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드라마를 빼야 역사가 보일 때 – 『36*397』 [전자신문 100129]

!@#… 원래 작년 한국만화100주년 취지로 시작하였으나, (아마도 같은 코너의 다른 필자분들이 쓴 글들이) 그럭저럭 반응이 나쁘지 않아 올해 다시 재개된 전자신문의 ‘만화로 보는 세상’ 코너. 기본 컨셉이 바뀌지 않은지라 c모는 여전히 역사라는 무겁기 그지없는 토픽을 소화중이다. 지난 주 금요일 게재분의 투고버전.

 

인간드라마를 빼야 역사가 보일 때도 있다 – 『36*397』

김낙호(만화연구가)

두 말 할 나위 없이 인간사회의 역사는 인간이 만들어내는 것이고, 인간들 사이의 기본적인 상호작용이 확장되어 큰 사건이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다. 그렇기에 세계대전 같은 커다란 사안에 대해서도, 국가와 계급과 인종들이 서로 충돌하는 거대한 상황들을 목도할 때도, 그것의 이면에서 인간드라마의 흔적을 찾아내고자 하는 경향이 있다. 예를 들어 역사소설의 모범으로 칭송받으며 너도나도 무슨 인생의 필독서로 꼽곤 하는 ‘삼국지’를 생각해보자. 수많은 세력들이 서로 치고받으며 중국의 패권을 다투는 이야기인데 큰 맥락은 개인들 사이의 의리, 충의와 배신 같은 코드로 가득하고, 바로 그 지점에 주목하도록 유도된다.

물론 아무래도 인간드라마가 돌아가는 상황들을 이해하기 쉬우니까 어쩔 수 없는 노릇이기는 한데, 너무 그쪽 방향으로만 환원하다보면 역사에서 얻을 수 있는 것 가운데 여러 가지를 놓치게 된다. 사적인 상호작용 방식과 보다 큰 차원의 정쟁은 유사한 부분만큼이나 전혀 다른 부분도 많고, 수많은 사람들이 상호작용하는 와중에 전혀 예상치 않았던 새로운 패턴이 창발하는 경우들도 생긴다. 방금 예로 든 삼국지를 보자면, 역시 각 제후들 사이에서 어떤 식으로 전쟁이 일어나고 누가 왜 이겼는지를 보는 것은 인간드라마의 살을 좀 빼내고 당대의 정세와 개별 전투의 전략을 통해서 볼 필요가 있다.

바로 그런 식의 삼국지가 네이버에서 연재되며 단행본으로도 출간중인 『36*397』, 일명 ‘전략삼국지’(최훈 / 길찾기)다. 인간드라마 부분은 대중문화 패러디를 통해서 적당히 간소화 하여 우스개 소재로 넘어가버리고는, 삼국지에 등장하는 주요 전투들을 중심으로 챕터를 편성하여 당대의 정세와 개별 전투에 동원된 전략들을 최대한 입체적으로 보여주는 것에 집중한다. 다른 소설이나 만화에서 적당히 신비롭게 처리하고 지나가는 진형 진법들은 스포츠의 공방과정 도식처럼 명쾌하게 설명되고, 이합집산의 바탕에는 각자 합리적인 이해관계 근거가 제시된다. 비교적 성실하게 개별 인격들에 대한 칭송을 제거하는 것은 물론, 매니악한 패러디로 주요 캐릭터들을 묘사하기 때문에 해당 캐릭터를 알아볼 경우 그 장수의 주요 특징들을 한 눈에 파악할 수 있다는 점도 훌륭하다. 고수급 삼국지 매니아들에게 정사 기준과 다른 부분을 지적당하는 경우도 더러 있지만, 역사적 디테일에 대한 설명도 꽤 자세하다.

만약 삼국지라는 풍부한 역사소재에서 교훈을 찾고 싶다면, 인간사를 그 복잡함과 모순 그대로 보여주는 『고우영 삼국지』와 전투의 흐름을 보여주는『36*397』을 나란히 펼쳐놓고 보실 것을 권장한다. 인간사의 교훈은 인간드라마 속에서 얻어내겠지만, 역사의 승패과정에 대한 지식을 축적하는 것은 오히려 그 인간드라마에만 예속되지 않고 전체 사회 상황의 디테일들을 바라봐야 이루어진다. 그리고 두 가지를 같이 할 때 비로소 역사는 유용해지기 때문이다. 하기야, 고대 중국의 이야기가 아니라 최근 한국의 역사를 볼 때도 마찬가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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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전자신문의 ‘만화로 보는 세상’ 연재칼럼. 필자들이 돌아가면서 ‘만화의 사회참여’, ‘만화 속 역사’, ‘만화와 여성’, ‘웹툰트렌드’ 등의 소재를 다룬다. 제일 무겁고 재미없어지기 쉬운 파트인 ‘역사’ 담당.)

(추가)PS. 본문에서 언급하는 것을 빼먹었는데, 다른 수많은 문학화된 삼국지들과 마찬가지로 36*397 역시 정사와 다르게 내용을 전개한 부분이 적지 않다. 고증에 신경쓰시는 삼국지애호가분들에게는 아무래도 성에 차지 않을 것임을 미리 안내하는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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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thoughts on “인간드라마를 빼야 역사가 보일 때 – 『36*397』 [전자신문 100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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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Pingback by 이효민 Hyomin Lee

    <삼국전투기> 라니깐요…RT: @capcold: [캡콜닷넷업뎃] 인간드라마를 빼야 역사가 보일 때 – 『36*397』 [전자신문 100129] http://capcold.net/blog/5422 | 그러니까, 최훈의 전투삼국지.

  2. Pingback by Nakho Kim

    [캡콜닷넷업뎃] 인간드라마를 빼야 역사가 보일 때 – 『36*397』 [전자신문 100129] http://capcold.net/blog/5422 | 그러니까, 최훈의 전투삼국지.

  3. Pingback by kremlin8

    최훈 작가의 전투삼국지! 정말 사랑하는 만화. RT @capcold [캡콜닷넷업뎃] 인간드라마를 빼야 역사가 보일 때 – 『36*397』 [전자신문 100129] http://capcold.net/blog/5422 | 그러니까, 최훈의 전투삼국지.

Comments


  1. 에…흔히 알려진 ‘삼국전투기’라는 제목 대신 ’36*397’로 소개하셨네요.
    물론 ’36*397’이 본제인거고 연재 원고 어디에도 ‘삼국전투기’라는 제목은 없는건 맞습니다만, 그래도 단행본도 ‘삼국전투기’라는 제목으로 나왔는데 작품 소개라는 관점에서 보면 널리 알려져 있는 제목으로 알려주시면 더 좋았을텐데요.
    뭐 어차피 아는 사람은 다 찾아봐서 알게 될 것이긴 합니다만은…

  2. !@#… stefanet님/ 왠지 이상한 오기가 발동하여 그렇게 써서 보내놓고, 아 내가 왜그랬을까 잠시 생각에 잠겼었죠(…). 심지어 본문에서 제목 풀어준 것도 문자 그대로 제목을 풀어서 전략삼국지로;;; 태그라도 삼국전투기를 추가해야겠습니다 OT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