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의 둘리, 다시 만나다 – <아기공룡 둘리 애장판> [기획회의 050418]

!@#… 뭐야, 300번째 게시물이잖아 (경악. 100개를 채우기 전에 나간다고 내심 다짐했건만) !!! 음 뭔가 좀 더 강력한 걸로 채우고 싶었던 이벤트 번호였지만, 뭐 알께뭐람.

!@#… 새삼 느끼는 바지만, 이 지면처럼 한 원고지 15매 정도는 최소한 되어야 ‘신간소개’를 하면서도 뭔가 좀 하고 싶은 말을 할 수 있다.

==============================================

그때의 둘리, 다시 만나다 – <아기공룡 둘리 애장판>

‘국민캐릭터’라는 천박한 표현을 썩 좋아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폭넓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은 덕택에 어떤 시에서 주민등록증도 부여받을 정도로 활용가치가 높은 가상적인 인기인이라면 나름대로 무언가로 불러줘야 할 법 하기는 하다. 워낙 변화의 속도가 빠르고 뒤를 돌아보지 않고 전력질주하다 보니 여러 세대가 같이 즐길만한 공동의 무언가가 생겨나기 참 힘든 이 땅에서, 그런 국민캐릭터가 존재한다면 얼마나 보람찰까. 하다못해 부모세대가 자신들의 어린 아들딸들한테 문화적 취향을 즐겁게 자랑이라도 할 수 있도록 말이다. 그런 상에 가장 가까운 것을 억지로라도 하나 뽑아보라면, 열중 아홉은 분명히 한 만화캐릭터를 지목할 것이다: 아기공룡 둘리라는 녀석을 말이다.

그런데 문제는 있다. 부모세대가 봤다는 아기공룡 둘리와, 지금 어린 아이들이 알고 있다는 그 아기공룡 둘리는 서로 다르다는 것이다. 부모는 아마 82년 보물섬에서 연재된 만화를 보았을 것이고, 87년 TV 애니메이션으로 방영된 스페셜을 보고 즐겼을 것이다. 지금의 아이들은? 아기공룡 둘리라는 캐릭터 이미지를 알고 있을 뿐이다. 어쩌면, 둘리의 배낭여행 DVD를 한번쯤 봤을지도 모르고 말이다. 하지만 둘리가 빙하타고 내려와서, 청승파 구박덩어리 더부살이로 시작했다가 점차 눈물겨운(?) 투쟁으로 하나씩 가족으로서의 위상을 얻어나간 과정을 공유하고 있을까. 집안의 가장 고길동이 애완동물 길동이 취급당하며 명랑만화식 환타지 모험길에 끌려다니고 겪는 고초에서 우러져나오는 서민적 페이소스를 같이 공감할 수 있을까.

글쎄, 모르겠다. 꽤 오랜 시간 동안, 공감할 수 있는 기회 자체가 주어지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작년 말부터 발간되기 시작한 <아기공룡 둘리 애장판>(김수정, 키딕키딕. 현재 3권 발매중) 덕분에, 이제는 적어도 이런 작품이라고 이야기를 건네볼 수는 있게 되었다. 이전에 나왔던 여타 판본들과는 달리, 이번 애장판에서는 드디어 작품 전체를, 양호한 인쇄품질로 만날 수 있도록 만들어주었다. 작가와의 인터뷰 등은 반가운 보너스이기는 하지만, 작품 자체를 드디어 제대로 모아둘 수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이미 마음은 풍족하다.

둘리를 동시대의 다른 명랑만화와 차별화시켰던 것들, 둘리를 둘리답게 만들어주었던 것들을 다시 한번 들춰본다. 라면 박스로 만들고, 오징어가 끌고가는 산타클로스 썰매. 은행을 건물채로 뜯어가는 엽기성. 타임코스모스를 움직이며 집주인을 애완동물로 아는 빨간 내복의 변태괴짜, 도우너의 충격적인 데뷔. 아 그래, 이런 것들이었지. 착할 겨를도, 교훈적인척하고 내숭을 떨 넉살도 없는 순수하고 직선적인 명랑함. 구석구석 찌들어 있는 생활의 무게와 그 향기까지. 기억이 돌아온다. 둘리는, 재미있는 만화였다. 귀여운 캐릭터이고 국민 어쩌고 이전에, 불온한 상상력으로 중무장한 도발적 개그였다. 둘리 만화가 완결된 이후의 90년대 이래로, 둘리의 이미지를 이어받아 재생산된 모든 여타 둘리 프랜차이즈에서 깨끗하게 도려내졌던 바로 그 부분이다. 지금은 마치 티본 스테이크 같이 포장되어 칭송받지만, 원래는 비계가 덕지덕지 끼어있는 구수한 삼겹살이었다. 바로 그 비계맛 때문에 둘리는 특별했던 것이다.

