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물어 가는 것에 대한 관조 – 『카페 알파』[기획회의060815]

저물어 가는 것에 대한 관조 – 『카페 알파』

김낙호 (만화연구가)

멸망이란 항상 강력한 임팩트를 지니기 마련이다. 어떤 강력한 힘이 하나의 세계를 소멸시키는 모습이란 소멸되는 대상들에게 있어서 크나큰 비극이며, 그 힘이 너무나 압도적이어서 변변한 저항조차 허용되지 않을 때 오는 비극성이란 상상을 초월한다. 그리고 이전의 세계가 사라진 곳에는 새로운 방식의 세계가 들어선다. 이렇듯 멸망은 극적인 요소가 강렬하지만, 사실 현실 속에서 감내하기에는 너무나 크다는 문제가 있다. 따라서 그 자리에 가상의 이야기가 들어서게 되는데, 그렇기에 고대 이래로 수많은 신화와 예언서에서 멸망이 거의 항상 언급되는 것이다. 기독교 성서의 아마게돈이든, 북구 신화의 라그나로크든, 힌두신화에서 이야기하는 파괴신 칼리의 폭주든 마찬가지다. 그런데 현대에 들어서면서 생활 속 불안과 스트레스를 날려주는 신화와 예언의 기능은 종교기관보다는 대중문화의 손으로 넘어간지 오래다. 즉, 멸망이라는 테마는 만화나 영화, 소설 등 서사형 대중문화에 있어서 빼놓을 수 없는 단골소재다.

그런데, 멸망이 항상 모든 것이 부수어지고 사람들이 울부짖으며 운명을 한탄하는 것이어야만 할까. 스피노자가 이야기한 “내일이 세계의 종말이라면 오늘 사과나무를 심겠다” 식의 뻔뻔할 정도의 관조는 과연 쓸모없는 것일까. 이런 질문을 아주 약간이라도 품어본 적 있는 독자들이라면, 최근 완간된 만화 『카페알파』(아시나노 히토시, 학산문화사, 전14권)가 하나의 좋은 독서 경험이 될 수 있다. 이 작품은 인적이 드문 언덕에 있는 카페를 혼자 지키는 여종업원 ‘알파’의 하루하루 일상이 내용의 전부다. 주인은 여행을 떠났다며 자리를 비운 상태이며, 사람들이 사는 도시는 스쿠터를 타고 한참 내려가야 나온다. 그런 평온한 곳에서 자연과 가끔 한 번씩 오는 단골 방문객들을 보며 나른하고 평온한 나날을 보낸다. 비록 여종업원이 안드로이드이며, 대도시들이 대부분 파괴되고 물에 잠겼으며, 지금도 해수면이 계속 올라가는 중이라서 인간문명이 서서히 하지만 확실하게 멸망하고 있다는 사실이 배경에 깔려 있지만 말이다. 사실 써놓고 보면 엄청난 설정이지만, 그것을 아랑곳하지 않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평온한’ 매일을 살아간다는 것이 바로 이 작품의 핵심 정서다.

『카페알파』의 세계는 하루의 흐름에 비유하자면 저녁뜸에 가까우며, 작품에 등장하는 누구하나 앞으로 기나긴 밤이 올 것이라는 것을 모르는 이가 없다. 하지만 모두 관조적으로, 그저 그 세상을 살아갈 뿐이다. 더 많은 것을 얻고자 아등바등하지 않고, 주어진 세상에서 평온하게 일상을 영위한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의 삶을 주인공 알파는 그저 미소 지으며 지켜본다. 과도한 극적 감상주의나 직접적인 설교에 빠지지 않고 자연스럽게 따듯한 메시지를 전달해서 독자들로 하여금 편안하게 스스로를 돌아보게 만드는 스타일의 이런 작품들을 장르 팬들은 소위 ‘치유계’라고 부르곤 하는데, 『카페알파』는 바로 이런 치유계 작품의 가장 모범적인 작품 가운데 하나인 것이다. 극적인 사건보다는 한 템포 쉬어가며 무언가를 돌아보도록 하는 것, 엄청난 반전에 의하여 세상이 구원받기를 기대하도록 하거나 엄청난 행복의 교훈을 주기보다는 그저 나른하게 지금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며 여유를 잃지 않도록 하는 자세가 이 작품이 느리면서도 12년이라는 긴 작품 연재기간동안 고정 팬을 거느렸던 비결이다.

