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호 팝툰 원고. 그 후 시위의 양상이 확 바뀌어서 이제 화제성은 묻혔지만, 공교육과 민주주의 참여는 여전히 계속 관심을 가지고 무언가 바꾸어나가야 할 중요한 건이다.
길거리에서 공교육
김낙호(만화연구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야매로 결정된 현 정부의 쇠고기 수입 정책이 촉발시킨 광우병 정국에서, 많은 이들의 주목을 받은 것은 바로 10대들의 참여다. 자발적으로 민주주의를 걱정하며 분연히 일어섰든 뜬소문을 믿고 팬클럽 단위로 왔든 간에, 중고등학생들이 길거리에 나와서 항의를 한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많은 이들은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어떤 영악한 이들은 이 기회를 틈타서 10대에게 새로운 ‘광장세대’의 희망을 찾는다며 소위 88만원세대를 더욱 개차반 취급하기에 바빴고, 어떤 다소 정신이 박약한 이들은 무려 어린 청소년을 선동한 불순한 배후세력을 찾겠다며 열심히 삽질을 했다. 하지만 그 와중에서 가장 돋보인 것은 역시 다른 누구도 아니라, 학생들의 그런 행동 자체를 걱정한다면서 막고 나선 이들이다. 당혹스럽게도, 정작 그들의 공교육을 담당하는 선생들이 그 것에 포함되어 있다. 학교에서 집회 참여하지 말라고 무려 가정통신문을 돌리고, 형사님이 오셔서 집회 신청한 고등학생을 찾으신다니 친히 수업 중에 귀를 잡고 끌고나가 주신 종자도 나왔다. 집회 현장을 돌며 자기 학교 학생들을 적발하기 위해 ‘생활 지도’를 하는 꼴은 또 무엇인가.
공교육의 붕괴는 여러 관료들의 착각과는 달리, 입시제도의 기술적인 것이라기보다 근본적 지향점의 문제다. 공교육의 위기는 사교육과의 경쟁으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가치붕괴에서 초래한다. 애초에 그 놈의 입시만 하더라도 교육문제가 아니라 사실은 노동문제다. “한 가지 재주만 잘 해도 대학을 갈 수 있게 한다”가 아니라, “한 가지 재주가 있으면 재주도 없이 대학가서 4년 인생 낭비한 것들보다 높은 연봉과 진급을 보장해준다”라는 컨셉으로 가야 해결이 되는 것이니 말이다. 그런 것들을 외면하는 와중에서, 정작 공교육에서 훈련시켜 줘야할 진짜 교육은 대충 넘어갔다. 바로 사람 사는 세상에서 서로 소통하며 합리적으로 협력하며 같이 성장하는 기본적인 패턴 말이다.
한국 소년만화 장르에서 가장 빛나는 학원물 가운데 하나인 『굿모닝 티쳐』라는 작품이 있다. 박영민이라는 주인공이 고등학교에 입학해서 졸업할 때까지 여러 친구들 및 선생님들과 지내며 성장하는 이야기인데, 장르 만화의 오락적 본분을 잃지 않으면서도 어설픈 판타지로 빠지지 않는다. 열악한 교육환경도, 친구들 사이의 알력도, 되려다 마는 연애도, 심지어 입시도 작품 속 세계의 일부다. 학교라는 환경은 그 나이대의 세계의 대부분이고, 그 속에서 어떤 식으로 사회적 성장을 하는가가 결국 인격을 이루어나간다. 이 작품 속의 주인공들이 참 대견할 정도로 잘 성장하는 것의 핵심에는, 학생들이 눈높이를 존중하고 스스로 판단하여 움직일 수 있도록 돕는 정경희 담임선생님의 확고한 교육철학이 있다. 때로는 학교와 마찰을, 때로는 다른 선생들을 같이 끌어들여가면서 학생들의 편에 서고, 순진한 낭만적 사제관이 아니라 교육과 사회현실의 쓴맛을 때로 같이 나눌 줄도 아는 선생이다. 약간 과장하자면, 한국만화사상 전무후무한 슈퍼 선생이랄까.
현실에서 그런 교육자를 바라는 것은 무척 어려우니까 작품이 돋보였던 것이기는 하다. 하지만 집회금지 공문 돌리고 귀 잡아 교실 밖으로 끌어내는 그 선생들에게 한 번씩 작품을 읽혀주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이 당연하지 않을까. 만약 정말로 공교육이 전인교육 운운하고 스승에 대한 존경을 운운하고 싶다면, 학생들이 이런 기회에 민주주의와 사회에 대한 적극적 의지를 보여주도록 장려해야 마땅하다. 집회현장 길거리 리포트로 수행평가 점수 보너스라도 주고 말이다. 나아가 참여를 결심한 그들이 유사종교에 빠지는 것이 아니라 합리적 비판을 할 수 있도록 제대로 된 교재와 지식을 모아주고, HR시간에 ‘50분 토론’이라도 좀 해야 한다. ‘현장학습’이라는 이상한 이름으로 변용되곤 하는 봄 소풍은 청계천 광장에서 촛불들고 하고. 만약 제대로 된 민주주의 사회를 지향한다면 참여는 공교육의 일부다. 교육자를 자처한다면, 아니 그냥 이 사회를 살아가는 ‘어른’을 자처한다면, 귀중한 시간과 노력을 투자해서 자진해서 교육을 받고 싶어 하는 학생들을, 공부하지 못하도록 방해 좀 하지 말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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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주간 <팝툰>. 씨네21 발간. 세상사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그 양상을 보여주는 도구로서 만화를 가져오는 방식의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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