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명하게 뉴스보기: 주어를 경계하기 [꼼꼼 35호]

!@#… 꼼꼼 35호 게재. 꼼꼼도 고용량 PDF판 말고 좀 더 적극적으로 콘텐츠를 온라인에서 굴리면 좋을텐데.

 

이왕이면 조금 현명하게 뉴스보기(3): 주어에 의한 일반화를 경계하기
김낙호(미디어연구가)

문장이라는 것이 성립되기 위한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주어다. 서로 표정과 괴성으로 자신의 의지만을 직접 전달하던 머나먼 유인원 시대와 달리, 언어의 발명은 기본적으로 남 이야기를 하는 것이 가능하게 만들어주었다. 문장 속에 어떤 주체가 있고, 그 사람 혹은 그 것 내지 그 개념이 무엇을 해내고 있는지 어떤 상태인지를 묘사하는 것이 바로 언어의 기본 기능이다. 그렇듯 어떤 말의 의미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주어가 무엇인지 파악하는 것이 최우선이며, 그것에 실패할 경우 의미의 혼선이 온다. 그런데 문장이 자신들이 유도하고자 하는 방향으로 흡수되도록 하기 위해 그런 혼선을 교묘하게 이용한다면 어떨까. 특히 언어 활용의 정수인 현대 언론보도에서 말이다. 비판적 뉴스 독해를 하지 않으면 그냥 정신을 그쪽에 전적으로 맡기는 꼴이 된다.

주어를 혼선시키는 가장 흔한 이유 가운데 하나는(모 정치인의 사례처럼 특정인의 책임소재 회피를 해주기 위함이 아니라면) 바로 일반화다. 특정한 맥락에 처해 있는 누군가의 발언이고 의견인데, 주어를 혼선시킴으로서 마치 그것이 훨씬 더 보편적인 사실인 것처럼 포장하는 것이다. 대중 독자 가운데 상당수도 어차피 정밀하고 복잡한 변인들보다는 보편적 사실을 마음 편해 할 수밖에 없는 만큼, 이해관계도 적당히 맞아 떨어진다.

대표적인 방법은 바로 수동태다. “김박사가 태권브이를 개발했다”에서 “태권브이가 (김박사에 의해) 개발되었다”로 바뀌면서 김박사라는 주체는 문장 속에서 중요도 순위가 밀려나거나 생략된다. 특히 한국어에서 종종 그렇듯 주어가 완전히 생략되면 문장은 특정한 주체의 이야기가 아니라 보편적이고 객관적인 결론의 뉘앙스가 입혀진다. 하지만 이 대목에서 공공연한 비밀을 한 가지 폭로하고자 한다: 언론보도에서 수동태를 쓰며 주어를 생략했을 경우, 그 생략된 주어는 ‘나(기자)’다. “그는 못생겼다고 보여진다”는 문장은 “내가 보기에 그 놈은 못생겼다”라는 것이다(참고로 ‘보여진다’는 전형적인 잘못된 문법임에도 바로 이런 수동태 진리를 만들기 위한 목적으로 무척 남용된다).

주어의 상위범주 일반화도 매우 흔하게 남용되는 기법이다. 예를 들어 A라는 사람이 게시판에 덧글로 어떤 의견을 남겼을 때, 기사에 “네티즌은 **하다는 의견이다”라고 쓰는 것이다. A가 덧글이라는 온라인 소통 형식으로 자기 의견을 표명한 만큼 네티즌이라는 말이 크게 볼 때 거짓말은 분명히 아니지만, 그런 식으로 상위범주로 일반화하는 것은 특정 개인의 일이 아니라 더 보편적인 사실이라고 포장하기 위한 것이다. 학교에서는 국어시간에 일반화의 오류라고 흔히 배우지만, 일상에서는 워낙 흔하게 쓰이고 있어서 따로 신경 쓰지 않으면 삽시간에 말려든다. 그런 용도로 흔히 쓰이는 개념들은 넘쳐난다. 국민, 시민, 여론, 네티즌, 노동계, 해외언론, 미국인 등등, 실제로는 하나의 균질한 의견의 집단일 가능성이 거의 없는 것을 그럴싸하게 싸잡아 과잉 일반화하여 주어로 붙여놓는다. 한마디로, 매력적인 사기다.

이런 요소에 속지 않기 위해서는 한 가지 전제만 계속 상기하며 뉴스를 읽으면 된다. 바로 거의 대부분의 의견들은 보편적이라기보다는 ‘누군가’의 판단이고 개별적이라는 점이다. 특정 주체에 한정된다는 제한조건 없는 손쉬운 일반화 따위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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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진알시공공운수노조(준)이 함께 만드는 무가지 ‘꼼꼼’ 연재칼럼. 이왕이면 조금 현명하게 뉴스를 읽기 위한 생활가이드 같은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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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1. !@#… foog님/ 무서운 예지력… 안그래도 이 원고 바로 다음 회로 넘겼던 건 따옴표 이야기였습니다;;;

  2. 제 메일주소로 전화번호 좀 주시겠습니까^^;

    8월 7, 14, 16, 21일 중 어느 날짜가 괜찮으실지요.

    c says: 지금으로서는 21일이 가장 좋지 않을까 합니다. 메일드릴께요~

  3. 캡사마님, 멋지심다. 뭔가 사기 당하는것 같기는 해도 꼭 찝어내지 못한 찜찜함이 있었는데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