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이와 초월성에 관한 우화 – 충사(우루시바라 유키) [기획회의 051115]

!@#… 애니 시리즈 일본 현지 방영 및 실사영화화 계획 발표 기념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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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이와 초월성에 관한 우화 – 충사(우루시바라 유키)

김낙호(만화연구가)

오만하게도 만물의 영장을 자처하는 생물인 ‘인간’에게 가장 어려운 과제, 즉 가장 이해할 수 없는 일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이해할 수 없는 것도 있다는 사실 그 자체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은 자신의 지극히 제한된 지능과 인식의 폭을 넘어서는 사건에 마주칠 때마다, 자신이 ‘이해할 수 있는’ 이유를 붙여서 설명을 해내곤 했다. 밤에 숲에서 소리가 나면 누군가의 유령이 돌아다니는 것이고, 착하게 살아가고 있는데도 온갖 괴로움에 시달리는 것은 평가와 보상을 중요시하는 하느님이 내려주신 시련이다. 모든 것은 어떤 인격화된 주체의 행위의 결과다. 그리고 그 주체가 어떻게 해서 그런 대단한 일들을 벌일 수 있는지에 대한 설명은 그들을 초월적인 존재로 상정함으로써 적당히 넘어가지만, 최소한 그 누구 또는 무엇인가가 어떤 특정한 이유 때문에 어떤 행위를 하고, 그 결과 이런 일이 일어난다는 지극히 쉽게 이해 가능한 명제를 만들어낸다. 굳이 무신론을 설파하며 모든 초월적 존재들을 덮어놓고 부정해야할 필요는 조금도 없지만, 그 초월적 현상들을 인식하는 방식 그 자체는 분명히 인간의 발명품이다. ‘신’은 존재할 수 있지만, 그 신을 인격화시키는 것은 인간이라는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문화권에서는 유일신을, 어떤 문화권에서는 다양한 층위와 관계망으로 엮여진 신적 존재들을, 어떤 문화권에서는 모든 사물에 깃든 영령을 초월적 현상 속에서 인식해 낸다.

<충사>(우루시바라 유키, 대원CI / 6권 발간중)는 초월적 현상들을 다루는 에피소드들로 엮여진, 환상 기담이다. 원래 국내에 4권까지 출간되었다가 출판사가 만화사업을 접는 바람에 후속편을 기다리던 독자들을 안타깝게 만들었던 작품인데, 몇 달 전부터 출판사를 바꾸어 재출간되기 시작하여 최근 후속편들까지 나오기 시작했다. 게다가 <아키라>로 유명한 애니메이션 감독 오토모 가츠히로가 연출을 맡아서 실사 영화판을 제작하겠다는 발표가 있었고, 또한 얼마전 일본에서 방영을 시작한 애니메이션 TV 시리즈 역시 작품의 세계관을 효과적으로 연출해냄으로 시청자들에게 큰 호평을 받고 있다고 한다. 작품의 성향 자체는 정작 지극히 평온하고 사색적인 기담의 방식을 취하고 있다는 점을 생각할 때, 이런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는 참 아이러니컬한 일이다.

작품의 구성은 비교적 전형적이다. 기이한 현상이 있고, 그런 현상들을 다루는 사람이 있다. 하지만 작품의 진짜 주역은 그 사람이 아니라 바로 기이한 일 그 자체, 그리고 그 속에 녹아들어가 있는 삶의 한 단면이다. 따지고 보면 전설의 고향부터 엑스파일까지 수많은 기담들의 기본 형태인 셈이다. 그러나 이 작품은 유령이나 혼백이나 신적 존재라든지 하는 등 지금껏 동서양 문화권에서 흔히 접해온 설명들과는 살짝 다른 해석을 내리며 세계관을 구축한다. 그것이 바로 ‘벌레’인데, 작품 속 설명을 인용하자면 이런 식이다:

“…이 손가락 네 개가 동물이고, 엄지가 식물을 표시한다고 하면? 사람은 여기, 심장에서 가장 먼 중지의 끝부분 쯤에 있겠죠. 손바닥의 안쪽으로 갈수록 하등한 동물이 되는 거죠. 점점 밑으로 내려가 손목부분에 이르면 혈관이 하나로 되어 있잖아요. 여기에 있는 것이 균이나 미생물이고, 이 근처까지 거슬러 올라가면 동물과 식물을 구분하는 것이 어려워지죠. 하지만 더 나아가, 손목을 거슬러 올라가 어깨를 지나서 심장에 가까운 부분에 있는 것을 바로 ‘벌레’라고 부릅니다.” (1권, ‘녹색의 좌’)

