넘치는 떡밥을 정리하기 [팝툰 41호]

!@#… 여차저차 지난 호에서 마지막회를 맞게 된, 만화잡지 팝툰의 시사칼럼 코믹프리즘. 나름대로 실험적인 포맷으로 해봤는데, 독자 반응 등 성과는 어땠는지 잘 모르겠다. 마지막회에 반드시 써먹으리라 오래전부터 다짐해두었던 만화를 소재로 마무리.

 

넘치는 떡밥을 정리하기

김낙호(만화연구가)

나름대로 시사성을 표방하고 있는 칼럼을 연재하다보면 항상 가장 먼저 부딪히는 문제가 바로 “떡밥 관리”다. 우선 기본적으로 소재가 너무 많다. 한쪽으로는 미디어의 발달로 정보가 빨리 넓게 돌아서 그렇고, 다른 쪽으로는 하필이면 이 사회의 구성원 다수가 워낙 사고치기 좋아하는 열혈 정권을 뽑아준 덕분이기도 하다. 게다가 그 소재들을 통해서 현재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들의 모습을 어떻게 파악할 것인가 하는 성찰의 세계관까지도 걸려있다. 글을 쓰는 이는 좀 더 그 세계관을 정교하고 포괄적으로 보여주고 싶어서 각종 시사적 소재로 복선과 설정을 던져주는데, 가끔 자신이 자연스럽게 설명하고 매듭지을 수 있는 정도보다 더 많이 그런 재료들을 던져주기 쉽다. 세계관에 대한 욕심이라는 동기도 있고, 소재는 넘쳐나니까 말이다. 게다가 그런 식으로 독자들을 홀려야 연재도 지속할 수 있으니까(사실 이 부분이 가장 중요하다).

빠른 페이스와 황당한 전개의 옴니버스 개그만화인 『개그만화일화』 속에 등장하는 만화, ‘소드마스터 야마토’라는 작품이 있다. 인기 없는 거대 판타지 연재 만화를 잡지 편집자가 매정하게 종결시켜버리는 내용의 에피소드에 등장하는 작품인데, 방대한 세계관 설정으로 이야기를 잔뜩 벌려놓은 작품을 고작 3페이지 만에 마무리하는 묘기를 보여준다. 연재초반이라서 작품 속 주인공 영웅은 라이벌과 대결하기 바쁜데 사실 라이벌은 무적이고, 그는 대마왕 수하의 4천왕 가운데 하나에 불과하며, 대마왕을 퇴치하려면 필살 아이템을 확보해야 하고 가족마저 납치당했다. 하지만 냉혹한 편집자의 채찍질에 만들어진 마지막화 ‘희망을 가슴에’는 거침없다. 사실 라이벌은 한번만 찔러도 죽고, 4천왕도 한 칸에 한 칼로 정리되며, 대마왕은 인질은 이미 놓아주었다. 그리고 마지막 승부를 예고하는 장면에서 “주인공의 용기가 세상을 구원하리라 믿으며” 라는 멘트와 함께 열린 결말을 맞이한다. 이렇듯 도저히 수습되지 않는 커다란 세계관이 난무하는 연재만화들이 용두사미로 끝날 때 동원할 수 있는 모든 클리셰를 총동원해서 독자들을 감동시켰고, 그 결과 수많은 패러디를 탄생시켰다. 작품 속 현실이 아니라 실제 수많은 만화, 드라마, 소설 등에서도 도대체 세계관만 방대하지 결말을 짓지 않고 질질 끄는 작품들은 넘쳐나니까 말이다.

이 칼럼, 코믹프리즘도 약간 비슷한 측면이 있다. 만화를 소재로 해서 시사적 사고틀을 끌어내보겠다는 거창한 세계관 위에, 일개 글쟁이가 “사회적 모순”이라는 이름의 악의 대마왕을 공격하는 줄거리다. 게다가 마치 더 큰 엄청난 이야기로 이어갈 것 같은 의도적 떡밥의 향연이고 말이다. 그런데 아뿔싸, 팝툰의 대대적 지면 개편을 앞두고 연재를 정리할 때가 코앞에 닥친 것이다. 이후 다른 방식의 다른 연재물을 맡게 될 예정인 만큼, 어떻게든 벌여놓은 떡밥잔치를 수습할 때다. 희망을 가슴에 품고, 코믹프리즘을 원만하게 완결시켜보자.

