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만화규장각 ‘만화로 돈을 벌어보자’ 칼럼, 이번 회부터 본격 얍삽한 이야기, 바로 마케팅. 당연한 이야기지만, 일반적인 매체경영학 원론을 체계적으로 듣고 싶으신 분들은 그런 책을 찾아보시면 될 일이고, 이쪽 칼럼은 한국의 만화 분야 특정 화두 중심.
마케팅(1): 대세 만들기와 그 어려움
김낙호(만화연구가)
창작을 판매하기에 이어 본격적으로 만화로 장사를 하는 이야기로 들어가는 것을 기념해서, 우선 간단한 떡밥부터 시작해보자. 만화 뿐만 아니라 실효적 사용성보다 시기적 취향에 따라서 가치가 결정되는 그 어떤 문화상품의 경우라도 가장 확실하게 큰 돈을 벌어들일 수 있는 방법은 바로 ‘대세’가 되는 것이다. 대세란 당대 사람들의 일반적 관심의 중심에 선다는 것을 의미하며, 그 분야에 대해서 세부적인 사정을 모르는 이가 이야기하는 경우라면 당연히 그 작품의 이야기를 꺼내는 상태다. 어머니들이 어린이만화라고 하면 당연하다는 듯이 『마법천자문』을 떠올리고, 인기 장기연재 만화라면 『식객』을 떠올리고, 좀 사회적 위신을 챙긴다는 이에게 좋아하는 만화를 들어보라면 『신의 물방울』이야기를 꺼내는 것이 그런 대세다.
문화상품 장사에서 대세는 일종의 투명망토이자 엑스칼리버다. 첫째, 한번 대세가 되면, 화제성이 스스로 더욱 성장하는 순환이 이루어진다. 많은 사람들이 대세에 뒤떨어지지 않고자 관심을 기울이는 습성이 있기 때문이다. 다른 대세에 의해서 밀려나는 것이 아니라면, 아무리 화제성이 거의 사라진 다음이라도 꺼지는 속도가 느리다(아직도 『미스터초밥왕』을 찾는 CEO들이 넘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둘째, 대세는 품질 수준과 판매량 사이의 고리를 가볍게 분리해버린다. 사랑에 관한 라이트 에세이 모음 계통의 대세로 오랫동안 군림한 『파페포포 메모리즈』연작의 경우 비평적으로 평가하자면 필력도 연출도 내용적 깊이도 그런 압도적인 결과를 가지고 올 만큼의 수준에는 미치지 못하며, 더 나은 품질로도 가볍게 묻혀버린 다른 작품들을 여럿 열거할 수 있다. 하지만 대세가 된 후 승부는 끝난 것이나 다름없기에, 사실상 동어반복에 가까운 후속작들까지 연달아서 세트로 대박을 터트렸다. 셋째, 대세는 경쟁을 유발하고 판을 키운다. 생산의 측면에서는 따라쟁이들이 달려든다는 의미이기도 하지만, 비슷한 성향의 더 나은 작품이 탄생할 기회가 되어주기도 한다. 혹은 향유자의 측면에서, 누구나 대세를 좋아하면 그 대세와 비슷하면서도 차별화되는 것을 향유함으로써 차별적 취향의 지위를 누리고자 하는 이들이 나온다. 미국에서 대중문화 매니아층 사이에서 ‘망가’류에 대한 인기가 높아지자, 누구나 다 읽는 일본‘망가’와는 다른 취향을 자랑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한국‘만화’가 반사적으로 각광을 받은 경우처럼 말이다(심지어 비즈니스위크나 와이어드에서 다루어줄 정도로). 물론 앞서 이야기한 장점들을 고스란히 뒤집어보면 대세가 되지 않은 작품은 우수한 품질을 자랑하더라도 계속 밀려날 수 밖에 없고, 몰아치기 속에서 장르적 다양성이 희생당하기 쉽다는 단점들이 드러나기도 한다. 하지만 대세가 있고 강력한 대안들이 아울러 대두되는 방식이, 어떤 대세도 없이 고만고만하게 서로 지리멸렬한 상태보다는 백배천배 바람직하다.
