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에서 “젊은 작가”를 이야기하기 [BRUT 25호]

!@#… 문화잡지 BRUT가 KT&G로부터 독립, 새로 재출범한 재출발호에 ‘젊은 작가’ 특집을 게재했다. 그 중 여러 문화 분야 전문가들과 대담하는 꼭지가 있는데, 그 중 capcold가 대답한 만화 파트 부분만 따로 뽑아보면 이런 내용이다.

 

젊은 작가의 개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 ‘젊다’는 것은 물리적 나이보다는 시도와 성장의 폭에 있다고 봅니다. 창작 경력에서 상대적으로 초입에 놓여, 신작을 발표할 때 완숙함에 대한 고정관념의 기대치보다는 “아 이런 것까지 이야기/표현해낼 수 있는 작가구나”하는 신선함이 더 큰 이들이죠. 하일권 작가가 ‘삼봉이발소’를 그릴 때, “그림체 예쁘고 묘사가 섬세하지만 꽤 신파조의 신인이구나”라고 여겼으나, ‘안나라 수마나라’ 정도에 도달하자 시각적 표현이나 연출력, 이야기를 다루는 깊이가 몰라볼 정도로 차이가 납니다. 혹은 ExCF에서 스타크래프트를 소재로 한 연습장 만화로 작은 히트를 친 주호민 작가가 지금은 ‘무한동력’을 거쳐 ‘신과 함께’로 인간적 유머에 동시대 사회적 인식을 점차 숙성시켜, 최근 가장 주목할 만한 작가들의 반열에 있죠.

한국의 젊은 작가들은 이전 세대의 작가들과 어떻게 다를까? (작품 경향, 생활양식 등)
– 90년대 중반을 넘어서며 점차 문하생(중견 작가의 스튜디오에 조수-제자로 기능하다가 데뷔 기회를 얻어 등극) 같은 기존의 고정적 인력 재생산에서 탈피하여 보다 다양화된 작가 생활 시작 경험을 한 이들입니다. 잡지 중심이 아닌 스폰서 중심의 공모전, 대학의 만화 관련 학과 출신, 웹과 함께 다가온 자기 홈페이지나 게시판을 통한 데뷔 등 ‘프로 작가’ 진입의 턱이 낮아졌으며, 출판 시장의 장기 불황 등으로 수익모델도 더 여러가지로 모색할 수 밖에 없게 되어 더욱 다양한 방식들로 퍼져나갔죠. 작품 경향 역시 다양성에 있는데, 특히 장르코드의 관성적 재생산에만 매몰되기 쉬운 주류 만화잡지 바깥에서 다양한 시대적 공감대, 파격적이지만 대중성을 염두에 두는 시도들이 가득합니다. ‘병맛 만화’ 같은 것이 이렇게 히트칠 수 있다는 것이 하나의 좋은 사례죠.

젊은 작가들의 활동이 가장 혁신적이고 활발했던 시기를 꼽는다면? 그 시대의 작가들이 이후 작가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나?
– 한때는 누구나 ‘젊은’ 작가였으며, 모든 시대는 모든 그 후 시대에 영향을 미쳤습니다. 그것이 단절이라는 영향이라 할지라도 말이죠. 늘 가장 혁신적인 것은 바로 오늘이고, 반대로 가장 구태의연한 것도 오늘입니다. 100년전 시사만화가 신문에 실린 그 순간도 “가장 혁신적” 시기였고, 50년대말 만화대본소에 각종 장르물들이 양적으로 밀고 들어왔던 순간도 그러하며, 고우영만화가 데뷔하며 성인극화의 다른 길이 열렸던 당시도 그렇고, 80년대 리얼리즘 극화, 90년대 성인 순정물, 그리고 오늘날 디씨 카연갤에서 간혹 등장하는 괴상하지만 공감가는 새로운 코드들도 그렇습니다.

현재 한국의 젊은 작가들에게 발견되는 공통적인 흐름이 있다면?
– 만화의 경우, 산업으로서의 상황 때문에 안정적 모델에 투신하기보다 자기 판의 앞날을 스스로 구상하고 걱정해야 하는 것이 하나의 공통점이죠. 내용면에서는, 공통점보다는 다양성이 바로 공통점. 다만 창작측에서도 학습이 빨라서, 하나의 성공할만한 경향이다 싶으면 빠르게 많은 이들이 비슷한 방식을 따라가곤 합니다. ‘파페포포’식 에세이만화가 히트치면 한꺼번에 범람했고, ‘순정만화’가 히트치자 장편 웹극화가 잔뜩 증가했죠. 나쁜 것도 빨리 배우는데, ‘1001’이래로 너도나도 칸 단위로 세로로 늘어놓기만 하는 낭비성 높은 웹만화 연출을 모방하고 있죠.

