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참고로, 블랙잭님이 “사람들이 대안만화 잡지를 사는 것은 독창성을 즐기고 싶어하는 욕구때문이라는 사실을 항상 잊지말아 주었으면 합니다” 라고 하셨는데 120% 공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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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지를 읽게 만든다는 것 – <격월간 새만화책>
김낙호 (만화연구가)
사람들이 잡지를 읽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잡지라는 읽을거리는 최신 사항을 빠른 기간 안에 널리 전달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신문과, 진득하게 한 가지를 파고들게 만드는 단행본 서적의 중간에 있다. 즉 하나의 긴 것 보다는 다양한 짧은 내용물들을 조합하여 일정한 기간 안에 발간하며, 다소의 현재성을 가지고 움직이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아예, 뉴스가 아닌 창작 문화예술을 다루는 잡지의 경우는 어떨까. 시의적으로 출간되어야 할 이유가 있어야 한다. 대략, 그 장르를 일상적으로, 항상 정기적으로 즐기는 생활을 하도록 함이라면 좋을 성 싶다. 10년 동안 작업한 방대한 작품을 10년 동안 기다리게 한 후 읽히는 방식도 있고 1년마다 단행본 1권씩 쪼개서 출시해서 1년 주기로 10번 즐기게 하는 방법도 있다. 하지만 아예 잡지에 ‘연재’를 해서 10년 내내 일상적으로 즐기게 하는 방법도 있는 것이다. 즉 잡지는 작품을 생활의 일상성에 보다 가깝게 만들어준다. 또한 여러 작품들을 같이 묶어서 제시한다는 점 역시 대단히 중요한데, 하나의 작품에 심취하도록 하기보다는 일련의 작품들이 만들어내는 문화적 취향으로 감싸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것은 거꾸로 말하자면 창작 문화예술 잡지가 그런 기능이 가능하기 위해서 필요한 전제조건이기도 하다. 바로 잡지의 작품들이 일상적으로 즐기고 싶어할 만큼의 지속적 매력을 지니고 있어야 하며, 하나의 문화적 취향을 만들 수 있을 정도로 색깔이 뚜렷해야 한다는 것이다. 1920년대의 문예동인지들 이래로 항상 그것이 좋은 창작 잡지와 쉽게 잊혀지는 잡지들의 가늠쇠가 되어왔다.
최근, 창작 만화지 <격월간 새만화책>(새만화책 발간)의 창간호가 출시되었다. 주류 장르공식을 따르는 만화보다는 작가의 개성적인 작품 성향을 중시하는 단행본을 위주로 작업했으며 지난 2003년 <계간만화> 1,2호를 제작한 바 있는 출판사답게, 이 잡지는 명시적으로 작가주의를 표방하고 있다. 실제로 창간호에 실린 작품들은 장르만화의 주류를 이루고 있는 사실상 표준화되어 있다시피 한 미형 그림체를 벗어나 있으며, 그 안에 담긴 이야기 역시 삶의 거친 측면들을 소설의 문예사조로 치자면 ‘리얼리즘’내지 ‘자연주의’에 해당될 방식으로 풀어나가고 있다. 총 12편의 작품과 하나의 글이 실려 있는데, 작품들은 대체로 한 호흡으로 끝난다. 절반 이상이 단편이며, 연재물 역시 다음호에는 과연 어떻게 될까 하는 방식보다는 하나의 에피소드로 마무리 지을 수 있는 내적 완결성을 지닌 것이 보통이다. 한국 작가가 주가 되지만, 해외 작가 가운데 잡지의 성향과 비슷하다고 판단되는 작가의 작품들도 네 편 포함시켰다.