‘벌레’는 생명 그 자체에 한없이 가까운 존재들, 형태와 존재 방식조차 지극히 모호하며 너무나 다양하게 뻗어있는 어떤 것이다. 소리나 빛을 먹고 사는 것도 있고, 인간 형태로 유령처럼 존재하는 것도 있고, 문자라는 지극히 추상적인 형태로 보존되는 것도 있다. 벌레는 거대한 초월적인 의지 즉 신이기 보다는, 다양한 방식으로 살아나가는 생명 그 자체다. 인간세상을 조종하고 관장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자신들의 방식으로 살아갈 따름이다. 물론 각 에피소드의 이야기는 벌레의 생활로 인하여 인간 세상에 어떤 문제가 생겨서 그것을 해결해 나아가는 과정이지만, 그것은 혼령의 한을 풀어주는 무당의 푸닥거리도, 분노한 자연의 신령을 달래어주는 제의식도, 신에게 믿음을 회복하는 신성한 과업도 아니다. 약간은 경험의 축적으로 인하여 알고, 더 많은 부분들은 여전히 이해영역을 벗어난 존재들로부터 나름대로 인간의 생활방식을 지켜내는 것에 불과하다. 벌레는 오염된 인간문명에 대한 대자연의 복수가 아닌, 그냥 이 세상의 일부다. 즉 인격화되지 않은 진정한 의미의 초월적 존재인 것이다. 벌레라는 명칭은 이런 속성에 대한 지극히 역설적인 간판이 되어주는 셈이다.

주인공 긴코는 충사, 즉 ‘벌레’전문가다. 작품에서 언급되는 다른 충사들보다도 더욱 더 벌레를 퇴치하기보다는 그냥 살짝 사람 사는 집에서 쫓아 버리는 방식을 취하는 사람으로, 세상에 대한 경이를 잊지 않은 진정한 방랑자다. 강한 자의식으로 독자를 억지로 감정 이입시키지 않고, 한발짝 물러서서 초월성의 경이와 그것을 잊어버리고 만 인간세상의 모습들을 담담하게 구경시켜주는 역할이다. 그 덕분에 눈꺼풀을 감아도 오지 않는 진정한 어둠에 대해서 알게 되며, 무지개를 쫒듯 근원적 생명에 홀린 방랑자를 만나기도 하고, 몸 안에 들어온 벌레와 공존하기 위하여 벌레의 모든 것을 글로써 적어내야 하는 기이한 사연(명백히, ‘작가’라는 직종에 대한 알레고리다)을 접하게 된다.

이러한 관찰자적 자세는 시각적 묘사에서부터 뚜렷해지는데, 아직 근대화가 오지 않은 듯한 전통적 일본 시골 산하를 배경으로 하면서도 유일하게 긴코만이 기모노가 아닌 티셔츠와 바지 차림이다. 물론 등장인물 중 누구도 그것을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지만, 주인공 캐릭터 자체에 거리감을 부여하는 재미있는 장치로 작용한다. 인간과 자연을 묘하게 섞어 넣는 거친 그림체와 현실과 몽상의 경계가 수시로 무너지는 칸 연출 역시 좋은 조화를 이루고 있다. 물론 기담 장르가 원래 그렇듯 반복적 패턴이 계속되다보면 결국 서서히 경이로움이 감소하는 점이라든지, 반대급부로 긴코의 캐릭터성이 점차 부각된다는 점 같은 점은 대표적인 한계다. 출시된 한국어판의 경우 원작의 시적이고 고풍스러운 어감을 효과적으로 번역해내지 못한 점도 만화번역에 대한 빈약한 질적 투자를 증명하는 듯하여 아쉽다(그나마, 이전 출판사의 경우는 아예 말 자체를 알아듣지 못할 정도로 오역 투성이였다).

충사를 읽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것이 있고 그것과 함께 살아간다는 점을 이해하는 것, 바로 진정한 경이를 회복하는 여정이다. 한번쯤 홀려볼만한 멋진 독서 경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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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주간 <기획회의>. 한국출판마케팅 연구소 발간. 이전에는 ‘송인통신’이었던 출판 전문저널. 여기에 쓰는 글에서는 ‘책’이라는 개념으로 최대한 접근하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결과야 어찌되었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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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1. [네이버덧글 백업]
    – 메리 – 호…재밌겠군요. 초월성에 대한 설명이 간략명쾌. 2005/11/24 14:38

    – 제라인 – 충사 재미있게 보고 있어요.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퍼갑니다. 2005/11/24 23: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