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비물은 사회의 거울 – 아이 앰 어 히어로 [기획회의 299호]

!@#… 남주인공(히데오)은 노골적으로 작가 자신, 여주인공(히로미)은 노골적으로 아오이 유우;;;

 

좀비물은 사회의 거울 – 아이앰어히어로

김낙호(만화연구가)

대중문화에서 묘사하는 죽었다가 살아난 초자연적 존재 가운데, 그리스도를 제외하면 그다지 인간에게 유익한 존재는 드물다. 그나마 흡혈귀는 고전 ‘드라큘라’에서도 백작이었으며 최근 영미권에서 크게 히트를 이어간 여러 드라마와 영화에서 퇴폐미 넘치는 영원의 존재들로 묘사된다. 나름대로 사회 속에 살아가며, 지적이고 우아한 면모가 있다. 그리고 반대 극단, 즉 가장 모양새가 떨어지는 곳에 있는 것이 바로 좀비다. 되살아났고 남의 생명의 근본 – 흡혈귀는 피, 좀비는 육신(특히 뇌) – 을 섭취하며 살며 전염이 된다는 점도 다 비슷한데, 좀비는 우월한 새로운 존재로 거듭나지 못하고 그저 걸어 다니는 시체다. 다른 어떤 지성 없이 먹으려는 욕구 하나만으로 움직이기에 가장 인간적인 것과는 거리가 멀지만, 반대로 육신이라는 한계는 가장 인간적이다. 통각이 없기에 팔다리가 떨어져도 움직이지만, 머리를 날리면 활동을 정지한다. 맹목적으로 원초적 욕구 하나만을 위해 움직이고, 딱히 사회적 연결이 없음에도 자연스럽게 떼로 몰려다니고, 대화도 뭣도 불가능하고, 전염되는 위협이기에, 좀비는 현대사회의 ‘대중’에 대한 냉소적 비유로 즐겨 사용된다. 그리고 장르적 관습이 공고해진 뒤에는 그 냉소를 다시 뒤집기도 했다. 예를 들어 좀비보다 딱히 더 인간적일 구석도 없는 인간들을 등장시킨다든지 말이다. 게다가 암약하며 “식량”을 조달하는 흡혈귀와 달리 좀비는 하나의 인간사회 단위를 삽시간에 멸망시키는 만큼, 고도로 발달한 인간 문명사회의 취약함을 보여주기에도 적합하다. 여러모로, 좋은 좀비물은 사회물의 색을 지니기 쉽다.

그런 의미에서, [아이 앰 어 히어로](하나자와 켄고 / 학산문화사 / 4권 발매중)은 일본 현대사회를 무대로 한 ‘좋은’ 좀비물이다. 만화가 어시스턴트로 일하는 별 볼 일 없는 주인공히데오는, 어느날 갑자기 온 나라를 덮친 좀비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 여정을 떠나는 줄거리로, 액면 그대로 좀비물의 흔한 공식을 지닌다. 하지만 내역에 있어서는, 오늘날 일본 도시사회의 모습들을 과감한 디테일로 묘사하며 그 취약함을 드러낸다. 히데오는 만화가로서 뛰어난 재능이 있다기보다는 약간의 가능성을 늘 실현하지 못하고 자신의 마이너한 취향을 세상 사람들이 알아보지 못한다는 것에 투덜댈 뿐인 그저 그런 젊은이다. 그의 주변에는 제대로 능력을 발휘해 출세한 동료도 있고, 자기보다 나이가 더 많은데 여전히 비슷한 처지에 있는 선배도 있다. 좁디 좁은 자취방에서 혼자 지내며 인간관계가 협소한 흔한 도시 소시민이다. 세상의 부조리함, 사람들의 얕은 허영심에 대해서 냉소적으로 비판할 정도의 똑똑함이 있고, 취미로 정식으로 신고 등록된 스포츠 엽총을 다룬다. 하지만 사회적 능력은 지극히 제한적이며, 일상적으로 환각으로 귀신을 보고 대화를 나눌 정도로 자신의 세계에 갇혀있다. 그저 여자친구 테츠코만이 유일하게 그를 인간적으로 돌봐주는 사람이다. 놀랍게도 이 작품은 단행본 첫 권의 거의 대부분을, 오로지 히데오의 일상을 보여주는 것에 할애한다. 좀비가 덮쳐서 망가지는 세계 이전에, 원래 세상에서의 삶이 어떤 곳이었나를 보여주는 것에 이례적으로 많은 공을 들이고 있는 것이다. 다가올 좀비 재앙에 대한 노골적인 복선이나 서스펜스도 없이, 공감하기에는 너무 찌질하고 외면하기에는 너무 친숙한 모습인 주인공의 생활과 사고방식을 보여준다. 그리고 예고 없이, 모든 것은 뒤집힌다.