작품 어디에도 자세하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설명하는 부분 따위가 없다. 핵전쟁이 있었는지, 기상재해로 엉망이 된 것인지, 유전공학이 폭주한 것인지 속 시원한 설명 따위는 없다. 그냥 머리만한 밤이나 과일이 있어서 가끔 따먹을 수 있고, 알파가 커피 원두를 사러 나가는 인근 도시 요코하마(그래서 작품의 원래 제목이 『요코하마 쇼핑 기행』인데, 한국어 번안 제목이 원제보다 한층 분위기에 잘 어울린다)가 서서히 물에 잠기며 사람이 줄어들고, 가끔씩 높은 상공에 거대한 로봇 비행체가 날아다니며 세상을 바라보고 있으며, 호수에는 인간형 야생 생물 ‘미사고’가 살고 있을 따름이다. 이런 요소들은 멸망의 비극을 드러내기 위한 장치가 아니라, 어디까지나 바로 이 세상 속 느긋하게 자연과 사람들을 소중히 여길 수 있는 자세를 보여주기 위한 자연스러운 세상의 일부로서 그저 그곳에 있다.

주인공 알파는 이 모든 것을 오랜 기억으로 남기는 자다. 어쩌면 앨범이나 사진기 같은 존재다. 늙지 않고 오랜 시간을 살아나가는 그녀의 주변에서, 다른 사람들은 성장하고 늙어가고 2세를 낳고 어느 틈엔가 더 이상 등장하지 않게 되기도 한다. 사실 시간의 영속적 흐름과 그 속에서 불변의 존재로 변화를 바라보는 자의 이야기는 고전 SF 단편 소설들에서 원래부터 종종 사용되는 구도다. 하지만 대부분의 작품들이 항상 인간의 의식수준을 초월한 세상의 커다란 변화를 보여주는 것에 집중하느라 사람들은 정작 그 변화를 보여주기 위한 부수적 도구에 불과하게 다루어지는 반면, 이 작품은 그 반대의 길을 택한다. 어디까지나 사람에 대한 긍정적 관조가 주를 이루기 때문이다. 영원을 사는 주인공의 운명보다는, 자연스럽게 성장하고 또 천천히 다가오는 멸망의 길에 흥분하거나 피하지 않는 평범한 사람들의 미소가 핵심이다.

이러한 이야기와 정서를 뒷받침하는 것은 부드러우면서도 둥그런 선, 가끔 나오는 파스텔 톤의 컬러 페이지들, 풍부하고 온화한 표정변화로 가득한 시각연출이다. 극적 긴장감도 자연의 아름다움을 강조하려는 광활한 파노라마를 남발하지도 않는 절제된 칸 연출 역시 이 작품의 정서에 가장 적합하게 활용되고 있다. 과도한 감상주의적 성찰보다는 그냥 작은 것에 즐거워하며 사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만으로 자기 할 말을 다 해버리는 관조적 연출의 승리다.

“시대의 황혼기가 이렇게 느긋하고 평화스럽게 오는 것이라니.
이 느릿한 시대에 나는 이 황혼의 세상을 천천히 바라보며 간다는 생각이 든다.
내게는 시간이 얼마든지 있으니까.”
(1권 중, 알파의 대사)

빠르게 흐르는 현실의 스트레스를 더욱 격렬하고 강렬한 자극적 이야기에 몰입하여 상쇄시키는 것도 하나의 즐김의 방식이겠지만, 가끔은 이렇게 하염없이 느긋한 관조에 빠져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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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주간 <기획회의>. 한국출판마케팅 연구소 발간. 여기에 쓰는 글에서는 ‘책’이라는 개념으로 최대한 접근하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결과야 어찌되었든. 즉, 업계인 뽐뿌질 용.)

!@#… 작품의 팬층 성격상 당연히 세트용 수납 박스라든지 박스 세트라든지 OST 특전이라든지 하는 완결 기념 이벤트가 있을법 했지만 뭐 그냥 조용히 완결. 뭐 출판사가 출판사이니만큼 당연한 건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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