험한 세상, 인간성을 찾기 위해 – 검둥이 이야기 [기획회의 353호]

!@#… 제목이 인종차별 이슈를 좀 연상시키지만, 개가 주인공인 사회파 드라마.

 

험한 세상, 인간성을 찾기 위해 – [검둥이 이야기]

김낙호(만화연구가)

사람들은 툭하면 ‘돈의 노예’라느니 돈이 원수라느니 하면서 사회 문제의 증세나 원인을 돈으로 돌리곤 한다. 하지만 현실은 어디까지나, 돈이라는 것은 가치라는 추상적 개념을 어떤 사회 안에서 측정 및 거래 가능한 형태로 치환한 매개체일 뿐이다. 문제를 일으키는 것은 그렇게 환산된 가치에만 몰입하는 과정에서, 다른 종류의 가치들에 대해서 대단히 무심해지는 행동들이다. 돈을 얻기 위해, 그 사회를 함께 살아가는 처지인 다른 이들의 안위에 철저히 무관심해지거나 아예 잔인하게 수탈한다든지 말이다.

하지만 아무리 긴요하게 필요한 성찰이라 한들, 이런 식의 거창하고 추상적인 이야기로 사람들에게 어떤 울림을 주는 것은 쉽지 않다. 그보다는 이런 것은 어떨까. 인간 사회의 외부자이지만 어떤 이유로 인하여 그 속의 가장 밑바닥에서 수탈당하는 존재가, 어떤 광경을 관찰하며 서서히 깨달아 나아가는 것이다. 인간은 손에서 손으로 돈이라는 것을 주고 받는데 그것이 문제인 줄 알았다. 하지만 차차 알고 보니, 돈이 아니라 그 손이 문제였나 보구나, 라고 말이다.

[검둥이 이야기](윤필 / 이미지프레임)의 접근법이 바로 이런 식이다. 작가는 전작 [야옹이와 흰둥이]에서 일용직 노동자 신분인 강아지와 고양이 주인공을 통해서 소외되었으나 묵묵히 열심히 살아가는 이들의 처지를 그려낸 바 있는데, 당시 필연적으로 등장했던 요소인 돈을 둘러싼 탐욕이라는 부분을 이번 작품에서 본격적으로 파고든다. 주인공은 검은 개 흑태로, 처음에는 백령도에서 고구마농사로 그럭저럭 살아가는 실향민 할아버지와 둘이서 지낸다. 그러나 연로한 할아버지가 돌아가시자, 개로서의 능력을 그저 일방적으로 이용해먹고자 하는 여러 주인들을 거치게 된다. 그 중에는 더 많은 돈을 얻기 위해 물불 가리지 않고 동물들을 사냥하는 밀렵꾼이 있고, 더 많은 돈을 얻기 위해 동물들을 서로 싸움판에 내모는 투견꾼도 있다. 그리고 돈으로 돈을 거래하는 금융업의 밑바닥, 사채업자가 있다. 그런 상황에서 다른 이들을 상처를 입히는 일을 하며 점점 스스로도 상처를 입어갈 따름이다. 인간들의 사회에서 개로 살아가면서 그런 상황에서 손쉽게 벗어날 방법이란 없다. 하지만 그 안에서도 모두에게 분노를 터트리며 정신줄을 놓는 것이 아니라 일말의 인간성(!)을 회복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은, 마찬가지로 별반 가진 것 없으나 상대를 신경써주고 돈 말고도 가치를 나누는 다른 개와의 우연한 만남이다.

둥글둥글하게 간략화된 흑백 선의 그림체가 주는 순박한 감성과, 그 안에 담긴 상황들의 비정함의 대비는 이번 작품에서 한층 노골적이다. 도시적 임노동 상황에서의 일상적 소외와 은근한 착취의 장면들을 슬쩍 보여주는 선에 머물렀던 전작과 달리 이번에는 밀렵, 투견 등 노골적으로 폭력과 살생의 이미지가 가득하다. 욕심이 만들어 내는 험한 세상이고, 그런 세상의 구도를 마음대로 벗어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아무 것도 가진 것 없는 개라면 말이다. 혹은 그에 준하는 수많은 우리네 평범한 인간들도 마찬가지다.

흑태가 사회적 신분의 바닥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은, 능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인간 사회를 움직이는 돈의 개념을 잘 모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가 알고 있던 것은 오로지 주인 할아버지와의 가족적 유대였고, 별로 가진 것 없어도 나누고 배려하는 것이 세상의 기본 방식이었다. 그러나 할아버지가 돌아가시자, 당장 제대로 장례식을 치루는 것도 돈이 필요하기에 스스로를 밀렵꾼에게 팔아넘긴다. 그러나 그 뒤로도 노동에 대한 댓가를 돈으로 받아 그 돈을 바탕으로 자신의 생활을 꾸려 나가는 그나마 정상적인 노동자의 생활을 이뤄나가지 못하고, 그저 개로서 주인에게 끌려 다니는 삶이 지속된다. 돈이라는 가치체계를 스스로 활용하지 않기에, 인간 사회에서 사람답게 사는 것은 쉽지 않다.