대세를 만드는 가장 이상적인 방법이야 물론 품질에 기반한 입소문이다. 품질은 다소 미치지 못하더라도 시대적 코드를 정확하게 맞추어 입소문이 퍼지는 경우가 그 다음이다. 실제로 어린이 대상 학습만화의 경우 또래 집단 및 학부모 연결망에 의해 입소문으로 대세가 되어 큰 히트를 친 사례들이 여럿 있다. 하지만 신화 서적 붐의 덕을 보면서 결정적인 동력을 얻게 되었던 『그리스로마신화』의 대세화 경우에서 볼 수 있듯, 입소문‘만’으로 무언가 이루어질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큰 착각, 혹은 무척 확률 낮은 우연이다. 우연은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지만, 장사를 우연에 맡긴다면 그 우연이 언젠가 닥치기 전에 이미 도산한 상태일 것이다. 즉 장사를 위해 필요한 대세는 어디까지나 적극적으로 만들어진 대세다. 나아가 이왕이면 그냥 유명해지는 대세가 아니라, 유명세가 돈으로 환산되는 특정한 종류의 대세를 만들어야하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좋은 작품’을 만드는 것은 어차피 따로 이야기를 꺼낼 필요도 없는 기본이다. 그 작품을 필요한 방식의 대세로 만들어내는 것이 출판사든 기획자든 장사치의 몫인 것이다.
대세를 만든다는 것은 담론 형성이다. 물량과 전략이라는 두 가지 요소를 적절히 겸비하지 않으면 안된다. 미디어 채널이 미칠듯 넘쳐나고 더욱 나날이 증가하는 세상에서, 담론의 물량을 무시하고 ‘진정성’ 같은 모호한 가치에 의지하는 것은 순진무구한 일이다. 또한 어차피 무한정 사용할 수는 없는 담론의 물량을 적제적소에 배치하고, 필요한 형태로 가다듬어 내는 것이 전략이다. 한 발 더 나아가자면, 물량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담론이 스스로를 재생산하도록 특정한 방식으로 씨앗을 뿌리는 방식을 사용하는 것 역시 포함된다(이 이야기는 나중에 따로 ‘전염 마케팅(viral marketing)’으로 따로 한 회 자세히 다루도록 한다). 전략 커뮤니케이션의 시각에서 치밀하게 다가서야할 사안인 것이다.
하지만 오늘날 한국의 만화판은, 전략적 대세 만들기에 그다지 좋은 환경이 아니다. 특히 영화나 심지어 소설과 비교할 때 더욱 좋지 않다. 첫째, 대세 몰이를 위한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가장 일차적인 방법인 광고의 조건이 아직 열악하다. 여러 만화전문 출판사들이 영세함 때문에 광고를 낼 돈이 부족하다는 단편적 이야기를 넘어, 만화를 광고할 적합한 공간 자체가 마땅치 않다는 것이다. 만화를 광고하면 구매로 연결된다고 검증된 매체 통로가 확실하게 서있지 않은 것도 있고, 만화를 효과적으로 어필할 수 있는 광고 형식의 개발 부족도 있다. 예를 들어, 신문 광고의 좁은 지면에서 만화의 표지와 캐릭터를 보여주고 간단한 소개문을 더한다고 해서 그 만화 작품의 매력을 보여줄 수 있는가? 영화는 여러 전용 지면과 방송이라는 통로, 예고편과 스틸 컷 공개 및 공들여 만든 포스터 공개 등 매력의 전달 방법이 제작자와 향유자 사이에 확립되어 있지만, 만화는 그런 시장적 합의(“이런 방식으로 구매 의욕을 자극하겠다/자극받겠다”)가 없다.
둘째, 언론의 주목을 끄는 방법에 미숙하다. 단지 품질이 좋은 작품이 나왔다고 해서 언론이 다루어줄 이유는 없다. 언론의 주목을 끄는 방식의 화제성이 있어야 한다. 물론 언론의 성향의 폭은 무척 넓지만, 그 중에서도 판매와 직결되는 식으로 언론에서 다루어줘야 한다. 언론에서 만들어내는 담론의 대세 속에서 (그리고 언론이야말로 대세 만들기의 진정한 프로들이다), 이 작품을 봐야만 그 큰 스토리의 일부로 동참할 수 있게 된다는 느낌을 만들어내야 한다. 와인붐 대세 만들기의 틈바구니에 올라타서 성공을 거둔 『신의 물방울』같은 사례는 무척 귀중한데, 그런 것을 장사하는 이들이 직접 유도해낼 수 있을 때 진정한 전략이 된다. 영화나 심지어 소설계에서도 자주 구사하는 스타 마케팅이 하나의 예가 될 수 있을텐데, 한국의 만화판은 여전히 허영만 이현세 정도에서 더 확장되지 못하고 있을 정도로 아직 걸음마 단계다.