그런 흐름이 형성된 원인은 어디에 있다고 생각하나? (흐름이 없다면 없는 이유는 무엇?)
– 출판시장의 장기 불황. 90년대 문화산업 담론의 거품이 산업의 장기적 현실 아래에서 꺼지고 있고, 그 안에서 특히 만화가 별로 득을 보지 못했죠. 90년대 중반의 대학 만화 관련 학과 범람. 창작과 소비 양쪽으로 인터넷 커뮤니티 문화의 급성장. 국내 인디만화씬의 꾸준한 지속과 해외 작가주의 작품들의 국내 소개 증가. 다양한 시도로 퍼질 수 밖에 없습니다.

지금 젊은 작가들의 활동이 이후 세대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생각하나?
– 만화가 여전히 재미있는 것이라는 메시지 정도는 후세에 전달이 될 것입니다. 하지만 좀 더 바라는 바가 있다면, 후대의 창작자들에게도 “자신의 시대를 살아가라”는 교훈이 남아주었으면 합니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작가들을 뽑아주었는데, 그들의 활동을 주목해야 할 이유는 무엇인가?
– 예를 들어 주호민 작가의 경우, 오늘날 현실 사회의 인간사를 직시하면서도, 따뜻한 시선과 만화적 상상력이 주는 재미를 통해 뛰어나게 구현하고 있습니다(미소녀는 아직 부족하지만). 최규석 작가의 경우 일상화된 사회문제들 속에 있는 크고 작은 먹이사슬과 모순들을 잘 포착해내서 차갑게 던져주는 역량이 뛰어납니다(미소녀는 아직 부족하지만). 기선, 김민희 등이 보여주는 코믹함과 드라마성의 조화 역시 자의식 중심이던 90년대의 우수 순정만화들과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 우수합니다. 마사토끼의 불신과 음모의 게임 역시 하나의 장르만으로 묶지 못하지만 뚜렷한 주력분야로서 재미를 주죠. 지금 언급한 작가들은, 몇가지 예에 불과합니다. 더욱 다양한 매력을 발산하는 여러 작가들이 산재해있습니다.

젊은 작가의 역량을 최대한으로 끌어내기 위해 어떤 사회적 환경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나?
– 우선, 사회 일반 어디에나 필요한 기초 사회보장 강화죠. 그 외에는, 종 다양성과 수익성을 함께 가꿀 수 있는 유통 경로 강화(단순히 정부출연기관이 아니라 각계의 창작 지원사업, “인디”유통망, 유통정보와 결제시스템, 디지털툴, 다양성을 염두에 둔 관련 이벤트들, 뭐 세부로 들어가면 끝이 없습니다).

 

!@#… 이외에도 만화 분야의 주목할 만한 젊은 작가(나이 상한선이 있었음…)를 선정해달라고 하여 골라낸 리스트. 그래서 선정하면서 스스로 세운 조건은 이렇다: 하나의 작품이 아니라 여러 작품에 걸쳐 특기할만한 고른 ‘색’을 보여줌(이말년의 경우 단편 연작 방식에 가까움). 최근 1-2년 내에도 뚜렷하게 주목받을 작품 지속적으로 생산.

사회파, 아니 인간파 드라마:
*주호민. (무한동력, 신과 함께 외).
*최규석. (습지생태보고서, 울기엔 좀 애매한 외).
*강풀. (26년, 순정만화 외).

머리를 쓰고 웃음을 끄집어내는 기발함의 이야기들:
*마사토끼(스토리 / 커피우유신화, 킬더킹 외).
*굽시니스트 (본격2차대전만화, 시사인만화 외).
*이말년 (이말년 시리즈).

장르 극만화의 굳건한 버팀목들:
*기선. (게임방 손님과 어머니, 플리즈플리즈미, 커밍업 외).
*김민희. (르브바하프왕국재건설기, 강특고 아이들 외).
*전진석(스토리 / 천일야화, 춘앵전 외).

해외:
*브라이언 K 본. (스토리 / Y the Last Man, Ex Machina 외). DC의 성인취향 레이블 버티고의 블루칩. 훌륭한 세계설정 위에, 좋은 인간드라마를 구축.
*요시나가 후미. (서양골동양과자점, 오오쿠 외). 동성간 사랑과 동지애 등을 소재삼아 선굵은 드라마와 일상의 소소한 감정을 표현. (71년생이니 좀 턱걸이…)
*카즈 키부이시 (Flight 연작 편저, Daisy Kutter 외). 필력좋은 당대 웹만화 작가들의 구심점격인 플라이트 앤솔로지 기획. 스팀펑크 성향과 귀여운 캐릭터.
*나카무라 히카루. (아라카와 언더 더 브릿지, 세인트영맨 외). 비범한 캐릭터들이 펼치는 낙천적 코미디의 달인. 부처와 예수도 마음씨 좋은 청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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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thoughts on “만화에서 “젊은 작가”를 이야기하기 [BRUT 2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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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1. 미소녀는 아직 부족하지만…이 가슴을 치는군요. ㅋ
    젊은 작가분들이 더 많이 노력해 주셨으면 합니다. (…) 뭘…? ^^;;

  2. ‘미소녀는 아직 부족하지만’
    글 속에 깨알 같은 양념을 ! ㅋㅋ

  3. !@#… 마음동화님/ 관점에 따라서는, 그게 핵심이고 나머지 내용이 양념일지도 모릅니다(핫핫)