그런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을 여러 주인들 밑에서 고생하며 겪어나가고 결국 절망과 허기와 분노에 몸을 맡길 상황에 처하지만, 완전히 불가능한 것도 아니라는 것을 알려주는 것이 바로 전작의 주인공인 하얀 일용직 노동자 개 흰둥이와의 만남이다(이 대목은 연재 당시 예고편에도 들어있었으니, 반전을 누설하는 스포일러는 아닐 것 같다). 흰둥이는 흑태를 이용해먹고자 하는 탐욕 없이, 굶고 있는 그에게 그냥 조금씩 음식을 나눠주고, 홀로 있는 그에게 그냥 자신의 삶의 공간에 들어올 수 있도록 문을 열어준다. 돈을 벌고자 하는 욕심을 매개로 이어진 관계 속에서 계속 노예처럼 고생했던 흑태에게, 흰둥이는 완전한 타인임에도 그저 당연하다는 듯 나눔과 배려를 보여준 것이다. 나아가 주인의 명령에 따라서 주인의 일을 처리해야 했던 흑태와 달리, 흰둥이는 집 바깥의 일터에서 노동력을 제공하는 좀 더 근대적 개념의 임노동자다. 좀 더 인간사회에 적응하여 살아가는 방식에 익숙한 인생 선배의 모습을 참조하며, 흑태도 막연한 실망이나 분노를 넘어 자신이 앞으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를 스스로 마음을 굳힐 수 있게 해준다. 물론 그 결론이 반드시 보랏빛일 수는 없지만 말이다.

이렇듯 전작에서 흰둥이와 야옹이라는 두 동물 노동자 주인공은 그들을 통해 다른 이들이 무언가 깨달음을 얻어가도록 만드는 매개체에 가까웠다면, [검둥이 이야기]의 흑태는 관찰자이자 스스로도 성장하는 주인공이다. 이런 지점은 이야기 서술 방식에도 십분 반영되어, 이야기 전반에 흑태의 목소리가 나레이션으로 깔린다. 그가 바라보는 세상의 부조리, 그럼에도 비추곤 하는 희망 등이 그가 이해하는 방식으로 제시되는데, 그것이 자연스럽게 더 성숙한 방향으로 진화한다. 영문을 잘 모르지만 그저 할아버지에게 제대로 된 장례를 치루고자 자신을 팔아넘겼던 초반의 결정 과정 및 그것을 스스로 설명하는 방식과, 이야기 말미에 가서 다시 비슷한 상황을 겪게 되며 생각하는 방식의 섬세한 차이가 그간 과정에서 얻어낸 성장을 고스란히 반영한다.

손을 더럽히지 않고 편안한 것은 없다. 개처럼 벌어 정승처럼 쓰게 되리라는 식의 해피엔딩을 상상하기도 어렵다. 하지만 돈을 매개로 움직이는 모습들에 대해 좀 더 이해가 깊어졌으며, 사람들의 욕심과 모순도 이제는 충분히 겪어봤지만, 동시에 그런 사회 안에서 활동하면서도 어떤 나눔의 가치와 도리를 할 수 있는 만큼은 추구하겠다는 다짐이 생겼다. 세상의 험한 조건을 망각해버리고 막연하게 꿈꾸는 몽상도 아니고, 세상에 적응하겠다는 일념으로 그저 기계적으로 탐욕에 몸을 맡긴 그간 지켜본 수많은 ‘돈을 쥔 손들’의 지경으로 전락하겠다는 것도 아니다. 어떤 의미에서, 이런 것이야말로 인간들조차 종종 잊고 사는 바로 그 ‘인간성’의 추구다.

검둥이 이야기 1
윤필 글.그림/이미지프레임(길찾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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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주간 <기획회의>. 한국출판마케팅 연구소 발간. 여기에 쓰는 글에서는 ‘책’이라는 개념으로 최대한 접근하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결과야 어찌되었든. 즉, 업계인 뽐뿌질 용.)

다음 회 예고: 외천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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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thoughts on “험한 세상, 인간성을 찾기 위해 – 검둥이 이야기 [기획회의 35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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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1. 처음 접해보는 작품이네요……우리나라는 금전적으로 실패하면 차가운 죽음 밖에 기댈 곳이 없지만 그 와중에 흑태를 통해 인간성의 회복이라는 정말 중요한 주제를 독자들한테 전달해 주시네요……인본주의로 회귀에 공감하는바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