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말연초는 자고로 롹이 제 맛.
락의 즐거움으로 버텨봐 -『스멜스 라이크 30 스피릿』
김낙호(만화연구가)
작년 여름 무렵, 필자는 모 영화 잡지에서 만화 원작 작품 붐과 관련지어 “영화가 한번 내볼 만 한 한국만화”를 몇 개 선정해보는 글을 쓴 적이 있다. 그 중 하나는 바로 당시 온라인에서 연재 중이던 직장인들이 밴드를 결성해서 밴드 경연에 나가는 내용을 담은 삶의 페이소스와 은근한 낙천성이 담겨있는 만화였다. 안 그래도 대세가 그랬던 것인지, 올해들어 실제로 두 편이나 비슷한 소재의 영화가 개봉했던 바 있다. 다만, 그 두 편 모두 나름대로의 장점을 가지고 있기는 하지만 뭐랄까, 필자가 추천했던 그 만화가 가지고 있던 독특한 재미와는 거리가 먼 컨셉의 작품들이었다. 여전히 ‘와이키키 브라더스’스러운 복고정서에 가까웠지, 정작 오늘날 가장 흥미롭게 이야기할 수 있는 8-90년대에 한국 락과 해외 락의 하드한 대폭발을 온 몸으로 향유했다가 지금은 한창 사회의 쓴맛에 절어 들어가며 30줄 회사원이 되어가는 락키드들의 이야기가 아니었던 것이다. 오래 전에 꿈을 버렸다가 일상에서 일탈하며 되찾는 청춘만세보다 훨씬 진한 공감대를 불러 모을 수 있는 이야기라면, 락커의 꿈을 버릴 듯 말듯 하면서도 계속 아쉬움을 가지고 뭔가 해보고 싶어 하지만 아무것도 풀리지 않는 그 답답함이다. 그런 삶 속에서 바로 밴드를 만들고 연주를 시작할 때, 비로소 락은 일시적 도피처가 아니라 자신의 삶 속에서 즐기는 것이 된다.
최근 단행본으로 묶여 나온 작품 『스멜스 라이크 30 스피릿』(고리타 / 전2권 / 애니북스)이 바로 그 즐거운 락을 노래하는 작품이다. 젊은이에서 회사인간이 되어가려는 타이밍의 샐러리맨들이 직장인 밴드를 만들어 좌충우돌하는 이야기 속에는 비루한 현실만큼이나 긍정적 희망의 판타지가 섞여 들어간다. 바로 밴드를 하는 것, 아직도 음악을 하고 있는 것의 즐거움이 가득한 이야기다. 음정은 엉터리지만 성량하나만큼은 걸출한 메탈 보컬인 샐러리맨 주인공이 다른 각자의 사연을 가진 개성 강한 동료들과 모여서 밴드를 결성하고, 현실적 어려움 속에서도 틈틈이 연습해서 결국 수만 군중 앞에서 공연을 하고 락 밴드 경연대회에서 우승을 한다는 직선적인 줄거리만으로는 사실 이 작품의 진가를 느끼기 힘들다. 이 작품을 규정하는 첫 번째 매력은 바로 남루할 대로 남루한 리얼한 삶과, 달나라 여행을 상금으로 내놓은 경연대회나 젊어 세상을 뜬 락의 천재들이 요정처럼 내려와서 이야기에 끼어드는 경쾌한 판타지의 조화다. 서민적 페이소스와 하드락으로 점철된 도시 동화랄까. 가장 갑갑한 현실과 가장 환상적인 상상이 동시에 펼쳐지기에 세상은 하기 나름대로 살 만한 곳이 된다. 무심한 듯 헐렁하게 열려있는 그림체와 부담스럽지 않은 개그감각 역시 이런 의외로 동화스러운 분위기를 잘 받쳐주고 있다.
『스멜스 라이크 30 스피릿』은 무엇보다 낙천적이다. 열심히 연습하면 최고의 락커가 될 수 있다는 식의 목표 지향적 포부는 물론 아니고, 락을 빙자해서 결국 좋았던 시절을 재현하면서 스트레스 해소 한번 하고 돌아오라는 식의 속풀이도 아니다. 작품 속에 등장하는 전설의 락 명곡 ‘깅디깅’의 의미, “버텨봐”라는 메시지를 몸과 마음으로 실천하며 사는 것이다. 하루하루를 나름대로 버티면서 좋아하는 꿈을 위해 추구하다 보면, 즉 남루한 현실도 살고 동시에 꿈도 꾸고 추구하며 살다 보면, 언젠가는 달나라라도 갈 수 있을 것이라는 메시지 말이다. 이것은 철저한 현재진행형의 메시지이기에 한순간의 대리만족이 아닌, 즐거운 공감의 영역으로 들어설 수 있게 된다.