<아기공룡 둘리 애장판>은 지나치게 멋부리지 않아서 반가운 책이다. 물론 번들거리는 은색의 하드커버 표지는 확실히 이질감이 들지만, 상품을 고급스러워 보이게 하고싶다는 의도의 그 정도 오버는 그냥 대범하게 받아들여주자. 하지만 요새 아이들의 취향에 맞춘다고 공연히 별로 어울리지도 않는 채색을 집어넣어서 풍미를 해치지도 않았고, 요즘 감수성에도 통할만하다고 자의적으로 선별한 소위 베스트 에피소드들만 골라 넣는 만행도 저지르지 않았다. 날림으로 대충 넘겨서, 완성도가 떨어지는 일화들일지라도 굳이 잘라내지 않는다. 있는 그대로, 원래대로 우직하게 내준다는 것이 얼마나 고마운 일인지 모른다. 물론 작가 입장에서 보았을 때는 부족한 지점, 아쉬운 부분들이 많이 눈에 들어와서 몸둘바를 몰랐을지도 모르겠지만, 그 정도는 독자들의 즐거움을 위해서 참아달라고 간곡하게 부탁할 수 밖에 없다. 그리고 이 책은, 그 소원이 이루어져 있다. 정말 별것 아닌것처럼 그대로 내는 것이야말로 ‘별 것’이다. 유능한 작가가 젊은 날의 가장 찬란했던 때의 에너지를 쏟아넣은 작품이 얼마나 멋진 빛을 발할 수 있는지, 감탄해볼 기회이기도 하다. 어설프게 멋진 작품을 보면, 작가가 이후의 이야기를 계속 그려줬으면 하는 바람이 생긴다. 하지만 이 정도로 완성된 재미의 작품을 본다면, 작가가 제발 절대 이 작품에 화사첨족하지 않기를 바라게 된다.

물론 많은 것을 감수해야 한다. 우선 원래대로 나왔음에 반가워할만한 독자들이 과연 몇 명이나 있을까. 둘리는, 추억상품으로 포장하고 향수를 자극해서 어른 매니아들을 노리기에는 너무 지금까지도 이미지가 대중적이다. 그렇다고 해서 아이들은, 자신들의 취향에 맞는 좀 더 최신 유행을 따라 다니는 것이 자연스럽다. 그 취향 속에 캐릭터 이미지로서의 귀여운 둘리는 있지만, 구박받고 청승맞으며, 동시에 기발한 역전의 칼날을 가는 80년대 정서 가득한 서민 둘리는 없다. 아니 그런 둘리는 아예 이들에게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도대체 누가 이 책을 사랑해준다는 말인가?

이 책을 사랑해 주어야할 사람들은, 좋은 만화를 보고 즐긴다는 것이 얼마나 즐거운 지를 잊어버리지 않은 – 혹은 않았다고 자부하는 – 모든 이들이다. 좋은 만화는 취향은 탈 수 있지만 원형적인 재미를 간직하고 있다는 믿음을 가진 사람들이다. 현실세계의 시간의 오랜 흐름에 따라서 시대적 맥락의 효과가 사라질 수는 있지만, 좋은 만화를 보다보면 그 맥락들이 다시 하나씩 머릿속에서 되살아난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진정한 만화 즐김이들 말이다.  국민캐릭터 둘리가 아닌, 즐거운 만화 둘리로 다시 돌아오는 순간이다.

 

==========================

(격주간 <기획회의>. 한국출판마케팅 연구소 발간. 이전에는 ‘송인통신’이었던 출판 전문저널. 여기에 쓰는 글에서는 ‘책’이라는 개념으로 최대한 접근하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결과야 어찌되었든.)

 —- Copyleft 2005 by capcold. 이동자유/동의없는개작불허/영리불허 —-

Comments are clos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