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몇 년 동안 온라인 세계에서 새로운 붐을 일으킨 미니홈피나 블로그 등의 특징을 단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뭘까? 바로 일상성이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전문분야의 엄청난 정보를 얻기 위해서 웹을 뒤지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의 일상적이고 소소한 이야기나 생각들을 보고 즐거워한다. 물론 생각해보면 시시콜콜한 일상사로 수다를 떨거나 안주거리 삼는 것은 그다지 새로운 현상이라고 보기 힘들다. 하지만 온라인의 발달, 그 중에서도 앞서 언급한 여러 기술과 서비스의 도입으로 인하여 한층 더 개인화된 미디어가 가능해진 덕분에, 잡담의 네트워크는 더욱 광대해졌다.
그렇다면 평범한 일상이 멋진 이야깃거리가 되기 위한 조건은 도대체 무엇일까? 물론 평범한 일상은 쉽게 공감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에, 그 자체로서 좋은 이야깃거리일 수는 있다. 하지만 굳이 그 이야기를 나눌 생각이 들도록 하기 위해서는 즉, 이야기로서 매력이 있기 위해서는, 우리 자신이 직접 겪은 경험과는 다른 무언가를 줄 수 있어야 한다. ‘다르지만 같은’ 일상성이 필요한 것이다.
‘구미의 유학만화’(http://chkoomi.cafe24.com)라고 제목이 붙여진 한 사이트에는, 한 평범한 일본 유학생의 일상적인 생활 관찰(?) 일기 만화가 연재되고 있다. 그 중 가장 주목할 만한 것은 특히 ‘교포가족’이라는 시리즈다. 교포 3세인 작가 자신과 가족들의 여러 가지 이야기를 담고 있는데, 첫 화부터 ‘강제 징용당했다가 허리디스크 덕분에 무사히 돌아온 할아버지’라든지, ‘한국말 못하는 아버지와 일본말 못하는 어머니의 결혼’ 같은 범상치 않은 사연들이 둥그런 구미 과자 캐릭터로 표현되어 독자들을 단번에 미소 짓게 만들어버린다.
최근 이 시리즈는 93년 일본의 쌀 부족 사태를 가족 경험담으로 풀어냈는데, 식량 자주성을 부르짖는 뭇 세미나 수십회보다 더 명쾌한 설득력을 보여주고 있다. 우선 일상성에서 오는 공감의 힘이 있다. 가족 밥상의 밥맛만큼 일상적이고 공감 가는 방식이 어디 있겠는가! 동시에 그것은 다른 환경의 일상성인 덕분에, 소재의 매력 역시 돋보일 수 있다. 즉 공항에서 일본 방문 손님들이 쌀을 한 포대씩 들고 오는 대목에서 박장대소하면서 재미를 느끼는 것이 가능하다는 말이다. 일본이라는 ‘다름’과 교포, 또는 가족이라는 ‘같음’이 주는 균형관계 속에서 일상성은 특별한 재미를 확보한다.
타인의 생활 속에서, 나의 생활과 같으면서도 다른 일상성을 찾아나서는 여정. 때로는 그 여정 자체에 중독될 수도 있지만, 그것 역시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 풍속도- 아니 우리 일상의 일부분인 셈이다.
/김낙호·만화연구가·웹진 ‘두고보자’ 편집위원/
[경향신문 / 2004. 9. 17일자]
(* 주: 원출처는 경향신문 금요 만화 전문 섹션 ‘펀’의 칼럼인 <만화풍속사>입니다. 격주로 박인하 교수와 번갈아가면서 쓰고 있는 일종의 태그팀 같은 것이니 만큼, 같이 놓고 보면 더욱 재밌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