제목이나 기본 설정에서 연상할만한 것과는 달리, 히데오에게 영웅적 면모가 갑자기 자라나는 일은 없다. 단지 이름이 영웅(‘히데오’의 한자)일 뿐, 그저 자기 한 몸 살아남기 위해 도망가기에 바쁘다. 아무 죄 없는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목숨을 걸지도 않고, 리더십을 발휘해서 사람들을 끌고 다니지 않는다. 환각으로 보는 귀신들이 그에게 어떤 영감을 주어 위기를 헤쳐나가는 것도 물론 아니다. 운 좋게 좀비 창궐의 순간 메고 다녔던 엽총조차 제대로 사용할 일이 거의 없다. 여느 좀비물이었다면 총을 들고 있다는 것 만으로 힘을 얻어 좀비사냥꾼으로 등극하겠지만, 히데오는 총검관리법을 되뇌이며 손에 꼭 쥐고 있는 것이 대부분이다. 단순히 겁을 먹어서 얼어버리는 것 이상으로, 누군가를 돕는 것이 오히려 이상한 일인 현대 도시민의 사고 방식이 더욱 노골적으로 표현된다. 그리고 누군가와 의미가 있는 인간적 유대를 맺고 협력을 하기 시작할 때 비로소 조금씩, 정말로 아주 조금씩 대처 방식이 바뀌어나간다.

좋은 좀비물은 사회의 면모를 반영하곤 하기 때문에, 미국의 좀비물에서는 거의 항상 피난처로 쇼핑몰이 등장한다. 좀비들이 몰려오는 쇼핑몰과 쇼핑몰에서 생존을 꽤할 수밖에 없는 인간들은 미국사회의 면모 그 자체다. 최근 한국의 잘 만든 좀비물에서 좀비는 사회적 약자들이다. [당신의 모든 순간들]에 등장하는 좀비는 생전 단 하나의 기억을 반복하는 원령에 가깝고, 이경석의 [좀비의 시간2]에서는 성폭력의 억울한 죽음이 십수년 뒤 좀비 재앙으로 되살아난다. 그렇다면 일본 현대사회를 무대로 하는 이 작품이 그려내는 모습은 어떤 것인가. 마치 후쿠시마 원전사태에 대한 대처 마냥, 작품 속의 사회는 좀비 창궐이라는 위기를 한번에 인식하고 대처하지 못한다. 한쪽 동네에서 사람들이 대량으로 죽어나가는 현실은, 다른 곳에서는 반신반의 도시괴담으로 받아들여질 뿐이다. 미디어를 통해서만 받아들여온 세상은 가볍기 그지없고, 그 속에서 사람들의 세상이라는 본질은 망각된채로 가벼운 비평들만 날아다닌다. 아마도, 자신에게 그 위기가 들이닥칠 때까지는 말이다.

고도로 관료화된 사회 시스템 속에서, 도시민들은 서로를 소외시키고 무기력해져있다. “난 히어로가 아니어도 괜찮아. 최소한 내 인생 정도는 주인공이고 싶다구!”라고 되뇌이던 일상이 파괴되자, 역설적으로 히데오가 초반에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별 것 없었기 때문이다. 작품 속 말을 빌자면, 잘 나가는 놈들은 서로 교류도 많아서 금방 전염되어 좀비가 되어버린다. 반면 히키코모리(은둔형 외톨이)는 교류가 없기 때문에 살아남는다. 대중문화로 무장한 넘치는 자의식 위에 만들어낸 허세, 그리고 그것으로 숨기고자 하지만 늘 드러나고야 마는 볼품없는 현실의 간극에서 태어난 외톨이 생활방식이 오히려 일시적으로나마 생존의 조건이 되었다. 덕분에 현대일본의 좀비물은, 히어로와 상관없는 현실의 무력감 속에서 어떻게든 살아남는 이야기가 되었다.

이 작품이 어떻게 진행될지는 예측하기 쉽지 않다. 작가 인터뷰에 따르면 전체 10-15권 정도를 예상하고 있다는데, 스토리가 흘러갈 모든 가능성들이 열려있다고 한다. 하지만 작가의 전작 <보이즈 온 더 런>에서 보여준 뚝심을 생각할 때, <아이 앰 어 히어로>의 미덕인 양쪽 페이지를 적극적으로 활용한 스릴 넘치는 연출과 섬세한 묘사, 그리고 쉽게 영웅이 되어주지 않는 현실적인 도시민 주인공을 통해 우리 사회의 어떤 면모들을 넌지시 계속 보여주는 기본 틀은 계속 가리라 예측하고 싶다.

아이앰 어 히어로 1
하나자와 켄고 지음/대원씨아이(만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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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주간 <기획회의>. 한국출판마케팅 연구소 발간. 여기에 쓰는 글에서는 ‘책’이라는 개념으로 최대한 접근하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결과야 어찌되었든. 즉, 업계인 뽐뿌질 용.)

다음 회 예고: 기획회의 300호 특집 ‘저자를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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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1. 잘봤습니다. 하나자와 켄고의 작품은 언제나 주인공이 보잘것없는 소시민이라는 점에서 독특하죠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