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의 우토로 [팝툰 13호]

!@#… 8월 마지막주 발간 팝툰에 실린 원고. 다행히 우토로 토지구매 협상시한이 9월말까지 한달 연장되어, 약간은 더 유효한 이야기로서 독자들을 만날 수 있게 되었다. 기본 내용이야 전에 이야기했던 ‘우토로 써먹기‘ 논지 그대로(애초에 같은 타이밍에 썼으니… 하지만 이 연재칼럼 성격에 맞게 서술했을 뿐).

이웃의 우토로

김낙호(만화연구가)

비단 새로운 현상은 물론 아니겠지만, 유독 최근 한국에서 화제가 된 커다란 이슈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이 ‘국민’이라는 화두를 달고 나타났다. 버지니아공대 총기 참사든, 아프간 피랍 사건이든, 영화 디워든 말이다. 그런데 정작 이런 이야기들이 나올 때 마다 항상 궁금해지는 것이, 과연 어디까지가 국민으로 이해되고, 무엇이 정말 국민정서, 애국주의니 하는 말로 정말 이슈화가 되는지가 궁금하다. 무엇보다, 실제로 화제가 어떤 실질적인 움직임으로 가는 것은 어떤 경우인지 말이다.

가네시로 가츠키의 동명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만화 『GO』(가네시로 가츠키/곤도 요시후미)의 주인공은 ‘자이니치’라고 폄하당하는 재일교포다. 일본 태생이고, 한국계 학교와 일본 학교를 둘 다 다녀봤고, 아버지는 지극히 개인적인 이유에서 북한 국적에서 남한 국적으로 바꿨다. 물론 작품은 국적 같은 허울에 얽매이지 않고 당당한 자기 삶을 살아나가려는 자립적 청춘을 칭송하는 것이 중심이 되지만, 국가라는 관점으로 약간 뒤집어 보면 또 다른 중요한 이야기가 하나 드러난다. 바로, 정체성을 규정한다는 그 대단한 국가, 국민, 국적이라는 것이 실제로는 해주는 것이 무척 없다는 것. 눈 앞에 보이지 않는 국민들은, 국가에게는 종종 무의미하다. 국적은 문화적 정체성이나 또는 종종 그 이상의 무언가를 요구하지만, 실질적인 도움을 필요로 할 때는 결국 자기 두 다리로 서지 않으면 안 된다. 강해지거나, 무너지거나.

이런 모습에는 고집불통으로 지금까지 반세기 넘게 강하게 버텨온 우토로 마을 주민들의 모습이 겹쳐진다. 최근 작은 화제가 되고 있는 우토로는, 일제치하 조선인 강제징용 노동자 정착촌이다. 낙후된 정착촌에 불과한 이 땅이 각종 사기와 땅투기에 휘말려서 결국 8월 말까지 토지매입 합의를 보지 못하면 아직까지도 이 터전에 머물러 있는 200여명의 주민들이 강제철거를 당할 예정이다. 2005년에 한겨레21 특집기사를 통해서 본격적으로 한국에 소개되어 모금운동도 벌어지고 했지만, 결국 해결이 필요한 이 시점에 오자 이미 한국 국내의 관심은 식은 지 오래고 정부의 지원 약속 역시 어디론가 사라졌다. 무려 청산되지 않은 일제 식민역사, 핍박 받는 재외국민(우토로 주민들은 일본 귀화를 거부), 코 앞에 닥친 위기 등 국민 챙기기 애국정서를 불러일으키기에 무엇 하나 부족함이 없을 법 한데도.

하지만 눈앞에 보이지 않는, 직접 시끄럽게 목소리를 높이지 않는 대상에게 국민국가의 혜택은 희박하다. 『GO』에 묘사되듯, 남한도 북조선도 일본에 있는 자국민들을 단지 자국민의 정체성을 지키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챙겨줄 정도로 대단하지 않다. 우토로 역시 마찬가지다.

해외교포 지원 사업이 크고 작게 다 비슷하겠지만, 우토로 역시 단순히 안타까워하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그 정도에서 멈춘다면, 결국 망각되고 끝날 테니까. 그 보다, 우토로를 보이는 곳으로 끌어들이고, 그것을 지켜냄으로써 얻게 될 이득을 널리 홍보해야 한다. 평화박물관 건립 계획과 그에 따라 예상되는 관광수익을 홍보하고, 우토로의 굴곡있는 역사적 배경과 현대식 하수시설마저 들어오지 않는 특이한 상황을 무대로 재미있는(!) 대중문화 작품들을 구상해내야 한다. “우토로라는 곳이 어딘가에 있다더라”가 아니라 ‘이웃의 우토로’로 만들어내는 담론이 중요한 때다.

Copyleft 2007 by capcold. 이동자유/수정불허/영리불허 —

PS. 이 블로그 드나드는 사람들은 얼추 짐작하겠지만, capcold의 경우 우토로 이야기를 하는 것은 따듯한 동포애나 인간존중 그런 것이 아니라 한국이라는 국가가 한국국적을 가진 성원들에게 효과적인 ‘슈퍼-종합보험’이 되어줄 수 있어야 한다는 사회체제에 대한 시각 때문이다. 그렇기에 국가가 그냥 우토로 주민들에게 정착금 지원해주고 땡처리해도 이상할 것은 없지만… 그래도 이왕이면, 우토로라는 식민현대사의 희귀한 상징적 존재를 그냥 놓치고 폐기처분하는 건 너무나 아까운 일이다. 민속촌 방식의 ‘우토로 평화마을’ (혹은 아예 노골적으로 평화 테마파크)으로 일본 땅 한복판에 일본의 조선 식민 침략 관련 재미있는 시설이 있으면 정말 멋지지 않을까. 물론 한국의 관광수입이 되는 것은 아니지만, 한국땅에서 백날 일본 교과서 문제를 가지고 규탄하는 것보다 훨씬 효과적으로 일본인들에게 영향을 미칠 수도. 물론 일본 정부를 불편하게 만드는 효과도 있고 말이다. 문광부는 이런 절호의 찬스를 그냥 놓치고 지나갈 셈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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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thoughts on “이웃의 우토로 [팝툰 13호]

Trackbacks/Pings

  1. Pingback by 노는 사람 Play In

    아직 우토로를 모르십니까??…

    김진태, 「시민쾌걸」 중에서 아, 이건 牛소토로던가?…

  2. Pingback by ‥ 실비단안개의 '고향의 봄' ‥

    우토로가 뭐에요?…

    http://www.utoro.net 우토로 마을 일본 교토부[京都府] 우지[宇治] 이세탄초[伊勢田町] 우토로 51번지에 있는 조선인 강제동원 피해자 마을. 제2차 세계대전 기간인 1941년 교토[京都] 군비행장 건설…

Comments


  1. 상상력과 추진력을 함께 갖춘 관료가 있다면 가능할 텐데요…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듯이 국가의 녹을 먹는 쪽에선 특히 양자를 갖춘 사람을 찾기가 어렵잖아요. 국가 시스템의 본질적인 한계는 부패, 이기주의 등등의 비도덕성보다는 무능력 자체이기 때문인 거 같아서요.

  2. !@#… 진석/ 바로 그거지. 빠르게 더욱 복잡해지는 현대사회를 관리하기에는 관료조직의 융통성이 너무 적어서 업그레이드가 안이루어지고, 결국 격차가 벌어지는… 여튼 우토로의 경우 우선은 정부의 도움을 최대한 끌어들여서 급한 돈부터 막고, 오히려 외곽에서 문화콘텐츠들이 치고들어와서 붐을 만들어주는 쪽이 좋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