작품들은 자전적 느낌을 구체적으로 강조한 작품들 (열아홉, 내 어머니 이야기, 푸른 끝에 서다 외), 또는 작가 자신의 페르소나를 캐릭터로서 직접 활용한 ‘정신적인 자전 에세이’ (미스터 워터멜론의 오류, 나 그리고 얌전한 고양이의 동거 외) 가 대부분이다. 극적 상상력으로 새로운 서사를 꾸며낸 작품(불행한 뱃사공, 도쿄 고려장 외)들이 오히려 전체적 분위기에서 뜨는 느낌이 강할 정도로, 그 분위기는 일관적이다. 이런 측면에서 봤을 때, 통일된 컨셉을 통한 뚜렷한 취향 구축이라는 측면에서는 충분한 성공을 거두었다고 볼 수 있다. 게다가 자전적 느낌의 이야기는 작가의 세계관을 효과적으로 보여 주는 것에 용이한 장르다. 새로운 극적 창작물의 경우 뚜렷하고 일관성 있는 ‘작중 현실성’을 구축하기가 훨씬 어렵지만, 자전적인 느낌의 이야기의 경우 자기 삶의 경험이라는 뚜렷한 참조모델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일상적 향유를 하고 싶게 되는 지속적 매력, 즉 넓은 의미의 재미라는 측면에서는 어떨까. 사실 잡지란 결국 여러 작품들의 모음집이기 때문에, 각 작품들의 격차가 발생하지 않을 수 없다. <격월간 새만화책> 역시 보다 뚜렷한 완성도를 지니고 있는 작품, 확실히 한 장르를 개척했다 싶을 정도로 이미 검증 받은 고전 명작 등이 한쪽에 분류될 수 있는가 하면, 재능은 보이지만 아직 덜 다듬어진 티가 나는 작품들이 다른 쪽에 위치하고 있다. 하지만 전체적 수준에서 볼때, 시각적 만족이라는 명제 이상으로 나아가지 못했던 <계간만화> 1,2호의 경우와는 달리 이야기로서의 재미가 상당히 준비되어 있다. 즉 잡지의 작품으로서 읽을 만한 매력이 충분히 갖추어져 있다는 것이다.
다만 아직 몇몇 작가들이 자신이 받아온 다른 해외 유사 장르 – 즉 ‘작가주의’ – 작품들의 영향을 스스로 소화시키지 못하고 있다는 문제점은 명백하게 지적받아야 옳다. 작가가 자신이 좋아하는 작품들의 영향을 받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그것을 자신의 이야기와 감수성을 전달하기 위해서 효과적으로 변용하고 수용해내는가 아니면 아직은 단지 모습을 쫒아가는 것에 불과한가, 라는 문제인 것이다. 예를 들어 『내 어머니 이야기』는 같은 출판사에서 작년에 출시한 바 있는 『페르세폴리스』(사트라피 저)의 시각 스타일과 연출방식을 그대로 가져다 쓰고 있다, 하지만 『페르세폴리스』는 아이의 맹랑한 천진함과 난해한 세상 돌아가는 모습을 역설적으로 충돌시키기 위해서 흑백 아이콘화된 그림체를 활용한 것인데, 이 작품의 경우는 차용해온 시각스타일과 자신의 이야기가 서로 녹아들어가지 않고 있다. 이외의 몇몇 작품들에서도 보두앵의 붓터치, 체스터 브라운의 방백 연출 등이 채 소화되지 못하고 거칠게 원용되고 있다. 이런 지점들은 반드시 편집자의 역량으로 적절한 조율을 해 나아감이 바람직하다.
무엇보다, 잡지의 진짜 매력과 위상을 만들어내는 것은 발간의 지속성이다. 부디 <격월간 새만화책>이 창간호의 포부를 잘 이어가서, 뚜렷한 취향과 상당한 완성도를 지닌 만화지로서 확고하게 자리잡기를 기원한다. ***
약간의 사족: 하지만 <격월간 새만화책>이 ‘대안만화를 다룬 최초의 잡지’라느니 ‘본격적으로 작가주의를 표방했다는 점에서 의의를 찾을 수 있다’느니 하는 식의 언론 보도들 앞에서 필자는 곤혹스러움을 거두기 힘들었다. 그렇다면 <화끈>이나 <히스테리> 등 걸출한 사례들을 90년대 한국 인디만화의 성과들을 어둠 속으로 밀어 넣자는 것인지. 하나의 대상에 대한 의미부여와 칭찬은 그 자체의 절대적인 우수함과 매력에 기반해야 하는 것이지, 결코 여기까지 오도록 기반을 닦아준 기존의 모든 성과들을 부정하는 방식을 통해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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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주간 <기획회의>. 한국출판마케팅 연구소 발간. 여기에 쓰는 글에서는 ‘책’이라는 개념으로 최대한 접근하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결과야 어찌되었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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