셋째, 담론의 집중력을 만드는 환경과 기술이 부족하다. 예를 들어 오늘날 대세 만들기의 산실격인 온라인 포털 사이트를 보자. 대부분의 한국 포털 사이트는 스캔 만화방 서비스와 웹만화 연재물 코너가 구분되어 운영되는데, 직관적으로 ‘만화’ 탭을 누르면 그 중 스캔 만화방으로 간다. 그런데 만화방 서비스 작품들이 대체로 시대적 타이밍이 여러 박자 지났거나 숫제 주류 히트의 경로에서 벗어난 대본소 일일만화 계통이다. (* 주: 본문이 공개된 이후 시점인 08년 10월 말에 포털 사이트 네이버의 만화코너는 자사 연재 웹툰을 메인으로 내거는 통합 개편을 실시했음) 설상가상으로 여러 포털 사이트들이 각자 자신들이 계약하여 서비스중인 만화들을 내세울 뿐, 여러 사이트를 도배하며 화제의 중심에 놓이는 작품이 없다. 그에 비해 영화탭을 누르면, 어떤 사이트라도 개봉중인 화제작에 대한 정보가 가장 앞에 놓여 있다. 각 포털이 각자의 온라인 상영관을 운영함에도 불구하고, 화제성이 가장 현재적인 것에 맞추어져 담론은 집중되고 대세가 만들어질 기반이 생긴다. 책 코너 및 음악 코너도 마찬가지로, 현재의 히트작품이 대세를 노린다. 물론 만화도 책으로 나온 경우 책 코너의 일부에 들어갈 수 있지만, 직관적으로 만화탭을 눌렀을 때의 그 산만함은 절망적일 정도다.
넷째, 전문 리뷰어의 절대 부족이다. 연재 지면 부족이 먼저냐 필자 부족이 먼저냐 닭과 달걀 경쟁으로 볼 수도 있겠지만, 기본적으로 오늘날 출간되는 작품들 가운데 의미 있는 것을 선별하여 실시간으로 읽고 비교적 객관적 방식의 글로 장단점을 소개하는 이들이 확실히 적다. 영화의 경우 지속적으로 다양한 장르의 신작들을 진지하게 감상하고 다시금 소개를 하는 이들이 프로와 아마추어를 통틀어서 적지 않은데, 만화의 경우는 훨씬 열악하다. 만화평론가 혹은 그에 준하는 직함을 자처하는 이들 가운데 상당수가 자신이 좋아하는 장르만 편식하거나, 아예 신간을 지속적으로 향유하며 소개를 하는 작업 자체를 하지 않고 있는 경우가 허다하다. 아마추어 계열의 감상평들은 객관적 언어의 리뷰를 동경하기보다는 팬심의 공감대에 호소하는 경향이 당연하기는 하지만, 프로와의 간극을 연결해주기 마련인 전자의 사례들이 지나치게 희소하다. 즉 리뷰라는 담론활동을 통한 적극적인 외연 확장이라는 전략을 구현할 기반이 부족한 것이다.
이러한 열악함의 요소들이 바로 대세를 만들기 위해 극복하거나 우회해야할 것들이다. 어떤 상황에서나 대세를 만들어내는 마법의 공식은 물론 없지만, 이런 조건 속에서 어떤 도구들과 기법들을 조합해볼 수 있을지 몇 가지 기본적 고려를 시작해 볼 수는 있다. 다음 회부터 몇 가지 짚어넘어가보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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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천만화정보센터 만화규장각 매거진에 연재중인 칼럼, ‘만화로 돈을 벌어보자‘. 만화를 돈 중심으로 생각해보는 기획 마인드에 대한 칼럼. 단순히 사업 모델보다는 사고의 구성에 대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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