차분하게 대응을 해서, 하나씩 ‘반격’하기보다 전체 논쟁의 과정을 정리 축적하고, 논점들을 뚜렷하게 제시하며, 팩트들을 뚜렷하게 보여주고, 자신의 입장과 상황 해석에 대한 가능성들을 쉽고 정연하게 펼친다면 어떨까. 특히 팩트의 부분은, 항상 오류가 드러날 경우 군말 없이 수정할 여지를 마련하고 말이다. 특히 논쟁 내용에 대한 평가가 아니라 논쟁 상대에 대한 평가는 최소화하는 것이 필수다. 그 때 비로소 구경꾼들 제3자들은 ‘승부’를 가려줄 것이다. 누가 이겼다고 손을 들어주지는 않을지 몰라도, 어떤 입장 어떤 근거들을 더 합당한 것으로 받아들일지, 즉 설득 당할지가 걸린 것이다.
!@#… 여튼 요는, 인터넷 논쟁은 결국 정리와 축적이 중요하다는 것. 열심히 싸운답시고 싸웠다가 두고두고 바보되지 말고, 자신이 가진 모든 머리를 동원해서 차분하게 팩트들을 정리하고 여러 가능성들을 조율하는 것이 ‘승리’의 길이다. 눈앞의 저 싫은 놈을 닥치게 만드는 승리가 아니라, 담론의 큰 판에서 승리하는 길 말이다. 물론 눈앞의 저놈을 쓰러트리지 않으면 당장의 스트레스는 풀리지 않겠지. 게다가 내가 차분히 정리하고 있는데 저놈이 승리를 선언하고 자빠져 있으면 더욱 열받기 쉽다. 하지만 뭐 어쩌겠나. 대인배 됨의 레벨은 찌질한 쨉을 대범하게 견뎌내는 맷집이다. 스스로격한감정을자신에게드러낸플™ 정도는 웃으며 한 줄 이하로 대처하고. 만약 정말로 자신의 주장, 자신의 논리를 세상에 받아들여지게 하고 싶다면 그 맷집이 필요하다. 맷집 충만한 탄탄한 복근이야말로 상식 가득한 명랑 세상을 만들고 싶은 개념인들의 필수요소다.
– Copyleft 2008 by capcold. 이동/수정/영리 자유 –
[어쩌면 관련 있을지도 모르겠다고 기계가 대충 점찍어준 글들]
Tags: 근육, 담론, 맷집, 설득, 인터넷논쟁, 정리, 제3자, 축적, 토론
이전글: 악플 없는 무균질 세상을 선전하기 [팝툰 40호]
다음글: 드래곤볼 FAIL
트랙백 주소: http://capcold.net/blog/1989/trackback. 이 글은 전뇌문화 카테고리에 분류되어 있습니다.


2008.10.28 at 11:43 pm
티안무 & 진명행, 그들은 ‘파이터’다!…
우리는 가능한 논쟁을 하는 것을 싫어하고 꺼리는 편이다. 하지만, 사람 일은 어찌될지 아무도 모르는 법. 저도 사소한 지적에서 시작하여 결국은 ‘고등학생이 뭐하는 짓이냐고’ (그런데 고…
2009.02.06 at 2:47 pm
토론이 싫다….
어떠한 주제를 놓고 그 주제에 관한 의견을 서로 이야기하는 것을 토론이라고 한다. 친구들끼리의 사소한 말싸움에서부터 국회의 청문회에 이르기까지 토론은 매우 다양한 형태로 존재한다…
2009.02.11 at 5:33 pm
언제라도 내게 아픈 ‘딴지’를 걸어 주시오…
[딴지] “그러면 저 세상에서라도 나는 그런 당신들께 감사할 것이요.”작성자 : 하민혁 등록일 : 2004.02.09 21:21:521. 방금 어느 분께서 내게 전화를 걸어와 글쓰기를 자제해주십사고 말했다. 낮에…
2009.04.14 at 5:36 pm
리뷰블로거에겐 갑빠가 필요하다…
기업들이 ‘블로그 마케팅’이 효과가 좋다는 걸 알아 차림과 동시에, 많은 블로거들을 섭외해 ‘리뷰’를 써 달라고 의뢰를 한다. 그 중에는 유명블로거를 대상으로 그 블로거가 어떤 분야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