(사회 모순 대마왕): “너는 사회의식과 합리성, 성찰을 장착해야 나를 쓰러트릴 수 있다고 생각하나본데, 필요 없다. 사실은 금붕어 지능만 살짝 능가해도 된다.”

(글쟁이): “후, 좋다. 나도 한 가지 말해두지. 내겐 독자들을 유머로 감동시켜서 대세가 된다는 목표가 있었던 듯 한 기분도 들지만, 이젠 별로 상관없어.”

(글쟁이) “우오옷 간다아앗!!!” (대마왕) “덤벼라!”

(나레이션) 애독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글쟁이의 용기가 세상을 구원하기를 믿으며!

(참조: 엠파스 소멸때문에 미러링으로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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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주간 <팝툰>. 씨네21 발간. 세상사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그 양상을 보여주는 도구로서 만화를 가져오는 방식의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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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thoughts on “넘치는 떡밥을 정리하기 [팝툰 41호]

Comments


  1. 헉.헉.헉.

    그럼 중간과정에 ‘다시는 격주간 팝툰과 일 안합니다'(쨍그랑) 이런게…

    있었을리는 없는거죠?

  2. 후우..그래도 참 훌륭한 글이었습니다.
    왠지, ‘지금까지 코믹프리즘의 제글을 봐주신 여러분 감사합니다. 다음주에도 계속됩니다’ 의 느낌.

    ‘마지막화개그’와는 조금 거리가 있지만, 비슷한것이라면..
    아직도 저에게 ‘방송사고급’인 무책임 외화방영이 기억에 남는군요.

    S모방송 ‘출동! 로보텍’

    나레이션: ‘이렇게 하여 지구를 둘러싼 젠트라데이 함대의 공격앞에 지구의 앞날은…’
    빠바바밤.

    자막: ‘지금까지 출동! 로보텍을 시청해주신 시청자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3. 소드마스터 야마토로군요. 정말 한 때 조삼모사만큼 패러디열기가 뜨거웠죠. 개읹적으로 ‘개그만화보기’에서 저걸 다룬 에피소드만 미친듯이 웃기고 나머지는 영 별로 였던 기억이..

  4. 37호부터 팝툰을 구독하기 시작했는데, 캡콜드님 칼럼 보는맛에 기사 부분을 봤습니다.
    특히 이번 호는 erte님처럼 대폭소를 자아냈…
    다음호 신칼럼도 기대하겠습니다.

  5. !@#… 언럭키즈님/ 그건 마치 회를 한접시 시키고는, 회보다 당근으로 조각된 용조각에 더 관심을 기울이시는 격이라서… (핫핫) 성원감사합니다 :-)

    erte님/ 그게 다 가슴에 희망이 있어서 그런 겁니…;;;

    지나가던이님/ 사실 개그만화일화 시리즈의 개그들은 은근히 매니악함의 난이도가 좀 있죠.

    nomodem님/ 지구가 멸망하기 전에 끝난 천년여왕도 리스트에 추가!

  6. 글의 포인트와 조금 어긋나는 얘기겠지만, ‘떡밥관리’ 혹은 일전의 ‘어장관리’라는 말을 처음 듣고, 댓글만 하는 저는 얼마나 놀랬는지 모릅니다.

  7. !@#… ycj님/ 그러고보니 금붕어 지능 이야기도 나오고, 여러모로 저는 무의식적으로(?) 어류적 용어를 많이 쓰는군요!

  8. 아직 이번호 팝툰을 보지 못했는데 어찌어찌하다보니 한국 위키에서 이번호 신작들을 네타당했…
    기대되는 타이틀들이군요.
    근데 칼럼 제목들이 어째 빌딩숲 사이에서 서바이벌게임이라도 할 것 같은 느낌이군요[…]

  9. !@#… 언럭키즈님/ 음… 왠지 그 컨셉이 편집진의 마음에 확 들었는 듯 하군요(…). 뭐 제 칼럼의 경우, 살아’남’기 보다는 여러 악조건 속에서도 여튼 사람 살듯 살아’가’기에 초점을 맞추려 하고 있습니다…만, 어떨지 모르죠 앞으로는. :-)

  10. 저 팝툰 독자인데 칼럼 엄청나게 좋아했어요. 가끔은 베껴쓸 정도로~ 쿨한 풍자였어요. 보기 드문. 이 블로그도 가끔 눈팅하러 왔는데, 오늘은 글을 남겨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