이 작품의 또 다른 특징은 철저하게 락음악으로 중무장하고 있다는 것이다. 우선 책의 구성 자체가 음반을 모델로 하고 있다. 작품 자체의 제목은 물론 각 이야기 토막의 소제목들은 대부분(가끔은 다른 장르도 있지만) 락의 명곡에서 따오고 있으며, 페이지 숫자는 러닝 타임처럼 표기되어 있다. 부록은 물론 ‘보너스 트랙’이고 말이다. 게다가 작품 안에서도 각종 대사와 상황 설명 속에서 락 밴드와 명곡들에 대한 참조가 가득하다. 여기에 작가가 직접 주석을 달아서 재치있는 설명을 해주는 것은 덤이다. 그리고 그 안에서 다루어지는 락의 범주는 비단 고전들뿐만 아니라 70년대의 하드락이나 80년대의 헤어밴드 메탈, 90년대의 새로운 조류들(소위 ‘얼터너티브’)은 물론 일부 2000년대의 주옥같은 락 트랙들을 폭넓게 아우르고 있다. 물론 작가의 선호 취향은 어느 정도 뚜렷하기 때문에 차분한 철학적 고뇌파들보다는 좀 더 분방한 ‘락스피릿’이 넘치는 이들이 더 자주 활용되곤 하지만 말이다. 정진정명 락키드의 흔적을 강하게 느끼는 매니악한 재미를 충족시켜주는 것만으로도 이 작품의 재미는 특별하다. 특히 프레디에서 ‘인백호’까지 요절 천재 락커들이 우루루 모인 심사위원진은 절묘한 즐거움을 준다.
다만 이런 점들은 반대로 약점이 되기도 한다. 이 작품이 연재 당시부터 보편적인 세대적 공감대를 불러일으킬만한 요소들에도 불구하고 팬층이 비교적 한정적일 수 밖에 없었던 이유 가운데 하나는, 마치 락 매니아급 지식이 갖춰져야만 제대로 즐길 수 있을 것 같은 진입장벽을 느끼게 한 것이다. 귀에 익은 멜로디나 종종 들어본 이름들이라는 것과, 진짜로 만화를 읽으면서 적제적소에서 그 음악이 머리 속에 떠오르는 것은 별개니까 말이다. ‘듣는 만화’를 표방하기에 적합하지만, 정말로 들리지 않는다면 그만큼 거리감이 생긴다. 이것은 기본적으로 시각장르인 만화 특유의 한계이기도 하지만, 그만큼 그것을 오히려 유리하게 극복하려는 노력이 부족했던 것이 아쉬울 따름이다. 예를 들어 연재 당시에는 포털 사이트, 또는 단행본 출시 후에는 출판사의 홈페이지를 통해서 온라인 라디오 방송이나 웹페이지 배경음악 서비스 등으로 작중에 등장하는 곡들을 쉽게 찾아 들을 수 있도록 해준다거나 말이다. 물론 작품 자체로서도 몇가지 아쉬운 점은 있다. 다소 서둘러 봉합한 듯한 결말이나, 결말로 가는 종반부에서 현실과 판타지가 고루 섞여있던 균형이 애매하게 흔들리고 원래의 경쾌한 유머를 버리고 다소 감상주의적으로 흐른다든지 하는 것 말이다. 하지만 그것은 마치 잘 뽑아진 락 넘버에서 기타 솔로가 약간 오버를 해서 간주 부분에서 긴장이 살짝 늘어지는 정도의 흠결에 불과한 정도다.
“버텨봐.” 아무것도 안하고 그저 그냥 있는 것은 버티는 것이 아니다. 일상의 삶을 살아가고 동시에 꿈도 추구해나가는 것, 그런 스피릿이 바로 버티는 것이다. 30대들이 그런 냄새가 진하게 풍기는 작품을 펼쳐 껄껄 웃고 즐기며 자신만의 ‘버텨 볼’ 구석을 만드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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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주간 <기획회의>. 한국출판마케팅 연구소 발간. 여기에 쓰는 글에서는 ‘책’이라는 개념으로 최대한 접근하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결과야 어찌되었든. 즉, 업계인 뽐뿌질 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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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멜스 라이크 30 스피릿 1 – 고리타(gorita) 글.그림/애니북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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