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라는 기억투쟁 – 『내가 살던 용산』[전자신문 100326]

!@#… 간만에 돌아온 전자신문 원고 차례. 기획회의(아직 여기 안올렸지만), 시사인(그 부분 잡지에선 잘라냈지만)에 이어 이쪽에도 ‘내가 살던 용산’이다.

 

역사라는 기억투쟁 – 『내가 살던 용산』

김낙호(만화연구가)

역사라는 것은 무엇을 기억할 것인가를 놓고 벌이는 투쟁이다. 무언가를 역사로서 기억하는 것은, 어떤 사안의 내용과 함의를 계속 상기시켜주려는 측과 에둘러 그런 것을 잊어버리고자 하는 측의 싸움이다.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은, 개인이든 사회든 기억력 자체가 한정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과거는 필연적으로 단순화되기 때문이다. 오늘을 살아가는 것은 당장 여러 가지 고려할 것들이 넘치지만, 이미 지나간 것은 스스로 생각하기에 필요하다 싶은 부분만 기억한다. 게다가 기억하기 쉽게 가공되어, 단순명쾌한 스토리가 된다. 그 와중에는 사실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은 여러 사연들이 서로 엮여가는 것, 사안의 중층적 의미들과 이해관계들이 충돌하는 것은 과감하게 망각된다. 대체로 현대인에게 있어서 삼국시대니 하는 고대사는 특정한 세계관 속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삶을 꾸려나간 선조들이 남겨주는 교훈이 아니라 서너줄로 요약되는 땅따먹기에 불과하다. 꽤 가까운 시대의 기억들조차도 당장 내게 피해를 준다고 느끼는 일이 아니라면 굳이 세부적으로 기억해두려고 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역사라는 기억투쟁은 무척 불공평한 싸움인데, 사안을 부각시키려는 쪽은 그것의 복합적 층위를 집요하게 파헤치고 관심을 구걸하여 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들어야 겨우 가능할까말까 하는 지경이고, 사안을 묻어버리려는 측은 그저 적당히 뭉개기만 하면 알아서 망각과 단순화로 빠지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고작 작년에 벌어진 용산 철거민 농성과 그에 대한 과잉진압으로 빚어진 참사가 그렇다. 이미 많은 이들에게 그 속에 담긴 최소한 개인의 소소한 욕심부터 점포계약관행과 세무행정의 맹점, 재개발 정책에서 지역기반 사회자본 개념 부재, 나아가 공권력과 용역폭력의 과도한 협력관계까지 이르는 도심 재개발 문제의 복합적 연결고리들은 관심 밖이다. 철거민, 폭력시위, 죽었다, 시끄러웠다, 보상금 받아먹고 타결되었다더라. 그것이 남겨진 기억의 대부분이고, 여기에 더해져서 정치적 입장에 따라서 현 정권에 대한 분노 혹은 떼쓰는 군중에 대한 혐오 정도가 어렴풋이 남는다. 어차피 오늘도 내일도 새로운 사회적 물의는 넘쳐나서 오래 기억을 할애할 여유는 없다. 하지만 그만큼 그 속에서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의 모습을 반추하고 경험으로부터 향후 방향성을 도출하는 것 역시 불가능해진다. 단지 집과 생업자리에서 쫒겨난 몇몇 운 나쁜 인간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빠르게 갈아엎고 뻗어나가는 것에만 혈안이 되어 과정상의 온갖 부실함으로 위태롭기가 짝이 없는 이 사회 속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와 연관된 문제인데도 말이다.

『내가 살던 용산』은 용산사태를 기억하는 만화다. 6명의 만화가들이 당시 망루 위에서 변을 당한 6인 가운데 철거민측 5인의 사연을 그리고 있는 작품이다. 각 작가는 한 명씩 그들과 주변인의 인생과정을 에피소드로 그려냈고, 마지막으로 사태 당시 망루의 모습을 그려내는 에피소드로 마무리된다. 모든 내용은 유족들의 증언에 바탕하고 있는데, 그들의 인생과정은 너무나 평범하기 짝이 없다. 그 속에는 숭고한 투사나 대단한 집념의 도심테러리스트가 있는 것이 아니라, 적당히 정착하고 돈 벌어서 잘 살아보자는 평범한 욕심의 시민들이 있다. 한편으로는 “설마”하면서 자신들에게 불리한 감정평가를 거부하고 나름대로 시기예측을 하며 재개발 소식을 듣고도 새로 가게를 열어보는 안이함도 있다. 다른 한편으로는 그러다가 조합이 고용하고 경찰이 눈감아주는 용역폭력배들이 행패를 부리기 시작하자 분노하는 모습도 있고, 비슷한 처지를 겪었다는 이유로 같이 싸워주겠다며 망루에 합류한 전국철거민연합 소속 평범한 또다른 철거민들의 모습도 있다. 법과 제도를 활용하기보다는 주먹구구에 가까운 그런 도움의 손길이지만, 식구 같다고 느끼며 예견된 비극으로 향해가는 모습도 담겨있다. 『내가 살던 용산』비록 철거민 유족 측 이야기만 담아낸다는 한계야 물론 있지만, 중요한 심층취재로 이루어진 질 좋은 르포타주다.

이런 식의 세심한 르포만화들이라면, 안 그래도 이야기 거리가 매일 넘치는 한국사회에서 더욱 많이 나와야 할 필요가 있다. 그렇게 함으로써 적극적으로 역사라는 기억 투쟁에서, 사회적 모순들을 성찰하고 개선하고자 하는 쪽의 선봉에 서줄 것을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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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전자신문의 ‘만화로 보는 세상’ 연재칼럼. 필자들이 돌아가면서 ‘만화의 사회참여’, ‘만화 속 역사’, ‘만화와 여성’, ‘웹툰트렌드’ 등의 소재를 다룬다. 제일 무겁고 재미없어지기 쉬운 파트인 ‘역사’ 담당.)

PS. “그래서 당신이라면 어떤 기억을 상기시키고 싶다는건가” 물으신다면… 클릭, 클릭, 클릭,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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