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수동화 – 『우주인』
김낙호(만화연구가)
백수라는 종족이 있다. 아주 간단하게 이야기하자면 일을 하지 않고 빈둥거리는 사람을 칭하지만, 약간만 파고 들어가면 사정은 좀 더 복잡하다. 물론 일을 하지 않는다는 것에 대해서 주변의 스트레스를 받는다거나 금전적 압박이 있다는 점이야 뻔한 이야기지만, 무직자라고 할 때와 백수라고 할 때의 미묘한 어감 차이는 도대체 무엇일까. 우선 일을 그냥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나이나 신체, 지능이든 뭐든 여러 조건들이 분명히 어떤 일을 할 만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거리가 없어야 한다. 일을 못하는 것과 일을 ‘안’하는 것 사이의 미묘한 경계에 서있는 셈이다.
그 결과, 소시민이어야 한다. 재벌집 아들이 빈둥거려봤자 그것은 확실하게 일을 ‘안’하는 것이니 말이다. 그리고 일도, 소위 ‘직업다운 직업’이 아니면 안 된다. 전일제가 아니라면 아르바이트 정도로는 그냥 백수 쪽에 가깝다 (특히 문예창작 계통은 아주 유명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직업 범주에 들어가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라서, 집에 앉아있기만 하면 너무나 쉽게 백수 취급을 받고는 한다 – 세계 공통, 시대 공통, 장르 공통으로). 그렇기에 백수는 사회적인 불경기 속의 젊은이들과 참 관련이 깊다. 일자리가 부족하다는 사회적 환경과, 밥벌이 하나를 위해서 아무 일이나 뛰어들기에는 아직 절실함이 부족하고 몸도 아직 건실한 정도의 신분 말이다. 그렇기에 IMF 구제금융 시기에 그렇게 대중문화 속에서 백수 담론이 피어오르지 않았던가. 그들의 은신처 만화방, 그리고 당시 새롭게 피어올랐던 PC방이 관심의 대상으로 피어오르고 말이다. 이렇게 보자면, 백수라는 것은 단지 무직자라는 ‘신분’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규정된 ‘정체성’인지도 모르겠다. 당연히 다소(상당히) 과장이 섞인 이야기지만, 그만큼 백수됨은 나름의 사고와 생활방식을 가지고 있는 또 다른 청년문화의 일면일수도 있다는 말이다.
『우주인』(이향우 / 전2권 / 길찾기)는 원래 IMF시절에 탄생했던 백수 이야기인데, 10년 가까이 지난 오늘날 다시 발견해도 여전히 지금 시대의 백수문화 정서를 잘 반영하고 있다. 심지어, 여전히 이 작품을 따라갈 만하거나 심지어 비슷하기라도 한 백수 소재 작품이 드물다. 백수를 다루는 수많은 다른 만화들 또는 소설, 영화, 드라마 등이 주로 백수의 처절한 생활상, 그들이 받는 고통과 그들이 얼마나 사회적으로 민폐인지를 강조하기에 바쁘기 때문이다. 즉 ‘백수’가 아닌, 단순한 젊은 무직자 캐릭터들에게 고통을 주면서 가학적 쾌감과 자학적 공감을 이끌어냈다는 것이다. 물론 그것 자체만으로 특별히 나쁘다는 것은 아니지만, 백수 특유의 한량스러움 속에 있는 자발적 생활의 매력이 아쉽다는 것이다. 바로 그 지점을, 『우주인』이 가득 채워주고도 남는다.
작품은 스스로를 우주인이라고 생각하며 이름도 우주인인 (스포일러 아닌 스포일러지만, 알고 보면 진짜 우주인일지도 모르는) 한 백수 여주인공과 그 주변 친구들을 중심으로 하는 에피소드들로 전개된다. 전혀 잘 나가지 못하는 ‘비틀비틀 클럽’이 그들의 아지트이며, 그나마 가게라도 운영하는 주인장을 제외하면 하나같이 백수급들이다. 클럽에 가끔 공연하는 밴드의 보컬? 사회적 잣대로 보자면 백수다. 클럽에서 서빙 알바보는 복숭아볼 청년? 백수. 그저 폼 나는 큰 개와 산책하는 것이 일과인 청년? 백수가 아닐 리가 없다. 그런데 그들의 생활은 유쾌하면서도 문득 감상적인 부분이 있고, 생활의 궁핍을 외면하지 않으면서도 낙관적인 면이 있다. 그렇기에 비오는 날 포장마차에서 소주 한잔 나누면서 시적인 낭만을 즐길 수 있고, 모델하우스에 들어가서 한껏 고급 응접실 집주인들 흉내를 낼 수 있다. 이들은 단지 일이 없어서 백수가 아니라, 뼛속까지 백수라는 종족, 백수라는 문화권의 주민들인 것이다.
이렇듯 백수의 본질적 매력에 다가가고 있지만,『우주인』은 백수 다큐멘터리와는 거리가 멀다. 오히려 현실의 여러 모습들을 가장 시적이고 서정적인 모습으로 살짝 비틀며 승화시킨 이상한 동화, 혹은 몽상에 가깝다. 어떤 일들은 각자 다른 환경 속에서 대변을 보는 이야기가 전부인 에피소드에서처럼 속절없이 즐겁게 표현된다. 그러다가도 순간 외롭고 공허한 마음이 드는 부분에서는 구름을 보며 하루를 보내는 에피소드의 경우처럼 정서의 바닥을 울리듯 텅 빈 울림을 줄 수 있도록 표현하고 있다. 게다가 아무리 구름이 떠다니고 귀여운 동물들이 뛰어놀더라도 결코 특유의 백수적 현실의 고리를 놓지 않는 매력이 돋보이는데, 모래사장에 조개와 불가사리로 만든 크리스마스트리라든지 클럽에서 술안주로 차려놓은 설 차례상이 주는 의외의 아름다움은 ‘서민적’이라는 뻔한 단어로는 도저히 표현할 수 없다. 작가 특유의 동화적 그림체와 자유분방한 칸 연출, 서사적 흐름보다 이미지의 유기적 흐름을 중심으로 하는 표현법들이 이러한 아름다움을 더욱 효과적으로 배가해준다. 물론 백수가 대충 그린 듯 한 느낌을 주기에는 그림체도 연출력도 지나치게 세련되었지만, 도대체 갈피를 잡을 수 없는 동화로 가는 듯 하다가 어느덧 엉뚱하고도 현실적인 공감을 주는 이야기가 되어있는 잘 짜여진 흐름에 몸을 맡기는 것도 멋진 경험이다.
이번에 복간된 판본은 90년대에 나왔던 2도 .인쇄 판본은 물론, 지금의 출판사에서 2003년도에 컬러를 입히고 2권 중 1권 분량만 먼저 복간되었던 판본과도 또 다르다. 판형은 포켓 사이즈로 한층 더 작아졌고, 작가가 컬러 역시 완전히 새로 작업한 것은 물론 칸 연출 역시 미세하게 재조정했다. 덕분에 출판사는 시간을 들여서 더욱 높은 제작 품질로 상하권 완간 세트로 출시한 것에 대한 칭찬과 함께, 2003년에 출간되어 애독자들의 서가에 꽂혀있을 구판 1권을 낙동강 오리알 신세로 만든 것에 대한 정당한 비판을 함께 받아야할 처지에 놓여있다.
물론, 『우주인』은 애매하다. 소위 ‘에세이툰’의 유행 속에서 적당히 감상적인 사랑 이야기나 듣고자 하는 라이트 독자들에게는 지나치게 쌉쌀하다. 4칸이나 4페이지 안에 승부를 보는 즉각적인 반전 개그물에 익숙한 이들에게는 호흡도 임팩트 타이밍도 낯설다. 그렇다고 처절한 무직자 다큐멘터리를 보고 싶은 이들에게는 지나치게 동화적이고, 직설보다는 비유로 가득하다. 하지만, 동화적 낭만과 현실의 남루함이 수시로 교차하는 것을 오히려 즐길 줄 알며, 유머와 감상적 고독이 동시에 공존하는 섬세함을 그 자체로 소화해낼 정도로 독서에 – 아니, ‘삶의 애매함’에 – 숙련된 독자라면 『우주인』속에서 큰 발견을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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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주간 <기획회의>. 한국출판마케팅 연구소 발간. 여기에 쓰는 글에서는 ‘책’이라는 개념으로 최대한 접근하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결과야 어찌되었든. 즉, 업계인 뽐뿌질 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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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에서 재발간 1권이 나왔을 때 전시회(클릭) 여느라 노가다 했던 것이 엊그제 같은데, 어느틈에 몇년 방치되어 있다가 결국 다시 1,2권 합본으로 나왔더라는… 한국에 있었더라면 뭔가 또 판촉 이벤트 한번 해보자고 제안했었을지도.
우주인 세트 – 전2권 이향우 지음/길찾기 |
아우 저도 이거 진짜 너무 좋아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